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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브리튼 던
작가 : 전Yeah
작품등록일 : 2019.10.8

블루튜더의 전사였던 요한은 레드튜더와 전쟁 준비 중 블루튜더가 레드튜더에 흡수되자 자신의 꿈을 포기한 채 탈단하여 외진 시골로 내려가게 된다. 조용히 인생을 마무리하려는 요한 앞에 아무라는 이상한 녀석이 나타나면서 그의 삶은 바뀌기 시작하는데...

 
01
작성일 : 19-10-08 23:18     조회 : 366     추천 : 0     분량 : 12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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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면 어디로 갈 생각인가?”

 

  요한은 그 말을 듣고 조용히 대답한다.

 

  “어디로든 사람이 없는 조용한 곳으로 갈 생각입니다.”

 

  화려한 금발을 가진 요한이었으나 그의 표정은 어두웠고 푸르른 벽안에는 공허함이 가득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세르반테스는 크게 한숨을 내쉰 다음 손으로 입을 막고 한참을 생각한다. 요한의 얼굴에는 생기가 없었으나 그의 고집은 쉬이 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럼 이제 검의 길은 걷지 않을 생각인가?”

  “……모두 막아버렸으면서 어떤 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뻗은 길이 있긴 한 겁니까?”

 

  말 속에 가득 차있는 가시를 세르반테스는 애써 건드리지 않는다.

 

  “……그럼?”

  “정치도 출세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곳으로 갈 겁니다. 거기서 아무것도 쥐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지낼 겁니다.”

  “그게 자네가 선택한 다른 길인가?”

 

  요한이 바닥 쪽 허공을 응시한 채 엷은 미소를 내비치며 대답한다.

 

  “아뇨, 멈춘 겁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겠죠.”

 

  이 말을 끝으로 전 블루튜더 소속의 제 1 전사장, 요한 델 베르난데스는 블루튜더를 떠난다.

 

 

  //

 

 

  브리튼 던은 작은 마을이다. 앞으로는 초원, 옆으로는 숲이며 뒤로는 바다를 끼고 있는 이 마을은 인구수 100명 안팎의 작은 소규모 마을이지만 조금 떨어진 옆의 엔 토르 마을은 용병업과 퀘스트 주선지가 발달했으며 위쪽에는 상업 중심의 항구 대도시인 샤르코바가 있어서 입지적으로 좋은 곳이었다.

 

  허나, 엔 토르와 샤르코바로 가는 여행자 입장에선 브리튼 던을 경유해서 가는 건 제법 돌아가는 모양새인지라 외지인이나 여행객의 출입은 잦지 않은 편이다. 기껏해야 몬스터 퀘스트나 간단한 임무를 하기 위한 용병들이 이곳에 잠시 쉬기 위해 올 뿐이었다.

 

  은퇴한 요한은 이곳에 살기로 했다. 더 외진 곳으로 가 틀어박혀 살 생각이었으나 세르반테스의 배려로 마련해준 거처였기에 거부하기 어려웠다. 특히 세르반테스는 “분명 그곳에 가면 자네의 지친 심신을 위로하기 충분할 걸세.” 이곳의 풍경을 극찬하며 적극 권해온 터였다.

 

  조용한 마을이라는 점에서 타협을 한 요한이었지만 본심은 역시 좀 더 깊고 사람 손이 닿지 않은 곳에서 살고 싶었다. 허나 세르반테스는 요한이 검 하나만 믿고 온 사람인지라 걱정이 된다면서 적어도 손에 닿는 곳에서 보고 싶다고 사정을 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이곳으로 정해버렸다.

 

  마차를 타고 가면서 보는 풍경은 세르반테스가 말한 대로 어느 정도 치유가 되는 느낌이었다. 숲을 벗어난 길은 넓은 초원을 가로지르고 있었으며 하늘은 초원 위에서 그 넓고 푸른 자태를 자유롭게 펼치고 있었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며 저 멀리 바다가 햇살이 부서진 가루들로 눈부시게 반짝거린다. 정말이지 너무도 멋진 곳이었다. 그러나 그 멋진 풍경들도 그의 흐린 하늘빛 눈 안에는 담겨지지 않았다.

