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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나의 자카르타
작가 : 히타히타
작품등록일 : 2019.9.2

도망치듯 떠나온 그곳에서 마법이 시작된다.

 
여기만 아니면 돼
작성일 : 19-09-02 14:29     조회 : 307     추천 : 0     분량 : 3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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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지금 한 장의 사진을 보고 있다.

 

 얼굴이 온통 동그란 여자다.

 동그란 두상에 동그란 얼굴에 동그란 두 눈에 안경마저 동그란 금테 안경을 썼다.

 그녀는 머리를 고집스럽게 동여맨 채 나를 향해 웃고 있다.

 

 조영선.

 나는 그녀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본다.

 조영선, 조영선, 조영선.

 그렇게 수백 수천 번 혼자 부르면 그녀의 이름이 내 몸 어딘가에 문신처럼 남아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조영선은 나의 아내다.

 4년 전 용산의 숨은 맛집이라는 작은 백반집에서 나는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그곳의 사장이었다.

 

 우리는 오래 기다려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이 10개도 채 안 되는 작은 식당인데 문밖까지 줄을 설 정도로 인기 있었다.

 

 그곳의 맛은 뭐랄까, 평범했다.

 나물무침은 담백했고 된장찌개에선 집된장 냄새가 났으며 숭늉은 숭늉답게 구수했다.

 평범한 맛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찾는 집이었다.

 

 그녀는 주방과 홀을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녀의 뽀얗고 하얀 얼굴을 볼 때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저 여자는 누굴까.

 저렇게 동그란 얼굴에 동그란 어깨를 가지고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손님들을 안내하는 여자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합석한 직장 동료는 그런 나를 신기해했다.

 내가 사람에게 관심을 보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할 때 동료가 그녀에게 말했다.

 

 “이 친구가 사장님한테 반했어요.”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포스기를 두드렸다.

 

 “저는... 저는... 바빠서요.”

 

 바쁜데 어쩌란 말인가.

 애인이 있거나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고, 바쁘다는 건 무슨 대답인가.

 

 나는 그녀가 더욱 궁금해졌다.

 그녀의 이마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나는 그 동그란 이마에 맺힌 동그란 땀방울마저 궁금했다.

 

 “식당 이름이 왜 돌담인가요? 여긴 돌담이 없는데.”

 “옛날에 우리 집에 돌담이 있었어요. 그 돌담이 참 예뻤어요.”

 

 그녀는 그렇게 대답했다.

 입을 열면서도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조영선.

 조영선, 조영선, 조영선.

 나는 사진을 들고 계속 중얼거린다.

 이제 놓아줘야 할 때인데도 나는 놓지 못한다.

 

 조영선은 착한 여자였다.

 내 변덕과 짜증을 다 받아줄 사람은 이 세상에 흔치 않은데, 그녀는 그걸 해냈다.

 하지만 조영선은 단단한 여자였다.

 어떤 시련이 있어도 쉽게 아파하거나 눈물짓지 않았다.

 

 수줍음을 많이 타고, 착하고, 단단한 여자.

 나는 조영선을 향해 속삭인다.

 

 “이제 꺼지라고 말하지 마.”

 

 그녀는 두 번 나를 밀어냈다.

 3년 전 위암 4기 진단을 받은 날, 그녀는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내 인생에서 꺼져줘.”

 

 하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처제를 통해 그녀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아낸 뒤 기어이 결혼까지 밀어붙였다.

 

 마지막 항암치료가 실패한 뒤 그녀는 또 한 번 날 밀어냈다.

 뼈마디가 튀어나온 손가락으로 날 가리키며, 머리털이 다 빠지고 광대뼈가 불거진 얼굴로 날 보며, 그녀는 짧게 말했다.

 

 “꺼져. 이혼해.”

 

 그날 그녀는 작심한 듯 보였다.

 앉아 있을 힘조차 없던 여자가 내 팬티와 양말을 던지며 떠나라고 소리쳤다.

