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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로맨스
블랙 스완
작가 : 최극
작품등록일 : 201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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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얼음같이 차갑고, 때론 불같이 뜨거워지는 인간 양면의 극단을 오가는 준혁. 불과 12세에 천애고아가 된 그는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의 집에서 구박덩이로 자란다. 준혁은 부모의 죽음에 음모가 도사리고 있음을 알게된다. 그리고 원수들의 가족에게 잔혹한 복수를 시작한다. 제주호텔의 말단 메이드인 매려적인 여자 수완. 재기발랄하고 통통튀는 장난꾸러기 그녀지만 마음속에는 오직 준혁뿐! 준혁을 향한 수완의 사랑은 빛이요 구원이 된다.

 
[프롤로그] 비련의 모스크바와 12살의 소공자
작성일 : 17-06-09 00:13     조회 : 871     추천 : 2     분량 : 10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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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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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색 눈발이 흩날리는 회색빛 도시의 모스크바.

 꽁꽁 언 강을 따라 늘어선 고전적인 건물들...

 붉은 광장, 크레믈린 궁과 레닌묘, 꾸불양식(양파모양의 돔형식)의 화려한 성바실리 성당들을 회색눈발이 휩쓸고 지나간다.

 

 때때로 드문 드문 보이는 현대적 빌딩들 사이 사이에 러시아정교회의 첨탑들이 얼굴을 디민다.

 오색의 빛이 반짝이는 성탄의 밤.

 모자와 두툼한 점퍼차림의 루스키(러시아인)들이 종종이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러시아 성탄절이자 축제가 시작되는 1월7일 스뱌트키 첫날이다.

 

 깊고 둔중하지만 아둔하지 않는 묵직한 느낌의 모스크바.

 상상해보라.

 어디선가 아련하게 들려오는 차이코스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우아하고 장엄한 비잔틴 양식의 극장에서는 지금 백조의 호수 공연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VIP 전용 붉은 벨벳 자리에는 더없이 행복한 한 가족이 이 공연을 감상중이다.

 한국 호텔 사업의 거부 강정호(준혁부, 40세), 인내심 많고 다정다감한 아내이자 엄마인 나해심(준혁모, 36세), 또래에 비해 준수하고 성숙한 귀공자 준혁(12세)...

 부와 명예와 그 못지않게 고결한 도덕심마저 소유한 완벽한 이 가족은 곧이어 자신들에게 들이닥칠 비련의 폭풍 따위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이 가족의 옆에 서 있는 한 남자, 오회택(40세)실장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강정호의 대학교 동창이며 어린 준혁이가 아버지 다음으로 사랑하는 아저씨, 라는 이 남자의 야욕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그의 비뚤어진 열등감과 부에 대한 강렬한 집착이 이 날을 핏빛으로 물들일 것이다.

 

 공연이 끝나자 어린 준혁은 열광적으로 박수를 친다.

 태어나 처음보는 이국적인 발레공연.

 하얗게 날개를 펼치며 날개를 퍼득이는 한 마리의 우아한 백조는 준혁의 심장을 열정적으로 타오르게 만든다.

 

 잠시 후 해가 막 떨어진 밤거리에 관람객들이 쏟아져 나왔다.

 분수대가 보이는 고풍스런 극장 앞에는 이제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다.

 

 오회택은 안내원에게 우산을 받아 준혁의 식구들의 머리맡에 씌워준다.

 고급 롤스로이스가 멈춰서자 오회택이 뒷좌석 문을 정중하게 열어준다.

 준혁과 해심이 자리에 앉자, 준혁의 무릎이 행여 시려울까 준비한 담요로 꽁꽁 싸매준다.

 귀공자 준혁은 그런 아저씨를 향해 다정한 눈웃음을 짓는다.

 준혁에게 회택은 가족의 일부다.

 

 

 성탄의 오색찬연한 거리를 준혁의 차가 달린다.

 정호와 해심은 다정하게 손을 잡고 눈웃음을 나누고 있다.

 

 

 "너무 낭만적이예요, 그쵸, 여보?"

 "당신도 백조의 호수에 푹 빠졌군."

