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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죽음 프로젝트
작가 : 히타히타
작품등록일 : 2019.9.2

죽음 너머의 세계에 다가가려는 사람들

 
고양이의 선택2
작성일 : 19-09-11 10:12     조회 : 298     추천 : 0     분량 : 4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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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정화는 과일청을 잘 만들었다.

 유자청, 레몬청, 블루베리청, 모과청, 자몽청, 오미자청이 담긴 유리병들이 거실 선반에 늘어서 있었다.

 이사를 가려는 듯 가재도구들이 상자와 보따리에 포장됐지만 유리병들은 그대로였다.

 

 그녀는 이 형사에게 레몬차를 내주었다.

 뜨겁고 새콤달콤했다.

 레몬차는 봄날 오후의 향기와 맛을 담고 있다고 이 형사는 생각했다.

 

 “이사를 가시려고요?”

 “이웃들이 다 아는데 어떻게 여기 살겠어요.”

 

 권정화의 남편 박성훈은 관광버스 추락사고의 범인이었다.

 작은 사보기획사 편집자로 일하다 실직한 뒤 무직으로 지냈다.

 권정화는 남편이 운전기사를 덮치는 장면을 TV 뉴스로 봤다.

 모자이크 처리를 했지만 남편임이 분명한 사내가 버스 핸들을 꺾는 순간 권정화는 잠시 기절했다.

 

 “남편은 명문대 건축학과에 다녔어요. 자퇴했지만.”

 

 권정화는 테이블에 놓인 앨범을 펼쳤다.

 남편 혼자 대학 정문에 기대 카메라를 노려보는 사진이 있었다.

 정문 기둥에 눈이 쌓여 있고 두터운 오버코트를 걸친 박성훈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대학 시절 남편 사진은 이거 하나뿐이에요. 남편은 이 사진을 싫어했어요. 안 좋은 기억만 떠오른다고. 책갈피에 구겨져 있던 걸 제가 앨범에 옮겨놨어요. 남편이 찢어버리고 했지만 제가 말렸죠. 저는 이 젊은 대학생 얼굴이 맘에 들어요.”

 “남편은 왜 자퇴하셨나요?”

 

 권정화가 앨범을 덮었다.

 이 형사는 레몬차를 또 한 모금 들이켰다.

 레몬 향기가 들어와 온몸에 퍼지며 침이 고였다.

 

 “남편은 뭐랄까, 사회와 안 어울리는 사람이었어요.”

 “내성적인 분이셨군요.”

 “아뇨. 그러니까, 튕겨나간 사람 같았어요.”

 “튕겨나가요?”

 “네. 남들과 경쟁을 하는 걸 싫어했어요. 다들 이 악물고 사는데 남편은 그러지 못했죠. 그리고 한국에선 남들과 똑같이 행동하지 않으면 따돌림 당하잖아요. 남편은 뭔가 틀에 박힌 걸 싫어했어요. 그러니까 튕겨나간 거죠.”

 “그럼 어떤 것에 관심이 있으셨나요?”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아마 영적인 것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이는 입버릇처럼 세상이 잘 못 됐다고 말했어요. 식욕과 성욕 같은 욕망에만 집착한다고요. 어릴 때부터 한 생각이래요. 세기말 밀레니엄 버그라는 게 문제였잖아요. 컴퓨터가 2000년을 인식하지 못해서 세상이 멸망할 것처럼 떠들었죠. 남편은 그때 정말 멸망했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 적 있대요. 언젠가는 양자역학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두세 번씩 돌려보더군요. 그런 걸 보면 현실적인 문제보다는 뭔가 더 근본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았나 봐요. 근데 이런 게 수사에 도움이 되나요?”

 “네. 뭐든 자세히 아는 게 좋습니다.”

 

 권정화는 고개를 갸우뚱 하고 이 형사를 보았다.

 그녀는 아직도 남편이 한 짓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누군가 남편을 억지로 조종했으며 수사 과정에서 밝혀질 거라고 그녀는 말했다.

 

 “대학 생활에 적응을 못 해서 자퇴했대요. 고등학교 때까진 시키는 대로 공부만 하면 되니까 견딜 만한데, 대학에선 나름 사회생활을 해야 하니까요. 자기만의 도시, 뭐 그런 걸 만들고 싶어서 건축학과에 갔는데 공부도 재미없었나 봐요. 자퇴 문제로 부모님하고 사이가 나빠졌어요. 시부모님은 신혼 때 한 번 뵙고 장례식장에서 마지막으로 뵌 게 다예요. 학교 자퇴하고 여기저기 막노동판 떠돌아다니고 돈 모이면 아무대로든 여행 가고 그렇게 산거죠.”

 “그래도 좋은 분 만나서 결혼까지 하셨네요.”

 “이런 말 하긴 뭐 한데 신랑은 죽을 때까지 혼자 살 생각이었대요. 절 만나면서 생각이 변한 거죠. 제가 막 결혼하자고 졸랐어요. 실은 저는 그전에 한 번 결혼한 적이 있어요. 그 놈이 오래 동안 만난 여자하고 애까지 낳은 걸 알고 신혼 때 바로 이혼했죠. 그이하고는 미용실에서 처음 만났어요. 저는 미용사거든요. 그이는 뭐랄까, 무심한 표정이 마음에 들었어요. 여자 따위는 관심 없다는 표정, 세상에 관심 없다는 표정. 이런 사람이라면 믿고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만나기 싫다는데도 자꾸 만나자고 졸랐어요.”

 “결혼하고 남편이 바뀌셨나요?”

