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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더럽(The Love)
작가 : 지놓
작품등록일 : 2019.9.3


"나, 다른 사람 같이 좋아해도 돼?"

조금은 불편할 수 있는 관계와 사랑
그것의 시작, 그리고 그 너머에 관하여.

#대학생 #캠퍼스물 #악의꽃 #섹슈얼리티 #조별과제 #폴리아모리

 
1. 진흙탕 속에서 피는 꽃이 가장 아름답다(1)
작성일 : 19-09-03 01:02     조회 : 278     추천 : 0     분량 : 7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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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그 애를 처음 만난 건 어느 무더운 내 스물셋의 여름이었다.

 

 

  그날은 오전 내내 지치고 무기력해 있었다. 더웠고 또 더웠기 때문이다.

 

  방 한구석 에어컨이 달려있긴 했으나 하필이면 그 주 내내 사용이 금지되어 있었다. 집주인 아저씨가 대대적으로 청소를 한답시고 관이니, 실외기니 하는 것들을 몽땅 다 해체해 놓았던 탓이다. 열대야가 오네 마네 하는 이 더운 날 굳이 청소계획을 잡은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그러지 않았으면 그 먼지랑 때에 찌든 걸 강풍에 터보 돌려서 온종일 맞고 있었을 거 아냐. 며칠만 좀 고생해.”

 

  씩 웃으며 대답하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자상함에 아무 말 않고 까딱 넘어간 게 잘못이었다. 그 기간 동안 피서차 카페에 들인 비용만 방값의 10분의 1은 됐을 것이다.

 

  어쨌거나 구식 선풍기 한 대만으론 더위를 이겨내기가 쉽지 않았다. 시원치 않은 건 둘째 치고, 외려 미적지근한 바람이 기분을 한없이 처지게 만들 뿐이었으니까.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집 앞 카페를 가기로 결정한 건 오후 2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이었다. 학교를 갈까하고도 잠깐 고민했지만 문득 중앙도서관 쪽 길고 높다란 계단이 떠올라 그냥 접기로 했다. 거길 올라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렸기 때문이다.

 

 

  카페 안은 이미 발 디딜 곳 하나 없이 사람들로 그득했다. 점심때가 훌쩍 지난 시간이었음에도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5분여를 서성거린 다음에야 간신히 하나 남은 자리에 엉덩이를 붙일 수 있었다. 햇살이 가득 스며들어오는 창가 자리였다.

 

  주위엔 더위에 지친 무리들이 덧없이 새나간 땀방울의 원한이라도 갚겠다는 듯 인정사정없이 빨대를 빨아대고 있었다. 치열한 동시에 어쩐지 공격적이기까지 한 모습들이었다.

 

  저들의 진지함에 감화되기라도 했던 걸까,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저들과 같은 음료를 주문하고 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3500원 입니다.”

 

  전적인 내 의사만으로 차가운 음료를 시킨 게 도대체 얼마만인지. 나는 손에 쥔 테이크아웃 컵을 가만 눌러보았다.

 

  꽈드득-.

 

  짙은 갈색 액체 사이사이에서 투명한 얼음덩어리들이 서로 부딪히며 달그락 소리를 내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짜릿한 차가움이었다. 오랫동안 잊고 지내왔던 그런 차가움이었다.

 

 

  *

 

 

  나는 어릴 적부터 장이 별로 좋지 않았다. 밥만 먹었다 하면 화장실로 직행이었고, 걸핏하면 배탈이 나기 일쑤였다.

 

  특히 초등학교 시절은 가히 전쟁과도 같았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살살 배가 아파오기 시작하면 우선 식은땀부터 났다. 그즈음의 아이들은 급우의 배탈이 마치 죄악이라도 된다는 듯 경멸해 마지않았기에, 누군가가 학교에서 큰일을 보고 있다는 말만 나오면 너나 할 것 없이 몰려와서는, 잠겨있는 문을 두드린다거나 억지로 그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 옆 칸의 변기를 밟고 올라서는 등의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당시의 나는 두 번의 자그마한 위기와 한 번의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한 적이 있는데, 그에 대한 얘긴 따로 기회가 된다면 그때 자세히 말하도록 하겠다.

