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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혼란한 세상, 이상한 사람
작가 : 토토
작품등록일 : 2016.9.28

 
속이 영 거시기 하네
작성일 : 16-09-28 17:14     조회 : 563     추천 : 0     분량 : 1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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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래사장에 콩 하나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봤다. 여러 개의 게시판 글들이 달려 있었다. 장삼은 기대감을 가지고 클릭을 해서 읽어 내려갔다.

  -고개 숙인 당신. 이제부터 시알리스가 당신의 체면을 발딱 세워 주리라!

  -전화 한통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500만원 대출 가능.

  -마님이 노예를 기다리고 있어요. 노예를 원하는 마당쇠는 불끈불끈 닷컴 클릭!

  -카페 이름이 참 특이하네요. 혹시 공상 소설 창작하는 모임인가요? 저는 추리소설과 SF 소설을 쓰고 싶거든요. 쪽지 부탁요.

  -쥔장이 미친 또라이 색 아냐? 꼭 이런 놈들이 사이비 종교 비슷한 거 만들어가지고 삥 뜯어 쳐 먹는다니까 ㅉ ㅉ

  -그림자를 분실하면 경찰에 신고해도 소용없단다. 나에게 연락해라. 3일안에 네 그림자 찾아 택배로 보내주마. ㅋ ㅋ

  -그랬구낭. 그림자 잃어버려서 슬펐쪄? 우쭈쭈쭈 ~ 불쌍한 내 새끼. 울지 마 아가야. 엄마가 찾아줄 테니. 토닥토닥.

  - 몽큐인지 퍽큐인지 요상한 병 때문에 나라가 어수선한데 이놈은 또 뭔 수작이냐? 이거 혹시 몽큐 환자 아냐? 검사 한 번 해볼까?

  게시판 글들은 광고 홍보 글이나 오해하거나 장난으로 쓴 글들이었다. 조금의 염려는 있긴 했지만 어느 정도 예상된 반응이었다. 장삼은 게시판 글들을 다 삭제하고 공지 사항을 추가하기로 했다.

  -이 카페는 장난으로 개설한 카페가 아닙니다. 저는 정신 이상자가 아닌 극히 정상인 일반 성인입니다. 자신의 그림자를 잃어버린 분들을 찾습니다. 그러한 분들이 계시다면 게시판에 글을 올려주십시오. 내용은 함부로 공개하지 않을 것이며 특별회원만 공유할 것입니다. 그 외의 글은 삭제함과 동시에 강퇴 처리함을 알려드립니다.

  장삼은 힘이 빠졌다. 그림자 없는 사람이 있다는 거 자체가 만화 같은 일이었으므로. 그런 한편으로는 자신이 그림자가 없으므로 세상에 그 누군가도 비슷한 처지에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심리도 작용하였다.

  고요가 바닥에 흐르는 깊은 밤 시각. 장삼은 암흑의 세상 속으로 까마득히 내던져진 검은 콩알이었다. 이게 꿈이면 깨어나기를, 현실이라면 꿈속이기를... 어둠속에서 눈만 떴다 감았다 별별 생각을 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일주일이 더 지났다. 오전 일과를 마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장삼은 후배 동료와 같이 밖으로 나와 식당으로 향했다. 해는 비치고 있었으나 장삼은 그림자에서 점점 무관심해졌다. 이제까지 아무도 그의 그림자 부재를 눈친 챈 이가 없다. 그러므로 장삼은 더 이상 그림자에 대해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고민하지 않으니 당연히 속이 편했고 육신도 덩달아 편안해졌다. 장삼과 후배는 얘기를 나누며 나란히 걸었다. 후배의 그림자만이 옆으로 비스듬히 드리어져 있다. 저만치 길가에 나이 든 사람이 땟물이 줄줄 흐르는 몰골로 제 자리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짐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메고 한손에는 보따리를 들고 있었다. 몇 년 동안 이발과 면도를 안 했는지 반 백발의 머리가 록커처럼 등허리로 길게 내려왔고, 산신령과 같은 긴 수염을 매달고 있다. 그 사람은 먼발치에서 부터 장삼에게 눈길을 주고 있었다. 넋이 나간 듯 같은 흐리멍덩한 눈동자. 장삼이 다가가자 그 사람의 눈길이 잠삼의 다리 아래로 향했다. 그 사람이 입을 열었다.