 

  아름다운 풍경과는 달리 길은 제대로 닦여있지 않아 비탈길에 마차가 크게 휘청거린다. 마부는 당황하며 마차 안의 요한에게 “괜찮으십니까? 나리?”라며 걱정했지만 요한은 낮은 음색으로 “……괜찮습니다.”라는 말로 마부를 안심시켰다.

 

  “마차가 이곳으로 오는 경우는 아주 가끔이거든요. 그래서인지 길이 조금 별로입니다. 이해 좀 해주십시오.”

  “……이곳 지리를 잘 아시나 보군요?”

 

  무겁게 깔린 음색 때문에 마부는 조금 위축됐지만 애써 활달하게 대답한다.

 

  “뭐, 여기 출신이니까요. 100여명 정도로 작은 마을인데 크게 3구역으로 갈라져서 한 쪽은 어업, 다른 쪽은 농업, 다른 쪽은 주택지역을 겸한 상업지역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저는 농촌 쪽에서 나고 자랐지요. 그렇다고 마을 크기가 그렇게 넓은 건 아닙니다. 마을 전체를 걸어서 한 바퀴 도는데 1시간 정도 걸리니까요. 하하하!”

 

  그 정도면 충분히 넓은 편 아닌가 하는 요한이었지만 그러려니 넘긴다.

 

  “브리튼 던은……. 튜더 소속이 아닌가요?”

  “녹스 제국의 영토이긴 하지만 튜더 소속은 아닙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주변의 영향력이 있는 도시들은 블루 튜더 소속이니 여기도 그에 예속된 모양새랄까요? 하지만 튜더전쟁의 마수에서 벗어나있는 평화로운 곳이지요. 지내시기 좋을 겁니다.”

 

  마차는 곧 마을 내부로 진입한다. 보아하니 이곳이 사람들이 살고 있는 상업지역인 듯 보였다. 아낙네들을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고 아이들은 거리를 아무렇지 않게 뛰놀다 간만에 들어오는 마차에 호기심을 느껴 마차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중이었다.

 

  마차는 이윽고 회관처럼 보이는 단층의 건물 앞에 멈춰 선다. 요한은 마부에게 감사인사를 드리며 요금을 치루고 회관 안으로 들어간다. 문을 열자 넓은 홀 안, 식탁에 앉은 벗겨진 하얀 머리에 하얀 콧수염을 한 노인이 입구 쪽을 바라본다. 그는 병 안에 채소들을 넣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채소절임을 만들고 있던 모양이다.

 

  “누구시오?”

  “……요한이라고 합니다.”

 

  요한의 말에 노인은 화들짝 놀라며 요한을 향해 달려온다.

 

  “아이고, 요한님! 벌써 오셨습니까? 제가 마중을 나갔어야 하는데! 설마 이렇게 빨리 오실 줄은……!”

 

  그러면서 노인은 손을 옷에 닦은 다음 요한에게 악수를 건넨다.

 

  “이런저런 사정은 세르반테스님에게 들었습니다. 저는 이곳 마을의 촌장인 스마 와이즈라고 합니다. 편하게 스마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그럼 스마님. 제가 지낼 곳은 어디인가요?”

  “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따라 나오시죠!”

 

  묵묵히 용무만을 묻는 요한 덕분에 어색해진 손을 뒤로 한 채 스마는 회관 문을 나선다. 딱딱하고 무거운 느낌의 요한을 상대하기에 벅찼는지 황급히 밖으로 나갈 심산이었다. 요한은 그의 뒤를 뒤따라가기 전 스마가 만지고 있던 병을 잠시 바라본다. 안의 채소들의 품질은 척 봐도 좋아보였다.

 

  요한이 문 밖으로 나왔을 때 그 짧은 시간 동안 스마는 같이 온 마부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얼마만이야, 샘! 자네가 올 줄은 몰랐어!”

  “건강히 지내시니 다행이네요. 아일락은 잘 있죠?”

