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용非어천가 - 하늘에 오르지 않는 노래 -
작가 : Namwoo
작품등록일 : 2019.9.3

먼 옛날 사람과 어울려 살았던 이무기, ‘치우’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감정을 봉인하고 깊은 물로 들어가 여의주가 생길 천 번째 해만 기다리게 된다.
인연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어두운 물속에서만 지냈건만, 여의주를 얻은 날 마지막으로 옛 마을의 터를 찾았다가 ‘문종’과 마주치고 만다.
‘문종’과의 대화로 얼어붙었던 ‘치우’의 마음이 녹게 되고, 높은 산에 오른 ‘치우’는 승천하려던 순간에 들려온 한 소녀의 비명을 외면하지 못하고 마는데...
‘치우’를 하늘에 오르지 못하게 할 새로운 인연, ‘해랑’과 모종의 사건들이 그를 둘러싼다! <매주 화, 금 업로드>

 
1화. 천년, 딱 하루만 더
작성일 : 19-09-03 23:42     조회 : 358     추천 : 1     분량 : 7938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한밤중 검푸른 색 옷자락을 휘날리며 한 사내가 궁궐을 자유롭게 거닐었다.

 궁궐 안에서 보초를 서는 무관뿐 아니라 지나가는 궁인들도 사모관대(*조선 시대 관리들이 집무할 때 입는 옷)도 하지 않고 상투조차 틀지 않은 채 배회하는 이 남자를 신경 쓰지 않았다.

 

 “이곳에 이렇게 큰 집이 세워지다니...”

 

 배회하던 사내는 집현전 앞에 우뚝 멈춰 서 있다가 그 안으로 들어갔다.

 

 

 사내는 집현전 안을 둘러보며 돌아다니다가 탁자에 올려진 종이들을 집어 들었다.

 

 “해동성국의 육룡이 나르샤 일마다 하늘이 내려주신 복이시니 옛 성인과 같으시니.......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므로 꽃이 좋고 열매가 많으며,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그치므로 내를 이루어 바다에 이르는도다.“

 

 사내는 한참 탁자 앞에 머물러 있었다.

 

 “용비어천가... 용이 날아서 하늘로 오르는 노래라…. 자신의 여섯 조상을 용이라 칭하는가....”

 

 어둠 속이었지만 등불에 비친 그의 머리카락은 따뜻해 보이는 등불과는 상반되는 푸른 쪽빛을 가득 머금은 채 빛나고 있었다.

 검정 일색인 넉넉한 품의 옷으로 온몸을 감추듯 두른 사내는 자신의 양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무력한 존재인 줄도 모르고...내 존재를 빌려 저희의 뿌리를 높이는구나...”

 

 사내의 목소리와 얼굴에 슬픈 기색이 비쳤다.

 

 “거기 누가 있습니까?”

 

 다른 한쪽에서 맑은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소리는 들린다는 것을 깜빡했구나...!’

 

 사내는 아차 싶어 입을 다물었다.

 

 적막 속에서 그를 향해 다가오는 발소리가 점점 커졌다.

 

 이윽고 붉은 옷을 입은 젊은 남자가 나타났다. 그의 옷에는 금빛 자수가 놓여있고 그의 머리엔 익선관이 씌워져 있었다.

 

 “누구냐.”

 

 ‘내가 보일 리가 없는데 누군가 더 있는 것인가...’

 

 푸른 옷을 입은 사내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누구냐고 묻지 않느냐.”

 

 붉은 옷을 입은 남자는 푸른 옷을 입은 사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대는 내가 보이는가?”

 

 “당연한 말을 하는구나. 집현전에는 왜 들어온 거지?”

 

 붉은 옷을 입은 자는 자신을 보고 겁을 먹지도, 예의도 갖추지 않는 사내를 신기한 듯 천천히 훑어보았다.

 

 “내가 보인다니…. 떠나기 전에 별일을 다 보는군...”