  제 그림자 하나 못 잡는 놈이 뭘 한다꼬? 꼬락서니가.

  장삼은 몇 걸음 못 가 얼음이 되어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 남자가 입을 굳게 다물고 먼 데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런 표정 없이 무덤덤하기만 한 그의 얼굴.

  오 선배님, 왜 그러세요? 아는 사람이에요?

  아, 아니야..

  그 사람은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장삼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식당에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뭐 시킬까요. 저는 순두부찌개 먹을래요.

  나도 그거...

  장삼은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림자를 망각 속에 잠재우고 있었는데 그가 툭 뱉은 말 한 마디가 쓰나미가 되어 장삼을 휩쓸고 있다. 다른 사람이 알아본다는 것은 더 이상 이 기묘한 현상을 숨길 수 없음을 의미했다. 이제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 것은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장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 화장실 좀 갔다 올게!

  장삼은 밖으로 나와 아까 그곳으로 부랴부랴 뛰어갔다. 그러나 그 사람은 없었다. 사방을 둘러보고 길 건너를 살펴보아도 눈에 띠지 않았다. 장삼은 여러 골목길을 허겁지겁 들어가 보았으나 역시 없었다. 장삼의 입에서 장탄식이 새어나왔다. 장삼은 제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장삼은 그 사람에게 그림자 없음을 어떻게 알아챘느냐 하며 물어보지 못한 것이 몹시도 후회스러웠다. 장삼은 꾀죄죄한 그 사람의 정체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하얀 연기만 피어올랐다. 노숙자의 몰골을 하고 속세에 내려온 신령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반면으로 정신이 이상한, 소위 맛이 간 사람일수도 있지 않은가란 생각도 들었다. 장삼은 혼란스러운 마음에 다리를 터덜터덜 이끌었다. 순두부를 먹는데 뜨거운지 미지근한지 두부인지 석회덩어리인지 입이 밥을 먹는지 숟가락이 밥을 먹는지 멍텅구리가 되어 입만 우물거렸다.

  오후 근무 시간에는 실수를 자꾸만 저질렀다. 등본 한 통인데 두 통을 떼 주고 초본을 신청했는데 등본을 내주고. 일이 겉돌기만 했다. 머릿속에 바보 한 마리가 떡하니 자리에 앉아있는 기분. 퇴근 시간이 되자 장삼은 자리를 정리하고 밖으로 나왔다. 인도를 따라 걷다가 지하철역을 지나 계속 걸어갔다. 오늘 같은 날 복작복작한 퇴근길에 시달린다는 게 끔찍했다. 심신이 오그라들어 껍데기만 남은 좀비가 떠올랐다. 장삼은 한참을 걷다가 버스 정류장에서 빈 좌석이 있는 좌석버스를 탔다. 노선도를 보니 을지로 1가 방향으로 가는 버스였다. 장삼의 집과는 반대 방향이지만 집에서 멀어지든 어떻든 별 상관없었다. 온종일 붕 뜬 몸과 마음이라 어디론가 그냥 떠돌고 싶었다. 한참을 지나 장삼은 을지로 1가에서 내렸다. 주변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장삼은 명동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환한 네온 불빛과 득실거리는 인파들. 유커들이 여기저기 무리를 지어 말소리를 내고 있었다. 한국에 몽큐 바이러스가 전파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알고 있는데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는 것인지, 저들의 생각을 알 수 없었다. 수많은 외국인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것으로 봐선 질병 확산 소식을 알고 있는 듯 했다. 몽큐를 과소평가하는 것인가. 아니면 몽큐는 사스나 신종 플루와는 다른, 말하자면 격이 떨어지는 질병에 불과하다는 방심 때문인가. 어쩌면 저들은 이 나라의 탁한 공기 때문에 마스크를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장삼은 인파를 따라 주위를 둘러보며 돌아다녔다. 장삼은 이곳이 왜 명소인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불빛의 화려함과 떠들썩한 분위기 말고는 볼만한 게 눈에 띠지 않았다. 장삼은 노점에서 꼬치를 먹고 편의점에 들어가 맥주를 샀다. 북적거리는 식당 안에 장삼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장삼은 골목길로 들어가 병맥주를 마셨다. 골목길 안쪽으로 걸어가는데 어떤 남자가 막다른 골목 끝에서 토하고 있었다. 그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며 몸을 흐느적거렸다. 장삼은 다가가 그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의 고통이 장삼에게로 전해졌다. 그 남자가 충혈 된 눈으로 장삼을 쳐다보았다.