  “정 궁금하면 아일락이 어찌 지내는지 직접 가서 보면 될 게 아닌가? 그래, 내륙 쪽은 먹고 살만한가?”

  “아이고 이곳저곳이 전쟁통이라서 그 이곳저곳을 피해다니느라 지금은 이 근방에서 일을 합니다. 오죽하면 다시 여기에 말이나 돌보며 살까? 하는 생각까지 한다니까요.”

 

  껄껄거리는 화기애애한 이야기를 요한은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두 사람을 기다리며 주변을 살핀다. 세 갈래 길이 합쳐지는 이곳이 브리튼 던 마을의 중심인 듯 보였다.

 

  넓은 초원지역에 지은 마을이라 시야는 정말 시원하게 뚫려있었다. 만약 이런 심정이 아니었다면 풍경에 감탄하며 아름다운 이 모습을 두 눈동자에 가득 담았을 테지만, 지금의 요한에겐 그 감정은 사치나 다를 바 없었다.

 

  마차를 쫓아 마을회관까지 온 마을 아이들은 마차 주변을 어슬렁거리면서 요한을 노려보고 있는 중이었다. 호기심과 경계를 적절히 섞은 아이들의 시선을 요한은 애써 신경 쓰지 않는다. 괜히 신경 쓰다 귀찮은 일에 휘말릴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요한님. 제가 촌장님을 워낙 오랜만에 만나는 터라.”

 

  멋쩍게 머리를 긁적거리는 샘에 이어 와이즈가 요한에게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하며 샘에게 부탁을 한다.

 

  “그럼 샘, 수고스럽지만 집까지 같이 가 주겠나? 요한님께서 갈 곳은 좀 외진 곳이라…….”

 

  스마의 부탁을 샘은 수락했고 세 사람은 마차를 타고 회관을 떠나 이동한다. 마차는 초원을 지나 숲이 우거진 쪽으로 향했고 이윽고 숲을 등지고 있는 2층으로 된 고즈넉한 나무와 돌로 지은 석조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마차에서 내린 스마는 떠나는 샘에게 작별인사를 한 후, 요한과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정면에는 벽난로, 왼 쪽으로는 주방이 보였다. 벽난로 오른 쪽엔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아늑한 느낌의 집이었다. 요한은 만족스러웠다. 집 안 분위기가 고요한 편에 장소 또한 마을에서도 조금 떨어진 곳인데다 뒤로는 숲을 끼고 있기에 정적인 느낌이 들었다.

 

  여기서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살다 마지막 불씨를 꺼드리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이곳은 오히려 사치스런 묘라고 요한은 생각했다.

 

  이제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멈춰버린 삶을 끝내는 자신의 마지막 장소. 이런 장소라면 푸른 꽃도 이제 시들어버리기 충분하리라.

 

  이런 생각을 하며 집안의 분위기와 자신의 미래를 느끼고 있는 요한이었지만, 바로 옆의 스마가 어떤 상태인지는 그는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부들부들 떨면서 작은 불안감을 내비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스마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방은 2층에 있다며 일단 자기가 먼저 2층으로 올라가 상태가 괜찮은지 살펴보겠다고 말한다. 그는 스리슬쩍 요한의 곁을 떠나려했지만 요한은 스마의 제안을 거절한다.

 

  “……괜찮습니다. 제가 하죠.”

  “아닙니다. 혹시 모르니까요! 일단 여기서 기다려주시면…….”

  “아뇨. 그런 수고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면서 요한은 성큼성큼 걸어간다. 스마는 당황한다. 마치 일이 이렇게 풀리면 안 된다는 듯 그는 다급하게 요한을 제지하려 했으나 요한은 이미 계단을 걸어 2층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위태롭게 들렸지만 오히려 이런 낡음이 요한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잠시 걸음을 멈춘 요한은 벽을 한 번 스윽 쓰다듬으며 말한다.

 

  “꽤 오래된 집인가 보군요…….”

  “아, 마을 초창기에 목수 일을 하던 분의 집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고 있지만요. 거기다 마을과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지라 접근성도 좋지 않아 웬만해선 이쪽으로 사람이 잘 오지 않은지라 거의 반은 폐가로 있었구요.”