 "공연도 좋지만 전 차이코프스키 연주곡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어요, 여보."

 "나두요 엄마. 계속 눈물이 나오려고 했어요. 하프와 오보애의 선율이 ... 너무.. 슬펐어요. 사랑이 이루어져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나요?"

 

 

 준혁의 슬픈표정을 보며 정호와 해심은 눈웃음을 짓는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한 아이.때로는 너무 여린 게 걱정이지만, 아빠와 엄마가 언제나 곁에 함께 할 것이기에 정호와 해심은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토록 낙관적인 전망이 훼방의 여신의 분노를 사는 일을 인생에서 종종 목격한다. 잔인한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려 귀공자를 소공자로 만들어버리는 비련의 모스크바를 향해 차는 계속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 당신을 위해 죽겠노라..서로 사랑하는데 왜 그런 슬픈 말을 한거죠.."

 

 

 차창밖으로 고개를 돌린 준혁의 쓸쓸한 표정을 운전중인 회택은 놓치지 않는다.

 밤이 내린 Eliseev 호텔의 전경은 우아하고 화려했다.

 오늘밤 이 호텔에는 러시아 최고 상류층 재정계인사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준혁의 차가 도착했다. 회택이 운전석에서 내려 뒷문을 열어준다.

 도어맨이 준혁 가족이 외투를 정중하게 받아 준다.

 

 벌써부터 대연회장의 열기는 후끈하다.

 사각으로 둘러싼 긴 테이블에는 러시아 전통음식이 맛깔스레 정렬되어 있다.

 전통꼬치 샤실릭, 우유소스 스메타나, 팬케익 블리니, 보르쉬(스프), 이끄라(철갑상어알).

 우아와 고귀함과 품위로 가장한 풍요로운 만찬.

 이토록 아는 따뜻하고 차고 넘친다.

 그러나 한 걸음만 밖으로 내딛으면 추위에 떠는 거지들의 구걸을 쉽게 볼 수 있는 아이러니한 역설.

 

 

 아무튼 우리는 귀공자 준혁의 가족에게 다시 한번 시선을 돌려보자.

 와인과 보드카를 마시는 재계인사들 틈에서 단연 돋보이는 이는 준혁의 아버지 강정호다.

 그는 유창하고 능숙한 러시아어를 우아하게 구사하며 대화를 이끌고 있었다.

 물론 정호의 옆에는 그의 베프인 회택이 수족노릇을 자처하고 있었다.

 

 

 "최근 2년간 모스크바의 신규호텔사업에 유입된 투자금이 10억달러입니다. 외국인 투자자와 관광객들이 밀려온다는 점에서

 저는 모스크바를 호텔사업의 성장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점치고 있습니다."

 

 

 정호가 유창한 러시아어로 사업에 대해 포문을 열었다.

 사실 정호는 러시아에 자신이 운영하는 제주호텔의 체인지점을 오픈 할 계획을 구상중이었다.

 그런데 콧수염이 길게 난 보수적인 러시아 장군이 정호의 말에 반격을 가한다.

 

 

 "문제는 투자의 선봉에 선 자들이 대형호텔체인사업을 벌이는 자본주의 부르조아라는 거죠."

 "후훗. 로스키 장군. 레닌이 죽은 후 소련은 붕괴됐어요.체제는 이미 변했고 모스크바는 이제 그 상황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돈이 필요하면 가지고 있는 것을 팔아야죠. 그게 자본주의 논리입니다."

 

 

 신랄한 장군의 비판에도 정호는 능수능란했다.

 회택은 그런 정호를 물끄러미 주시한다.

 유창한 외국어 실력에 잘생긴 외모, 그리고 매력적인 미모의 아내 해심과 영특한 외아들 준혁.

 그에 더해 한국에서는 재계10위에 드는 갑부가족.

 그럼에도 매년 최고의 기부금을 내며 대내외적으로 덕망이 높은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표본.

 회택은 질투와 부러움과 탐욕이 뒤섞인 기이한 미소를 짓고 있다.

 

 잠시 후 코사크 댄스 음악이 들리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무대로 향한다.