 

  나는 또한 아이스크림을 굉장히 좋아해서 이것 때문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하루는 같은 맛의 바 세 개를 연달아 먹은 적이 있는데, 그때 처음으로 내 속의 꼬불꼬불한 장기들이 조각조각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진 않았지만 고통을 호소하며 바닥을 뒹굴었고, 그날만 화장실을 대여섯 번 이상 들락날락거렸다(출입 횟수가 그 정도이지 그냥 반나절을 그 속에 처박혀 있었던 것과 같다). 이때 엄마는 내게 큰일이라도 난 줄 알고 온갖 약들을 죄다 사가지고 오는 한 편,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던 아빠에게 전화해 병원을 데려가야 하는 건지 아니면 한의원이라도 찾아가봐야 하는 건지를 물으며 무척이나 수선을 떨기도 했다.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경험들이 내게 아이스크림 등의 찬 음식에 대해(그리고 찬 음료에 이르기까지) 꽤나 날선 경각심을 심어준 탓에, 나는 현재까지도 비교적 따뜻한 종류의 음식들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한 번씩은 어쩔 수 없이 차가운 음료를 마셔야 하는 때가 오기 마련이다. 일행과 음료를 통일하여 주문이 들어갈 때라던가, 찬 것만 파는 곳으로 모임장소가 정해진다던가, 혹은 너무나도 더운 나머지 뜨거운 것은 쳐다보기도 싫은 그즈음의 여름과 같은 날들이 지겹도록 반복된다던가.

 

  그럴 때마다 차가운 음료는 가급적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어릴 적 교훈을 위배한 결과로 나는 조금씩 불안해지곤 한다. 물론 단순히 그것들을 마신다고 해서 당장에 신호가 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끔씩 정체 모를 묘한 위화감이 마치 뱀처럼 배 언저리를 슬슬 맴돌 때가 있다. 이 위화감이라는 것은 기이한 구석이 있어 경계하여 대비할 적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다가도, 괜찮겠지 하며 방심하는 순간엔 꼭 사달을 일으키곤 한다.

 

  그래, 꼭 그때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다.

 

  나는 ‘역시나’라고 생각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같은 곳, 같은 자리에 마치 뱀과 같은 ‘위화감’이라는 녀석이 똬리를 트는 게 느껴졌다.

 

  내가 있던 카페는 화장실이 따로 구비되어 있는 곳이 아니었다. 대신 조금 떨어진 곳에 커다란 학원 건물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서 일을 봐야하는 구조였다. 공용화장실답게 지린내가 심했으므로 되도록 사용하고 싶지 않았으나, 이 날은 어찌되었건 마음의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탁자 위에 놓여있던 책의 겉표지를 찬찬히 쓰다듬었다. 마치 내 뱃속 또한 이처럼 다정한 손길을 받아 잠깐이라도 평온을 되찾길 바란다는 듯이.

 

  사물을 가만 쓰다듬어 보면 그것들의 독특한 질감을 느낄 수 있다. 거칠고, 미끈하고, 부드럽고, 오돌토돌하고, 까끌까끌한가 하면 뻑뻑하기도 하다. 차가운 것을 만질 때는 기분이 좋아져 가끔 복통이 멎기도 하지만, 뜨겁다거나 불쾌할 정도로 끈적거리는 것을 잘못 만졌다간 이중고를 당하기 십상이다. 책은 대개 기분 좋을 정도의 서늘함을 간직하고 있어 내가 평소에 자주 쓰다듬는 것들 중 하나였다.

 

  배가 잠시간 평온을 되찾았기에 나는 책을 들어 전에 읽던 곳을 펼쳤다. 글에 집중할 수만 있다면 굳이 일을 치를 것 없이 지금의 위기를 잘 무마할 수 있으리란 생각에서였다.

 

  책에선 남자 주인공이 특유의 시니컬한 말투로 엑스트라에 불과한 여자에게 전력을 다해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중이었다. 가령,

 

  -삶이라는 게 그냥 반으로 딱 잘라놓은 하루쯤 지난 치즈케이크 같은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맛있게 먹든가, 아니면 그냥 버리더라도 크게 문제될 건 없을 테니까.

 

  와 같은 것들이다.

 

  내가 보통의 상태였다면 어쩌면 주인공의 말에 조금 더 귀를 기울였을지도 모르겠다.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삶’이라는 건 대체 뭘까? 하고 잠깐 생각했던 것이 아직까지도 어렴풋 기억나는 걸 보면 말이다. 허나 안타깝게도 그때 책이 건넨 짧은 사색의 순간은 ‘하루쯤 지난 치즈케이크’라는 단어조합이 일으킨 무지막지한 연상 작용에 의해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문장을 곱씹는 순간, 기이할 정도로 뱃속이 요동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꾸르륵-.

 

  책에는 더 이상 집중할 수 없었다. 나는 카운터로 가 조용히 휴지를 달라 일렀다.

 

  “냅킨이요?”