 

  불안에 떨면서도 스마는 요한의 말에 성심껏 대답한다. 요한은 계단에서 잠시 멈추더니 천장부터 집안 곳곳을 훑어본다.

 

  “그렇다면 누가 여기서 죽는다고 해도……그걸 아는 건 쉽지 않겠네요.”

  “그, 그렇……죠.”

 

  스마는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요한을 앞질러 간다. 스마의 이런 행동을 이정도면 눈치 채지 못하는 게 이상하다. 요한은 묘한 촉을 가지고 스마를 아슬아슬하게 뒤따라 2층으로 향한다. 2층으로 올라가자 스마는 어느 한 방의 문고리를 다급하게 잡는다.

 

  요한은 그런 스마를 제지하면서 자기가 직접 열겠다고 말한다.

 

  “제가 열도록 하죠.”

  “아, 아닙니다! 일단 제가 대충 치워놓을 테니 아래에서 기다리시…….”

  “괜찮습니다. 제가 정리하면 되니까요.”

  “아니, 저기 그게…….”

 

  당황해하는 스마를 제치고 요한은 문고리를 잡는다. 안에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진다. 요한은 자신이 느끼는 예감이 맞다고 생각한다.

 

  은퇴를 했거나 패망한 세력의 전사나 마도사들이 자객에 의해 비명횡사를 당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적대세력이 훗날 위험이 될지도 모르는 인물들을 제거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블루 튜더 제 1 전사장이었던 요한이었다. 당연히 표적이 될 거라 예상은 했다만 이렇게 빨리 이런 상황이 올 줄은 몰랐다.

 

  촌장도, 여길 추천한 세르반테스도 한통속이라는 건가? 그렇다면 이런 짓을 꾸미고 있는 건 레드튜더의 짓이 분명했다. 레드튜더에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요한을 레드튜더가 가만히 놔둘 리 없을 테니까.

 

  이제 다시 검을 잡지 않기로 했건만, 세상은 검을 들고 있는 자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요한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문고리를 거칠게 잡으면서 문을 연다.

 

  그리고 재빠르게 허리춤에 찬 호신용 검을 꺼내 안 쪽으로 그 칼끝을 돌린다.

 

  요한의 눈앞, 침실 안에는 반 곱슬의 검은 머리칼과 검은 천 옷을 입은 남자가 앉아있었다. 매서운 고양이 눈빛에 날카로운 외모를 지닌 그는 요한의 등장에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방 안으로 침입한 요한을 정확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손에 닭다리를 들고.

 

  “어?”

  “에?”

 

  요한이 당황하는 사이 스마는 요한을 잡아당겨 방 밖으로 내보낸 다음 문을 쾅 하고 닫는다. 요한은 고개를 흔들고 눈을 부비더니 스마를 바라본다.

 

  “방금 누구였죠……?”

  “……누가 있었나요?”

  “못 보셨나요? 방금 누가 있었는…….”

  “하하, 설마 그럴 리가요!”

 

  라고 말하면서 와이즈는 티가 나게 문을 두어 번 발로 찬다.

 

  “잠시만요, 촌장님. 방금 왜 문을 차신건가요?”

  “아, 아까 요한님께서 거칠게 문을 여시 길래 고장난거 아닌가 싶어서…….”

  “그게 아니라 뭔가 신호를 보낸 거 같은……?”

  “신호는 무슨 신호입니까. 워낙 날카로운 곳에서 사시다보니 예민해지신 거죠.”

 

  그러면서 와이즈는 슬쩍 문에다가 귀를 가져다 댄다.

 

  “아, 이제 들어가도 될 것 같네요.”

  “이제요? 이제라니요? 그리고 방금 왜 귀를 문에다?”

  “자, 들어가죠.”

 

  스마가 문을 열자 아까의 남자는 사라져 온데간데없었다. 스마는 태연히 방 안으로 들어와 침대와 가구 이것저것을 알려준다.

