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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안녕하세요, 검은머리 아가씨
작가 : 김뎃뎅
작품등록일 : 2019.3.18

교역이 끊긴 동 제국의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는 서 제국의 티보치나 백작가 둘째 딸로 입양된 로사의 이야기.

유일하게 동방문화를 배울 수 있는 제국학교에 입학한 로사. 모범생으로 학교 생활을 하지만 언제 들킬지 모르는 본 모습 때문에 속은 초조하다.

하지만 곁엔 본래의 모습까지 아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감추지마, 로사. 머리색이 검든 아니든 눈이 검은 색이든 아니든 로사 넌 예뻐. 그러니까 숨기지마. 네가 예쁜 건 다른 뭐도 아닌 로사라서 예쁜 거야."

조금씩 자존감을 회복하는 로사에게 내려온 황제의 명.

"동방과의 교역을 위해 네 스승이 들고 도망간 동 제국 시황제의 인장을 찾아오라. "

[아카데미물/ 여주성장물/ 동서양 혼합 배경/ 일편단심 남주/ 세계최강 든든한 언니/ 유일하게 서방에서 동양 문화를 공부한 동양인/ 스승을 찾는 과정에서 만난 진짜 가족]


매주 월화수목 한편씩 차근차근 업로드 예정입니다.

 
10. 흩어진 유물(3)
작성일 : 19-06-06 06:42     조회 : 199     추천 : 0     분량 : 4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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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깨까지 오는 진홍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버지니아는 제 뒤에 둔 로사에게는 시선을 주지 않고 앞에서 씩씩대는 노예 상인을 노려봤다.

 

 

 “너야? 내 동생 데려온 게.”

 

 

 말을 하면서 버지니아는 손에서 긴 빛을 만들어 냈다.

 

 마치 몽둥이처럼 생긴 빛이 버지니아의 손에서 까딱까딱 움직였다.

 

 어린 소녀가 삐딱하게 말하자 상인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이 계집아이가 무슨 말을 하는 것……!”

 

 “시끄럽고.”

 

 

 버지니아가 상인의 말을 끊었다.

 

 그와 동시에 들고 있던 빛 몽둥이를 휘둘렀다.

 

 상대방의 거리에 따라 길어지기도 짧아지기도 하는지, 버지니아가 어디에서 휘두르든 몽둥이는 상인을 정확히 가격했다.

 

 

 “으악!”

 

 

 상인의 비명보다 짝하고 맞는 둔탁한 소리가 주변에 실시간으로 울렸다.

 

 그 소리가 너무 차져서 언덕 아래에서 싸우던 상인의 부하들이나 살몬과 세이지까지 얼빠진 얼굴로 위를 올려다봤다.

 

 언덕 위에선 버지니아가 휘두르는 몽둥이에 맞지 않으려 도망치는 노예 상인의 모습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이 X 같은 게.”

 

 

 버지니아의 한 마디에 몽둥이가 춤을 췄다.

 

 

 “아악!”

 

 “감히.”

 

 

 버지니아의 두 마디에 도망가던 노예 상인이 발이 묶여 질질 끌려왔다.

 

 

 “내 동생을!”

 

 

 버지니아의 마지막 말에 상인의 몸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빛 몽둥이, 아니 빛 끈으로 노예 상인의 발을 끌던 버지니아가 상인이 로사의 목을 잡고 흔들어 댔던 것처럼 그를 공중에 날렸다.

 

 동쪽으로 한번 서쪽으로 한번.

 

 각 방향으로 날아갈 때마다 바닥에 전신이 찍혔다.

 

 사방으로 쿵쿵거리며 사람이 바닥에 납작해지자 주변에 있던 모두가 부르르 떨었다.

 

 

 “버지니아!”

 

 

 이러다 정말 상인이 죽을 것 같아 밑에서 살몬이 그녀를 불렀다.

 

 신명나게 상인을 가지고 놀던 버지니아가 싸늘한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봤다.

 

 

 “왜.”

 

 

 그녀의 시선 한 번에 살몬과 세이지 곁에 있던 노예 상인의 수하들이 뒤로 물러났다.

 

 그걸 본 세이지가 버지니아를 한 번 더 불렀다.

 

 

 “버지니아!”

 

 “아, 왜!”

 

 

 귀찮게 자꾸 부르는 소리에 버지니아가 몽둥이를 휘두를 듯 팔을 들어 올렸다.