 무대의 장막이 걷히고 러시아 전통의상 차림의 무용수들이 코사크 댄스를 추기 시작한다.

 이내 사람들이 환호하며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친다.

 열기는 뜨거워지고 플로어는 후끈 달아오른다.

 

 그 시각, 준혁은 귀족아이들의 모임장소에 앉아 있었다.

 이곳에는 준혁을 비롯한 러시아 아이들이 동그랗게 앉아 한곳을 바라보고 있다.

 빙데드모로자(얼음할아버지=산타클로스)가 스네구르카(눈의 아가씨)와 함께 준혁에게 선물을 내민다.

 준혁은 공손하게 선물을 풀어본다.

 달콤하고 보드라운 전통쿠키가 한가득 들어있다.

 준혁이 해사한 미소를 짓는다.

 

 [준혁아, 어딨니?--]

 

 해심의 목소리다.

 어머니가 준혁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준혁은 쿠키를 들고 달려나간다.

 

 준혁의 가족과 회택은 도어에서 외투를 받아들었다.

 오회택은 눈치 빠르게 정호의 외투 입는 것을 거들고 있었다.

 

 그때 늙은 러시아인 거지 여인이 나타나 이들에게 손을 내민다.

 

 

 "고귀하신분, 자비와 은총을 베푸세요."

 "저리 비켜.."

 

 

 회택은 거칠게 늙은 거지 여인을 막아선다.

 

 

 "오실장 그러지 말게."

 

 

 정호가 회택을 만류한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 노파의 손을 잡고 쥐어주었다.

 정호는 '은총 가득한 성탄 되길.' 이라는 따뜻한 러시아 말도 건넨다.

 

 정호의 옆에 선 준혁은 아빠 정호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리고는 자신이 방금전 선물받은 쿠키 상자를 아낌없이 노파에게 건네주었다.

 

 

 "은총 가득한 성탄 되세요, 할머님"

 "정말 감사합니다, 도련님. 두분은 마음 따뜻한 아드님을 두셨군요..충만한 은총을 이루는 가정이 되도록!"

 

 

 그런데 거지 노파가 갑자기 해심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고통스런 표정을 짓는다!

 

 

 "저런.. 오 맙소사! 마지막 스뱌트키가 되다니!"

 "네??? 방금 저한테 뭐라고 하셨나요?"

 "이 늙은이가 일부러 괴상한 소리를 하는 겁니다. 당장 저리 꺼져!"

 

 

 해심이 의구심을 나타내는 사이, 회택이 다시 거지 여인을 밀어내버렸다.

 하지만 여인은 밀리면서도 해심과 정호에게 몇번이나 간곡하게 말을 한다.

 

 

 "오늘 밤은 절대 땅을 밟지 마세요.. 부인.. 절대로 밟지 마세요!"

 

 

 허겁지겁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린 거지 노파를 해심과 준혁이 한참 동안 보고 있다.

 해심과 준혁의 얼굴에는 불안한 먹구름이 한가득이다.

 

 

 "엄마... 그 할머니가 왜 그렇게 말하는 걸까요?"

 "그러게... 마지막 성탄절이 된다는 게 무슨 뜻일까."

 "여보, 준혁아. 우리 셋이 오늘 함께 아르바트 거리까지 걸어갈까?"

 

 

 불안해하는 준혁과 해심에게 정호가 윙크를 하며 제안을 했다.

 

 

 "하지만 강사장, 이 추위에 어린 준혁이까지 데리고는 무리야."

 "가고 싶어요, 아버지! 아르바트 거리까지 걸어가요! 네네?!"

 

 

 회택의 만류에도 준호는 신나서 졸라댄다.

 그리고는 벌써 저만치 달려가고 있다.

 정호가 해심에게 팔짱을 끼라고 한쪽 팔을 내민다.

 

 

 "부인, 불길한 기운은 떨쳐버리시고. 제게 모스크바의 거리를 함께 산책할 영광을 주시겠습니까?

 "당신도 참!"

 

 

 비로소 해심이 웃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정호의 팔에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는 풍성한 눈길을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다.