 “절 만나면서부터 남편은 맘 잡고 사보기획사에 들어갔어요. 글쓰기를 좋아했으니까요. 하지만 그 일이라는 게 항상 갑질에 시달리는 거예요. 밤 새워서 바꾸면 원 상태로 돌리라고 하고 뭐 그런 식이죠. 게다가 나이 들면 버티기 힘들어요. 회사에서 잘리고 여기가 어딘가 싶더래요. 낮밤 가리지 않고 달려 왔는데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그래도 남편은 책임감이 있어요. 언론에선 집에 틀어박힌 것처럼 나왔지만 공장 경비 다니고 그랬어요.”

 

 권정화는 손질이 잘 된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다.

 40대 초반이었지만 삼십 대 초반처럼 앳되 보였다.

 

 “죄송하지만 남편은 굉장히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시는 분 같네요.”

 “두 번 자살 시도도 했대요. 왜 그랬는지는 말을 안 해서 몰라요. 알고 싶지도 않고.”

 “남편께서 종교도 믿으셨습니까?”

 “아뇨. 종교 같은 건 싫어했어요. 자주 명상 같은 걸 하곤 했는데 책에서 배운 거라고 하거든요. 사실 믿었다 해도 몰랐을 거예요. 말을 잘 안 했으니까. 저랑도 얘기가 안 통한 거죠.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얘기를 누구랑 했을지 궁금해요.”

 

 “사건 당일을 한 번 떠올려 보세요. 남편께서 뭔가 다른 점이 없었나요?”

 “갑자기 어디 놀러간다니까 전 좋아했죠. 이제 좀 자신을 추스르나 싶었어요. 남편은 그냥 평소처럼 우울해 보였어요. 아... 근데.”

 “근데요?”

 “뭔가 말쑥해 보였어요. 그이는 원래 자기 모습에 신경 안 쓰거든요. 수염도 깎으라고 잔소리를 몇 번 해야 깎는 시늉이라도 하는데 그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오랫동안 샤워하고 면도까지 하고 제가 다려놓은 남방을 입고 갔어요.”

 “남편께서 하신 말씀은 없습니까?”

 “어디 가든 아무 말 없는 사람이에요. 근데 식탁 위 메모지에 낙서 같은 걸 남겨 놨더군요. 전 그걸 유서처럼 보관하고 있어요.”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권정화가 이 형사를 남편의 책상으로 안내했다.

 낡은 책꽂이에는 명상법 책 몇 권과 <숨겨진 우주>라는 과학서 한 권 뿐이었다.

 권정화는 서랍에서 작은 메모지를 꺼냈다.

 ‘영혼은 나비처럼 자유롭다’라는 글자가 흘림체로 쓰여 있었다.

 이 형사는 권정화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모르겠어요. 저도.”

 

 이 형사는 권정화의 아파트를 나섰다.

 현관문을 열기 전 권정화가 말했다.

 

 “힘들게 살았어요. 남편도 저도.”

 

 이 형사가 권정화를 뒤돌아보았다.

 권정화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어요.”

 

 권정화는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

 그녀에겐 아이도 없고 의지할 만한 부모나 친척도 없었다.

 살인자의 아내라는 낙인을 평생 지고 살아야 했다.

 이 형사는 그녀가 저 작은 주먹처럼 살아갈 결의에 차 있길 바랐다.

 

 권정화의 집을 나오니 해가 기울었다.

 거리에는 봄이 깊어가고 있었다.

 민들레 홀씨들이 버스의 서슬에 놀라 이리저리 흩날렸다.

 이 형사는 편의점 의자에 앉아 중얼거렸다.

 

 “여섯 명째.”

 

 이 형사는 권정화의 남편과 피해자 다섯 명을 조사했다.

 여섯 명 모두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고 우울한 성격이었다.

 죽기 전에 죽은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이 형사는 편의점에 들어가 초코 아이스바를 샀다.

 어릴 때부터 이 형사는 누가바를 좋아했다.

 특히 누가바를 둘러싼 초코 껍데기를 좋아해서 껍데기를 다 벗겨 먹은 뒤에 속살을 먹었다.

 한 입 깨물면 아사삭 초코 파편들이 입안으로 쏟아진다.

 그것들이 혀 위를 굴러다니며 달콤한 마찰을 일으킨다.

 누가바를 찾기 힘든 요즘에도 이 형사는 초코 껍데기가 있는 아이스바를 즐겨 먹었다.

 

 이 형사는 거리의 풍경을 감상하며 아이스바를 먹었다.

 초코 껍데기를 다 뜯어먹고 무슨 속살을 핥았다.

 날이 더워지고 있었다.

 거리의 행인들이 긴소매를 팔뚝까지 걷고 지나갔다.

 

 “영혼은 나비처럼 자유롭다?”

 

 이 형사는 핸드폰의 웹브라우저를 켰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박성훈이 마지막으로 남긴 문장을 쳤다.

 포털사이트는 신속하게 검색 결과를 토해냈다.

 영혼에 관련된 시시한 블로그 글들, 나비 수집가들의 사진, 여성의류 쇼핑몰 후기, 가수의 인스타그램 등이 검색 엔진에 걸렸다.

 이 형사는 그것들을 외면하고 사이트 검색란을 훑어보았다.

 맨 위 사이트 소개 문구에 이 형사가 친 문장이 그대로 걸려 있었다.

 

 “영혼은 나비처럼 자유롭다! 인간의 영혼은 육체에 붙들려 있습니다. 모든 고통이 육체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영혼을 깊이 성찰한다면 몸의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도솔명상센터에서 몸과 마음을 치유하세요.”

 

 이 형사는 아이스바를 한 입에 빨아먹고 중얼거렸다.

 

 “시발. 헛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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