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한 밤,
도시 속, 달콤하게 흩뿌려진 빨간 점들과
유리빌딩 안에 가득 따르는 형광색 폭포.
투명한 잔에 떨어지는 와인마냥 조르륵 차오른다.
마지막 방울이 튀길 무렵 요동치던 수면이 잠잠해지자, 안에 있던 인간들은 부유하여 빌딩 속을 헤엄치기 시작했다. 물의 노란 광채 탓에 선명한 검정색 실루엣만을 선보이며, 물고기처럼 이리저리. 그 환한 빛에 눈이 부시지도 않은지 잘도 유영한다. 어쩌면 질끈 눈을 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상태로 조금 시간이 지나자, 빛나는 빌딩의 표면에 돌연 거대한 그림자가 맺혀들었다.
안광을 내뿜으며 사정없이 고개를 휘두르는 지상의 조명들의 탓인가보다. 거리를 걷는 이들을 검은색 거인으로 탈바꿈시켜 빌딩의 유리벽에다 평평하게 그려 넣는다.
네모난 가방을 들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청년.
양 어깨의 가방끈을 쥔 채, 눈에서 방울들을 뚝뚝 흘리며 서글프게 걷는 어린 소녀와
총을 장전하며 서둘러 걸음을 옮기는 우락부락한 체형의 남자.
그 세 명의 그림자 거인이 자신의 빌딩 표면을 지나치자, 어항 안의 조그만 그림자들은 야단법석을 떨며 흩어졌다.
『어떻게 어떻게, 거인이야 거인.』
『달아나야 해. 잡아먹히지는 않을까?』
『아냐 기다려봐. 먹이를 줄 수도 있어.』
시간이 조금 지나자 그림자들은 빌딩 별로 제각기 다른 반응을 취했다.
어떤 빌딩에선 모두 수면을 향해 고개를 꺾고서 입만을 뻐끔거리고, 또 어떤 빌딩에선 잔뜩 겁먹은 채 바닥 가까이에 모여 우글거리는 반면, 좋다며 수면 위로 펄떡이고 생난리를 치는 통에 되레 기포가 자욱하게 부글거리는 빌딩도 있었다.
한편 거인들은 평소대로 걷고 있었다. 시종일관 고개를 흔들어대는 조명 탓에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지만, 무슨 일인지 조명의 빛이 갑자기 그들을 고정하고 섰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야』
『저기 봐, 갱스터 거인이 직장인 거인한테 총을 겨누고 있어!』
걸음을 멈춘 청년 그림자의 앞, 총을 든 남자의 그림자는 뭐라뭐라 소리 지르며 입을 벙긋거렸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청년 그림자가 가방을 내려둔 다음 두 손을 치켜든 채 물러서는 것으로 보아 무언가 위협을 받은 것 같았다.
『어떻게 어떻게, 큰일이야!』
『그보다 직장인 거인의 뒤에 소녀 거인이.....어, 어어...? 안 돼!』
청년 그림자가 뒤를 돌아보자, 그를 발견한 소녀 그림자는 기쁜 듯 떨궜던 고개를 들며 그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가벼워진 발걸음에 귀여운 단발이 날갯짓을 하고, 눈을 떠난 방울들이 뒤로 흩날린다. 이윽고 그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려는 남자. 실루엣들이 창에 이마를 딱 붙이고선 눈을 휘둥그레 치뜬 것과 동시에, 직장인은 몸을 날렸고―
소녀는 메고 있던 책가방을 열어, 권총 하나를 꺼내들고는,
―탕. 청년과 남자의 그림자를 향해 망설임 없이 발포했다.
『.........?』
『?』
『??』
파가가가가가가가가가강―!! 직선으로 나아가는 총알 그림자의 궤적을 따라 빌딩의 유리창이 와장창 박살난다. 살얼음 깨지듯 점차 퍼져나가며 조각난 빌딩에서 형광색 물이 터져 나와 도시를 범람한다. 털려나온 거대한 방울들의 산탄. 여러 방향에서 몰려든 파도가 서로 충돌하며 터져 오른다. 일정하지 않은 수류와 섞여드는 혼란에, 쓸려나온 물고기들은 물속에서 방향 없이 이리저리 휩쓸린다. 꼬르르르륵. 빌딩 속에서는 잘만 숨 쉬더니, 이제는 두 손으로 쥔 목에서 기포를 내뿜으며 아주 죽으려 한다.
꼬르르륵, 꼬륵.
말 그대로 혼비백산이었다.
다음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꼴까닥 혀를 내민 채 수면 위를 떠다니고, 수몰된 도시 위로 겨우 고개를 내민 전광판이 치직대며 뉴스 보도를 시작했다.
『어젯밤, 아역배우 ○모씨가 마약상 ×모씨와 형사 △모씨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조사결과 마약에 심하게 중독되었던 ○모씨는 더 이상 재고가 없다는 말에 ×모씨를 살해하려들었고, 그 자리에서 도망쳤던 ×모씨는 도주 중 다시 발각되어 총을 맞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자리에 ×모씨를 검거하려 출동하신 형사 △모씨 또한 동시에 총격을 당하여 순직하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짹짹. 아무 말 없는 도시에 청량한 새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아 그리고, 지금 추가로 들어온 정보입니다만, 당시 아역배우 ○모씨는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안구에서의 출혈은 대마 중독의 대표적인 부작용입니다. 그러니 해당 증상을 보이는 사람을 보면 즉시 경찰서에 신고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