 

  담담히 고개를 젓는 나를 보곤 점원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도 눈치가 빠른 친구였다.

 

  그가 휴지를 가지러 주방 안쪽으로 들어간 사이, 나는 애써 무심한 표정을 유지하며 하릴없이 카페 벽면에 붙은 광고판으로 눈을 돌렸다.

 

  빙수 3종 전격 출시! 더 이상 참지 말고 시원함을 즐기세요!

 

  ‘참지 말고 즐겨라…… 그러고 싶긴 한데.’

 

  어찌된 일인지 몇 분이 지나도록 영 소식이 없었다. 다른 점원이 한 명 더 있긴 했지만 그는 등 돌린 채 음료 만들기에 열중해있는 상태였다.

 

  ‘어쩌지……,’

 

  순간 내 의지완 상관없이, 외부 진열대에 놓인 1회용 냅킨 쪽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예전에 딱 한 번, 저기 저 냅킨을 왕창 챙겨 화장실로 갔던 적이 있다. 그날따라 휴지를 달라고 하기가 어쩐지 좀 민망해서였다(당시엔 두 명의 여성점원이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시는 냅킨을 가지고서 볼일을 보지 않겠다고 다짐한 계기가 되었다. 그것의 ‘면적과 얇기의 비효용성’으로 인한 사용상의 불편함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이후 진열대 옆에 붙은 ‘화장실 이용을 위해 휴지가 필요하신 분은 카운터에 말씀해 주세요’란 메모가 내 얼굴을 그리도 시뻘겋게 물들였기 때문이다.

 

  ‘……저건 안 돼.’

 

  그러고 다시 광고판 쪽으로 눈을 돌린 다음, 초조한 기색으로 휴지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그전까지 음료를 만들고 있던 점원이 갑작스레 뒤돌아 나를 보더니,

 

  “아! 휴지 다른 손님이 먼저 가지고 가셨어요.”

 

  문득 생각났다는 듯 그러고 말하는 것이었다(뒤이어 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음료 만들기에 돌입했는데, 어째선지 그 모습이 너무나도 얄밉게 느껴졌다).

 

  하여간에 난감한 상황이었다. 이대로 자리에 돌아가 기다리는 것도 좀 그랬고, 카운터 앞에서 계속 뻘쭘히 대기하는 것도 그리 좋은 모양새는 아니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에 잠길 즈음, 기다렸다는 듯 배에서 신호가 왔다. 아랫배 언저리에서 느껴지던 위화감이란 녀석이 마치 뱀처럼 기어올라 배 전체를 휘감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통째로 조여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밀려드는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심지어는 이 뱀 같은 녀석이 바깥에서 조이다 못해 장 속의 내용물로 치환돼서는, 안팎으로 동시에 난리를 치는 느낌이었다.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아!’

 

  때마침 장애인 좌변기 칸에 간혹 주인 없는 휴지가 달랑 올려져있던 게 생각이 났다. 그 건물 화장실엔 남녀공용의 재래식 변기 하나와 장애인 전용의 좌변기가 하나 있었는데, 아무래도 좌변기 쪽의 이용률이 월등히 높다보니(장애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사용 후 두고 가는 휴지들이 그쪽에 제법 쌓여있었던 것이다.

 

  그때의 내 생각으론 운 좋게 장애인 쪽 변기에 휴지가 있다면 어쨌든 급한 김에 그곳에서 일을 치루면 될 일이고, 설혹 휴지가 없거나 먼저 들어간 손님이 장애인 쪽 변기를 사용하고 있다면, 일단 급한 불부터 끈 다음 다소 부끄럽더라도 문 너머로 정중히 휴지의 전달을 요청하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정리한 뒤, 나는 혹시 모를 위급상황을 대비해 냅킨 두어 장을 챙기고선 서둘러 화장실로 향했다. 조금만 더 어물쩍 거렸다간 이 뱀 녀석이 곧장 내 엉덩이 아래쪽으로 직행해 내려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척이나 후덥지근한 여름날, 콕콕 찌르듯 아파오는 배를 살살 문지르며 냄새나는 화장실로 조심조심 걸어가는 것은 그리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나는 걸으면서도 일을 치룬 뒤의 청량함을 떠올리려 애썼다. 한 걸음 한 걸음이 힘겨웠지만 지금의 고통에 비례하여 후에 얻을 쾌감이 클 것이라 스스로를 다독였다.

 

  눈앞에 화장실 입구가 보이고 나서부터는 갑작스레 배가 끊어질 정도로 아파왔다. 정말이지 몇 걸음 차이나지 않음에도 이렇듯 뱀이 요동치는 까닭은 그 자신도 최후의 순간을 감지했기 때문이리라.

