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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전래연 : 암행어사 출도요!
작가 : 린세이
작품등록일 : 2019.11.6

#찐암행어사#박문수#최도지#조선#청춘#로맨스#유쾌#상쾌#통쾌

탐관오리들의 부정부패가 자행되는 조선 중기.
백성들의 고충은 날로 극심해져만 가고 희망은 사라져 절망이 찾아온다.
그 가운데에서도 순수하고 의로운 처자가 있었으니. 범골의 최가댁 장녀, 최도지.
사또나리로부터 '수청을 들라!' 라는 청천벽력같은 명을 받게되고
수청이 아니면 죽음뿐인 삶의 기로에 놓이게 되는데...

그때, 정의의 사도 암행어사가 나타났으니! 그 이름하야 박.문.수
부패한 탐관오리를 처단할 '찐'암행어사의 희망적 활약이 시작된다!

 
1. 범골 총각귀(鬼)
작성일 : 19-11-06 16:18     조회 : 437     추천 : 0     분량 : 7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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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

 

 #

 살포시 달빛이 모습을 드러냈다 급히 숨어 버리는 어두운 산속.

 고고고 부엉이의 울음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댕기머리를 한 방년의 처자 도지는 휘영청 밝은 달빛을 벗 삼아 산속 길을 오르고 있었다. 어째보니, 산속을 오르는 두 다리에 납덩이라도 달렸는가. 걸음은 무겁디 무거웠다.

 달빛이 비추는 길을 치맛자락 추켜올리며 걷다가도, 흐르는 구름에 숨어버리는 달빛 따라 처자 도지의 걸음도 멈추고는 했다. 걷다 멈추기를 반복했을까,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에서도 처자 도지의 걸음이 붙박이처럼 멈추었으니. 낡은 움막 한 채의 앞이었다.

 떨리는 손끝은 치맛자락을 꾸욱 붙들었고, 떨리는 목소리가 가냘프게 쏟아져 나왔다.

 

 "...버...범골 최도지이옵니다."

 

 움막에 있을 누군가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힌 도지는 질끈 두 눈을 내리감았다.

 부디 움막 안에서 아무 기척이 없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묻어났다.

 

 "그래, 들어오너라."

 

 하늘님도 무심하시지.

 질끈 내리 감았던 도지의 눈꺼풀이 옅게 떨리며 들어 올려져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세상아 무너져라, 바라보다 못해 노려보던 움막의 문고리를 향해 결국 도지의 손이 향했다.

 문고리를 붙들었다. 천천히 문을 열며 도지의 심중에는 악(惡)심이 담겨버렸다.

 세상이 멸하기를, 세상이 불길에 휩싸이기를 바라는 악심이었다.

 

 움막 안의 쾌쾌한 향이 도지를 먼저 반겼다. 그리고... 휘영청 움막 안으로 새어 들어온 달빛은 징그러운 미소를 지은 사또나리를 비추었다.

 도지의 몸이 달달달 떨렸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또나리는 두 팔 벌려 처자 도지를 반겼으니.

 오호 통재라.

 

 더듬더듬 걸음이 움막 안으로 들어서자, 도지의 등 뒤로 쿵 움막의 문이 닫혔다.

 그것은 마치 절망과도 같은 소리였다.

 

 "이리... 이리 가까이 오너라."

 

 꼼짝 못하고 굳어버린 도지의 손을 덥석 붙든 사또나리는 자신에게로 잡아 당겼다.

 도지는 아슬아슬 사또 나리의 앞으로 철푸덕 넘어져 버렸다.

 끼기덕, 움막의 마루가 내는 구슬픈 울음소리가 처자 도지의 울음소리보다 슬플리가 있나.

 사또 나리 앞에서 마치 죄를 낱낱이 고해바치는 죄인 마냥 푹 엎어진 도지에게로, 사또 나리의 고개가 가깝게 기울었다.

 덜덜 떠는 도지의 눈가로 참고 참던 눈물이 왈칵 쏟아져 흘렀다. 새된 비명도 지르지 못해, 이를 악문 입가로 신음만이 흐르고 흘렀다.

 그런 도지를 향해 흡족한 미소를 그리는 사또는 하늘의 명을 깨닫는 지천명의 나이가 무색하다.

 

 "아이고, 고 계집 탐스럽구나."

 

 사또의 벌어진 입에서 구취가 날 수 밖에.

 식은땀인지 눈물인지 콧물인지 모를 것을 절절 흘리는 처자 도지의 얼굴로, 사또나리의 끈적한 손길이 와 닿았다.