 

 [뽀드득. 뽀드득]

 

 준혁이 눈 위에 제 발자국을 새기며 앞서 달려가는 천진한 모습을, 해심과 정호는 행복하게 바라본다.

 하지만 어둠 속에 숨어 온 몸을 오들오들 떨며 몇번이나 성호경을 긋는 거지 노파의 모습을 회택은 놓치지 않았다.

 

 

 아트바트의 밤거리는 흥겨운 음악소리가 가득하다.

 흩날리는 눈 속에서도 사랑을 표현하며 걸어다니는 젊은이들이 생기 넘친다.

 빅토르 최의 추모벽에 써진 아름다운 러시아 글귀들이 준혁의 눈을 더욱 즐겁게 한다.

 게다가 거리에서 펼쳐지는 마술쇼, 단막 서커스 공연까지.

 준혁은 신기한 듯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그 뒤를 정호와 해심이 호젓하게 걷고 있다.

 그리고 두 사람 뒤를 회택이 뒤따른다.

 

 준혁이 달걀처럼 빽빽하게 진열된 마트료쉬카 인형앞에 멈춰서며 깔깔 웃는다.

 인형 안에서 작은 인형이 계속해서 나오는 마트료쉬카 인형은 언제나 다시 봐도 즐겁다.

 

 [엄마! 이거예요, 이거!]

 

 알공예품을 파는 잡화 앞에 멈춰선 준혁이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준혁은 어느새 10루불을 지불하고 달걀껍질에 에메랄드를 박은 목걸이를 들어보인다.

 

 

 "엄마, 메리크리스마스"

 "너무 아름답구나 준혁아."

 

 

 해심이 조심스레 목걸이의 팬던트를 열어보자, 백조의 호수 음악이 잔잔하게 흘러나온다.

 

 

 "엄마 제가 걸어드릴게요."

 

 

 준혁이 해심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준다.

 해심의 얼굴에 활짝 핀 장미처럼 화사한 미소가 번진다.

 그리고 어린 준혁의 뺨에 해심이 입맞춤을 하는 그 순간.

 

 [빠빠빠빠----]

 

 아트바트 거리는 일순간 아수라장이 된다.

 무장한 3명의 백인들이 무자비하게 총기를 난사하고 있다.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함께 해심이 준혁을 보호하듯 품에 꽉 끌어안는다.

 

 

 "엄마!"

 "도망가, 준혁아! 어서!!"

 "엄마!!"

 "가야돼! 어서!"

 

 

 해심이 준혁의 손을 잡고 강가를 향해 달린다.

 그러자 또 다시 총알이 빗발친다.

 붉은 꽃이 하얀 눈위에 선명하게 번진다.

 준혁은 멍하니 피빛으로 물든 눈길을 보고 서있다.

 그 순간 강가 다리위에 선 해심이 난간에서 휘청인다.

 

 

 "엄마!! 엄마~~~"

 

 

 준혁이 엄마의 목걸이를 힘껏 잡아보지만.

 

 [우지직]

 

 목걸이는 끊어지고 해심은 그대로 강으로 곤두박질 친다.

 

 

 "엄마!!!"

 

 

 준혁이 강에 뛰어들려는 순간, 목걸이를 팔던 잡화상이 준혁을 바닥에 쓰러뜨린다.

 그리고 자신의 외투로 준혁을 감싸 품에 안아버린다.

 준혁은 놓으라고 소리지르며 발버둥친다.

 하지만 잡화상은 준혁의 입을 막고 납작 엎드려있다.

 숨 죽인 준혁이 외투 틈새로 밖을 본다.

 놈들이 준혁을 찾고 있다!

 그리고 저 멀리, 피 흘리며 쓰러진 아빠와 총에 맞아 한 팔을 움켜쥔 회택이 보인다.

 어디선가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모스크바 거리에서의 마지막 밤이자, 강정호와 나혜심의 마지막 성탄절이 그렇게 끝났다.

 

 강정호의 장례식이 끝났다.

 모스크바 경찰은 강에 빠져 실종된 해심도 죽었을 것이라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말끔한 셔츠를 입은 준혁은 장례식이후 창백한 표정으로 엄마의 알목걸이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준혁의 옆에는 외국인 투자자들과 외국인 변호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좀 떨어져 오회택이 침묵한 채 앉아 있다.

