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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교환 학생
작가 : 지현시
작품등록일 : 2019.11.4

대한민국 최고 명문대!
비밀리에 1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온 교환학생을 받는다.
교환학생이래 봤자, 100년 후 미래에서 사학을 전공하는 동문들이지만.
2018년 서울의 생활사를 연구하러 온 2118년의 남자, 현호.
그런 그의 시크릿 멘토로 간택된 국사학과 수석, 다희.
두 사람의 유쾌한 룸메이트 생활이 궁금하다면
학기 '등록'을 서두를 것!

-내 일상을 망치러 온, 나의 교환 학생.

 
괴짜 신 교수
작성일 : 19-11-04 16:52     조회 : 371     추천 : 0     분량 : 7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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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올 것처럼 어둑어둑한 하루였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먹구름은 제법 무거워 보였지만 비를 내리진 못했다.

 

 윙-소리와 함께 한 무리의 누런 바람이 앙상한 나뭇가지를 때렸다. 떨어질 이파리조차 없이 헐벗은 나무의 맨살에 그 타격이 그대로 전해졌다. 안쓰러운 광경이었다.

 

 “할머니는?”

 

 집안으로 들어온 준한은 머리에 쓴 헬멧을 벗으며 물었다.

 

 준한이 벗은 헬멧을 받아 안은 그의 어머니가 턱짓으로 침실을 가리켰다. “방에.”

 

 코끝이 붉고 볼은 젖어 있었다. 아마도 지금껏 울고 있었던 듯싶다.

 

 준한은 길다란 복도를 따라 걸어갔다.

 

 연회색의 벽을 만난 그는 자리에 멈춰 서서 오른손을 들었다.

 

 허공에 뜬 손을 옆으로 밀 듯 가볍게 움직이자, 앞을 가로막고 선 벽이 투명해지며 공간이 열렸다.

 

 방 안은 적막했다.

 

 의자 등받이에 기대 앉은 할머니의 뒷모습을 눈에 담으며 준한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할머니, 저 왔어요. 준한이에요.”

 

 의자 옆에 쭈그려 앉은 준한은 할머니의 주름진 손을 살며시 잡았다.

 

 낡아빠진 액자를 꼭 쥔 손에서 서서히 힘이 빠졌다.

 

 “……오늘이야.”

 

 준한은 울음이 터지는 것을 힘겹게 참았다. 앙 다문 입술 끝이 파르르 떨렸다.

 

 “우리 다시, 같은 하늘 아래…….”

 

 천천히 들어올리는 시선은 어느덧 검붉어진 하늘을 향했다.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향년 97세, 애틋한 그리움으로 점철되는 생이 끝났다.

 

 

 

 * * *

 

 

 

 75년 전, 서울.

 

 어느새 방학의 반절이 지나간 7월말, 녹음이 우거진 캠퍼스는 잘 꾸며진 산림욕장 같았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외부 세계와 단절된 느낌을 주었다.

 

 학생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독재 정권에 반기를 든 지식인들을 가둬 놓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입지였다.

 

 “아, 시원하다. 이게 바로 산속에 처박힌 학교가 좋은 몇 안 되는 이유 중 하나지.”

 

 수빈은 앞머리가 갈라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시원한 바람을 만끽했다.

 

 하늘색 쉬폰 원피스와 반으로 묶은 갈색 머리가 바람의 결을 따라 흩날렸다.

 

 “애교심이 이리 부족해서야.”

 

 “그딴 걸 얻다 쓰니? 그냥 애교면 또 모를까.”

 

 수빈은 잘 익은 자두만큼 큰 두 눈을 깜박이며 애교를 피웠다.

 

 “해봐, 너도. 맨날 선머슴처럼 굴지 말고.”

 

 “내가 언제?”

 

 “늘, 항상, 언제나, 평소에!”

 

 “카리스마겠지, 나도 모르게 뿜어져 나오는.”

 

 다희는 어깨를 으쓱했다.