 더욱 크게 움찔 거리는 도지의 반응에, 사또의 입술은 또 다시 시익 반달을 그렸다.

 움집 안으로 스며드는 달빛에 사또 나리의 모습이 빤해, 달빛이 원망스럽다.

 

 "...사...살려주십시오."

 

 겨우 흐른 도지의 목소리에, 사또 나리 껄껄 웃어젖힘에 움막이 쩌렁 울렸다. 도지는 작은 몸을 더욱 웅크리며 고개를 푸욱 숙였다.

 

 "누가 이리 어여쁜 너를 죽인다 하더냐?

 그저, 수청을 들라는 것이지."

 

 "...으흡... 한번만... 봐주십시오."

 

 "어허! 나랏일로 고단한 나랏님 회포도 풀어주지 못하는 것이, 어찌 백성이라 하겠느냐?

 허면, 백성의 쓸모는 어디에 있더냐!"

 

 "...사,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사또 나리의 손길이 다부지게 멘 도지의 고름에 가 닿았다.

 도지는 경기를 하며 뿌리칠 수밖에 없었다. 벌어져 버린 저고리를 야무지게 붙든 도지는 눈물과 원망을 가득 담은 두 눈을 떠올리며 간절함을 담아 호소하고 또 호소했다.

 

 "제발, 제발.... 하라는대로, 시키는 것은 모든 하겠습니다. 걸레질을 하라면 그리하고... 마당을 쓸라면 그리하겠습니다. 제발... 제발."

 

 간절히 호소하는 백성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사또나리는 자신의 욕정에 더욱 눈이 멀었다. 푸른 이채가 어린 사또의 눈이 제정신은 아닌 듯 하다.

 그런 자에게 호소가 다 무엇이겠는가.

 

 "시끄럽다!"

 

 고작, 억울한 자의 몇 마디에 인내의 끈이 끊어져 번쩍 소리를 내질렀다.

 도지는 앞섶을 꾸욱 비틀어 쥔 채 또 다시 두 눈을 질끈 내리 감았다.

 부디 꿈이어라. 부디, 두 눈 떠올리면 꿈이어라, 그리 바라고 바랐다. 빌고 빌었다.

 그때, 쿠당탕! 소리와 함께 움막의 굳게 닫힌 문이 벌컥 열렸다. 마치 꿈이었다.

 꿈처럼, 열린 문 앞에는 달빛을 등지고 선 새까만 형체가 우뚝 솟아 있었다.

 해서, 꿈이다.

 

 "누..누, 누구냐!"

 

 답을 하듯, 움막 안의 마루를 즈려밟으며 움막 안으로 들어섰다. 끼기덕 울리는 마리의 신음소리가 기괴하다.

 

 “내...내이놈!! 신분을 밝히지 못하겠느냐!!”

 

 사또 나리의 겁에 질린 호통에도, 우뚝 솟은 형체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움막 안으로 성큼 성큼 들어섰다.

 달빛에 희끗 비친 모습이, 쑥대머리에 부서진 삿갓을 쓰고 옆구리에 대나무 수통을 차고 있었다. 본 법한 모양새에, 눈물 담긴 억울한 도지의 눈매가 움찔 크게 떠졌다.

 

 "네...네 이놈! 구...구신이면 당장 물러가라!"

 

 사또나리는 품 안에서 염주목거리를 꺼내들었다. 이러한 순간에서야 부처님께 의지하겠다는 오만방자한 작태에, 쑥대머리의 사내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마치, 풀피리 같은 웃음소리였다. 써늘하기도, 아리땁기도한.

 

 "구신이 그리 무서우면서 죄는 어찌 짓고 사나?"

 

 "...이 이놈! 썩 물렀거라!"

 

 염주를 흔들었다. 풀피리 웃음이 뚝 멈추었다. 적막이 찾아 든 움막 안으로, 염라대왕의 천지를 개벽할 목소리가 쩌렁 울렸으니.

 

 "그래!! 내가 바로, 네 놈 잡으러 온 구신이다!"

 

 제1화

 

 하루전.

 오늘도 어김없이 경기도의 자그마한 죽산현의 관아에서는 가야금 뜯는 신명난 가락과 계집들의 교태섞인 웃음소리와 한 대 뒤섞인 벼슬아치들의 고주망태 술 주사가 이어졌다.