 

 사내는 자신의 앞에 있는 붉은 옷을 입은 남자를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그의 옷에 금빛 용의 자수가 새겨진 것을 보았다.

 

 “그대가 혹 이 나라를 다스리는 자인가?“

 

 “그렇다. 모르고 온 건 아닐 텐데, 어째서 그런 것을 묻지?”

 

 왕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사내를 쳐다보았다.

 

 “누군지도 모르는 내가 두렵지 않은가? 왕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존재일 텐데...?”

 

 왕은 그의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마치 그런 왕을 보았던 것처럼 이야기하는구나.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내 목숨이 아니거늘…. 또한 그대가 내 백성이라면 마땅히 두려워할 것이나, 내 목숨을 취하러 온 자이면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왕은 허리춤에 찬 칼을 뽑았다.

 

 “허. 왕이 칼이라니...”

 

 “내가 워낙 무기에 관심이 많아서 말이지.”

 

 푸른 옷을 입은 사내는 난감한 기색을 했다.

 

 “이곳은...오래전 내 벗이 살던 마을의 집터이오. 먼 길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잠시 보러 온 것뿐…. 당신을 해치거나 이곳을 혼란스럽게 할 생각은 없으니 조용히 떠나게 해 주시오.”

 

 왕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칼끝을 내렸다.

 

 “오래전...? 이곳까진 어떻게 들어왔지?”

 

 왕은 어쩐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자가 풍기는 분위기를 통해 그가 심상치 않은 존재임을 직감했다.

 

 “걸어왔소만...”

 

 말장난 같은 대답이었지만 사내의 진중한 태도에 왕은 한숨을 내쉬었다.

 

 “둘러보니 어떻소? 오래전과는 다른가?”

 

 “다르오. 집 안 가득, 이렇게 종이만 가득 넣어두다니?”

 

 안쪽을 신기한 듯 둘러보는 사내를 보고 왕은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오래 산 것처럼 이야기하더니, 집현전을 보고 놀라는 것이 꼭 어린 내 아들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이곳은 집이 아니고 교육을 하고 연구를 하는 곳이오.”

 

 사내는 왕의 대답에 눈을 크게 뜨며 끄덕였다.

 

 “혹 더 궁금한 것이 있는가?”

 

 왕의 물음에 사내는 입을 열었다.

 

 “왜 그대의 선조는 용에 빗대어 군주의 격을 높이려 했을까...”

 

 왕은 사내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인간이 여의주를 얻으면 온갖 신통력을 얻는다는 이야기 때문에, 여의주의 원래 주인인 용의 존재를 더욱 대단한 것이라 여기기 때문일 테지. 모든 짐승의 으뜸이라 여기지 않나.”

 

 “그대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래서 용이 대단한 존재라고?”

 

 “그것도 부정할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내가 군주로서 용에게 매력을 느꼈던 부분은 여의주라는 절대적 힘 따위가 아니었네.”

 

 “인간은 여의주에만 관심이 있다 생각하였는데…. 그럼 무엇이오?”

 

 “내가 용을 제왕의 상징으로 가치 있다고 보는 것은 그의 눈에 관한 이야기 때문이지.”

 

 “눈?”

 

 “용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음에도 지혜로운 이에게는 그 머리가 보이고, 용감한 이에게는 가슴만, 그리고 마음이 착한 이에게는 꼬리만 보인다는 말이 있지. 헌데 어리석은 자가 용과 눈이 마주치면 눈이 멀고. 폭력적이고 사람을 잘 속이는 철면피가 그 눈을 보면 간이 녹고. 더러운 권력욕에 사로잡힌 이가 그 눈을 보면 심장이 썩는다고 하더군. 그것이야말로 임금이 가져야 할 참된 능력이 아니겠는가? 백성을 잘 보살필 신하를 알아보는 용과 같은 눈 말이네.”

 

 “......”

 

 사내는 멍하니 왕을 보았다.

 

 “그저 지혜도 선함도 용기도 없이 여의주 같은 힘만 가져 봤자 폭군이 될 뿐 아니겠는가?”