 

 수빈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는 그녀는 허리까지 기른 머리칼을 뒤로 넘겼다. 길쭉한 팔다리와 늘씬한 몸매 덕에 청바지와 흰 티만 입어도 옷맵시가 났다.

 두 사람은 사회대 앞에 위치한 편의점에 들어갔다. 등굣길이 매일 등반길이라, 중앙 도서관까지 가려면 중간에 목을 좀 축여줘야 했다.

 문을 열자 딸랑, 하는 방울 소리가 차가운 에어컨 바람보다 먼저 마중을 나온다.

 “너 오늘 과외 없지? 오랜만에 치맥 어때? 생맥주 완전 땡기는데.”

 “교수님 만나야 돼.”

 “누구, 설마 신 교수?” 수빈은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는 냉장고에서 커피 캔 하나를 꺼냈다. “그 싸이코가 왜 자꾸 너한테 집적거리지? 기분 나쁘게.”

 “자꾸 싸이코래, 그 교수님 업적이 얼마나 대단한데.”

 “이건 역사의 산물이야. 우리의 선배가, 그 선배의 선배가 만든 별명이라고!”

 수빈의 말에 다희는 핏, 하고 실소를 터트렸다. 손에는 푸른색 이온 음료를 들었다.

 “수능 만점자가 법학이나 경제학으로 안 가고 국사학과로 온 것 자체가 쇼킹이야.”

 “자기 소신이고 철학이지. 난 멋있던데?”

 “철학은 개뿔, 철학이 밥 먹여주냐?”

 “어린 나이에 정교수로 임용되고, 내는 논문마다 학계에서 인정받는데, 그 정도면 아쉬울 거 없는 인생 아닌가?”

 “자기 세상에 빠져서 강의는 뭔 소린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고, 나사 하나 빠진 모양으로 다니면서 중얼중얼. 그 나이 먹도록 장가도 못 가고, 맨날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어후, 그 연구실은 또 얼마나 더러운지!”

 경악을 금치 못했던 신 교수의 연구실을 떠올리며 수빈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생각만으로도 벌레가 스멀스멀 팔을 기어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어, 어깨부터 팔뚝을 다급히 쓸어내렸다.

 “교수님이 들으면 서운하시겠다아.” 두 사람이 꺼내 온 음료수를 바코드에 찍으며, 편의점 직원이 아는 체를 했다. 현란한 꽃무늬 셔츠와 동그란 은색 안경, 거기에 내추럴한 장신구를 더해 보헤미안 룩을 완성했다. 레몬빛 머리카락은 날렵한 턱선을 가릴 만큼 길게 늘어져 담배 진열대 조명에 반짝였다.

 “아저씨가 거길 안 가 봐서 그래여. 연구실 꼴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걸? 사람이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그 교수님 확실히 정상은 아니야.”

 “1700원”이라고 하며 직원은 웃음을 깨물었다. 두 사람과 남자는 제법 친한 사이처럼 보였다. 다희는 증명 사진이 박힌 학생 카드를 내밀었다. 학식을 얻어먹은 대신, 음료수는 다희가 쏘기로 했다.

 “아직 방학인데 나와서 공부하려고? 에이, 재미없다. 데이트 같은 거 안 해?”

 “전 CC라 학교에서 보면 돼요. 얘가 문제야, 얘가. 입학하고 연애 한번을 안 하고.”

 “2말 3초잖아. 이번 여름방학이 마지막 기회 아니야?”

 이 학교엔 2학년 2학기, 3학년 1학기 안에 연애를 못하면 평생 솔로로 지낸다는 속설이 있다. 일개 편의점 직원이 알 만큼 유명하다.

 “저는 그런 미신 따위에 흔들리는 여자가 아니랍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민망했는지 다희가 먼저 편의점 밖으로 나갔다.

 “속상해서 정말, 태어는 났니? 우리 다희 남친아?” 그런 그녀를 놀리듯, 수빈은 멀어져 가는 다희의 등에 대고 외쳤다. “갈게여, 아저씨!”