 그렇게 말할 때 그녀는 울지도 않았다.

 

 어쨌든 나는 끝까지 왔다.

 이제 우리가 절망했던 날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 인생의 가장 찬란한 봄날만 간직하려 한다.

 

 2년 전 봄날, 우리는 웃으며 병원문을 나섰다.

 3차 항암치료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백혈구 수치도 올라가고 있었다.

 그날, 눈부시게 쏟아지던 햇살과 흩날리던 벚꽃 잎을 나는 기억한다.

 우리 인생의 가장 찬란한 봄날이었다.

 

 “다 나으면 뭐 할 거야?”

 “식당 다시 해야지.”

 “식당 일이 힘들지도 않냐?”

 “식당에선 언제나 기대 같은 걸 같게 돼.”

 “무슨 기대?”

 “늘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아. 당신을 만난 것처럼.”

 

 우리는 그런 얘기를 했었다.

 우리는 손을 잡고 햇살에 반짝이는 보도블록을 걸었다.

 차 안에서 그녀는 물었다.

 

 “왜 그랬어?”

 “뭘?”

 “왜 날 안 떠났어?”

 “사랑하니까.”

 

 사랑이 뭔지는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내가 왜 그녀를 떠나지 않았는지는 알고 있다.

 

 올봄, 그녀는 호스피스 병동에 있었다.

 위장이 암 덩어리에 막혀 어떤 음식도 넘길 수 없었는데도 잣죽이 먹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다.

 모르핀 기운이 사라져 잠시 정신이 들면 잣죽, 잣죽 노래를 불렀다.

 서서히 찾아드는 고통에 이를 악물며, 그렇게 하얀 잇물을 드러내며, 잣죽, 잣죽.

 

 나는 간호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내가 잣죽을 몇 모금 떠먹이면 간호사가 호스를 삽입해 도로 빼냈다.

 잣죽의 맛을 본 뒤 그녀는 모르핀을 맞고 잠들었다.

 

 나는 병실 창문을 열었다.

 창문 너머 따뜻한 봄바람이 들어와 내 볼을 핥았다.

 

 간호사들이 들어와 아내 건너편 침대에 휘장을 둘렀다.

 환자가 마지막 숨을 고르고 있으며 환자의 영혼이 이륙을 준비한다는 뜻이었다.

 휘장 안에서 환자의 어머니로 보이는 할머니가 속삭였다.

 

 “잘 자, 우리 딸, 이젠 안 아픈 데로 가는 거야.”

 

 나는 설핏 잠들었다.

 아내는 쌔근쌔근 숨을 잘 쉬고 있고 코에 꽂은 호스에선 누런 잣죽 방울이 떨어졌다.

 아직 침대에 휘장을 칠 단계는 아니었다.

 어디선가 날아오는 꽃향기에 취한 채 나는 꿈과 현실을 경계를 헤매었다.

 

 문득 나는 깨달았다.

 내가 그녀 곁에 머무른 건 책임감이나 동정심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아픈 그녀가 내게 의지하는 것보다 내가 그녀에게 훨씬 더 많이 의지하고 있었다.

 

 나는 사람을 믿지 못한다.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와도 연락을 끊은 뒤, 누군가를 믿고 의지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녀는 믿을 수 있었다.

 그녀는 이 세상에 사람과 사람간의 믿음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유일한 증거였다.

 그러므로 그녀는 내 세상의 모든 것이었다.

 

 나는 이 사실을 모든 게 끝날 즈음에야 깨달았다.

 그날 나는 병실 창틀 앞에 서서 두려움에 떨었다.

 정말 소름끼치도록 무서웠다.

 내 세상이 무너져 버리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떠나면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잠시 들어가 있어.”

 

 나는 사진을 향해 중얼거린다.

 액자 받침을 접어 며칠째 싸고 있는 이민 가방 깊숙이 넣는다.

 가방 안에 들어간 그녀가 내게 묻는 것 같다.

 

 “어디로 갈 거야?”

 “어디든. 여기만 아니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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