 

  “침대가 조금 오래되긴 했지만 이부자리는 제가 지시해서 다 갈아 놓았으니 그래도 푹신하게 주무실 수 있을 겁니다.”

  “아뇨, 푹신한 거 보다 어떤 남자가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아뇨,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없었다는 건 과거형이죠? 과거에는 있었다는 거네요?”

  “과거란 건 이미 지나가서 없어지죠.”

  “절대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짜잔- 절대라는 건 없군요.”

 

  요한은 머리를 긁적거리더니 스마의 말에 반박한다.

 

  “그래요! 없었다고 칩시다! 근데 여기 방 안 가득 풍기는 치킨 냄새는 어떻게 할 겁니까!”

  “……!”

 

  와이즈는 큰 충격을 받은 듯 비틀거리더니 이내 이를 악 문다.

 

  “환기를 시키시믄……사라질 겁니드…….”

  “아니, 냄새가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암튼, 요한님! 저는 다 안내해 드렸습니다! 그럼 이만! 힘든 일이 있으면 마을회관까지 오세요!”

 

  그러면서 스마는 황급히 자리를 빠져나간다. 요한은 그를 붙잡으려 했으나 노인에게 저런 힘이 있나 싶을 정도로, 아니 노인이 저렇게 달려도 되나 싶을 정도로 다급하게 뛰쳐나가는 터라 차마 그를 쫓아가진 못했다.

 

  요한은 창밖으로 다급하게 마을회관으로 향하는 스마의 모습을 바라본다. 그는 천천히 침대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 그 위에 걸터앉는다. 그리고 깊은 생각에 잠긴다.

 

  도대체 그는 누구였지?

 

  왜 닭다리를 들고 있던 거지?

 

  정황을 보면 자신을 노리고 온 암살자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지나가는 일반인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아니, 여기 폐가와 다를 바 없다면서? 그런 곳에서 닭다리를 뜯고 있는 남자라니? 그거 이상하잖아!

 

  거기다 촌장도 그 남자에 대해 어렴풋이 눈치를 채고 있는 느낌이었다. 근데 왜 그 남자에 대해 아무런 말도 없지? 왜 숨기려하는 거지?

 

  머리가 아려온다. 요한은 생각하는 걸 그만둔다. 일단 위험한 사람은 아닐 것이란 판단한다. 만약 요한을 노리고 온 자객이라면 아까 문을 열 때 바로 기습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는 건 요한과는 전혀 상관없는 인물이란 소리. 위험이 아닌 이상 가뜩이나 심정이 복잡한데 머리를 더 어지럽히는 건 요한은 사양이었다.

 

  요한은 가지고 온 짐을 침실에 풀기 시작한다. 침구와 간단한 옷 몇 벌, 그리고 몇 안 되는 짐이 전부였기에 쉽게 정리할 수 있었다. 그는 다시 침대에 앉아 방 안을 둘러본다.

 

  이곳이 자신이 죽어 묻히게 될 관이었다. 관속에서 아늑함을 느끼다니, 벌써 시체가 된 게 아닌가 하는 요한이었으나 자신은 이미 그 때 죽은 거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자 조용하게 웃는다.

 

  방 밖을 나가 복도로 나온다. 아까는 몰랐는데 2층에 방이 몇 개 더 있었다. 분명 먼지가 소복하게 쌓였을 테니 이왕 나온 거 다른 방도 둘러볼 겸 청소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요한은 옆방으로 걸어가 문을 연다.

 

  그리고 그곳에 아까의 남자가 두 손으로 치킨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본다.

 

  “에?”

  “어?”

 

  요한은 재빨리 검을 꺼냈고 남자는 재빨리 치킨을 입에 넣었다. 요한은 남자를 향해 당황과 경계가 섞인 목소리로 묻는다.

 

  “뭐, 뭐냐!”

  “치킨이다!”

  “아니, 그걸 물어 본 게 아니잖아! 당신, 뭐야? 왜 이 집에 있는 거지?”

 

  남자는 들고 있던 치킨을 입에 넣으면서 대답한다.

 

  “어, 생존권 행사 중인……데?”

  “뭐?”