 

 

 "강사장이 추진하던 호텔사업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한국으로 돌아가 이사진들과 협의해야합니다."

 "강준혁군은 어떻게 되는 거죠? 유언장에는 준혁군이 지분의 70%를 갖도록 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준혁군의 처우문제는.. 일단 한국으로 돌아가 협의를 해야죠."

 "아뇨! 준혁이는 제가 책임집니다!"

 

 

 여태껏 침묵만 했던 회택이 벌떡 일어나 말했다.

 

 

 "친척도 일가붙이도 없는 준혁이지만, 강사장은 나한테 가족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준혁이는 이제부터 내 아들로 살겁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준혁이 회택을 바라본다.

 고마운 마음에 준혁의 눈가가 촉촉해진다.

 

 '역시 아저씨는 날 버리지 않았어.'

 

 모스크바 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준혁은 엄마의 목걸이를 걸고 있다.

 준혁은 옆자리의 회택의 팔에 기댄다, 갓난아이처럼.

 하지만 회택의 얼굴은 무서우리만치 차갑고 무표정하다.

 

 

 제주공항에는 봄비가 가볍게 흩날리고 있었다.

 기내 안에서 준비를 하던 회택이, 정호의 유골함을 꺼냈다.

 그리고는 준혁에게 유골함을 내민다.

 

 

 "아저씨? 왜 이걸 저한테?"

 

 

 준혁의 질문에 회택은 대답하지 않고 나가버렸다.

 준혁은 별 수 없이 짐가방과 유골함을 들고 낑낑대며 따라 나간다.

 

 공항입구에는 고급승용차가 대기중이었다.

 회택이 입구에 서자, 운전석의 영달이 얼른 우산을 펴서 회택에게 받친다.

 숨 가쁘게 뒤따라 나오는 준혁에게 회택은 차갑게 말문을 열었다.

 

 

 "주변을 잘 둘러봐."

 

 

 준혁이 제주공항 주변을 본다.

 어떤 이는 이별을 하고, 어떤 이는 가족여행을 가는 정경이 보인다.

 

 

 "여기에 널 마중나온 아무도 사람은 없다."

 "아저씨!"

 "이제 널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네 아버진 혈혈단신이었으니까."

 "아저씨!"

 

 

 준혁의 의문스러운 눈길을 무시한 채

 회택은 차에 올랐다.

 준혁이 다급히 차에 타려는 순간.

 회택은 문을 꽉 닫는다.

 그리고 차창문을 열고 말한다.

 

 

 "집은 찾을 수 있지? "

 

 

 차는 그렇게 준혁을 버려두고 출발해버렸다.

 

 

 

 * * *

 

 

 

 오회택은 ‘사장 강정호’라고 씌어진 명패를 치우고는 데스크에 거만하게 앉아 있었다.

 그 옆에서는 호텔일을 책임지고 있는 서변호사가 보고를 하는 중이었다.

 

 

 "집사람은?"

 "오늘 오후에 준혁군보다 먼저 들어가도록 조처해두었습니다. 그리고 집은 아직 준혁군의 소유이지만 누구도 손을 못 대도록 만들어 놨습니다. 회장님께선 앞으로 십 년의 시간을 두고 천천히 소유권 이전을 실현시키시면 되는 겁니다."

 "잘했어. 서 변호사. 우리 잘 해보자구. 우린 한 배를 탄거야. 자, 그럼 임원단 회의에 가서도 이제 나의 시대라는 것을 알려야지."

 

 

 임원실의 회의는 장중하고 엄숙했다.

 회택은 친구인 강정호의 죽음이 마치 자신의 죽음인 양 악어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죽은 강정호를 위해 묵념의 시간을 갖자는 제안까지 했다.

 임원들은 오회택의 연기에 모두 속아넘어갔다.

 그리고 오회택을 오션그룹의 대표이사로 추대했다.

 

 

 

 * * *

 

 

 

 제주도의 으리으리한 대농장 앞.

