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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별의별
작가 : WCEA
작품등록일 : 2019.10.9

5년 전, 연예계에서 추락하게 된 배우 박시은.
현재 최고의 주가를 달리는 인기배우 유진하.
서로를 따뜻한 봄날, 드라마 <별의별>로 다시 만나다.

 
넌, 누구니?
작성일 : 19-10-22 13:50     조회 : 343     추천 : 0     분량 : 9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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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은아..”

 

 애처롭게 불렀지만 모르는 척했다. 불쌍해 보여도 소용없다.

 

 “시은아…‥.”

 “왜, 오빠.”

 “이제쯤 되면 작품 하나는 해야 하지 않을까..?”

 

 매니저 민준 오빠가 입술을 잘근잘근 물어뜯으며 조심스레 물었다.

 나도 안다, 해야 한다는 거. 벌써 5년이나 지났는데 그동안 연기라는 걸 놓고 살았으니. 그것도, 배우라는 애가.

 

 “나도 하고야 싶지. 근데 누가 나 같은 애한테 대본 쪼가리라도 주냐고.”

 “그거야 그렇지만…‥.”

 “회사에서도 나 거의 포기한 것 같더라. 근데 내가 뭘 어떻게 해.”

 “야, 그래도 오빤 안 버려. 혼자 아니야, 너.”

 “......”

 

 한숨이 나왔다. 한참 창창한 스물여덟을 이렇게 보낼 순 없는데.

 이러다간 집도 팔아야 할 판이었다. 소속사에서도 재계약 안 할 것 같던데…‥.

 하긴, 사장님께 잠정 은퇴를 선언한 나랑 재계약을 하는 게 더 웃긴 그림이긴 했다.

 

 침묵 가운데로 시끄러운 벨소리가 울렸다.

 

 “오빠, 벨소리! 내가 우리 집 올 땐 진동으로 해놓으랬지!”

 “야, 나 아니야! 네가 얼마나 무서운데 미쳤다고 내가 그러겠니. 네 거 아냐?”

 “응? 전화 올 데 없는데. 어, 진짜네! 누구지...”

 “받아봐.”

 “..모르는 번호야.”

 

 이런 전화가 안 온 지는 꽤 오래됐지만, 그래도 굳이 받을 필요는 없지. 뭐 좋은 소리라도 듣겠냐고.

 

 끊기가 무섭게, 다시 전화가 울렸다.

 

 “아오, 진짜... 잠깐만.”

 

 .

 .

 .

 

 “여보세요! 누군데 자꾸,”

 ‘박 배우! 나야 나, 최 작가. 오랜만이지?’

 “아.. 작가님. 안녕하세요. 근데 어쩐 일로..”

 ‘다름이 아니고, 내가 이번에 대본 하나를 썼는데, 3월 중순에 드라마로 편성이 되거든. 이제 캐스팅도 슬슬 해야 하는데, 박 배우가 자꾸 생각이 나는 거 있지?’

 “네?”

 ‘내 드라마 여자주인공 역을 시은 씨가 맡아줬으면 해서.’

 “아…‥. 정말 감사한데요, 제가 작품에 폐가 되지 않을까요. 저, 연기 안 한 지가 무려 5년이나 지났거든요.”

 ‘글쎄.. 연기를 못 할 수 없을 텐데? 폐는 무슨. 이 역할은 시은 씨가 해줘야 딱이야. 그리고 5년씩이나 잠수 탔으면 됐지, 그러다 배우 생활 접을 일 있니? 진짜 관둘 마음도 없으면서!’

 “...”

 ‘내가 시은 씨 지금 어떨지 모르는 거 아니잖아. 고생도 이 정도 했으면 됐어. 지금 안 하면 이 기회 다신 잡을 수 없을지도 몰라. 자기가 더 잘 알잖아. 이 바닥, 잊히는 거야 금방인 거.’

 “..감사해요.”