 직원은 수빈에게 웃으며 잘 가란 인사를 했다. 그는 편의점을 나선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밤에 혼자 아방궁에서 뭔 짓을 하는지, 거기서 헐레벌떡 나오는 걸 봤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야.”

 “아직도 교수님 얘기야? 너도 징허다, 정말.”

 편의점에서 나와 또다시 신 교수 흉을 보는 수빈이었다. 인문대의 입구를 지키는 자하연(紫霞淵)을 보자, 얘깃거리가 번뜩 떠오른 것이다.

 자하연은 ‘자줏빛 안개가 내리는 못’이란 뜻의 작은 연못이다. 봄이 되면 그 주변으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데, 그 황홀경을 두고 사람들은 진시황의 궁전인 ‘아방궁(阿房宮)’이라 일컬었다.

 “아무튼 조심해. 저번 학기에 승헌 선배 알지? 신 교수랑 가까이 지낸 후로 좀… 이상해졌잖아.”

 다희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수빈이 염려가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거기엔 지난 학기 승헌이 보인 이상 행동도 한 몫 했다.

 수업 도중 괴성을 지르지 않나, 마약을 구하지 못한 중독자처럼 벌벌 떨지를 않나. 종강 후엔 한 학기 전체를 까먹어버렸다며 이유 모를 기억 장애를 호소했다.

 과 사람들은 이를 모두 신 교수 탓으로 돌렸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신 교수가 풍기는 묘한 인상이 무의식적으로 그를 범인으로 몰았다.

 “설마, 그게 진짜 교수님 때문이겠어?”

 

 저녁 일곱 시 반. 다희는 인문대 7동 앞에 도착했다. 아직 방학이고, 시간도 늦은 터라 위로 올라갈수록 인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벽을 짚으며 계단을 오르자니, 폐교에서 공포 체험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교수들이 쓰는 연구실이 모여 있는 5층, 복도를 걷는 다희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다행히, 신 교수의 연구실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등대가 되어 주었다. 잰걸음으로 연구실 앞에 다다른 다희는 조심스레 문을 두드렸다.

 “어, 들어와, 들어와.” 그러자 신 교수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다희는 문을 열고 연구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다희가 왔구나, 그래 왔어.”

 습관처럼 말을 중얼거리는 신 교수에게 다희는 가볍게 목례를 했다.

 “거기 앉아, 그 앞에.”

 그의 연구실은 여전히 정리가 필요한 상태였다. 학생들이 제출한 레포트며 기말고사 시험지, 연구에 참고한 문헌들이 책상 위를 가득 덮고 있었다. 발치에 툭툭 걸리는 종이 뭉치들은 자연히 떨어진 것인지, 다 읽고 내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희는 바닥의 문건들을 밟지 않도록 조심했다. 의자를 빼고 앉자, 신 교수가 맞은편으로 다가왔다. 그는 자리에 앉더니 다희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덩달아, 다희도 신 교수의 얼굴을 들여다볼 기회를 얻었다. 빗지 않은 머리는 제멋대로 뻗쳐 우스운 꼴이었고, 동그란 안경은 닦지 않아 렌즈가 뿌옇게 보였다. 수염을 말끔히 깎지 못한 턱에선 흑색과 백색의 돌이 어지러이 섞여 바둑을 두고 있었다.

 “교수님?” 잠시 이어진 정적을 깨고 다희가 신 교수의 의식을 깨웠다.

 “어? 아, 그래.” 흠흠,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비로소 본론을 꺼냈다. “오늘 널 여기로 부른 건, 그러니까, 부탁이 있어서다.”

 “부탁이요?”

 “아니, 거래라고 해야 맞겠지. 서로 주고 받는 것이니…….”

 상대를 잊은 대화에 다희는 이맛살을 모았다. 뭐라고 하는 거야, 대체.

 “오, 이런! 지금 몇 시지?”

 “지, 지금 7시 40분 좀 넘었는데요.”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신 교수를 따라 다희도 마음이 급해졌다.

 “늦겠어. 마중을 나가야 하는데, 제기랄!” 자리에서 일어나 종이 뭉치들을 헤치고 문으로 향하는 신 교수가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뭐 해, 얼른 안 따라 나서고!”

