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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신기루
작가 : 대방
작품등록일 : 2019.6.1

생기지 말아야 할 것을 얻은 자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
행복을 좇는 그의 뒤에는 불행만이 따라오고
질서를 위한 노력은 그 불행을 지우는 것에서 시작된다.

 
23화.
작성일 : 19-06-30 01:10     조회 : 187     추천 : 0     분량 : 5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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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다니엘레가 팔짱을 낀 채 몸을 틀어 공간을 만들어 줬다. 버나드는 그곳으로 나와 앞장서기 시작했다. 혹시나 도망가지 않을까 했던 그의 생각과는 달리 버나드는 그러지 않았다. 어쩌면 미래가 보이지 않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여기 있는 사람들이 깨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꼬마를 앞에 세우고 곧장 뒤를 따르는 네 명의 성인의 모습은 주민들의 시선을 끌었지만, 버나드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결과가 궁금해 속도를 올릴 뿐이었다. 두목과 그를 따르는 이들의 거주지는 역시나 눈에 띄는 곳에 있지 않았다. 골목길을 한참 들어가자 탁 트인 공간이 나왔다. 마을 끝의 벽과 골목길의 끝 사이의 공간은 꽤 넓었다.

 

 버나드는 그것이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렇게 작은 마을임에도 꽉 채우지 못하는 인구는 얼마나 이곳이 노후되고 가망이 없는 것인지 다시금 알 수 있게 해줬다. 그 공간에는 낡았지만 큰 집 한 채가 덩그러니 있었다.

 

 전형적인 술집의 구조를 지닌 집이었다. 다만 창문과 정문은 안이 보이지 않게 해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폐가로 여겼을 정도로 음침했다. 그곳과 멀지 않은 곳에서 지켜보던 그들 중 루치아가 버나드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얹으며 말했다.

 

 “얘, 이제 가도 돼. 고마워.”

 

 고개를 숙여 꾸벅 인사한 버나드는 천천히 그들의 곁을 떠났다. 하지만 그는 아예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멀지 않은, 숨어서 지켜볼 수 있는 곳에 몸을 감추고는 그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나도 들어가야하나?”

 

 리베리오가 묶인 손을 앞으로 내밀며 물었다. 다니엘레는 잠시 고민하고는 말했다.

 

 “응. 걱정 마, 금방 끝나니까.”

 

 말을 맺음과 함께 그는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활짝 열린 문 안으로는 열댓 명의 사내가 술을 마시거나 도박을 하고 있었다. 천장에 달린 전구는 닦지도 않았는지 탁한 빛을 내비치고 있어 흡사 지하 창고 같은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젖힌 문으로 들어오는 빛에 안에 있던 이들은 하던 것을 멈추고 전부 문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바닥 널이 우는 소리를 들으며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 다니엘레는 주변을 천천히 둘러봤다. 그리고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험악하게 생긴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두목은 어디 있냐?”

 

 “너 뭐야? 어디서 온 놈이야?”

 

 얼굴만큼이나 걸걸한 목소리였다. 의심 가득한 눈빛을 받으며 다니엘레는 작게 중얼거렸다.

 

 “너는 아닌가 보네.”

 

 좋은 일로 찾아온 것이 아님을 깨달은 사내들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목을 천천히 돌리며 풀어주던 다니엘레는 방금 그 사내를 향해 있는 힘껏 턱에 주먹을 휘둘렀다. 읍, 하는 소리와 함께 사내는 반쯤 날아가 바닥에 볼썽사납게 엎어졌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이빨 세 개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일 대 다수였음에도 그는 여유롭게 상대의 주먹을 전부 피하며 급소에 정확히 주먹을 꽂았다. 신성력을 실었기 때문에 한방 한방의 힘이 어마어마했다.

 

 다섯 명쯤 바닥에 엎어지자 남은 자 중 몇은 그를 피해 뒤쪽으로 달려들었다. 근육이라고는 전혀 없는 남자와 여자 한 명. 그나마 힘 좀 쓸 것 같은 리베리오는 손이 묶여 있었기에 할만하다고 여겼다.

 

 다니엘레의 솜씨를 보고 보통내기가 아님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기에 인질을 잡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 가장 승산이 있다고 여겼다. 달려든 사내는 가장 먼저 더미드에게 돌진했다. 하지만 그의 앞을 루치아가 막아섰다. 사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방향을 살짝 틀어 주먹을 피한 그녀는 그대로 팔을 붙잡고 앞으로 넘겼다. 그대로 땅에 등이 박힌 사내는 컥, 하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루치아는 팔을 놓아줌과 동시에 발로 그의 얼굴을 걷어찼다.

 

 애당초 뒤쪽을 걱정하지 않았던 다니엘레는 어떻게 되든 말든 서 있는 자들을 하나하나 쓰러트렸다. 달려드는 한 명을 탁자로 집어 던지자 남은 건 한 명이었다. 그는 겁에 질린 듯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다니엘레는 손가락으로 목을 가리켰다.