 

 “그런…. 그런 생각을 하는 이가 있다곤 생각지도 못했소.”

 

 사내는 뭔가에 얻어맞은 것처럼 중얼거렸다.

 

 “나도 그런 눈이 있어서 좋은 신하를 얻어, 백성을 잘 살게 하는 왕이 되면 좋으련만.... 아, 물론 어린 아들을 안아주고 지켜줄 만큼의 힘은 있어야겠지. 하하”

 

 왕은 사람 좋은 얼굴로 웃었다.

 

 “그대는 지혜롭고 용감하며 마음이 어진 사람이니, 이미 훌륭한 군주가 아니겠소?”

 

 왕은 사내의 말에 눈을 깜빡거렸다. 사내는 덧붙여 말했다.

 

 “내 모습이 온전하게 보이고, 내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아도 아무렇지 않으니, 틀림없지.”

 

 “무슨...?”

 

 “왕의 이름을 물어보아도 되겠소?”

 

 왕은 잠시 망설이더니 대답했다.

 

 “나는 향. 이 향이라 하오. 그대는?”

 

 “치우. 비를 다스릴 수 있다고 하여, 이곳에 살던 이에게 치우라고 불리었소.”

 

 “비를 다스린다...?”

 

 왕은 잠시 고개를 내리고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들었다.

 

 “혹, 그대는...”

 

 “나는 곧 하늘에 오르니, 이제 이곳에 올 일은 없을 것이오. 마지막 말동무가 되어줘서 고맙소.”

 

 치우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서 어떤 슬픔을 겪었는지 모르겠으나 하늘에서는 편히 지내기를 바라오.”

 

 왕이 미소지으며 위로의 말을 건네자, 치우의 눈에서는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그대 같은 인간이 이 집의 주인이 되어 참으로 기쁘오. 이런 그대의 집에 도적이라도 든다면 모든 사람이 큰 슬픔에 잠기겠지.”

 

 “나는 그대와 같은...눈물 흘릴 이를 만들지 않을 것이오.”

 

 “내 눈물이 어떤 것도 이 집을 태울 수 없게 할 것이오.그리고 이 나라가 그대를 갑자기 잃을 슬픔을 겪지 않게 해 주겠소. 그대가 원한다면 그대는 자신의 수명을 볼 수 있을 터이니.”

 

 왕은 눈이 붉게 변한 치우에게 다가가서 한쪽 팔로 끌어안아 그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미움과 아픔은 이곳에 두고 훌훌 털고 떠나시오.”

 

 “조선이, 그대와 닮은 모습과 닮은 마음으로 이어지기를...”

 

 집현전 안에 푸른 바람이 살랑이더니 치우의 모습이 사라졌다.

 

 “내가...꿈을 꾼 것인가.”

 

 왕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바닥에 떨어진 눈물을 보고 급히 집현전 밖으로 나가 먹구름 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궁궐을 벗어나 바다가 보이는 산꼭대기로 온 치우는 두 팔을 활짝 폈다.

 

 “‘신..치우‘... 이 이름으로 불렸던 이곳에서의 삶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래... 하늘에 오르면 모든 것을 잊고 편해지겠지.....”

 

 말을 마치자 맑았던 하늘에 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는 느린 걸음으로 산꼭대기의 절벽 가까이 걸어갔다. 그가 눈을 감자 빗방울이 투둑투둑 떨어지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바다의 곳곳에서 물기둥이 솟고 아래에선 거친 파도가 깎아질 듯한 가파른 산의 절벽을 거칠게 때리고 있었다.

 

 “너를 잃고 지독하게 길고 외로운 시간이었어, 이든.”

 

 사내는 눈을 감은 채 깊은 바다가 일렁이는 곳의 허공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어두워진 하늘과 소용돌이치는 바닷물을 향해 허공을 가르며 치우의 몸이 떨어져 내렸다.