 관의 아문(관청의 대문)은 권력의 위세를 떨치기 위해, 누각을 얹어둔 문루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다름아닌, 그 문루 위에서 날이 멀다 하고 나랏님들의 신명나는 잔치가 열렸다. 누가 말하기로는 도성의 구중궁궐보다 울리는 풍악이 곱절을 넘으니 그야말로 태성태다라 하였다.

 가야금 가락을 뜯지 아니하는 날에는 닭다리를 잡아 뜯고, 옆구리 기생을 끼고 있지 않는 날에는 금은보화를 끼고 앉는다 하였으며, 돼지고기가 물리거든 소고기를 내어먹는다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모든 태평성대는 나랏님들에만 한한 이야기였다.

 

 관청(음식이나 살림을 해결하던 곳)의 반빗간(독립적인 부엌형태)에서는 지글지글 기름 튀는 소리와 아낙들의 수다 소리가 한창이었다.

 

 "아이구 저 쌍놈 새끼들 잘도 쳐 먹네. 침이나 콱 뱉어 버릴까 보다."

 

 태반이 관리들의 욕지기였다.

 

 "아서, 우리 챙겨갈 거에도 침 묻을라."

 

 그제야 모았던 침을 삼켜 넣으며, 잔뜩 심통 오른 얼굴로 뒤집은 솥뚜껑에 반죽을 펴 발랐다.

 

 "그래도 저것들 잔치마당에 우리 뱃가죽에도 기름칠을 하잖아~"

 

 "하유, 감~사하네. 빌어먹을 나랏님들.

 구신은 뭘 하나~ 저런 놈들 안 집어 가고."

 

 "그러게 말여! 헌데, 구신이라 하니깐 생각나는데 우리 바깥양반이 저짝 범골에 뱀 주으러 갔다가, 웬 망나니 구신을 봤다네."

 

 "뭔 구신이래 그게?"

 

 숨 죽여 그들은 구신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것이, 그 귀하다는 총각 구신이랴!"

 

 "엄메야!"

 

 남사스럽다는 듯, 아낙들은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아낙들 중 한 명이 헤벌쭉 웃으며 총각귀를 구박하기 시작했다.

 

 "참말, 멍청한 놈이네. 왜 사내를 찾아 가서 놀래키고 그런데. 우리네들한테 왔으면 한바탕 신명 나게 놀고 극락왕생할 수 있었을 건데."

 

 "엄메 남사스러워 엄메! 깔깔깔!"

 

 "무슨 이야기들을 그렇게 하세요?"

 

 자신네들과 달리 곱게 땋은 머리를 낭창낭창 흔들며 다가선 방년의 처자, 도지에 아낙들 쫘악 벌어져 있던 입가를 합 다물었다.

 

 "아이구, 넌 몰라도 된다~"

 

 방년의 처자를 골리듯 손사래를 치며 그리 읊는 아낙들 틈에서 처자는 당황치 않고 받아 쳤다.

 

 "범골 총각 구신 이야기 하시는구나?"

 

 "엄메, 너 봤어?"

 

 "흠."

 

 방년의 처자는 목을 가다듬었다. 생생하고 깨끗한 울림이 들려왔다.

 

 "이거 범골 살잖아? 봤겠네! 봤구만!"

 

 한 아낙의 말이 불씨를 지폈고, 아낙들의 귀가 한대 모여 입술 꼬옥 다문 도지의 입술만 간절히 바라보았다. 지글지글 지지미는 아낙들의 속 마냥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 총각 구신이 어찌 생겼냐 하면요."

 

 "봤네, 봤어! 그려 어찌 생겨 먹었는데?"

 

 방년의 처자에게로 고개를 쭉 빼 들어, 아낙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침을 꼴깍 꼴깍 삼켰다.

 그저 총각이라면, 귀신이라도 좋다. 저들의 지아비들과 끈끈한 의리 하나로 살아가는 아낙들의 작고 소소한 행복이었다.

 

 "요래, 선이 말이오."

 

 방년의 처자 손끝이 허공으로 들어 올려져, 허공 위를 스르륵 미끄러져 내렸다. 마치 환쟁이의 신들린 붓질 같기도 하고, 산줄기 태백산맥을 흉내 내는 예기들의 춤사위 같기도 하고.

 숨이 넘어가는 아낙들을 흘끗하며 처자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낭창낭창 한 것이. 보통 사내의 선이라기보다는, 딱 미공자의 선인 것이."

 

 다시 허공을 더듬는 방년 처자의 요염한 손끝을 참다못해 아낙이 내리쳤다.

 

 "아, 그러니깐! 선도 선이지만 요 얼굴.