 

 “목걸이 어딨냐?”

 

 “어, 어떤?”

 

 “어제 가져온 목걸이 말이야. 어딨냐고.”

 

 말을 더듬으며 초조한 모습을 보이는 그를 보며 다니엘레는 성질이 나 주먹을 쥐고 한 발짝 다가갔다. 그러자 사내는 화들짝 놀라더니 움츠리며 손을 뻗으며 다니엘레를 말렸다.

 

 “알아, 어딨는지 안다고! 내, 내가 가져올 테니까 기다려.”

 

 “일 분 줄게.”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사내는 후다닥 이 층으로 올라갔다. 우당탕탕하는 요란한 소리가 들리더니 사내는 정말 일 분도 걸리지 않고 목걸이를 손에 쥔 채 내려왔다. 이마에는 식은땀마저 흐르고 있었다. 손을 내민 다니엘레의 손에 조심스럽게 그것을 내려놓은 사내는 최대한 공손한 태도로 서 있었다. 다니엘레는 어쩔까 하다가 그냥 몸을 돌렸다.

 

 조여졌던 긴장이 목걸이를 찾으면서 한순간 풀렸는지 다니엘레는 여관에 도착하자마자 잠깐 눈을 붙인다 말하고는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원래대로라면 해가 지기전에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지금까지 강행군이었고 보이지 않게 리베리오를 의식하느라 지쳤있던 그를 좀 더 자게 내버려두었다.

 

 결국, 저녁이 되어서야 눈을 뜬 다니엘레는 창 너머 풍경이 붉그스름해진 것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며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서둘러 떠나자는 그를 루치아가 겨우 말려 저녁을 먹고 가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여관 일 층에 앉아 있었다.

 

 다니엘레의 목에는 어느새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음식을 눈 깜짝할 사이에 해치운 그는 문득 맞은 편을 바라봤다. 묶인 손으로 힘들게 숟가락을 움직이고 있는 리베리오가 눈에 들어왔다. 다니엘레는 팔을 괸 채 그를 바라봤다.

 

 “야.”

 

 수프를 떠먹으려던 리베리오는 수저를 놓고 그를 바라봤다. 다니엘레는 턱짓으로 손을 가리키며 내밀라고 가리켰다. 멀뚱히 바라보던 리베리오는 천천히 두 손을 식탁 가운데로 내밀었다. 설마 싶은 심정에 루치아는 그를 바라봤다.

 

 “그만둬라.”

 

 마냥 지켜보던 더미드가 숟가락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뭘 어쩔 셈이야? 너, 이거 지금 자만하는 거야.”

 

 “그런 거 아니야.”

 

 딱 잘라 말하며 그는 손을 뻗어 천천히 밧줄을 풀었다. 두 손이 자유로워진 리베리오는 손목을 비비며 손목을 풀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탁자 위에 내려놓고는 다니엘레를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설명을 요구하고 있었다. 나를 시험하는 거냐는 질문도 섞여 있었다.

 

 “너도 지금 네 형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겠지. 그것과 별개로 이 녀석에 대한 감정이 누그러지는 건 아니겠지만.”

 

 말하면서 그는 슬쩍 더미드를 바라보고 다시 리베리오를 바라봤다.

 

 “네 손으로 죽인다면 어떨 것 같아? 겨우 그걸로 끝낼 거는 아니겠지. 너와 울리세가 겪었던 고통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갚아주고 싶은게 네 마음 아니야? 네가 원하는대로 하는 것은 얘를 법정 앞에 세우고 죄를 낱낱이 들어내고 값을 치르게 하는 거지.”

 

 그는 젓가락으로 리베리오를 가리켰다. 고개를 끄덕인 그는 무겁게 닫혀있던 입을 열었다.

 

 “당신 말이 옳아. 우리 형은 전과 많이 달라졌어. 그건 내가 알던 형이 아니다. 이미 필요함에 의한 살생을 넘어섰고 그건 감추면 안 되는 거겠지.”

 

 깍지를 낀 리베리오의 표정은 어두웠다. 여러 개의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루치아는 그런 그가 조금은 안쓰럽게 느껴졌다. 리베리오는 더미드를 잠깐 바라보고는 다시 다니엘레를 바라봤다. 결정을 내린 듯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약속하지. 조용히 따라가겠다고. 대신 너도 약속해라. 우리 형을 원래대로 돌려놓겠다고.”

 

 “그래.”

 

 “아니, 난 반대한다.”

 

 굳은 얼굴로 더미드가 단호하게 내뱉었다. 그는 팔짱을 낀 채 다니엘레를 쳐다봤다.

 

 “뭘 믿고 이런 행동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군. 잠든 사이에 우리 모두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모르나?”

 

 “살려…주세요.”