  어이, 고맙네, 친구.

  아니요.

  당신 맘에 들어. 나랑 한 잔 하러 갑시다.

  저를.. 아시나요?

  남자는 게슴츠레한 눈을 부릅뜨고는 장삼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몰라..

  장삼은 얌전히 사양을 하며 물러섰다. 장삼은 저 남자의 청을 받아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거절하는 게 상식적인 예절이었다. 장삼이 뒤를 돌아보니 남자는 제 자리에서 휘청휘청 중심을 찾고 있었다. 휴대폰이 울려 전화를 받았다.

  아빠, 어디야?

  유주의 목소리였다.

  응, 아빠 누구 만나고 있어. 이제 들어갈 거야.

  아빠, 빨리 들어와.

  그래 알았어. 사랑해 유주.

  장삼의 삶에 있어 유일한 꽃송이. 장삼은 갑자기 슬퍼졌다. 툴툴 걸어가고 있는데 저 만치 길가 버스 정류장에 걸린 낯익은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벽을 뚫는 남자」 남자가 손에 든 장미꽃 한 송이. 장삼은 저 꽃은 누구에게 주는 마음일까 하며 잠시 상상을 했다. 벽을 뚫는 남자에게 뭔가 특별한 게 있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온통 흐릿한 시야와 답답한 형체들과 가려움증이 부옇게 떠도는 속에서 뚜렷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저 친구. 점점 호감이 가는 친구다.

 

 속이 영 거시기 하네

 

  공무원 생활을 하면 안정적이라는 말은 장삼에게 해당되지 않았다. 아버지 시대에는 그런 말이 통했지만 지금은 시대가 많이 변했다. 유주의 유치원 비용, 윤주가 다니는 세 군데 학원비용. 무리해서 이사한 아파트 대출 이자와 관리비 등. 장삼의 봉급은 이 비용에 고스란히 이체되고 있었다. 영주가 사회 교육원 강사료로 받는 봉급으로 한 달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었다. 영주가 한 번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우리 유주 영어 유치원으로 옮겨야 할까봐.

  무슨 영어 유치원?

  어릴 때부터 영어 교육을 해야 습득이 빠르대. 시기를 놓치면 어려워져.

  철모르는 애들한테 그렇게 공부 부담을 줘야 하나.

  지금은 영어 시대야. 영어만 잘하면 나중에 커서 전문직을 가질 수 있다고.

  그게 얼만데?

  입학금이 20만원이고 한 달 수업료가 110만 원 정도 돼.

  아서라. 나도 숨 좀 쉬자. 지금 형편 빠듯한 거 잘 알면서... 휴우.

  장삼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영주는 보통의 현실을 살면서 높은 이상을 손에 넣으려고 했다. 모든 걸 순리적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장삼과, 순리보다는 변화와 트렌드를 염두에 두는 영주. 둘은 의견 충돌이 많았으나 장삼은 그럴 때마다 설득을 당하는 게 아니라 양보를 한다는 생각으로 영주의 뜻을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일견 가정의 평화를 위한 처세술이라 자위는 했으나 장삼의 마음속엔 불편함이 하나 둘 쌓여 누적되어 갔다. 장삼이 가끔 이의를 제기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큰 아파트 와서 이자만 늘었잖아.

  애들도 커 가는데 언제까지 작은 집에서만 살 순 없잖아. 그리고 지금 이 아파트 값이 전보다 더 올랐어. 내가 얼마나 발품을 팔면서 본 건데. 적어도 손해는 아니야.

  학원 공부 너무 시키는 거 아니야?

  요즘 엄마들 그 정도는 다 해. 난 보통이라고. 강남 엄마들은 일주일에 학원 일곱 군데 보내고 학습지 네 개에다 과외 선생 따로 붙이고 밤 세 시까지 공부시킨다고 하더라.

  딱히 영주의 말이 틀린 것은 없었다. 여기저기 동분서주 다니면서 이사할 집을 결정한 것은 영주였다. 아이에 대한 교육열이 극성스러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영주가 강남 사모님이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언제나 똑 부러지는 영주 앞에서 장삼은 말을 스스로 접곤 했다. 신혼 초 첫째 아기를 임신했을 때 영주는 배를 문지르며 장삼에게 말했다.