 얼굴이 어떻더냐? 응? 오늘 범골로 확 달려가 버릴라니깐

 

 "그러니깐, 지금 이야기 하려 하지 않습니까."

 

 방년 처자의 타박에, 나머지 아낙도 따라 타박이었다.

 

 "으이구, 성질머리 지랄 맞아서 어디다 쓴데! 기다리라잖아!"

 

 "그러니깐 그 얼굴이 어찌 생겼냐 하면."

 

 "그려, 어찌 생겼냐 하면?"

 

 눈망울을 두른 두 눈꺼풀은 자글자글 한데, 눈망울은 반짝 반짝 방년의 처자로의 환생이었다. 자신을 오롯이 집중한, 반짝이는 여러 개의 눈앞에서 방년의 처자, 도지는 풉 웃음을 흘렸다.

 

 "딱! 아줌마들 남편처럼 생겨 먹었더랍니다."

 

 머릿속으로 가장 귀한 귀남자를 그려나가던 아낙들의 이목구비가 옴팡 찌그러졌다. 흉물을 떠올렸다는 듯 치를 떠는 아낙도 있었다.

 

 "요 쥐톨만한 게 누구를 갖고 놀아!"

 

 "아저씨들한테 확 일러요?"

 

 "아이고오~ 기지배 앙칼지다."

 

 방년의 처자는 방긋 웃음을 머금었다. 그 웃음은, 여기 앉은 아낙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꽃가지와 더 어울릴 법 했다. 나앉은 기름 앞보다야, 색색의 고운 천 앞이 더 어울릴 듯 했다.

 허나, 방년의 처자 손끝은 아낙들보다 더 거칠었으면, 거칠었지 고운 것과는 영 딴판이었다. 그만큼 거친 세상을 헤쳐 온 처자의 손이였다.

 이내 도지는 방긋 거리던 표정을 싹 고쳐 바꾸더니 낮게 으름장을 놓았다.

 

 "박씨 아재가 진짜로 범골 총각귀를 봤다 안 해요? 조심해야 한다니까요."

 

 "으이? 진짜래? 우리 한번 떼로 가봐?"

 

 아낙들은 총각귀를 낮잡아보며 저들끼리 키득거리기에 바빴다.

 도지는 빠르게 뒷말을 이었다.

 

 "박씨 아재가 그러는데, 고 총각귀가 골 앞에 턱 하니 서서 머리를 처녀구신 만치로 흩어놓고서는 뭐라고 중얼중얼 중얼중얼 거리고 있더래요."

 

 "그 지게꾼 박씨?"

 

 고개 끄덕이는 방년의 처자를 보며 못 미더운 눈길을 흘겼다.

 

 "아유, 내가 지게꾼 박씨 말은 못 믿는데."

 

 "진짜라니깐요! 요기 요 허리에 대나무 수통을 딱 차고보따리를 딱 이고 머리는 상거지 꼴을 해서는 거기다 또 다 부서진 삿갓을 써서 중얼중얼 중얼중얼.

 박씨 아재가 들어보자 하니, 글쎄 저승길은 구만리... 저승길은 구만리..."

 

 흐느적거리는 메아리 소리를 내는 방년의 처자에 아낙들의 등골을 훑는 한기였다.

 

 "그 구신 봤다는 때가 언젠데!“

 

 여전히 의심 어린 아낙이 대뜸 키운 목소리에, 나머지 아낙들은 자지러지기 일쑤였다.

 드센 음성에, 방년의 처자의 가느다란 음성은 흔들렸다.

 

 "어... 엊그저께랬나?"

 

 "아이고! 그때면 우리 원수하고 술 대차게 처먹고 기어가던 때구만.

 그런 양반이 보기는 뭘 봤겠어! 다 순진한 너 놀리려고 지어낸 말이다."

 

 "아니에요, 진짜라니까요. 아저씨가 얼굴이 사색이 되서는 밤중에 범골 가지 말라고."

 

 "아이고, 우리야 총각귀 나타나면 좋다고 덩실 춤을 추지 피하지는 않는다. 괜한 소리 지펴서 아낙들 마음에 불 지르지 말고, 요거나 냅다 저 윗전들 상판에 던져주고 와."

 

 대뜸 부친 전거리 담긴, 그릇을 도지에게 내밀며 호호 껄껄 거리는 소리를 향해 고개짓이었다.

 

 "참이라니까는..."

 

 아낙은 투덜거리며 소쿠리 건네받는 도지를 향해, 어여 가보라 손 짓 할 뿐이었다.