 집사 옷을 갖춰 입은 영숙과 영달이 회택의 가족인 소영과 선화, 선규 남매를 맞고 있다.

 집사인 영달 뒤에 엉거주춤 재춘이 서있고, 재춘의 딸 수완(10세)이 겁먹은 눈망울로 뒤쳐져 있었다.

 

 

 "엄마, 여기는 강사장님 집 아냐?"

 

 

 회택의 딸인 선화가 엄마 소영에게 물었다.

 

 

 "아니. 지금부턴 우리 집이야. 저 넓은 목장도 다 우리꺼구."

 "정말?"

 "그렇대두. 참, 그리고 집사는 잘 들어요. 내가 오늘부터 이 집 안방에 살 오이사의 안 사람입니다."

 

 

 날카로운 어투에 사람을 깔보는 듯한 소영의 태도에 마굿간지기 재춘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이전 주인이었던 강정호 사장님이 살아계셨다면 언감생신 오실장의 가족이 어떻게 여기를 차지할 수 있었단 말인가.

 

 

 "안방이랑 마루 가구들은 죄다 다락방에 넣어두고 자물쇠로 채워놔요. 아셨죠?"

 "예. 그러면 준혁군 침대도 다락으로 옮길까요?"

 "아니요. 그건 마구간으로 옮겨요. 앞으로 거기가 준혁이 방이니까."

 

 

 

 * * *

 

 

 해가 기울 무렵

 준혁은, 마을 어른의 경운기를 타고 목장 길에 들어섰다.

 귀공자의 옷은 어느새 먼지구덩이로 뒤덮였다.

 

 목장 어귀에서 흙장난을 치던 수완이, 쓸쓸한 얼굴의 준혁을 알아보고 일어선다.

 

 

 "도련님 오셨습니까? "

 

 

 마굿간지기인 재춘만이 어느 새 달려와 준혁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한다.

 

 

 "아저씨, 그렇게 부르지 말래두. 근데 아저씨, 우리 엄마 방에 지금 누가 있는 거죠?

 "아, 그게..."

 

 

 재춘은 차마 이 끔찍한 상황을 준혁에게 고하지 못한다.

 오실장의 가족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으며 준혁은 이제 마굿간 소년이 되었다는 것을 어찌 말할 수 있는가.

 이 어린아이가 그 고통을 감당이나 할 수 있을런지.

 

 

 오실장의 아내인 소영과 준혁이 드디어 마주 섰다.

 

 

 "내가 누군지 알지? 오회택 이사의 부인이야. 오늘부터 어머니라고 생각하고 따라야한다. 그리고 오늘부터 너랑 같이 살게 된 선화랑 선규다.

 선규한테는 형이라고 불러라."

 

 

 준혁은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어린 맹수처럼 침묵을 고수 한 채 사나운 눈길만 보내더니 마굿간으로 들어가버렸다.

 

 그 밤 마굿간지기 재춘은 밤새 흐느끼는 어린아이의 비참한 울음소리를 들었다.

 준혁의 울음소리였다.

 아비와 어미를 잃은 가엾은 작은 새끼.

 불과 한달 전만 해도 가장 고귀한 귀공자였던 아이는 이제, 가장 비천한 마굿간지기 소공자로 전락했다.

 재춘의 눈에도 어느 새 눈물이 고인다.

 불행의 여신이 이토록 광폭하고 잔인할 수가.

 

 '강사장님, 어쩌자고 도련님을 천애고아로 만드셨어요.'

 

 그런데 이사들과 회포를 풀고 들어온 오회택은 아내 소영을 한참 나무라기 시작했다.

 

 [준혁이를 마굿간에 둬? 이사들이 이 사실을 알면 어쩌려고 그래! 미쳤어 당신! 당장 준혁이 데려와!]

 

 회택과 소영은 렌턴을 들고 마굿간으로 득달같이 달려왔다.

 준혁은 무릎을 모은 채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회택이 다가와 준혁을 살살 달래기 시작했다.

 

 

 "준혁아, 착오가 있었나부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그래, 준혁아. 아줌마가 미안. 아깐 빈 방이 없어서 여기에 잠시 머물게 한거야. 방 치워 났으니깐 집으로 들어가자. 침대도 새 거로 갈아줄게."