 “네?” 멀뚱히 그를 구경하고 있던 다희가 놀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각이야, 지각!”

 원래 걸음이 이렇게 빠른 사람이었나. 엄청난 속도로 앞서가는 신 교수의 뒤를 다희가 헉헉대며 바삐 쫓아갔다. 거래는 뭐고, 마중은 또 뭐야.

 인공 폭포에서 나오는 물이 졸졸졸 흐르는 소리가 오른편에서 들렸다. 낮의 열기가 다 식어버린 저녁의 공기는 다소 습했다. 영문 모를 뜀박질에 땀이 나 더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자하연은 왜…….”

 신 교수의 걸음이 다다른 곳은 바로 자하연이었다. 그는 계단을 내려가 연못 주변의 덤불 안으로 들어갔다.

 아방궁! 다희는 신 교수의 최종 목적지를 비로소 알아챘다. 쭉쭉 뻗은 벚나무들이 가려주는 랑데부, 그 은비(隱秘)한 공간에 초대된 것이다. 아방궁 안까진 차마 따라가지 못하겠는지, 다희는 덤불 앞에 서서 애꿎은 손톱만 괴롭혔다.

 “이다희!” 그때 신 교수가 다희의 이름을 빽 하고 외쳤다.

 “정말 미친 거야? 여길 들어가서 뭐 어쩌잔 거야.” 다희는 이마를 벅벅 긁었다. 늦은 시간에 불러낼 때부터 어째 불안하다 했다. 긴히 할 말이 있다고 해서 찾아간 거였는데. 조심하라던 수빈의 음성이 귓가에 맴돌았다.

 다희가 여전히 덤불 앞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 신 교수의 두 번째 외침이 덤불 안에서 들려왔다. “얼른 들어와! 이제 곧이야, 곧!”

 에라 모르겠다. 다희는 주먹을 불끈 쥐고 덤불 깊숙이 몸을 던졌다. 무슨 큰일이라도 벌어지는 듯한 신 교수의 목소리가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왠지 그런 기분이 들었다. 별똥별 떨어지기를 기다릴 때처럼, 놓치면 안 되는 순간을 맞은 듯한 기분.

 덤불 안으로 들어가자 작은 공터가 있었다. 그곳에서 신 교수는 발을 동동거리며 한곳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다희는 그의 시선이 닿는 곳 가까이 걸음을 옮겼다.

 “교수님, 여기서 대체 뭘…….”

 “쉿!”

 그 순간, 섬광이 번쩍였다. 다희는 본능적으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눈앞에서 폭탄이 터졌다.

 폭발적인 에너지의 방출로 덤불을 이루던 풀들이 일제히 뒤로 나자빠졌다. 다희도 마찬가지였다. 시각에 의존할 수 없는 지금, 낯선 무게감이 몸 위에서 느껴졌다. 먹먹한 귀에서 삐, 소리가 났다.

 수 초 후, 다희는 눈을 떴다. 안개처럼 서서히 거둬진 삐, 소리 뒤로 남자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던 까닭이다. 게다가 이 뜨끈하고 물컹한 느낌! 정신을 차려 보니, 얇디얇은 천 하나를 사이에 둔 채 남자와 입술을 맞대고 있었다!

 “뭐, 뭐, 뭐야아……!” 다희는 제 몸 위에 엎어져 있는 남자를 힘껏 밀쳐냈다. 그러자 윽, 하는 짦은 신음이 들렸다. 그녀는 앉은 상태에서 손과 발을 이용해 바퀴벌레처럼 뒷걸음질을 쳤다. 씩씩대며 급히 숨을 몰아 쉬는 다희의 시선은 폭탄처럼 품 안에 떨어졌던 남자에게 박혀 있었다.

 남자 역시 가슴을 들썩이며 가쁜 숨을 쉬었다. 발끝에서 머리까지 훑어 보는데 한참이 걸리는 게, 굳이 일어서지 않아도 그의 키를 알 듯하다.

