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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나의 자카르타
작가 : 히타히타
작품등록일 : 2019.9.2

도망치듯 떠나온 그곳에서 마법이 시작된다.

 
나, 잘하고 있는 거니
작성일 : 19-09-11 10:43     조회 : 297     추천 : 0     분량 : 4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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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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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주방에서 음식이 다 됐다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주방에 들어가 음식의 간을 봤다.

 

 “마흐무드, 레시피 대로 했겠지?”

 “그럼요. 가르쳐준 그대로 했어요.”

 

 나는 주방을 나와 박수를 두 번 쳤다.

 짝짝, 짝짝.

 세 개의 전쟁에 휴전을 알리듯, 홀 전체에 울려 퍼지도록 크게 쳤다.

 신경전을 벌이던 모두가 나를 쳐다보았다.

 

 “아요, 스무아 마깐(모두 먹읍시다)!”

 

 나는 인도네시아어로 소리쳤다.

 리리, 디디, 줄리가 식기에 음식을 담아 왔다.

 나무 색깔이 예쁜 핫플레이트는 글로독에서 찾을 수 없어 한국에 주문해 들여온 것이었다.

 그것들이 세관을 통과해 돌담으로 무사히 들어올 때까지 나는 일주일 동안 잠을 설쳤다.

 

 테이블에는 세 가지 요리가 놓였다.

 핫플레이트에 담은 소갈비와 떡갈비, 그리고 돌솥비빔밥이었다.

 모두 아내의 레시피를 따르되, 현지에 맞게 살짝 변형했다.

 

 소갈비를 잴 때는 과일이 문제였다.

 가격이 비싼 한국산 배와 사과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파인애플로 대체해 봤으나 이곳 파인애플은 효소가 너무 강해 조금만 넣어도 고기가 곤죽처럼 녹아버렸다.

 나는 수십 번의 시행착오 끝에 이곳에서 흔한 망기스 즙을 섞었다.

 

 돌솥비빔밥에는 비싼 호린소(시금치)를 대신 깐꿍을 넣었다.

 한국말로 공심채인 깐꿍은 인도네시아의 국민 채소라 할 만큼 사람들이 즐겨 먹는 채소였다.

 박 사장의 조언대로 깐꿍을 먹어보니 시금치처럼 단 맛이 없지만 식감은 오히려 더 좋았다.

 여기에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좋아하는 현지 버섯을 조금 추가하니 현지인도 만족할 만한 돌솥비빔밥이 완성됐다.

 

 떡갈비는 씹는 식감을 위해 빵가루를 더 늘렸다.

 한국의 전문점처럼 고기를 칼로 다질 형편이 안 되기 때문에 생각해낸 고육책이었다.

 

 나는 요리전문가가 아니다.

 내가 믿는 건 오직 아내의 레시피였다.

 아내의 작은 식당에서 맛본 모든 요리에는 마법 같은 맛이 숨어 있었다.

 그것은 만드는 사람의 정성과 고심이 녹아 있지 않으면 낼 수 없는 맛이었다.

 나는 아내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10분의 침묵이 흘렀다.

 달그락거리는 식기 소리만 식당을 맴돌았다.

 나는 초조하게 사람들의 반응을 기다렸다.

 갈비를 우물거리던 박 사장이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맛있는데? 미가보다 훨씬 낫군.”

 “팔아도 되겠습니까?”

 “그럼. 내 입맛에는 딱이야.”

 

 나는 인도네시아인 직원들의 평가를 재촉했다.

 박 사장보다는 그들의 반응이 더 중요했다.

 돌솥비빔밥을 정신없이 먹던 브따위족 아가씨들이 동시에 엄지를 쳐들었다.

 

 “바구스(좋아요)! 에낙(맛있어요)!”

 

 불평쟁이 줄리도 음식에 대해선 불평하지 않았다.

 디디는 기도를 하듯 경건하게 밥알을 씹었다.