 세차게 휘몰아치는 바람에 그의 몸을 둘러쌌던 검푸른 옷자락과 그의 푸른빛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치우의 몸이 푸른 바다와 가까워질 쯤.

 그의 귓가에 바람 소리에 뒤섞인 어린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알...고싶어...살려...주..’

 

 그는 눈을 감은 채 인상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이제...그만.”

 

 ‘내 어머니를 위해... 너는 죽어야 해.’

 

 뒤이어 들려오는 소년의 목소리.

 

 거대한 파도가 그의 몸을 삼키고 수면 아래로 거대한 크기의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치우가 물속에서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뜨자 하늘을 가를듯한 번개가 번쩍이고 뒤이어 부서지는 듯한 천둥소리가 울렸다.

 

 *

 나무가 빽빽하여 그늘진 산속은 비가 내려서 더 어두웠다.

 샛길이 나 있지 않은 외진 곳에서 땅을 쿵 찧는 소리와 함께 땅이 울렸다.

 

 “하아....하아...”

 

 가쁜 숨을 고르는 소년의 옷, 무릎과 팔꿈치에 진흙과 피가 섞여 묻어있었다.

 

 “?!”

 

 놀란 눈을 하고 뒷걸음질 치던 소년은 이내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소년이 바라보고 있는 곳엔 자신의 손으로 내려찍은 돌덩이 하나가 있었다.

 

 “누...누구?”

 

 허나 소년이 보고 있는 것은 그것이 아닌 바로 그 옆, 느닷없이 나타난 흰옷을 입은 사내의 등이었다.

 

 치우의 앞엔 열 살도 되어 보이지 않는 소녀가 흰옷을 빨갛게 물들여가는 채로 누워있었다.

 

 “너의 목소리였구나.”

 

 그는 땅에 무릎을 꿇고 팔을 뻗어 소녀를 안아 올렸다.

 소녀는 힘겹게 치우의 옷자락을 손에 쥐었다.

 

 “저…마을로…돌아가야...”

 

 소녀의 가녀린 팔이 힘없이 툭 떨어져 내렸다.

 힘을 잃고 툭 떨어진 소녀의 팔에, 그의 심장이 마구 요동치며 귓가에 한 남자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마을로 돌아가야 해…! 마을로 가야…!’

 ‘꺅…! 이든!’

 ‘크헉-’

 ‘으아아악-!’]

 

 뒤이어 자신의 귓가에 맴도는 여러 사람의 비명소리를 떨치기 위해 치우는 고개를 휘젓다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쏟아지는 빗줄기 아래에서 그의 뺨으로 쉴 새 없이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그래. 살아라. 너는 살아가거라.”

 

 그는 차가워져 가는 소녀의 몸을 자신의 품에 꼭 끌어당겨 안았다.

 

 “커흑…. 하아…”

 

 짧은 순간 오묘한 푸른 빛이 그 둘을 감쌌다가 사그라들었고 소녀가 숨을 토해내자 창백한 안색에 혈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치우는 소녀를 품에 안은 채 빗물에 젖어 엉망이 된 소녀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넘겼다.

 

 “아이야, 정신을 차려 보아라.”

 

 “으…”

 

 소녀는 힘겹게 눈을 떴다가 치우의 얼굴을 확인하고 다시 정신을 잃었다.

 치우는 자신의 웃옷을 벗어 조심스럽게 소녀를 감싸 안고 일어섰다.

 

 “비...비키시오! 그 아이를 내려놔!”

 

 어느새 그의 한 걸음 뒤에 서서 단도를 뽑아 겨눈 소년이 소리쳤다.

 

 

 -바스락, 딱.

 

 

 그는 매서운 눈초리로 뒤에 있는 소년이 아닌 조금 떨어진 나무 쪽을 쳐다보았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치우는 소년을 무시한 채 그대로 가던 걸음을 옮겼다.

 

 “방해하지 말란 말이야!”

 

 소년은 칼을 쥔 손에 힘을 주고 사내의 등으로 달려들었고, 그가 뒤를 돌아보자 눈이 마주친 소년은 얼어붙은 듯 멈춰 섰다.