 ‘감사 인사는 대본 리딩 때 하자고. 일단 자기 소속사 통해서 대본 보냈으니까, 받아서 읽어봐. 읽으면 박 배우도 꽤 맘에 들걸. 그럼 대본 리딩 때 보는 거다?’

 “네..”

 

 .

 .

 .

 

 “시은아 누구야? 아까 작가님이라고,”

 “맞아. 최 작가님.”

 “헐, 설마..”

 “..오빠가 생각하는 그거 맞아. 나, 5년 만에 복귀래.”

 “시은아!”

 

 오빠는 감격한 건지,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린 채로 날 껴안았다.

 나도 그제야 실감이 난 건지, 찔끔 눈물이 났다.

 

 자축이라도 하자며 슈퍼에서 샀던 와인 한 병을 비우고 나서야 오빠는 물었다.

 

 “근데 그러면, 너 이번에 뭐 찍는 건데?”

 “드라마. 이번에 최 작가님 드라마가 3월로 편성됐나 봐.”

 “제목이 뭔데?”

 “몰라, 한번 찾아볼까..”

 

 아주 오랜만에, 포털 사이트의 연예란을 보게 되었다.

 

 드라마 “별의별” 캐릭터 물색 중.

 <별의별> 최 작가, “한 사람을 위한 드라마”이다?

 “별의별”의 여주 박시은 낙점?!

 “별의별” 박시은과 한배, 괜찮을까?

 박시은, <별의별>에 합류.

 

 “별의별…‥. 와, 벌써 기사 다 떴네. 진짜 빠르긴 빨라, 최 작가님.”

 “축하해, 시은아... 내가 다 기쁘다.”

 “고마워 오빠.”

 

 기쁜 일이다. 정말 작가님 말대로 세상에서 잊혀지는 건 금방이니까. 계속 이렇게 백수 생활을 이어가다간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것도 뼈저리게 알고 있다.

 그렇지만 대중들이 날 받아들여 줄까? 내가 이 드라마에 누가 되는 건 아닐까. 내 욕심은 아닐까.

 

 .

 .

 .

 

 박시은, <별의별>에 합류.

 

 “헐, 형 이거 진짜야?”

 “맞다던데.”

 “나, 이거 안 한다던 말 취소. 이 작품을 해야 할 이유가 생겼어. 반드시 꼭, 해야 돼.”

 “에이, 야.. 유진하 너, 설마…‥.”

 “맞아. 이건 절호의 기회야, 형.”

 “야, 진하야. 아무리 그래도, 별별 영화사, 방송사에서 너 데려가려고 싸우고 있는 마당에 어떻게 빠져도 여기로 빠지냐? 미친 거야? 게다가 여긴 네 몸값만큼 출연료 못 줘. 알긴 알아?”

 “알지.”

 “이번에 좋은 작품 하나 딱 골라서 자리 잡자, 응?”

 “형, 형이 그랬잖아, 나 신인일 때. 초심 잃으면 안 된다고. 그걸 잃어서 무너진 사람 여럿 봤다고.”

 “..그랬지. 근데 그게 이거랑 무슨 상관이야? 대화가 이상한 데로 빠진다?”

 “난 내 몸값을 가장 비싸게 쳐줄 드라마가 아니라, 나를 가장 나답게 표현할 수 있는 드라마를 찍고 싶어. 그게 내가 배우로서 가진 가치관이고.”

 “널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드라마는 퇴물 박시은이랑 찍는 로맨스고?”

 “아 퇴물이라고 하지 마! 어떤 퇴물이 나 같은 팬을 둬? 형 그렇게 말하면 나까지 욕하는 거야. 박시은 퇴물 아냐... 올라올 거야.”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넌 네 처지나 고민해. 넌 일 년이나 쉬겠다고 해놓고 걱정 안 되니?”

 “그니까 이거 하자니까? 이번 드라마, 내가 대박 칠거거든. 별의별이 내 인생작 된다, 에 내 손목을 걸게, 형. 그니까 나 한 번만 하자.”

