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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독기
작가 : Lulla
작품등록일 : 2019.11.10

신을 배척하고 인간만의 삶을 추구하는 안개와 강철의 나라 스팀 헤이즈.

눈부신 발전 뒤에 가려진 빈민굴에서 태어난 로렌스는 언제나 자신이 평균 이하의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던 그의 꿈 속에 검은 뱀이 나타났고, 그에게 새로운 삶을 거머쥘 기회를 주겠노라고 속삭인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었던 로렌스는 검은 뱀의 꼬드김에 넘어가 그의 말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프롤로그
작성일 : 19-11-10 19:02     조회 : 353     추천 : 13     분량 : 1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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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원래 다 그런 법이지. 신이란 족속은 말이야."

 

  남자는 술잔을 들고 있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잔에 담긴 투명한 술이 빛을 받아 황홀한 금색 물결을 만들었다. 거친 물결에도 잔에 비친 남자의 눈은 잠에 취한 듯 평온하기만 했다.

 

  "받은 만큼 가져가고, 받지 못했다면 털어내서 가져가고. 더는 받을 게 없다면 목숨까지 앗아가는 게 그 개자식들이야."

 

  잔에 넣어뒀던 얼음은 이미 녹아 손톱만 한 크기로 줄어들었다. 남자는 술을 한 모금 들이켜 남은 얼음을 어금니 사이에 끼워 잘게 씹어 삼켰다. 씁쓸하고, 차가웠다.

 

  "네놈의 생각은 어때. 내 말에 동의하나?"

 

  남자는 고개를 들었다. 등불 하나 없는 방이지만, 창틀을 핥고 들어오는 붉고 노란빛 덕분에 상대방의 얼굴이 똑똑히 보였다.

 

  똬리를 틀고 있는 검은 뱀. 아니, 뱀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부분은 유달리 길고 굵은 몸통뿐이었다. 마치 순록의 머리뼈를 뒤집어쓴 사자와 같았다.

 

  남자는 검은 뱀이 누구인지 모른다. 하지만 검은 뱀은 남자를 알고 있었다. 한밤중에 찾아온 불청객은 남자를 보며 웃으려는 듯 입꼬리를 괴악하게 비틀었다. 벌어진 틈으로 사람처럼 조밀한 치아가 눈에 띄었다.

 

  "알고말고."

 

  "그럼 됐다. 네놈에게 꼭 하고 싶던 말이었거든."

 

  남자의 얼굴에 비릿한 조소가 맺혔다. 비어버린 잔을 아무렇게나 내던지고, 남자는 창 밖을 바라보았다. 술잔에 비쳤던 금색 물결이 창밖에도 너울거리고 있었다. 그 물결을 타고 남자의 모든 것이 떠내려갔다.

 

  재산, 지위, 유대, 추억, 그리고 가족까지. 모두 금색 물결에 삼켜져 활활 타올랐다. 이제 남자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전부 눈앞의 비열한 생명체가 벌인 일이다.

 

  "한 가지만 묻자."

 

  남자는 창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남자의 귓가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뭐지?"

 

  "네놈은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하나?"

 

  죽음이 점점 가까워진다. 용암에 빠진 듯 온몸이 뜨겁고, 산소를 갈망하던 머리는 손과 발의 감각을 놓아버렸다. 그런데도 남자는 꼿꼿이 서서 담담하게 최후를 받아들였다.

 

  "...아니."

 

  남자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들은 그 말은 짧고, 간결했다. 그의 몸은 들을 귀도, 볼 수 있는 눈도, 질문할 입도 더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빈 껍데기가 된 남자의 몸은 천천히 기울어 바닥에 툭, 쓰러져버렸다.

 

  "나는 샤카타다."

 

  어둠으로 가득 찬 세계에서 남자는 어렴풋이 그런 말을 들은 듯했다. 하지만 더는 생각할 수 없었기에, 남자의 의식은 그의 남겨진 모든 것이 그랬듯 그저 까맣게 타들어 갔다.

 

  샤카타는 남자의 머리통을 입안에 머금고 바깥으로 나왔다. 불타오르는 마을에서 더 이상 살아있는 생명은 없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둥근 보름달과 수백의 별들이 검은 연기를 뚫고 밝은 빛을 내려보내고, 그와 춤을 추듯 불씨가 검은 연기를 타고 나풀거리며 솟아올랐다.

 

  샤카타는 그 광경을 눈으로 퍼담아 머릿속에 깊숙이 쑤셔 넣었다. 그토록 염원했던 불꽃이 눈앞의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고 있었다. 검은 연기 사이로 밝게 빛나는 별과 달이 보였다가 가려졌다가를 반복했다. 일부러 도망치는 사람은 잡지 않았다. 단 하나의 미약한 불씨가 곧 나무를 불태우고, 숲을 짓밟으며 산을 무너뜨린다. 마을에, 도시에 피바람이 몰아치고 또다시 피어오른 불씨는 더 많은 산을 무너뜨린다.

 

  샤카타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턱을 열어 남자의 머리통을 단숨에 깨부쉈다.

 

  머지않아 세상은 검은 연기로 뒤덮일 것이다. 빛 몇 조각조차 막지 못하는 거짓말쟁이를 몰아내고 진정한 어둠이 찾아온다.

 

  밤은 길었다. 아침은 찾아오지 않는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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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man 19-11-14 11:07
 
흥미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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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 19-11-14 13:12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샤카타는 약간 롤에 나오는 킨드레드의 늑대를 닮은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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