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의 대도.
까만 도화지를 오려놓은 듯한 단색적인 빌딩, 그 창문으로
그 명성 높은 도둑은 빼꼼 고개를 내밀고서 검지로 마술사 모자를 빙빙 돌렸다.
그리곤 고민했다.
‘오늘밤은 무엇을 훔치게 되는가―.’
지붕 위에 녹아든 검은 고양이의 노란 안광을 훔치게 될까?
혹은 뒤죽박죽 잘라놓은 무성의한 건물들?
아니면 남색 하늘 중앙에서 빛나는 시늉을 하고 있는 저 요망한 보름달이 될 수도 있겠다.
모두 시치미를 뚝 떼고 있구만.
자기는 도둑이 아닌 양, 서로에게서 눈을 돌리고 있다. 곳곳의 창문에서 시선들이 흩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저기 박혀있는 가로등들은 눈꺼풀을 열었다 닫았다 번갈아가며 거리를 감시한다. 쿵짝 맞춰가며 노란 눈알을 드레스자락마냥 펼쳤다 오므리는 것이, 정말이지 수상쩍기 그지없다.
댕―, 12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자, 귀를 쫑긋 흔든 검은 고양이는 목에 달고 있던 방울을 앞발로 떼어내고, 달은 한쪽 끄트머리를 움푹 집어넣었다.
‘이런. 서둘러야겠군.’
그리고 까만 정장에서 활동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대도는, 스프링 같은 콧수염을 한 번 당겼다 놓으며 발을 굴렸다. 빙글빙글. 제자리서 구르고―
까만 도시는 흐른다.
같은 결에 있는 빌딩들은 같은 속력으로, 그리고 다른 결에 있는 빌딩들은 제각기 다른 속력으로 흘러갔다. 바람 부는 강가처럼. 역동적으로 흘렀다.
검은 고양이는 다가오는 건물들의 지붕을 오르내리느라 바쁘고
도시를 따라 흘러가다가도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요망한 달 아래
대도는 허겁지겁 달렸다. 휘청휘청. 다리는 빙글빙글.
그 작은 창문 하나도 못 벗어나면서 온갖 호들갑은 다 떠네 정말. 그 와중에 버리는 것을 깜빡한 채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발견한 그는, 그것을 뒤로 냅다 내팽개쳤다.
그런데 이를 어째!
건물 뒤로 빠져나온 그 굽은 지팡이는 지붕을 몇 번 튕기더니, 다른 결에서 멀쩡히 달리고 있던 고양이의 얼굴에 가 부딪혔다.
“냐옹!”
폴짝 뛰어오르며 뒤로 넘어진 고양이는 흐르는 지붕에 그대로 실려, 혼자 뒤로 처지고 말았다. 대도는 미안한 듯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뒤로 눈길을 주다가도, 건물을 기어오르는 가로등의 동그란 빛에 흠칫 놀라며 창 아래로 몸을 숙였다.
“가르릉!”
그를 바라보던 검은 고양이는 짜증난다는 듯 몸을 아치형으로 굽히며 털을 곤두세웠지만―
쿠구구구구구구......
등 뒤에서 입을 벌린 채 흘러드는 도시를 삼키고 있는, 많은 잔해들이 뭉쳐 이루어진 그 새까만 괴물에 화들짝 놀라 다시 한 번 스프링처럼 튀어 올랐다. 발톱을 뽑으며 서둘러 네 발을 굴려보았지만, 결국.....
“냐오옹―!”.
도시를 통째로 들이마시는 괴물의 커다란 입속으로 흘러들고 말았다.
광란의 밤이 옷을 챙겨 헐레벌떡 달아나고, 차분한 새벽이 그 빈자리에 차올랐다.
빛을 비추지 않는 가로등 아래, 다시 정장으로 갈아입은 대도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어슴푸레한 거리를 걷고 있었다. 기쁜 일이라도 있는 듯 지팡이를 앞뒤로 흔들며, 통통 튕기는 발걸음에 등 뒤에 인 한가득 찬 보따리가 들썩거린다.
그리고 그런 그를 지켜보는, 건물 사이 어딘가.
(속닥속닥)
(끄덕끄덕)
(속닥) (끄덕)
몇 겹의 발소리가 그 어둑한 틈을 빠져다오더니,
“#$%&%^&#^$@&*^&#!”
대도에게 동그란 총구가 들이밀렸다.
“?!” “@$^$#&%!!“ ”!!!“
처음엔 경계하며 보따리를 든 손에 더욱 힘을 주었지만, 계속해서 우겨드는 노성에 결국 시무룩한 표정을 지은 채 기껏 채웠던 보따리를 내려두는 그였다.
대도는 왔던 길을 터덜터덜 되돌아갔다.
그날 밤.
흐르는 도시 위의 한 지붕에서
대도는 굴뚝에 등을 기댄 채 시든 시금치마냥 고개를 옆으로 떨구고 있었다. 지붕의 양옆으로 내린 다리는 축 처져 있다.
툭, 툭. 쓰고 있던 마술사모자가 그의 몸을 훑으며 구르더니, 흐르는 골짜기 사이 어딘가로 떨어졌다.
“아야!” 밑에서 그런 비명이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또 누군가 맞은 모양이다.
도시는 흘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