 

  “후…….”

 

  나는 어느 위기의 순간에나 그랬듯 한줄기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주었다. 고지가 눈앞인데 서두르는 것은 초짜들이나 할 짓이다. 그렇게 입가엔 미소를, 발걸음엔 힘을 실은 채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어?”

 

  생각지 못한 상황이었다. 예상대로 공용변기 쪽 문은 닫혀 있었다. 문제는 장애인 쪽 변기였다. 그곳 역시 문이 닫혀 있었던 것이다.

 

  양쪽 문이 다 닫혔다는 사실은 비단 섣부른 승리감만을 뒤흔들어 놓은 게 아니었다. 나는 내 안의 뱀을 어르고 달래려 하지 않았던 조금 전의 나를 뼈저리게 원망했다. 오히려 약을 올렸던 까닭에, 화가 날 때로 난 뱀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 날뛰었던 것이다. 그나마 내가 어느 정도 숙련된 뱀 조련사라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인 점이었다.

 

  나는 우선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천천히 괄약근을 조이기 시작했다. 한 차례의 위기만 넘기면 아주 조금의 시간 정도는 벌 수 있을 것이다.

 

  ‘익숙한 상황이다. 그리 어려울 것 없지.’

 

  다행히 효과가 있었는지 차츰 뱀이 진정되는 듯했다. 물론 이와 같은 시간이 찰나의 달콤함에 불과하다는 걸, 마치 폭풍 전 고요의 상태와 같다는 걸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서둘러야 했다.

 

  나는 먼저 장애인 변기 쪽의 문을 톡톡 두드려보았다. 답이 없었다. 사실 문이 닫혀있는 걸 본 순간부터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긴 했다. 가끔 건물 관리인이 무분별한 장애인 변기의 사용을 막기 위해 문을 잠그는 걸 몇 차례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나는 공용변기의 닫힌 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결국은 저 문 너머의 사람을 꼼짝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땀 한 방울이 내 등줄기를 타고 스르르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화장실 밖으로 나가는 대신, 굳이 독한 냄새를 참아가며 그 앞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바깥에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신경 쓰이는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변기를 차지하고 있는 그 사람에게 강한 압박감을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보통의 인간에게 역지사지란 그렇게나 힘든 것이어서, 밖의 누군가가 똥줄 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상기시켜주지 않으면, 변기에 엉덩이를 댄 그 순간부터 다음 사람에 대한 배려 따윈 까맣게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문 너머로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온 건, 등줄기를 흐르던 땀이 거의 시내를 이뤄갈 무렵이었다.

 

  “저기요…….”

 

  한없이 애처로울 정도로 가녀린 목소리였다.

 

  ‘……이런.’

 

  물론 나는 이와 같은 아찔함에 대해서도 잠깐이나마 생각하긴 했었다. 혹시라도 변기를 사용 중인 사람이 여성이라면? 나도 나지만 그쪽의 부끄러움도 여간 할 것이 아니기에, 자칫 잘못하다 난처한 일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가뜩이나 여의치 않은 상황에, 느닷없이 들려온 여성의 목소리가 나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들었다.

 

  “아…… 네.”

 

  내 목소리를 듣곤 저쪽도 꽤나 당황했던 모양인지 다소 머뭇거리는 듯한 기색이 느껴졌다. 어째서 저 여인 또한 나를 자기와 같은 여성일거라 생각했던 걸까…… 나는 그 찰나의 시간이 가히 영원과도 같았다고 기억한다.

 

  “……여기 사용하실 거죠?”

 

  그녀는 용기를 낸 듯 전보다 조금 더 뚜렷해진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을 내뱉었다.

 

  어색함과 부끄러움이 전신을 옭아매고 있었을 텐데도 저와 같은 힘을 냈다는 것은 필경 피치 못할 이유가 있다는 얘기였다. 심지어 질문도 이상했다. 사용하지 않으려 기다리는 사람도 있나?

 

  “네, 그런데요?”

 

  “혹시……” 하며 그녀는 뜸을 들였다.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혹시’ 라는 것은 무언가를 부탁하기 전 주저함을 드러내기 위해 으레 사용되는 단어가 아니던가. 변기를 사용 중인 사람이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에게 부탁을 한다? 무엇 때문에?

 

  “네, 말씀 하세요.”

 

  나는 대답을 하는 와중에도 심장을 죄어오는 기이한 불안감을 애써 외면하려고 노력했다. 그건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 에이…… 설마.

 

  “……휴지 있으세요?”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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