 “..그럼 네가 사장님 설득해. 난 못하니까.”

 “사장님이 오케이 하면, 나 진짜 한다?”

 

 진하는 망설임 없이 휴대폰을 집었다.

 

 ‘웬일이냐, 네가?’

 “중요한 할 일이 있어서요.”

 ‘뭐길래 전화를 다 하고.’

 “사장님, 저 휴식기 안 가질게요.”

 ‘뭐? 진짜로?!’

 “네. 그 대신에, 그 공백기를 깨는 건 제가 원하는 작품으로 하게 해주세요.”

 ‘뭔데 그렇게까지 하고 싶어?’

 “별의별. 저번에 최 작가님 대본이라고 가져갔던 거, 그거 제가 할게요.”

 ‘야... 그거 네가 맘에 안 든다고 깠던 거잖아!’

 “아, 방금 할 마음이 생겼다니까요?”

 ‘그거 캐스팅 보고도 하는 말이야? 아 뉴스 안 보냐고!’

 “왜요. 뭐가. 캐스팅이 뭐가 어때서! 완전 좋기만 한데!”

 ‘너. 솔직히 말해봐. 그거 방금 박시은 여주인공 캐스팅 올라온 거 때문에 그러지.’

 “당연하죠!”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거 심각해. 너 말고 다른 애들한테도 대본 돌렸는데, 아무도 안 하겠다고 했어. 우리 소속사만 그런 줄 알아? 다른 데도 뻔하지. 아무리 최 작가 대본이라고 해도, 상대역 생각하면, 네가 할 이유 없어.’

 “그랬구나, 아무도 안 하겠다고 했구나.”

 ‘그래, 그러니까 너도…‥.’

 “하지 말라고요? 싫은데. 그러니까 더 해야겠는데. 그래서 보란 듯이 유진하가 했다고 알려줘야겠는데?!”

 ‘아니 안 된다니까?!’

 “내가 공백기 안 가진대도 안 돼요?”

 ‘응, 안 돼.’

 “그러면…‥. 그거 때문에 광고 잘리고, 회사 손해나면, 그거, 내가 배상할게요. 지금까지 내가 벌어놓은 거 생각하면 그래도 되는 거잖아. 이 정도는 해도 되잖아.”

 ‘너 그렇게 하고 싶냐...?’

 “아 진짜라니까? 계약서나 보내줘요. 진짜 사인할 라니까.”

 ‘알았어. 근데 너 최 작가님이 시켜준다는 보장은 있고?’

 “그것도 내가 알아서 해결하고, 확정되면 전화 드릴게요.”

 ‘하.. 네 맘대로 해. 못살아 진짜.’

 “진짜 해도 되는 거지?”

 ‘나중에 후회하지나 마.’

 “나 그럼 작가님한테 연락한다?”

 ‘그래라..’

 

 “유진하 너 진짜 미쳤어?”

 

 화낼 줄 알았다, 정말. 그래도 대표님 허락 맡았다고. 작가님 허락도 맡고 만다.

 

 “아니. 너무 정상적이지.”

 “그 손해배상을 왜 네가 하는데?”

 “안 할 건데.”

 “뭐라는 거야. <별의별> 하고 손해나면 네가 다 배상한다며?!”

 “손해가 안 나면 되잖아?”

 “뭐?”

 “손해는커녕, 형 인센티브도 왕창 나오게 해줄게, 내가.”

 

 .

 .

 .

 

 ‘여보세요?’

 “아, 작가님 안녕하셨어요? 배우 유진하입니다.”

 ‘그럭저럭.. 근데 유진하 씨가 웬일이죠?’

 “제가요, <별의별> 대본을 다시 읽어 봤는데요, 다시 보니 작품이 너무 좋아져서요. 그래서 염치없지만, 드라마 <별의별> 지다훈 역, 그거 제가 하면 안 될까요?”

 ‘거절했잖아요, 내 드라마.’