  아기가 엄마 성씨를 따르면 안 되겠지?

  무슨 소리야. 아빠 성씨를 따라야지.

  그럼 아기 이름은 ‘주’자 돌림으로 해. 내가 기둥 주니까 구슬 주자로 할 거야.

  뭐 그러던가..

  장삼은 항상 매월 나가는 대출 이자가 너무 아까웠다. 먹어보고 입어보지도 못하는 거금이 다달이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걸 보면서 쓴입만 쩝쩝 다셨다. 전부터 장삼은 전세로 가자고 줄곧 말했으나 영주는 자가를 고집했다. 대출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대출이 있어야 신용이 올라간다, 전세금은 오르고 주인 눈치에 시달린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영주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서울에서 전세 하나 얻는 것도 몇 억은 있어야 하니 전셋집 마련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장삼이 머리에 그리는 집은 자연이 어우러진 수도권 한적한 곳에 조립식 주택이라도 짓고 오붓하게 속 편히 사는 것이었다. 영주는 아이들 교육문제, 출퇴근 문제, 집값 문제 등을 들어 고개를 저었다. 이 땅에서 사람이 살기 위한 집은 없고 미래 가치를 담보해 둔 집만이 집의 효용 가치를 증명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현실. 장삼의 개념과는 거리가 먼 ‘집’이라는 공간에 그는 단지 머물렀다. 집의 평수라든가, 인테리어라든가, 방과 화장실이 몇 개라든가, 아파트 브랜드라든가, 아파트가 있는 동네 이름이라든가, 등은 하등의 상관없이 그는 자기가 거주하는 지역의 제한된 위치와 공간만을 인식했다. 집에서 나와 버스 정류장까지 350미터의 거리. 그 길가에 있는 부동산 사무실 두 개와 약국 한 개, 편의점 두 개, 치킨 집 한 개, 베이커리 한 개, 그리고 정류장 맞은편에 있는 은행 한 개. 그것이 장삼이 기억하고 떠올릴 수 있는 동네의 그림이다. 매일 반복되는 그 길이 단조롭게 느껴지면 그는 아파트 뒤 개구멍 같은 쪽문으로 나가 도로공원 길을 걸어 정자를 지나 가끔 마트에 들르기도 하는 호젓한 코스를 즐기는 정도였다. 그 외의 길은 간적이 없으므로 동네 어디에 뭐가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장삼은 그 지역과 그 지역 내에 있는 어느 아파트 한 공간에 머무르며 그 공간 내에 있는 동안 TV를 하염없이 넘기며 생활한다. 영주와 만난 이후 다섯 번의 이사를 거치는 동안 그는 새 영토에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듯 살았다.

  ‘머지않아 이집도 떠나게 될 거야. 온전히 내 것이 아닌 걸 내 거라고 할 수 있나. 지금껏 내 거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지.’

  유목민이 된 장삼은 거주하는 곳마다 몽고 유목민의 천막집을 떠올렸다. 아파트 공간은 단지 자고 쉬고 먹고 싸고 TV를 보는 장소나 다름없는 곳. 가끔 어디선가 드릴 소리가 아파트 한 동 전체에 파고들고, 피아노 소리와 정체모를 쿵쿵 소리가 귓전을 때리곤 했지만, 어느 정도 면역이 생긴 터라 무심함과 무감함에 길들여져 갔다. 짜증내는 영주와는 달리 그건 그만이 견디는 인생의 복지부동이었다. 언젠가 한 번은 차임벨이 울려 문을 열었더니 아래 층 아주머니가 와 있었다.

  저, 죄송한데요. 이 집 아이들이 뛰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요. 밤 시간만이라도 좀 자제해 주시면 고맙겠어요.

  두 손을 모으고 조곤조곤하게 말하던 인상이 선한 40대 여자. 장삼은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 네 그랬었군요. 죄송합니다. 앞으로 신경 쓰겠습니다.

  영주는 아파트 사람들이 너무 예민하다고 했다. 종일 뛰는 것도 아니고 여자애들이 집안에서 그 정도도 못 뛰면 어쩌냐며 불편한 심경을 내보였다. 그러나 어디선가 벼락같은 소음이 들리기라도 하면 영주는 쉽게 짜증을 냈다.

  공동생활 하는 사람들이 예의가 너무 없어! 개도국 사람들처럼 문화수준하고는 정말.