 

 "이방 어르신한테 드리고 오너라. 괜히 또 사또 놈팽이 눈에 띄지 말고."

 

 "그리 걱정되면 네가 가지 그래."

 

 "나도 몸이 서너개면 내가 가져다 바치지! 아이고, 고새 다 타버렸네!"

 

 그제야 발견한 기름 위에 바사삭 타버린 지지미에 허둥지둥이었다. 그 모습에 어깨 으쓱 올리며 방년의 처자 사뿐 거리는 걸음은 아낙들에게서 멀어졌다. 멀어지는 처자를 뒤늦게 발견해 다시금 아낙들은 당부의 당부였다.

 

 "얘 도지야! 절대 사또 놈팽이 눈에 띄지 말어!"

 

 멀어져 가는 방년의 처자, 그 이름 최가, 도지라.

 

 타닥타닥.

 관아 안에서, 바람을 일으키는 유일하게 바쁜 걸음걸이였다. 어찌나 바쁜 걸음인지, 작은 발이 지나친 자리에 흙바람이 일었다.

 품에는 소쿠리를 든, 처자. 이로 보나 저로 보나 심부름 간, 최가 도지였다. 발그레한 싱그러운 두 볼은, 움찔 움찔 주위를 경계하며 떨림을 머금고 있었다.

 

 하라는 심부름은 아니 하고, 고이 전거리를 품고 어디를 가기에 저리 조심스러운 걸음 걸이일고.

 도지는 간혹 걷는 반동에 등을 두드리는 땋은 머리에 놀라기 일쑤며, 그럴 때마다 뒤를 돌아 확인하고는 했다.

 

 파르르, 송충이를 얻어 놓은 듯 풍성한 속눈썹을 떨며 방년의 처자는 좀 더 분주하게 걸었다. 허나, 그 걸음 뜀박질로 바뀌는 일은 없었다.

 조급하지 아니하게 그리 걸어 나가며 연신 침을 꼴깍 꼴깍 삼켜 넣자니, 도지의 발끝이 들어선 곳은 다림 아닌 관아의 질청(육방의 업무를 보는 곳)이었다.

 모두 잔치가 한창인 동헌에 있을 터였으나, 하여도 조마거리는 가슴으로 두리번 기척을 야무지게 살폈다. 저 행보는, 길을 몰라 잃은 자의 행보는 아니었다. 초롱 총기가 선명한 두 눈이 증명하고 있었다.

 

 이내 도지는 고요한 질청을 지그시 바라보았으니. 도지가 바라본 곳, 형방이라 했다. 형방이 무엇을 하는 곳이던가, 고을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를 처리하는 곳이 아니던가. 형방의 형리 어르신과는 눈도 안 마주치려는 것이 고을 사람들이었다.

 억울한 이의 피가 서렸고, 구슬픈 이의 눈물이 맺힌 곳이 형방이었다. 그다지 좋지 못한 기운이 형형하게 퍼져와, 도지는 움찔 걸음을 멈추었다.

 

 연신 두리번거리며 도지는 다다다 처음으로 뛰어 기와를 지탱한 기둥에 몸을 숨기고 기대섰다. 파르르 가슴이 떨리고, 두 다리가 떨렸다. 도지는 손바닥으로 자신의 가슴을 토닥거렸다.

 도둑괭이처럼 발뒤꿈치를 들고 나다니는 것은 영 못할 짓이었다. 해서 붉은 입술이 긴장감을 떨치려는 듯 벌어져 숨결과 같이 뱉은 말은 이러했다.

 

 "...차라리 총각귀를 봤으면 봤지..."

 

 톡톡.

 자신의 등을 두드리는 무언가가, 팔랑이던 땋은 머리 일 것이라고 그리 치부하던 찰나.

 도지는 두 눈을 번쩍 떠 올렸다.

 톡톡.

 다시 한 번 자신의 등을 두드리는 그것은, 생기 없는 머리칼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규칙적으로 자신의 등을 두드리다 못해, 건드리고 있었다.

 

 긴장감이 어린채로 뒤를 돌아본 도자의 두 눈에는 공포가 한 가득이요, 이마에는 땀이 됫박이라.

 도지는 총각귀를 마주할 수 있었다. 대 낮에 마주한 귀라니, 환한 빛을 받는 귀는 대체 무슨 귀란 말인가.

 잔뜩 헝클어트린 총각귀의 쑥대머리 머리칼 사이로 마주한 두 눈에는 분명하게 귀기가 서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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