 “그- 그렇긴 한데요, 전 이 드라마 너무 하고 싶은데요. 혹시 제가 감히 작가님의 작품을 거절해서 화가 나셨거나.. 그러면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진짜! 반드시 꼭 해야 해서요.. 진짜 간절해요…‥.”

 ‘그때 제안했던 지다훈 역할 할 거에요?’

 “네, 네! 제발요...”

 ‘근데 상대배우 누군지 알고 하겠다고 하는 거죠?’

 “그걸 알아서 하겠다고, 아, 그게 아니고.. 누군지 알지만! 오로지 작가님의 훌륭한 작품 때문에 하고 싶은 겁니다!”

 ‘그렇게 포장해봤자 늦었어. 박시은 인기 많네.’

 “아.. 아니에요.. 정말…‥.”

 ‘됐어요. 박 배우야, 나도 좋아하는 사람이니. 고마워요, 지다훈 해준다고 해서. 사실, 상대 배우가 박시은인 거 기사 뜨니까 서로 자기가 하겠다고 싸우던 배우들이 죄다 도망갔거든. 썩을 놈들이.’

 “...”

 ‘유 배우가 선택해준 만큼, 후회하지 않도록 나도 열심히 쓸게요. 유 배우도 지다훈, 잘 연기해줘요.’

 “맡겨만 주십시오!”

 ‘대본리딩 때 봐요.’

 “들어가세요-”

 

 예스!!! 드디어. 7년째 꿈꾸던 그 꿈을, 드디어 유진하 네가 이루는구나!

 

 그는 그게 그렇게도 감격스러웠던 건지, 소파의 쿠션을 주먹으로 치기도, 회사를 쿵쿵대며 뛰어다니기도 했다. 마치, 월드컵에서 골이라도 넣은 축구선수처럼.

 요란한 캐스팅 세리머니였다.

 

 .

 .

 .

 

 민준 오빠가 회사에서 받아온 <별의별> 대본에서 내가 맡을 역할은 여주인공 “윤리나”였다. 역시 최 작가답게 글 하나는 끝내주게 잘 썼지만, 내 상대역을 도대체 어떤 배우가 해줄지는 의문이었다. 누가 퇴물 배우인 나랑 연기하고 싶겠냐고..

 

 “오빠, 이거 캐스팅 다 됐대?”

 “응, 기사 못 봤어?”

 “아직 안 봤어.”

 “아... 그랬구나. 근데 전부 캐스팅된 건 맞아. 확정 기사 오면서 보고 왔거든.”

 “..지다훈 역도 캐스팅됐다고?”

 “응. 유진하 씨라던데.”

 “걔 잘나가지 않아?”

 “엄청 잘나가지- 작년에 찍은 작품만 몇 갠데. 좀 쉬겠다더니 마음 바꿨나 봐.”

 “걘 내가 상대역인 거, 알고도 하겠다고 한 거래?”

 “그렇겠지. 네 캐스팅 이후에 유진하 캐스팅 기사가 났는데?”

 “걘 제정신이래? 그렇게 잘 나가는데, 굳이,”

 “야! 너 내가 그런 소리 하지 말랬지! 네가 얼마나 괜찮은 앤데.”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네 매니저인 나한테는 네가 최고의 스타야. 그러니까 자신감 가져. 걔가 제정신이 아니라서 이 드라마 찍겠다고 한 거 아니고, 네가 너무 괜찮은 배우라서, 호흡 맞추고 싶은 사람이라서 그런 거야.”

 “방금 건 좀 양심 없었다.”

 “..그래 그건 인정. 너무 오버했네.”

 “됐어. 그렇게 안 띄워줘도, 오빠 마음 알아.”

 

 오빠의 말이 위로가 되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만, 내 자존감이 바닥 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몰래 본 대중의 댓글과 기사 제목들이 내 캐스팅 소식에 대해 부정적인 것은 두 눈만 똑바로 뜨고 있다면 아주 손쉽게 파악할 수 있었으니까.

 

 .