  영주는 우리나라를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장삼은 한국이 개도국도 아니고 선진국도 아닌 어정쩡한 나라라고 생각했다. 결국 아파트 소음문제라는 게 피장파장이 아닌가. 장삼은 층층이 쌓여 있는 상자 구도의 공간 내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적지 않은 가정에 아이들이 있을 것이고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뛰기를 좋아한다는 것. 영주가 그렇듯이 마늘을 찧고, 청소기를 돌리고, 액자를 걸기 위해 못을 박을 것이고, 뚱뚱한 사람은 발을 디딜 때마다 바닥이 울릴 것이고, 양동이를 놓쳐서 쿵 떨어뜨릴 것이며, 창문으로 센 바람이 들어와 문이 대포소리를 내며 닫힐 것 등이 다 사람 사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밤늦게 베란다 창에 서서 앞 동을 바라볼 때가 있었다. 소파에 앉아 TV를 보거나, 거실을 돌아다니거나, 아이들이 만세를 부르거나, 훌라후프를 돌리거나, 거실 바닥에 누워있다거나, 냉장고 문을 연다거나, 어느 한 곳도 특별한 것이 없는 늘 익숙한 일상의 풍경들. 사는 게 다 비슷비슷하구나 저거 다 내가 하는 것들이구나, 그 정도의 감상이 장삼이 아파트에서 느끼는 전부였다.

 

  이번에도 층간 소음 사건인데요. 위층에서 시끄러운 소음을 낸다는 이유로 아래층에 사는 박 모 씨가 흉기를 휘둘러 아버지와 아들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마흔 여섯 살 박 모 씨는....

 

  장삼은 이런 뉴스를 볼 때마다 눈을 끔벅이며 화면을 주시했다. 그리고는 한 마디 중얼거리곤 했다.

  대한민국에 있는 아파트 빌라는 전부 부실덩어리야. 제대로 방음 설계를 했으면 저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아. 좀 유난스러운 사람이 있긴 하지만 온전히 사람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뭘 그렇게 중얼거려?

  장삼이 고개를 돌리니 영주가 과일을 들고 서있었다.

  아니, 저 뉴스..

  에휴, 혼자 텔레비전 보면서 중얼중얼하는 게 습관이 됐어. 이상해...

  영주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매일매일 드라마를 꼭 껴안고 사는 여자. 드라마가 없으면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하는 여자. 드라마가 삶이 되고 삶이 드라마가 되지만 정작 자신은 드라마틱한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여자. 영주는 드라마를 보며 온몸의 감각을 열어 수용하고 반응했지만, 장삼은 TV 앞에서 시니컬하게 자신만의 생각을 조용히 내뱉었다 그 중얼거림은 입에서 나온 드라이아스 마냥 곧 사라졌다.

  여태껏 살면서 장삼의 월급은 영주에게 만족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보너스가 나오는 달이 돼야 조금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정시 퇴근하고 집에 오면 장삼은 늘 그랬듯이 TV를 보거나 컴퓨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신혼 초에 영주는 그런 것들이 늘 불만스러웠다. 외식을 한다거나 영화관에 간다거나 쇼핑을 간다거나 하는 기대를 품었지만, 장삼은 밖으로 움직이는 걸 귀찮아했다. 간혹 성화에 못 이겨 외출을 해서 영주의 기분을 맞춰주었으나, 1회용 행사로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장삼은 가끔 영주의 생일을 잊어버리기도 했다. 몇 해가 지나자 서로의 스타일이 다름을 알고 그 다름을 인정하는 가운데 한 공간에서 공존하게 되었다. 어쩌다 부부관계를 할 때면 장삼은 낑 5분 안에 끝냈고 영주는 사지를 쭉 뻗은 개구리 마냥 천장을 바라보았다.

 

  영주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응 나야. 오늘 저녁 강좌가 있어서 집에 늦게 들어가니까 일곱 시 전까지 유치원 가서 유주 데리고 가.

  윤주 집에 있잖아?

  오늘 저녁 학원가는 날이잖아. 아무튼 유주 좀 부탁해.