 

 힘겹게 문을 열고 들어온 아이는 몇 발자국 비틀대더니 그대로 고꾸라졌다. 옷의 목 부분은 힘에 의해 늘어나 너덜너덜했고 왼쪽 손가락 엄지는 부러졌는지 부어있었다. 머리는 온통 피로 덮여있었다. 여관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라 얼어붙어 섣불리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낯이 익는 얼굴에 다니엘레가 다가가 그의 상체를 조심스럽게 받쳐 세웠다. 버나드였다. 다니엘레의 표정이 일순간 오묘하게 바뀌었다. 고개를 들어 밖을 바라보니 문 옆 창문으로 열 댓 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이곳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일단 버나드를 데리고 자신의 자리로 와 의자를 치우고 조심스럽게 눕혀놓았다.

 

 문이 거칠게 발로 차며 들어온 거구의 사내는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민머리의 사내는 이마에 대각선으로 그어진 큰 흉터가 있었고 짙은 눈썹에 뭉툭한 코에 살집이 있음에도 광대가 튀어나와 있었다. 우락부락한 몸은 190이 넘는 거구의 몸집에 더해져 위압감을 풍겼다. 그의 옆에 서 있던 부하로 보이는 이가 다니엘레를 가리키며 외쳤다.

 

 “저 녀석입니다, 형님!”

 

 자세히 보니 그는 아까 목걸이를 가지고 왔던 사내였다. 다니엘레는 괜한 인심을 썼다는 것에 한숨을 소리 나게 내뱉었다. 앞으로 나서려던 그를 리베리오가 막아섰다. 리베리오는 손목을 다시 풀어주며 더미드를 한 번 바라봤다.

 

 다니엘레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두었던 의자를 끌어 앉아 다리를 꼬았다. 루치아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일어나 종업원에게 의사를 불러 달라 부탁했다.

 

 “행동 취하지 말고 잔챙이는 꺼져.”

 

 두목은 리베리오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다니엘레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형씨, 우리 애들 이렇게 만들고 여자랑 시시덕거리고 아주 세상 살판났수?”

 

 “뭐래, 미친놈이.”

 

 징그러운 벌레 보듯 눈을 째며 차갑게 말하는 그녀의 말에 그는 비릿하게 웃었다. 몸을 다 풀었는지 리베리오는 거리낌 없이 그에게 다가갔다. 두목이 턱을 까닥이자 뒤에 있던 사내들이 일제히 리베리오를 향해 달려들었다.

 

 다니엘레가 아니어서인지 자신감을 얻은 살려줬던 사내가 가장 먼저 그에게 달려들어 있는 힘껏 얼굴에 주먹을 뻗었다. 리베리오는 발만 틀어 날아오는 주먹을 피하더니 팔을 잡고 허리의 힘을 이용해 엎어 쳐 땅바닥에 있는 힘껏 꽂았다.

 

 “헉….”

 

 아찔한 충격과 함께 그는 몸을 비비 꼴 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리베리오는 그대로 얼굴을 걷어차고는 곧바로 달려오는 자들의 공격을 피하고 반격했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요리조리 피하며 그는 한 방에 한 명씩 눕혔다.

 

 뒤에서 지켜보던 두목은 그가 정신이 팔린 사이에 그대로 달려 어깨로 들이받았다. 미처 피하지 못한 그는 팔을 몸쪽으로 붙여 피해를 최소화했다. 하지만, 거구의 힘은 어쩔 수 없었다. 몸이 붕 뜬 채 뒤쪽 식탁에 날아가 쳐박힌 그는 박살난 가구를 치우며 일어섰다.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두목이 자세를 취하자 리베리오는 착 가라앉은 눈으로 응시하더니 전속력으로 그에게 달려들었다. 오른팔로 휘두르는 주먹을 보곤 그는 뒤로 넘어지는 듯하더니 한 손만으로 땅을 짚어 몸을 지탱하고는 움츠렸던 발을 펴며 그대로 두목의 턱을 갈겼다.

 

 턱을 움켜잡은 그를 놓치지 않고 거리를 좁힌 리베리오는 그의 바깥 허벅지를 돌려찼다. 순간적인 고통과 함께 다리에 힘이 풀린 그는 한쪽 무릎이 꺾였고 자연스럽게 몸이 숙여지자 리베리오는 두 손을 그의 머리 뒤를 잡고선 당기는 것과 동시에 무릎으로 그의 얼굴을 찍었다.

 

 고통스러운 신음이 한차례 울릴 뿐 그는 정신을 잃지 않았다. 리베리오는 계속해서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무릎이 얼굴에 닿을 때마다 둔탁한 소리와 부서지는 소리가 함께 들렸다. 대여섯번을 가격하고서야 두목은 팔을 축 늘어트렸다.

 

 서서히 잡은 머리를 놓자 그는 힘없이 옆으로 고꾸라졌다. 숨을 고르며 몸을 턴 리베리오는 아직 서 있는 부하들이 있음에도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털썩 주저앉은 그는 더미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러면 믿어줄 만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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