 세련된 방화복처럼 보이는 검정색 점프 슈트는 몸의 실루엣을 그대로 드러냈다. 탄탄한 가슴팍과 딱 벌어진 어깨, 군살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몸태였다. 이제 궁금한 건 그의 얼굴. 남자는 천천히 한 손을 목덜미에 갖다 댔다. 그러자, 그의 얼굴을 덮고 있던 검은 막이 스르르 사라졌다.

 “하…….” 호흡을 방해하던 것이 사라지자, 그는 긴 숨을 마음껏 내쉬었다. 여물지 않은 달빛에도 남자의 피부는 투명하게 빛났다. 이마를 덮은 검은 머리칼과 입고 있는 슈트 때문에 그의 피부는 더욱 희게 보였다.

 남자는 입을 헤 벌린 채 자신을 보고 있는 다희와 눈을 맞췄다. 온몸이 찢겨지는 고통에 운신할 기력이 조금도 없었지만 눈빛만큼은 강렬했다. 땀에 젖은 앞머리도 길게 뻗은 속눈썹도 그 날카로운 눈빛을 가리지 못했다.

 “……뭘 봐.” 그게, 남자의 붉은 입술 새로 흘러나온 첫 마디였다. “아파 죽겠는데…… 뭐야, 너.”

 짜증 섞인 목소리에 다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나한테 하는 소리야?

 “그, 그쪽이야말로! 갑자기 나타나서 사람을 있는 대로 깔아뭉개고!” 다희는 시큰거리는 한쪽 어깨를 만지작거리며 따져 물었다. “당신 정체가 뭐야,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냐고!”

 “하…… 너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남자는 시선을 올려 한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던 신 교수를 쳐다봤다. 설명이 필요하단 눈치였다. 다희도 남자를 따라 신 교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존재를 잠시 잊고 있었다.

 “아, 그렇지, 소개! 소개를 해야지.” 신 교수는 손으로 남자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쪽은 김현호. 그리고 아, 다희는 알고 있지?”

 나를 알아? 다희는 현호라는 이름의 남자에게 다시 시선을 던졌다.

 “안다기보단 읽었죠, 실라버스(syllabus)에서. 국사학과 수석, 스물두 살 이다희.”

 “이 사람… 대체 누구예요, 교수님?” 느릿한 말투로 다희가 물었다. 현호로 인해 받은 충격이 꽤 큰 듯했다.

 “교환 학생.” 뒷짐을 진 신 교수는 남 얘기하듯 편안하게 답했다. “이번 학기 동안 네가 멘토가 되어줬으면 하는데. 어, 멘토라고 뭐 대단한 건 아니야. 그냥 학교 생활에 적응할 수 있게 도움을 좀 주면 돼. 그래, 도움. 귀찮은 일들은 전부 김 조교가 해줄 테니까.”

 신 교수의 설명에 다희가 멍해 있는 동안, 현호가 몸을 일으켰다. 혼자 힘으로 서 있는 건 역부족인 듯, 옆에 선 나무에 팔을 기댔다.

 “중요한 걸 빠트리셨는데.” 그는 다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룸메, 라는 거.” 룸메? 그 단어를 어찌나 어색하게 말하는지, 순간 생소하게 들렸다.

 “룸메, 룸메이트?!” 다희는 벌떡 일어나, 신 교수에게 다가갔다. “이게 다 무슨 소리예요? 저 시커먼 남자랑 룸메를 하라니?”

 “그건… 나도 반대했던…….”

 “그리고, 교환 학생이면 외국인이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신 교수의 말꼬리까지 잘라 먹으며, 다희는 열심히 쏘아붙였다. “딱 봐도 한국인인데 무슨…….”

 “교환 학생 맞아. 한국인인 것도 맞고.” 그녀의 물음에 답을 준 건 현호쪽이었다.

 “다른 나라가 아니라, 다른 시간에서 왔어.” 그는 꼿꼿한 시선과 단단한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마저 했다. “2118년, 지금으로부터 100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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