 

 

 //

 

 

  “죄송합니다, 요한님! 숨길 생각은 없었습니다. 다 처리된 줄 알고…….”

 

  마을 회관 안, 스마가 고개를 숙인 채 손을 비비며 요한에게 사죄한다. 그러나 요한은 상당히 화가 나있는지 그 정도의 사죄로는 화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사람 이야기를 들어보니 원래 거기 살던 사람이라 들었습니다! 아니, 잘 있던 사람까지 내쫓으려고 한 겁니까?”

  “아니, 그게 여기에는 사정이 있습니다.”

  “사정이고 뭐고, 다른 집을 알아봐주세요. 원래 살던 사람까지 내쫓으면서 그 집에 있을 생각이 저는 없습…….”

  “근데 저기, 요한님이 원하실만한 빈 집이 그곳뿐입니다. 특히 조용하고 한적한 집은요. 나머지는 전부 주택지역에 있는 터라.”

 

  스마의 말에 요한의 화가 잠시 멈춘다.

 

  “없다고요? 빈집이?”

  “네.”

  “……아니, 일단 어떻게 된 상황인지 정리를 해보자고요. 그 사람은 자신을 거기에서 원래 살던 사람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오는 바람에 그는 그 집에서 내쫓겼다고 토로하고 있는데…….”

  “뭐, 그가 거기에 살고 있는 것 맞습니다만, 첫째, 그는 무단으로 그곳을 점거하고 있었으나 저와 마을 사람들이 그걸 허락하고 있던 것 뿐이었으며, 둘째, 저는 일주일 전 요한님이 오시는 관계로 그에게 이제 다른 집을 구해줄 테니 여기를 비워달라고 말했지만 그가 [치킨이 제일 맛있는 집]이라는 이유로 거부. 그길로 그 집에 눌러 앉아 농성 아닌 농성을 벌이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다 어제 녀석을 내쫓으려고 마을사람들을 데리고 와 끌어내려고 했는데 보이지 않더군요. 포기하고 다른 주민들에게 빌붙어 있겠구나 싶었는데…….”

 

  요한은 이마를 문지른다. 조용히 지내려고 했건만 이게 무슨 난리인가. 요한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내 입을 연다.

 

  “후, 제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을 한 요한은 스마의 괜찮겠냐는 말을 뒤로 하고 다시금 그 집으로 돌아온다. 어둑해지는 풍경 속에서 그 집의 1층에서 밝은 빛이 창문 밖으로 새어나온다. 집 안에는 어느새 거실에 퍼질러 누운 채 벽난로 옆에서 느긋하게 치킨을 씹고 있던 그 남자가 손을 흔들며 요한을 반긴다.

 

  “오, 돌아왔는가. 촌장님과 이야기는 잘 끝냈지? 그래 아쉽지만 이곳은 지금 나의 집이니 자네가 다른 곳으로 가는 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요한은 남자를 들어 밖으로 내던진다. 남자는 바닥을 뒹굴다가 재빨리 현관을 향해 뛰지만 이미 굳게 닫힌 문에 얼굴을 부딪칠 뿐이었다.

 

  “으윽! 이봐! 이건 너무하잖아! 전관예우를 모르나! 전직 집주인에 대한 예의 정도는 지켜줘야지!”

 

  남자가 문을 두드리며 애원하자 요한이 문을 연다. 그리고 요한은 남자에게 치킨이 든 도시락을 건넨 다음 남자를 향해 말한다.

 

  “미안하군.”

 

  그렇게 말하고 문을 닫은 채 요한은 1층의 모든 창문을 닫고 잠가버린다.

 

  마지막 창을 잠그고 요한은 침실에 눕는다. 눕고 보니 이제 해는 완전히 저물고 어둠이 세상을 덮고 있었다. 요한은 장갑을 낀 다음 발화석을 꺼내든다. 그는 방 안의 초와 복도의 램프에 불을 붙인다. 그리고 1층으로 내려가 벽난로에 불을 뗀다.

