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자, 시험시간입니다.
다들 OMR카드 들고 컴퓨터용 사인펜을 꺼내세요.
수정은 손을 들면 감독관이 찾아가.....지는 못할 테니 알아서들 하십시오.
그럼 주의사항은 여기까지.
잠시 후 종이 울리고 나면, 문제풀이를 시작하시면 되겠습니다.
먼저 필적확인란에 기재할 문장을 확인해주세요.
『생각은 인간을 생태계의 정점에 서게 만들어주었지만,
진리에 가깝게 다가가도록 도와주지는 못했다.
적어도 세상의 진리에 관한 한,
인간은 타(他)종보다 압도적으로 무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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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시. 생활과 윤리.
[종이 울리고, 문제지를 넘기는 소리들이 우수수 흩어진다. 나도 그에 발맞춰 장을 넘기고 1번 문제를 읽기 시작했다.]
문제 1.
□□(이)라는 생물이 호랑이에게 목덜미를 물렸는데, 그 때 □□의 울음소리는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아아~, 선량한 나는 오늘도 악한 호랑이에게 당해 목숨을 잃겠구나. 역시 세상이란 참 야속하구나. 무릇 □□이란 선을 추구해야 하거늘, 악은 항상 선보다 강하다니, 정말로 야속하구나. 억울하구나. 하구나.』
다음 중, □□ 안에 들어갈 멍청하기 짝이 없는 동물의 이름을 고르시오.
① 사슴
② 토끼
③ 지렁이
④ 물벼룩
⑤
[무슨 일이지. 5번은 인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하지만 5번을 찍자. 소거법이다. 정답인 것 같아서가 아니라, 다른 것들이 다 비슷하니까. 결코 정답이라서가 아니다. 나는 5번에 마킹을 칠한다. 속히 다음 문제로 넘어가 시험을 계속해서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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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 정답 : ⑤
문제 해설. 애초에어떤고약한상사한테이유없이갈굼당하고난뒤술병을들고선그사람을부정할이유를찾기위해도덕이나상식같은허상들사이를헤매기시작하는그순간부터순간부터순간부터순간부터인간은자연의진리에관한한타종들보다압도적으로무지한것이다아니무지하다기보다도알고있음에도외면한다인간도동물인이상동물의본능에대해안다누구나누군가의위에서고싶어하는인간의본성을알고또흔해빠진상식으로는설명할수없는복종의미학을누구보다도잘알고있음에도유일하게그것을외면하는종이바로인간이다자신의약함에대해자신의패배에대해상식이나진리같이한가득쌓아놓은허상의무더기속으로숨는것에너무나도익숙해져있는가장강하면서도가장약한가장영리하면서도가장무지한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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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교시. 수학 영역.
[2교시 시험 종료 5분 전. 풀지 않고 남겨두었던 한 개의 문제만이 눈앞에 덩그러니 남는다.]
문제 29(서술형). 문제를 잘 읽고, 다음 질문에 답하시오.
『사회생활의 법칙에 따라, ‘생각≠표현’ 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29-1) 이 때, ‘본심≠생각’은 자명하지 않은 이유를 서술하시오.
29-2) 본심∩생각∩표현 안에 갇힌 것이 공집합이 아닌 인간인 이유를 서술하시오.
[............]
서술하시오.
[............]
포기하셔도 상관은 없어요.
[..........?]
[그렇게 내가 얼빠진 표정을 짓는 동안, 2교시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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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 정답) 자명하지 않길 원했고 그 사실을 까먹었기 때문에.
29-2 정답) 혼란이 공집합의 부분집합이기 때문에.
문제 해설. 본심과표현사이의간극은핏줄터지도록신경쓰는주제에본심과생각의차이는당연하다는듯간과한채로자기가판생각이란무덤에제발로들어가서토할때까지빙글빙글빙글빙글빙글빙글쎄빠지게도는것이―
정답률이 0%에 수렴하지만 배점도 0점이어서 별 논란이 되지 않았던 문제. 가산점도 없기 때문에 시험시간만 까먹는 문제라는 것이 총평이다. 일각에서는 아예 풀지 않는 것이 정답이라는 설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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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3교시. 국어 영역.
[종이 울렸지만, 뭐랄까, 계속 풀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버렸다. 그냥 펜을 놓고서 시험지에 널려있는 지문들 중 하나를 읽는다.]
『
(중략)
문제는 하도 이리저리 도망쳐싸다보니, 자신이 원래 무엇 때문에 괴로워했는지에 대해 잊는다는 것이다. 혹은 다른 것으로 착각한다. 그리고, 한없이 헤맨다.
이것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전쟁이 없어진 지금, 총과 칼에 베인 상처의 빈자리는 내면의 상처가.
비명이 오가는 전란 대신, 침묵이 감도는 묵직한 혼란이.
그리고 타살 대신, 자살이―.
총성이 들리지 않아 경각심이 사라진 현대도시의 밑바닥에서 남모르게 흐르는 이 증상은, 평화라는 가면을 썼을 뿐인 전쟁의 일종인 것이다. 또는 차갑게 습기 찬 도시 속에서, 많은 이들의 고개를 아스팔트를 향해 떨구게 만드는, 인간만이 가지는 제2의 중력.
많은 사람들의 술병과 속을 게워낸 그 골칫덩어리 녀석 탓에, 지금, 우리의 현대도시는 맞서 싸울 힘조차 알코올에 모두 빼앗겨버린 채 우울에 깊게 취해버린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재기불능 상태에 빠져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것처럼.
』
“..........”
[시험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나는 아무것도 마킹하지 않은 OMR용지를 제출하고 조용히 교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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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수험, 드디어 도를 넘다.』
“이번년도 불수험, 어렵기 전에 교육과정 밖이야…”
“출제자는 ‘이렇게까지 어려워할 줄 몰랐다’며 구름 위에서 연신 해명 중…”
“언론은 교육과정 내의 출제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며 교육부의 변화를 촉구하려는 움직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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