 뚱뚱한 한류팬 리리가 가장 열심히 먹었다.

 그녀는 돌솥 그릇의 바닥을 긁고 입에서 밥알을 튀겨가며 칭찬했다.

 

 “정말 맛있어요! 많이 팔 수 있을 거예요! 이민호 같은 맛이에요!”

 

 무뚝뚝한 민족주의자 기사 노빨이 미소를 지었다.

 그와 멀리 떨어져 앉은 캐서린은 화교 특유의 장사 감각으로 이 음식들이 성공할 거라고 장담했다.

 

 주방팀도 자신들이 만든 음식에 만족하는 표정이었다.

 마흐무드는 노숙자 같은 콧수염에 고추장 소스를 묻힌 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그 순간, 몇십 분의 식사 시간 동안 마법이 찾아온 것 같았다.

 그 순간만큼은 서로에 대한 적의가 물러났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음식의 맛에, 음식을 만든 사람의 고민에 집중했다.

 

 ‘식당에선 뭔가 마법 같은 것을 기대하게 돼.’

 

 아내는 언젠가 그렇게 말했었다.

 나는 이것이 아내가 말한 마법이라고 생각했다.

 

 식사가 끝나자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주방팀은 설거지를 홀 직원들이 해야 한다고 언성을 높였다.

 박 사장 부자는 다시 초조한 듯 식탁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캐서린은 노빨을 향해 인상을 쓰기 시작했고 노빨은 등을 돌렸다.

 

 그러나 나는 아까보다 기분이 좋아졌다.

 먹구름이 몰려온 것 같은 답답함도 사라졌다.

 나는 사람들에게 연신 인사했다.

 

 “뜨리마 까시. 고맙습니다. 땡큐.”

 

 **

 다시 돌담에 나 혼자 남았다.

 나는 빈땅 맥주 한 캔을 들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DOLDAM, Korean Restaurant’

 어제 새로 단 간판이 빛나고 있었다.

 

 나는 간판 밑에서 맥주를 땄다.

 빈땅의 하얀 거품이 알루미늄 캔 위로 올라왔다.

 

 나는 아직 산뜻한 빈땅의 맛이 좋았다.

 인도네시아에서 오래 산 교민들은 빈땅이 지겨워 하이네켄을 마신다.

 빈땅이 맛있다는 것은 아직 이 나라가 낯설다는 뜻이다.

 

 아내는 저물녘 노을을 보는 걸 좋아했다.

 붉은 하늘을 보면 황홀한 피로감이 느껴진다고 했는데, 나는 그게 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어둡고 찌푸린 하늘을 향해 속삭였다.

 

 “여긴 노을을 보기가 힘들어. 해가 너무 빨리 지니까.”

 

 나는 조금 쓸쓸해졌다.

 이런 날에는 두꾼 할머니라도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시 중얼거렸다.

 

 “많은 일들이 있었어. 많은 사람들이 왔어.”

 

 사람들은 만나고 싸우고 사랑하고 헤어진다.

 나는 그 세계가 지겨워 도망쳐 왔지만 다시 그 세계로, 사람들의 세계로 들어서고 있었다.

 나는 아득한 기억 저편에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나... 잘 하고 있는 거니?”

 

 나는 빈땅을 꿀꺽 삼켰다.

 돌담의 간판이 환한 불빛을 비추었다.

 

 **

 

 개업일이다.

 

 나는 새벽 4시 아잔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슬림이 기도 전 몸을 씻듯 경건하게 샤워를 했다.

 그러고는 할 일이 없다는 걸 깨닫고 멍청히 앉아 있다가, 1층으로 내려가 주방이며 홀이며 테이블이며 쓸고 닦았다.

 

 기사 노빨이 새벽 6시에 와 주었다.

 나는 전날부터 노빨에게 인도네시아인 칭찬을 듬뿍해 놓았다.