 

 “이런...”

 

 사내는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며 나직이 중얼거리더니, 이내 몇 걸음 걸어가 홀연히 사라졌다.

 비와 바람이 그치고 소년은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가 사라진 자리에 잠시 후 바스락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검은 천을 뒤집어쓴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천을 뒤집어쓴 자는 소년이 손에 쥐고 있던 단도를 집어 들었다.

 단도의 손잡이 장식에 용의 형상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단검을 소매에 챙겨 넣은 천자락 형상 안에서 티 없이 맑은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렇게 어린아이가...?”

 

 

 *

 옅은 구름 사이로 빛이 드는 산의 정상.

 양반다리를 하고 바위에 기대앉은 치우는 자신의 다리 위로 아이를 편하게 눕혀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가 하늘을 쳐다보자 구름이 조금 걷히며 햇빛 한 줄기가 소녀의 얼굴에 닿았다.

 

 “으응...”

 

 인상을 찌푸리며 뒤척이던 소녀는 치우의 품으로 고개를 묻으며 지친 듯 다시 잠이 들었다.

 

 구름 뒤에 숨은 해가 달로 변할 때까지 그는 그저 소녀를 바라보고 앉아있었다.

 이윽고 아이가 눈을 뜨자 적막 속에 치우의 낮고 포근한 목소리가 울렸다.

 

 “눈을 떴구나.”

 

 아이는 눈만 동그랗게 뜬 채 한참을 깜빡거리기만 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앞이 보이니?”

 

 사내는 재차 말을 걸었고,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람이 불며 하늘의 구름이 모두 걷혔다.

 쏟아질 듯한 별빛이 그들을 비추었고, 소녀는 천천히 일어났다.

 소녀는 고개를 하늘로 들지 않아도 정면에 보이는 수평선 위의 쏟아질 듯한 별들과 자신의 옆을 춤추는 반딧불이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이윽고 고개를 돌려 흰옷을 입고 푸른 빛 머리카락을 가진 사내의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달빛에 비친 그는 오묘한 모습이었다.

 

 

 둘 사이의 적막 속에서 풀벌레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고, 마침내 소녀가 입을 뗐다.

 

 “이곳은...저승 문턱입니까?”

 

 앳된 티가 가득 묻어나는 맑고 높은 목소리에 중간중간 쉰 소리가 섞여 나왔다.

 

 상처가 말끔히 나은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마른 침을 삼키며 진지하게 묻는 소녀를 보고 치우는 그만 피식 웃음이 터졌다.

 

 “내가 저승사자로 보이는 것이냐.”

 

 소녀는 두리번거리며 절벽으로 걸음을 조금 옮기다가 아래에 구름이 가득한 것을 보고 놀라서 주춤 주저앉았다.

 

 “이곳이…이승의 광경이라고는 믿기지 않습니다.”

 

 사내는 일어나서 소녀에게 다가갔다.

 

 “나는 널 저승으로 데려갈 이가 아니다.”

 

 소녀는 자신 앞에 무릎 꿇고 눈을 맞춘 사내가 내민 손을 홀린 듯 잡고 일어섰다.

 

 “그럼 어찌 된...? 분명 저는...”

 

 소녀는 자신의 바지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주는 그를 보다가 피에 물든 자신의 옷을 보고 스쳐 가는 기억에 몸을 떨었다.

 

 “욱...흐윽…”

 

 “진정하거라. 나는...”

 

 그는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악!”

 

 소녀는 질겁하여 그를 향해 거칠게 팔을 휘저었다. 소녀의 손톱이 그의 얼굴을 스치며 상처를 냈다.

 

 “흑....흐윽”

 

 머리를 감싸 쥐고 겁먹은 소녀에게서 그는 말없이 뒷걸음질 쳐 거리를 두고 바닥에 앉았다.

 

 “아무도 너를 해칠 수 없을 것이다. 네가 살고자 한다면...내가 반드시 그렇게 할 테니.”