 .

 .

 

 오, 드디어 결전의 날이었다. 7년 만이다. 직접 얼굴 보는 건.

 

 방송국 주차장에서 진하는 괜히 손을 바지에 문댔다.

 

 “형, 나 뭐 이상한 거 없지?”

 “응, 멀쩡해.”

 “안 이상해 보이지?”

 “응- 잘생겼어-”

 “진짜 괜찮아 보여?”

 “지금 그 질문이 몇 번짼 줄 알아?”

 “아 미안, 너무 긴장돼서.”

 “네가 뭐 선보러 가니? 그냥 같이 대본 리딩하는 건데 유난이야, 진짜.”

 “몰라서 그래? 박시은 선배님 오잖아!”

 “내가 말을 말자.”

 

 .

 .

 .

 

 “오빠, 나 이상해 보이지 않지?”

 “괜찮아, 오늘도.”

 “아…‥. 떨린다.”

 “너답지 않네. 너 원래 잘 안 떨잖아. 긴장도 안 하고.”

 “오 년만이잖아. 떨리는 게 당연하지!”

 “잘할 수 있어. 같이 가줘?”

 “아냐, 됐어. 갔다 올게.”

 

 주먹을 두어 번 쥐었다 펴고는, 떨리는 발걸음을 이끌고 문 앞에 다다르니 ‘별의별 대본 리딩’이라는 글자가 크게 인쇄되어 붙어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자기 매니저인 듯한 남자를 때리면서 발을 동동 구르는 남자가 있었다.

 이상한 남자였다. 얼핏 보니까 유진하인 거 같긴 한데.

 

 “안녕하세요. 박시은이에요. 유진하 씨 맞죠?”

 “아, 네! 헐…‥. 제 이름 기억하세요?!”

 “...기사 다 떴으니까 당연히 알죠.”

 “기억... 해주셨구나. 선배님, 진짜, 진짜로 영광이에요.”

 

 유진하에게 내 말은 들리지 않는 게 분명했다.

 그는 혼자서 감동하고 영광이라는 둥, 큰 눈을 초롱초롱 부담스럽게 빛내며 작가님이 오실 때까지 내게 무한한 관심을 보였다.

 

 “벌써 와 있었네요.”

 

 “아, 최 작가님 오랜만이에요.”

 “안녕하세요, 작가님!”

 

 “진하 씨도 미리 와 있었네? 근데 우리가 처음 만나는 건가?”

 “네. 잘 부탁드려요.”

 “글쎄, 뭘 잘 부탁드리는 건데? 혹시-”

 “아, 그런 거 정말 아니에요! 진짜로 작품이 너무 좋아서 선택한 거예요…‥.”

 “거짓말. 어쨌든 다들 앉자고. 감독님도 곧 오실 테니까.”

 

 .

 .

 .

 

 “잘, 지냈어?”

 

 최 작가님이 겉옷을 벗다 말곤 고갤 돌려, 내게 묻는다.

 잘 지냈냐고.

 그 짧은 한 문장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작가님은 굳이 길게 말하지 않아도, 모든 걸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꽤 괜찮게 지냈어요. 기사에서 실컷 욕먹은 것만 빼면.”

 “다행이네. 네가 생각보다 그렇게 쉽게 잊히는 얼굴은 아닌가 봐.”

 “그러게요. 5년이나 지났는데도 다들 기억하나 봐요.”

 

 아무렇지 않게 던진 농담에,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말한 대로, 날 뚫어지게 쳐다보는 누구 덕분에 욕은 배불리 먹고 왔다.

 작가님도 아시겠지. 그러니까 이런 농담을 건넨 거고.

 투박한 말을 던지면서도 여전히 따뜻한 얼굴로 내게 묻는 작가님의 모습이 5년 전과 다를 게 없었다.

 

 .

 .

 .

 

 약속 시간이 임박하자 다른 연기자들도, 곧이어 스태프들과 감독님까지 모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총 연출을 맡게 된 김윤식 감독입니다. 앞으로 ‘별의별’ 잘 찍어봅시다.”