 그의 비위를 맞추는 덴 인도네시아 칭찬이 최고였다.

 

 “노빨. 고마워”

 “뭘요. 인도네시아인은 항상 약속을 지키죠.”

 “역시 인도네시아인은 멋져. 바구스!”

 

 나는 노빨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노빨은 오늘만큼은 캐서린이 뭘 시켜도 들어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양 손을 들어 다시 엄지를 세웠다.

 

 우리는 뿌리인다 쇼핑몰 근처 전통시장으로 갔다.

 프랜차이즈나 대형 식당들은 유통업체와 계약해 아침마다 식재료를 배달받지만, 소규모 식당들은 전통시장이나 롯데마트 홀세일에서 구입한다.

 롯데그룹은 백화점이 고전을 하는 와중에도 도매 시장 만큼은 착실히 장악해갔다.

 

 “미스뜨르, 그냥 배달 받아요.”

 “시장이 더 싸잖아.”

 “가격 차이 별로 안 나요.”

 

 나도 노빨처럼 아내에게 불평했었다.

 아내는 암 진단을 받고도 식당 문을 닫을 때까지 매일 새벽 장을 보러 나갔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 뒤척일 때, 옆자리를 더듬으면 아픈 아내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불평하는 내게 아내는 그게 식당에 대한 예의라고 말했다.

 나도 당분간은 노빨의 추가 수당을 올려주고 인도네시아 칭찬을 퍼부으며 시장에서 장을 볼 작정이었다.

 

 시장 상인들은 나만 보면 웃었다.

 외국인 남자가 아침부터 장을 보는 일이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유통업체의 가격표를 뽑아 들고 상인들이 부르는 가격과 비교해가며 최대한 깎으려고 애썼다.

 

 “이부, 뜨룰랄루 마할(아줌마, 너무 비싸요).”

 

 내가 마할을 외칠 때마다 상인들은 재롱잔치를 보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고 선뜻 깎아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건어물이나 사탕 등을 먹으라고 건네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소탈하다.

 가까운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겪어본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게 말한다.

 도회지 사람들도 깍쟁이 같은 면이 없고, 아기들이 지나가면 앞 다퉈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그런 사람들이다.

 나는 그 작은 시장에서 시골 5일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벌꿀쌀이네?”

 

 나는 한 쌀집 앞에서 멈춰 군침을 흘렸다.

 포장지에 벌꿀 그림이 그려진 그 브랜드의 쌀은 한국과 같은 단립종일뿐 아니라, 찰기가 있어서 맛이 좋았다.

 자카르타에서 먹어본 쌀 중 그 쌀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나는 당장 흥정에 들어갔다.

 푸근하게 생긴 주인아저씨가 가격을 부를 때마다 깎고 또 깎아서 유통업체보다 10% 싼 값에 한 부대를 샀다.

 아저씨가 물었다.

 

 “값을 잘 깎는데 중국인이요?”

 “한국에서 왔습니다.”

 “부인은 안 왔소?”

 “아내는 없어요. 저 혼자 식당 합니다.”

 

 나는 가슴을 두 번 탕탕 쳤다.

 아저씨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배달은 안 필요하쇼?”

 “해주시면 좋죠. 배달비가 없으면.”

 “돈 안 받고 배달해 줄게요. 내 아들 같아서 하는 말이요.”

 

 나는 횡재를 한 기분이 되었다.

 고가의 일본 브랜드 쌀을 쓸 수는 없어서 벌꿀 브랜드가 최선인데, 거기다 무료 배달 서비스까지 제안 받았다.

 역시 장을 보러오길 잘했다.

 나는 아저씨에게 주소와 전화번호를 일러주고 의기양양하게 식당으로 돌아왔다.

 

 시작부터 잘 풀리니 오늘 하루가 잘 풀릴 것 같았다.

 그 생각이 착각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한 나절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그때까지 나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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