  저녁에 강좌가 있는지 꿍꿍이가 있는 지 알 수는 없지만, 장삼은 배 밑바닥에서 부터 더부룩하고 더운 기운이 퍼지는 걸 느꼈다. 장삼은 속으로 하나 둘 셋.. 느리게 숫자를 세며 낮게 호흡 조절을 했다. 점심시간 이후, 식곤증이 밀려오는 시간. 동장은 의자에 엄숙히 정좌를 하고서 꾸벅꾸벅 열반에 드는 중이다. 신청서를 받고 남의 일신상의 서류를 매일 발급해주는 일은 무한 반복의 일이었다. 요즘처럼 마음이 뒤숭숭할 때는 자리를 박차고 싶은 생각이 불쑥 치밀어 오르곤 했다. 장삼은 언젠가 TV에서 청년 백수들이 노량진 학원을 다니며 새벽부터 밤까지 공무원 시험공부에 몰두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돈도 없고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길가에 서서 컵 밥을 먹는 이들. 그 자신도 예전에 치열하게 공부를 하긴 했지만, 지금은 훨씬 더 치열해져 하루하루가 전쟁터로 비쳐졌다.

  ‘먹고 살기 위한 것 때문에 참 고단하게 사는구나. 전쟁은 끝이 없거늘...’

  장삼에게도 조용한 전쟁이 일어나고 있지만, 정작 소총과 같은 무기가 없다. 장삼은 포화 속을 뚫고 나갈 방법을 익히지 못해 두려웠다. 돌격 앞으로를 외치다가는 찬란하게 산화를 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장삼은 일을 마치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유치원이 지하철 역 부근에 있어 가기가 수월하다. 지하철 계단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 역내로 걸어가는데 어떤 남자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바쁜 걸음들이 그 사람을 비키며 지나갔다. 술을 마시기에는 이른 시간이고 노숙자 차림새도 아니다. 그렇다면 몽큐 환자인가. 아니다. 몽큐는 연신 긁어대고 웃음을 흘리며 움직이는 질병이지 저렇게 잠자듯 고요한 병이 아니다. 장삼은 그 사람 앞에 서서 머뭇거렸다. 손을 몸에 대서 안부를 묻고 싶었지만 수많은 걸음들이 계속 쏟아져 내려왔다. 그리고 경계의 눈길들이 일시 머물다 뿔뿔이 흩어져갔다. 중년 남자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괜찮으세요? 라는 말이 속에서 빙글빙글 맴돌 뿐 밖으로 새나오지 못 했다. 장삼은 주춤거리다가 사람들의 흐름에 휩쓸려 점점 멀어져 갔다. 마음 한쪽을 잃어버린 듯 느린 발걸음이 좌우로 흔들리며 나아갔다. 가다가 되돌아보니 몇 사람이 머물러 있었고 바쁜 발걸음들이 스쳐지나갔다. 장삼은 개찰구를 통과해 계단 밑으로 느적느적 걸어 내려갔다. 지하철이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날치 알처럼 빽빽이 박혀 있다. 장삼은 일순 메스꺼움이 일어 뒤돌아섰다. 영주의 전화를 받았을 때부터 속이 더부룩했는데, 새까만 사람 떼를 보자 메스꺼움으로 증세가 악화된 기분. 장삼은 다시 계단을 올라 개찰구를 나왔다. 아까와는 반대 방향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역을 나와서 숨을 들이마셨으나 가슴이 답답하다. 그것이 미세먼지 탓인지 몽큐 바이러스 탓인지 알기가 힘들었다. 택시를 잡았다. 택시 뒷자리에 앉으니 더부룩하고 메스꺼운 증상이 가라앉았다. 중간 중간 정체 구간이 있어 시간이 지체됐지만 장삼에게 더 이상의 체증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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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바이러스 대란 2016 / 10 / 12 382 0 5168   
10 주도권을 쥐었어 2016 / 10 / 7 497 0 10308   
9 나, 괴물이야 2016 / 10 / 4 594 0 13125   
8 드디어 친구를 만나다 2016 / 9 / 30 420 0 6618   
7 속이 영 거시기 하네 2016 / 9 / 28 564 0 10241   
6 사방이 꽉 막혔어 2016 / 9 / 28 464 0 8292   
5 거울에 비친 나, 나, 나 2016 / 9 / 28 497 0 6014   
4 코가 커지다 2016 / 9 / 28 462 0 8133   
3 객사와 보신 사이에서 2016 / 9 / 28 740 0 5942   
2 삐져나온 우산살 하나 2016 / 9 / 28 647 0 6697   
1 시야가 흐린 날 (1) 2016 / 9 / 28 1141 1 6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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