 

 조금 멀리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소녀는 얼굴을 감쌌던 팔을 내려 그를 보았다.

 

 “그치만...흑.”

 

 그는 차분한 마음으로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상처에서 붉은 피가 뺨을 타고 흘러내린 자국이 유독 선명하게 보였다.

 소녀는 맨발로 달려와 그의 앞에 꿇어앉아 그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가 거두었다.

 

 “다치게 해서 미안해요. 당신이 저를…구해주신 거죠?”

 

 “괘념치 말거라.”

 

 그는 소녀가 손을 뻗었던 자신의 눈 밑을 소매로 닦고 쳐다보았다.

 

 “피가 납니다.”

 

 평소라면 순식간에 회복되어 흔적도 남지 않았을, 아니 애초에 인간의 손톱 따위에 생채기가 나지 않았을 터라 그는 잠시 복잡한 마음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지금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소녀를 진정시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여겼다.

 

 “그래…살아 있으니 피가 나는 게지. 이곳이 저승이라면 피가 나지 않겠지?”

 

 소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의 곁으로 반딧불이 춤추며 달빛에 빛을 더해 그들의 모습을 밝혔다.

 소녀가 푸른 빛이 더해진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물어보아도 되겠느냐? 그 소년과는…?”

 

 “그게…저는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마을…! 저, 마을로 가야 합니다!”

 

 소녀는 마음이 놓이자 퍼뜩 정신을 차리며 그를 재촉했다.

 소녀는 내려갈 길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치우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 얼굴로 소녀를 바라보다가 말을 삼켰다.

 

 “마을로 가는 길을 알려주시겠습니까? 벗이 있습니다. 폐 오두막에서 저를 기다리기로 하여 만나러 가던 중이었는데… 꼭 만나야 하는데…”

 

 “내가 데려다주마.”

 

 치우는 소녀의 앞에 등을 내밀고 앉았다.

 

 “예?”

 

 “서두르자꾸나.”

 

 치우가 재촉하자 소녀는 머뭇거리다가 그의 등에 업혀 옷을 꼭 쥐었다.

 

 “떨어지지 않게 잘 잡거라.”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용非어천가>를 연재하게 된 남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매주 화, 금에 업로드합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0 20화. 끝을 위한 시작 2019 / 11 / 8 227 0 7364   
19 19화. 편련(片戀) 2019 / 11 / 5 227 0 7538   
18 18화. 충돌(2) 2019 / 11 / 1 206 0 8218   
17 17화. 충돌(1) 2019 / 10 / 29 231 0 7454   
16 16화. 재회(2) 2019 / 10 / 25 247 0 8632   
15 15화. 재회(1) 2019 / 10 / 22 224 0 8622   
14 14화. 각자의 사정(4) 2019 / 10 / 18 217 0 7522   
13 13화. 각자의 사정(3) 2019 / 10 / 15 243 0 6368   
12 12화. 각자의 사정(2) 2019 / 10 / 11 224 0 6195   
11 11화. 각자의 사정(1) 2019 / 10 / 8 217 0 6447   
10 10화. 그들의 일 2019 / 10 / 4 219 0 7004   
9 9화. 질투가 품는 소망 2019 / 10 / 1 232 0 8856   
8 8화. 움트다 2019 / 9 / 27 215 0 6616   
7 7화. 만남 뒤에 따라오는 2019 / 9 / 24 231 0 4815   
6 6화. 마음이 기울어지는 곳 2019 / 9 / 20 229 0 5086   
5 5화. 호의와 적의 2019 / 9 / 17 217 0 6886   
4 4화.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2019 / 9 / 13 237 1 7584   
3 3화. 두 쌍의 오누이 2019 / 9 / 10 226 1 5870   
2 2화. 악몽의 끝, 두번째 이름 2019 / 9 / 6 245 1 6150   
1 1화. 천년, 딱 하루만 더 2019 / 9 / 3 359 1 7938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