 

 테이블 가운데에 앉은 남자가 일어나서 자신을 감독이라 소개했다. 시상식에서 몇 번 뵌 것 같기도 하고.

 다들 괜찮은 프로들이었다. 친절한 사람 같아 보였고, 다른 배우들도 나름 연기력으로 인정받은, 실력으로 흠잡을 데 없는 사람들이었다.

 

 “안녕하세요. 각본을 맡은 최주현 작가입니다. <별의별> 잘 부탁드리고, 촬영 과정이 별의별 일없이 잘 지나가면 좋겠네요. 모두 잘하실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글로는 흠잡을 데 없는 최 작가도.

 

 “안녕하세요. 지다훈 역의 유진하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큰 박수를 받은, 내 옆의 유진하도.

 

 “..안녕하세요. 여배우 윤리나 역의 박시은입니다. 작품에 폐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여기서 인정받지 못한 건, 나뿐이었다.

 

 “그럼, 시작할까요.”

 

 .

 .

 .

 

 “오빠, 난 항상 생각하곤 했었어. 내 주변에 넘쳐나는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 언제쯤 떠나갈지.”

 “..리나야,”

 “혹시 전처럼 모두 나를 버리고 떠나가진 않을까? 또다시 혼자가 되진 않을까? 그런 생각에 빠져서 내가 그 오랜 시간을 배우로서 허비했던 거야.”

 “......”

 “..사람들이 언제 떠나갈지 두려움에 떨면서 지내고 싶진 않아, 더는. 오빠가 아무리 나한테 잘해줘도, 나는 쭉, 두려울지도 몰라…‥. 어, 왜 이러지.. 죄송합니다.”

 

 갑자기 눈이 시큰거렸다.

 멍청하게 여기서 울긴 왜 울어.

 

 “여기, 휴지요.”

 “아.. 고마워요.”

 

 옆에서 불쑥, 휴지 더미를 내밀었다. 창피한 마음에 서둘러 휴지를 받아 눈가를 닦고 나서야, 조금, 진정할 수 있었다.

 

 “시은 씨 괜찮아요?”

 “이제 진정됐어요. 괜찮아요. 죄송합니다. 다시 할게요.”

 

 .

 .

 .

 

 아슬아슬했던 대본 리딩을 겨우 끝마쳤다.

 모두 나갈 때까지 멍하니 앉아있었던 거 같다.

 

 “괜찮아? 아까 좀 울던데.”

 “아, 괜찮아요. 정말.”

 

 미심쩍어하는 작가님의 눈빛을 피하며 재차 답했다.

 마치, 내 얘기 같아서. 누가 내 일기장이라도 훔쳐보고 쓴 것처럼, 너무 공감돼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연기, 못 한다더니 엄청 잘하더라?”

 “완전 긴장했어요. 못 하면 안 되잖아요, 작가님이 저 시켜주신 건데.”

 “그랬어?”

 “작가님 망신시키면 안 되죠. 작가님이 나 데리고 온 건데 괜히 작가님까지 욕먹잖아요.”

 “음- 그렇게 부담 가질 필요까진 없었는데. 물론 네가 이 역할에 잘 어울리긴 했지만, 단순히 그것 때문만은 아냐. 예전에 너 데뷔작에서 내가 쓴 그 대사, 그걸 소화해낼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건 네가 지금 맡은 윤리나 역할도 마찬가지야.”

 “...”

 “너 연기 엄청 잘해. 5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해질 정도로.”

 “...”

 “오히려 늘었어. 내가 이거 쓰면서 생각한 게 있는데 이 드라마를 내 인생작으로, 그리고 이걸 연기하는 배우들의 인생작으로 만들고 싶다는 거였거든? 근데 그거 너라면 충분히 가능하겠다.”

 “...”