 

 그 모습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언덕 아래에 있던 노예 상인의 수하들은 줄행랑을 쳤다.

 

 여전히 화가 덜 풀린 버지니아가 주변을 둘러봤다.

 

 갖고 놀던 노예 상인은 이미 정상이 아니었고 수하들은 도망가버렸다.

 

 저 멀리 보이는 다른 노예 상인들이 보였지만, 저들은 로사와 관련 없어 보여 건드릴 이유가 없었다.

 

 버지니아가 씩씩대는 숨을 고르며 들고 있던 빛 몽둥이를 없앴다.

 

 

 “로사, 괜찮아?”

 

 

 순식간에 마음을 추스른 버지니아가 로사에게 다가갔다.

 

 벌써 목에 시퍼렇게 멍이 올라오고 있었다.

 

 저 X 같은 걸 더 조졌어야 하는데. 버지니아가 이를 빠득 갈았다.

 

 

 “언니…….”

 

 

 버지니아를 본 로사가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 기뻐서, 너무 안심해서 너무 다행이어서.

 

 혹은 너무 억울해서 너무 무서워서 너무 분해서.

 

 수만 가지 감정이 로사 속에서 훅 튀어나왔다.

 

 울음을 터뜨린 로사를 두고 버지니아는 어쩔 줄 몰라 했다.

 

 남을 제압하는 건 자신 있었지만 달래고 위로하는 데는 약했다.

 

 버지니아는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우는 로사를 끌어안았다.

 

 로사가 안전한 걸 보니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버지니아는 잠 깨는 마법을 스스로에게 건 후, 우는 로사를 안고 그저 토닥여주었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나 계속 언덕 아래에 있는 세이지와 살몬을 향해 올라오라 손짓했다.

 

 와서 로사 좀 같이 달래자고.

 

 

 “올라오라는데?”

 

 

 버지니아의 손짓을 본 살몬이 세이지에게 말했다.

 

 세이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로사의 울음소리가 너무 서글퍼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나저나 네가 지킨다고 큰소리 뻥뻥 쳤는데, 나설 기회도 없었네.”

 

 

 살몬이 먼저 올라가며 말했다.

 

 세이지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그래도 무사했으니 다행이지.”

 

 

 말을 하면서 세이지는 주먹을 꽉 쥐었다.

 

 버지니아의 속도에 맞춰 필사적으로 달렸었다.

 

 로사의 흔적을 발견하고 이 쪽으로 말을 틀었을 땐, 무사하게만 있어달라고 속으로 빌었다.

 

 근데 목이 졸리던 로사의 모습에 얼마나 놀랐던가.

 

 눈이 뒤집혔다.

 

 어떻게든 빨리 가고 싶어서 앞을 가로막는 노예상의 수하들을 최대한 빨리 처리하려 했지만, 수가 많아 마음대로 되지 않았었다.

 

 다행히 버지니아가 로사를 구했지만.

 

 자기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더 좋았을 거란 욕심이 울컥 솟았다.

 

 그러지 못했던 게 분했다.

 

 

 “안 와?”

 

 

 생각하는 사이 이미 언덕으로 올라간 살몬이 세이지를 불렀다.

 

 세이지가 간다고 말하며 한 발 내디뎠다.

 

 

 “어?”

 

 

 그 장면은 아주 천천히 세이지의 눈에 박혔다.

 

 분명 아주 찰나에 일어났을 일 일인데, 아주 느리게 보였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버지니아도 살몬도 반응하지 못했다.

 

 세이지만이 반응했다.

 

 그는 당연하게 몸을 움직였다.

 

 뛰어내렸다.

 

 높은 언덕 아래로.

 

 

 “로사!”

 

 

 버지니아에게 얻어터진 상인이 분노에 찬 얼굴로 로사를 낚아채 언덕 아래로 집어 던졌다.

 

 버지니아에게 직접 위해를 가할 수 없으니 제일 만만한 로사를 선택했으리라.

 

 또다시 목덜미가 잡혀 아래로 내던져진 로사의 몸이 곤두박질쳤다.

 

 생각보다 언덕은 높았다.

 

 아니 그건 딱딱한 돌로 만들어진 절벽이었다.

 

 죽는다.

 

 저 바닥에 몸 내리꽂히면 그대로 산산이 조각나리라.

 

 로사는 속절없이 떨어지는 몸뚱이에 질려 눈을 감았다.

 

 그러다 다시 떴다.