 

  밖에서는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입주민 같으니! 입주민이 원주민을 밀어낸다! 아이고 나죽네!”라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창을 모두 닫아서 아주 옅은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요한은 멍하니 벽난로의 불을 바라본다. 타닥거리는 소리가 세르반테스가 요한을 말리던 그때 그 소리와 겹쳐 들린다.

 

  “블루튜더의 기개를 지키고자 하는 건 알겠어.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구심점을 잃은 집단은 무너지기 마련이야. 그나마 프로디터가 블루튜더를 규합한 덕분에 형식적으로나마 세력이 남아있는거지 만약 잘못했다면 블루튜더라는 세력은 완전 와해됐어.”

  “레드튜더에게 먹히고 블루 튜더가 그 형식만 유지하는 것에 만족하신다면 전 별 달리 할 말 없습니다. 그러니 별 달리 할 말이 없는 저에게 더 이상 말을 걸어주시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블루튜더 세력의 본거지인 세인트 블루 타워. 그 중심부의 비밀 장소에서 세르반테스와 요한은 서로의 생각을 부딪쳤다.

 

  “자네는 목숨을 걸어서 라도 블루튜더가 레드튜더에게 항쟁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럼 그건 누구를 위해 흘리는 피지? 패배하기 위한 전쟁이라니! 말도 안 돼!”

  “지금까지 피를 흘렸던 자들을 위해섭니다!”

 

  요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란 중장갑을 입은 요한의 모습은 굉장히 위압적이었다.

 

  “정황상 레드튜더가 손을 쓴 게 뻔히 보이는데도 가만히 앉아서 살아남은 것에 감사하라고요?”

  “그래, 구스타포님이 레드 놈들에게 암살당한 게 맞다고 하자고. 그래서? 복수를 위해 세력을 모두 몰살시키자는 건 자네의 생떼에 지나지 않아! 모두 자네같이 무사나 전사의 혼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란 말일세!”

  “은혜를 모르는 자들에게까지 피를 흘리길 강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태껏 우리를 위해 힘을 써준 블루튜더의 수장의 죽음을, 그저 안타까운 사고로 치부한 채 세력을 헌납하는 상황을 납득하라는 것에 동의하지는 못합니다. 저와 뜻이 같은 사람들을 모아서라도 레드튜더 놈들을 그들의 색깔로 물들이겠습니다!”

  “그래서야 개죽음일 뿐! 레드튜더는 이미 블랙튜더와 어깨를 견주어도 될 만큼 성장했어. 계란으로 바위를 치고 싶다면 치게. 하지만 그 계란의 파편들이 주변에 튀게 되고 그 파편이 묻은 사람들은 자네 때문에 자네와 같은 소속이었다는 죄 하나만으로 고통 받게 될 걸세. 자네는 주변 상황까지 못 볼 정도로 막나가는 사람은 아니었잖은가?”

  “제 눈에는 오로지 한 곳만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 눈을 감아버리게. 냉정해지면 다시 뜨도록 하게.”

  “제 눈을 감기려면, 세르반테스님. 지금 옆에 차고 계신 검으로 제 심장을 찌르셔야 할 겁니다.”

  “자네, 지금!”

 

  타닥, 타닥! 벽난로에서 내뿜는 불씨들이 지금 두 사람을 향해 날아가다 떨어진다. 불꽃은 일렁거리면서 열기로 두 사람의 모습을 일그러뜨린다. 일그러진 두 사람은 불길 속에 타오르며 서로를 노려본다.

 

  세르반테스는 요한의 눈을 들여다본다. 예전 구스타포가 요한의 눈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다. 넓은 하늘처럼 푸르고 맑은 눈이라고. 그러나 지금 그의 눈에 비치는 건 차갑게 얼어버려 흐릿해진 눈이었다.

 

  깊은 한 숨을 내쉰 세르반테스는 두통을 가라앉히려는 듯 이마를 문지른다.

 

  “나는 자네를 믿고 싶었네. 블루튜더가 시들지 않는 이유라고 불리던 자네를 말이야. 하지만 시들지 않는 꽃은 없는 것 같군. 자네의 모습은 블루튜더 전사의 모습이 아니네. 블루튜더를 핑계 삼아 자신의 복수심을 채우려는 괴물이 있을 뿐.”