 

 작가님답지 못했다. 작가님은 길게 풀어 말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칭찬 또한 자제하는 편이었다. 듣는 사람까지도 과분할 정도로 칭찬을 하는 사람이 아닌데.

 

 “내가 이렇게 말 많이 하는 거 빈말 아니고, 위로도 아니야. 아까 나도 깜짝 놀랐다니까. 과분한 칭찬 아니고, 당연한 칭찬이야.”

 “......”

 “이 대본 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내내 들 정도로 좋았어.”

 “너무 비행기 태우지 마요.”

 “믿기 싫음, 말든가. 네 팬은 되게 좋아할 것 같은데, 네 연기. 물론 대중들도.”

 “......”

 

 팬? 나한테도 그런 게 있었나. 사랑받는 것이 아닌, 미움받지 않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된 내게, 그런 게 존재했던 시절이 있었나.

 그런 찬란한 시절이 내게도, 있었나.

 

 “저기…‥.”

 “네?”

 “저 사인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아직 안 갔어요?”

 

 작가님만 남으신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유진하가 몸을 베베 꼬며 분홍색 색지를 내밀었다.

 

 “사인 받으려구.. 기다렸어요.”

 “아…‥.”

 

 사인은 그쪽이 나한테 받을 게 아니라 내가 그쪽한테 받아야 할 거 같은데.

 

 “여기요. 근데 사인은 무슨 일로?”

 “네? 아, 그.. 저희 매니저 형이 엄청난 팬이라서요!”

 “아.. 그러시구나. 성함은 안 써드려도 괜찮아요?”

 “괜찮아요. 형이 선배님 뵌다고 진짜 좋아했어요.”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아, 그리고.. 오늘 연기 꽤, 아니 아주 많이 괜찮았어요!”

 

 수줍어하며 종이를 받아들고는 후다닥 도망갔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나. 생각했던 것보다 의외인 면이 많은 배우다.

 

 .

 .

 .

 

 주차장으로 내려가니 민준 오빠가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늦게 끝났네.”

 “끝나고 작가님이랑 얘기 좀 하다 왔어.”

 “대본리딩 어땠어? 괜찮아?”

 “응 뭐.. 다들 연기도 잘하시고.”

 “유진하는 어때?”

 “좀, 이상하다고 해야 하나... 독특해.”

 “뭐가 어떤데?”

 “오빤 걔가 어떤 애 같아 보이는데?”

 “그냥, 뭐… 잘생겼다?”

 “그런 거 말고! 성격이 어떨 거 같냐고.”

 “착하고, 자신감 넘치고.. 호탕하다?”

 “그치? 나도 그럴 거 같았는데 생각 외로 되게 수줍어하더라.”

 “엥, 유진하가?”

 “그래, 그렇더라니까.”

 “의외네.”

 “하여튼, 오빤 내가 어땠는지는 관심 없어?”

 “아..”

 “아-? 오빤 도대체 누구 매니저인 거야.”

 “미안해- 네가 오랜만인 것처럼 나도 이런 얘기 하는 게 오랜만이라 그래. 궁금하잖아, 네가 어떤 사람들이랑 일하게 됐는지.”

 

 그러네. 그 일이 있고 나서 내가 일을 나가지 않으니, 자연히 오빠도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던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미안하기도 했다.

 

 “...오빠, 오빠는 지난 오 년 동안 어땠어?”

 “글세... 그냥, 네가 힘들어하는 걸 보면서 많이 아프구나- 했지. 슬펐고, 안타까웠고. 근데 그건 왜?”

 “그 오 년이란 시간은 배우 박시은으로서 실이었겠지?”

 “글쎄. 그건 봐야 알지. 네가 지난 오 년 동안 아무런 성장도 하지 않은 건 아니잖아?”

 “그런가.”

 “가끔은 쉬어가야 할 때가 있는데, 그냥, 그게 너한테 좀 빨리 온 거라고 생각했어. 그 과정이 너한텐 좀 많이 힘들긴 했지만.”

 “...고마워. 항상 느끼는 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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