 

 죽기 싫었다.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떨어지는 짧은 순간 공중에서 버둥거렸지만, 그 시간이 워낙 짧아 무언가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로사!”

 

 

 아래에서 누가 다급하게 그녀를 불렀다.

 

 세이지였다.

 

  언제 그 아래 와 있었는지 모르게 그가 로사를 향해 팔을 뻗었다.

 

 

 “세이지!”

 

 

 괜찮다.

 

 찰나의 순간, 세이지의 눈이 로사에게 말했다.

 

 그걸 읽은 로사가 이를 악물고 세이지를 향해 팔을 뻗었다.

 

 괜찮을 거다.

 

 이유 없는 신뢰감이었다.

 

 ‘그’라면 절대 자신을 놓치지 않을 거란 믿음.

 

 그리고 정확히 둘의 팔이 맞물렸다.

 

 세이지는 가는 로사의 등을 안았고 로사는 세이지의 넓은 어깨를 감쌌다.

 

 제대로 받았다.

 

 정말 다행이었다.

 

 

 “다행……!”

 

 

 다행이라고 말하려는데, 바닥이 쑥 꺼졌다.

 

 공중에서 떨어지며 가속화된 무게를 버티지 못한 바닥이 그대로 무너졌다.

 

 

 “으악!”

 

 

 아래로 떨어지면서도 세이지는 로사를 놓지 않았다.

 

 그녀의 머리와 몸을 자신의 팔로 감싸 보호했다.

 

 잠깐 눈을 돌려 아래를 봤을 때, 커다란 바위가 그들 아래 떡하니 놓여있는 게 보였다.

 

 젠장!

 

 세이지가 이를 악물었다.

 

 최대한 로사의 몸을 제 몸으로 감싸곤 바위와 충돌할 때를 대비했다.

 

 미안, 로사. 이런 식으로밖에 못 구해줘서!

 

 세이지가 로사를 끌어안고 속으로 외쳤다.

 

 

 폭!

 

 “?!”

 

 

 그의 등이 바위에 닿았을 때, 엄청 아플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상상과 달리 굉장히 푹신함을 느꼈다.

 

 폭식 폭신한 무언가에 몸이 쏙 들어갔다 위로 튕겨 올랐다.

 

 몇 번을 위아래로 튕겼다 내려오길 반복하고 나서야 세이지는 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손으로 더듬거린 바닥은 바위가 아니었다.

 

 마치 거대한 인형이라도 되는 무언가가 그들을 받아냈다.

 

 세이지는 제 몸 위에 있는 로사를 놓지 않은 채,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버지니아를 바라봤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버지니아의 고개가 까딱거렸다.

 

 마치, ‘넌 역시 그렇게밖에 못하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세이지는 뭔지 모를 분함에 입술을 짓이겼다.

 

 결국 한 일이라곤 제 몸 던져 로사를 받아내는 게 전부였으니까.

 

 그마저도 버지니아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없었다.

 

 무모했다.

 

 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몸이 절로 움직인 걸 어떻게 하란 말인가.

 

 세이지가 품 안에 있는 로사를 꽉 끌어안았다.

 

 상당히 놀랐는지 로사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마음을 추스르고 있었다.

 

 세이지가 차분한 목소리로 로사에게 말을 걸었다.

 

 

 “미안, 로사. 많이 놀랐지. 이제 괜찮아. 다 괜찮아. 정말 괜찮아.”

 

 

 로사의 등을 토닥이며 다시 버지니아를 올려다봤다.

 

 참 높다.

 

 올라갈 수 없을 만큼 높았다.

 

 높이 있는 버지니아를 보며 아래에 있는 세이지가 생각했다.

 

 출발하기 전, 버지니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할 줄 아는 건 말밖에 없다는 말과 로사를 다독여주란 말.

 

 

 ‘그렇네, 버지니아. 네 말이 맞아.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건 너만 한 사람이 없지.

 

 누구보다도 말이야. 부러워. 정말 부러운 능력이다. 버지니아.

 

 넌 지금처럼 그 위에서 로사를 지켜. 난 아래에서 로사를 지지할 테니.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놓을 거야.’

 

 

 세이지의 눈이 반짝였다.

 

 올려다본 하늘이 정말 푸르렀다.

 

 세이지가 울음을 그친 로사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좋아해 로사, 네가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세이지의 진심 어린 목소리가 로사의 귓가에 선명하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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