  “지금 저를 우롱하시려는 겁니까!”

 

  요한의 고함이 방 전체를 울린다. 찌릿찌릿한 감각이 세르반테스를 덮쳤지만 그는 미동조차하지 않은 채 여전히 이마를 문지르면서 요한이 아닌 다른 곳을 보며 말한다.

 

  “프로디터가 나한테 어떤 사항에 대한 최종결정권을 줬지. 내 판단에 의거해서 내가 직접 처리하도록. 나는 그 사항에 대해서 함구하고, 그대로 무시한 채 그 위에 먼지가 내려앉을 때까지 방치할 생각이었네. 하지만 그럴 순 없을 것 같군.”

 

  세르반테스는 품에서 양피지를 꺼낸다. 블루튜더에서 양피지로 된 문서는 그 중대함이 튜더 전체에 영향을 끼칠 만큼 중요했다. 요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세르반테스가 그 양피지를 꺼내자 잠시 당황한 기색을 보인다.

 

  “요한, 난 자네를 믿었네. 설령 우리가 이렇게 됐지만 자네만큼은 시들어가는 이 꽃을 언젠가 다시 피우게 해줄 거라 생각했네.”

 

  그러면서 양피지를 펼친 그는 양피지를 보지도 않은 채 펜에 잉크를 묻히고 그 위에 사인을 한다.

 

  “오늘부로 요한 델 베르난데스는 블류튜더 제 1전사장의 작위를 박탈한다. 또한, 무술 사범, 전술 참모, 훈련도감장, 보병대장 직 등 모든 작위를 해제한다.”

  “……세르반테스님?”

  “오늘부로 요한 델 베르난데스는 블루튜더에 가지고 있던 모든 권한을 해제한다. 블루튜더의 제일 말단으로 돌아가서 자신을 다시 돌아보도록 하게.”

  “세르반테스님! 이건……!”

  “지금의 자네를 누군가는 멈춰야 했네. 자네도 블루튜더도 자멸하기 전에 말이야. 차라리 그 미움이 나 하나로 끝난다면 싸게 먹히는 셈이지. 그리고 자네가 정말로 블루튜더를 사랑하고 구스타포님을 위한다면 이 정도 처우는 감내할 수 있을 거라고 믿네. 자네의 마음이 거짓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때 타오르던 벽난로 속의 불꽃. 타닥거리는 소리가 세르반테스와 요한 사이의 공기를 파고 들었다. 장작이 불에 타 갈라지는 소리. 요한은 벽난로를 보면서 정적 속 그때 그 소리를 떠올린다.

 

 

  //

 

 

  다음 날 아침.

 

  요한은 간밤에 꿈을 꾸었다. 푸른 깃발을 휘두르며 꿈을 쫓던 그때를. 환하게 웃는 동료들과 같이 석양이 지는 들판에서 자신들의 검을 맞대고 같은 길을 갈 것을 다짐하던 그때 그 시절을. 머리를 긁적이며 요한은 눈살을 찌푸린다.

 

  너무도 소중한 꿈이었기에, 지금의 기상이 너무도 아프다. 그 잔상이 아직도 찌꺼기마냥 머리에 남아 두통을 유발한다. 깨져버린 유리파편마냥 박혀버린 그때의 모습들이 머리에서 출혈을 일으키는 기분이다.

 

  커피를 마시면 조금 나아질까? 다행히 원두를 가져왔으니 아래로 내려가 핸드드립으로 내린 커피를 마시기로 한다.

 

  요한은 머리를 싸매고 방문을 열고 나온다.

 

  “오, 좋은 아침! 역시 아침엔 구운 닭이 최고지.”

 

  낯설지만 익숙한 목소리가 요한의 옆에서 들려온다. 요한이 고개를 돌리자 어제의 거지가 옆 방의 문을 열고 나와 닭다리를 한 손에 들고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한 입 허쉴?”

 

  요한의 두통은 다른 의미로 더 깊어져 버렸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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