 "싫어요!"

 "뭐!"

 "오실장님 식구들이 다 나가기 전까지는 전 여기서 살거예요!"

 "어머 어머 얘 좀 봐. 어디서 건방지게 그딴 소리를 해!"

 "우리 엄마 방에서 아저씨 아줌마가 나가라고요! 그렇지 않으면 난 마구간에서 절대 안나가요!"

 "강준혁! 아저씨가 말을 하면 고분고분 들어야지. 당장 일어나!"

 

 

 회택이 준혁을 잡아 끌어내려 하지만 준혁은 단호하게 버틴다.

 어린 놈의 힘이 장난이 아니다.

 

 

 "너 이놈!!"

 

 

 회택이 무서운 눈길로 준혁을 노려본다.

 하지만 준혁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회택을 거침없이 쏘아본다.

 이놈, 어린 놈이 보통 내기가 아니야!

 

 

 "좋다.니 마음대로 해! 언제까지 마구간에서 지내는지 어디 두고 보자."

 

 

 화가 난 회택은 아내를 데리고 돌아가버렸다.

 어린 준혁은 마굿간 문을 노려보며 주먹을 꽉 움켜쥔다.

 그리고 입술을 앙 다물며 다짐한다.

 두고봐라, 이 집이 누구 집인지 똑똑히 보여줄 테니까.

 

 이른 새벽.

 집사인 영달이 준혁의 앞에 청소도구를 집어던졌다.

 밤새 오들오들 떨어서 입술이 파란 준혁에게 물청소를 하라는데.

 준혁은 입술을 꽉 깨물고 청소도구인 구마데(삼지창)를 들고 청소를 시작한다.

 멀치감찌 지켜보던 수완이 준혁에게 쭈빗쭈빗 다가온다.

 준혁의 꽁꽁 언 얼굴과 손을 보자 수완은 몹시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수완이 준혁을 도와주려고 청소도구를 집었다.

 

 

 "저리가!"

 

 

 준혁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수완의 눈이 동그래진다.

 

 

 "꺼져버려 이 기집애야!!"

 "오빠, 미워."

 

 

 수완은 눈물이 핑 돌아 도망치듯 나가버렸다.

 동시각.

 오회택의 말썽꾸러기 딸 선화가 다락방 문을 열쇠로 따고 들어갔다.

 그리고 장롱 서랍 속에서 화려한 구두 한 켤레를 빼들었다.

 바로 준혁의 어머니인 해심의 구두다.

 선화는 구두를 신고 루즈를 바른 채 목장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때마침 청소를 마치고 나온 준혁의 앞에 선화가 딱 마주친다.

 

 

 "그 구두 내놔."

 "왜?"

 "구두 내놓으라니깐. 그건 우리 엄마꺼란 말이야."

 

 

 준혁이 선화에게 구두를 빼앗으려 덤비자 선화가 발랑 넘어졌다.

 그 순간 어디선가 선규가 달려나와 구두를 잡아챈다.

 그리고는 구두를 들고 달리기 시작한다.

 준혁이 눈에 불을 켜고 선규의 뒤를 쫓아간다.

 어느새 선규는 바닷가 절벽 끝에 선 채 구두를 대롱대롱 흔들며 준혁을 약올린다.

 

 

 "말똥 냄새 나는 이 더러운 놈아. 여기와서 가져가 봐. 이 바보야!"

 

 

 순간적으로 어린 준혁의 눈에 불꽃이 인다.

 준혁은 이얍, 소리를 지르며 선규를 냅따 넘어뜨렸다.

 그리고 선규의 멱살을 잡아 목을 누른다.

 선규가 하얗게 질린다. 컥컥이며 발버둥치지만 준혁은 더욱 옥죈다.

 

 [안돼!!]

 

 수완이 달려와 준혁에게 매달린다.

 뒤따라온 선화도 두려운 표정으로 굳어있다.

 

 

 "그러지마! 놔! 놓으란 말야! 놔, 오빠!!"

 

 

 수완이 계속 매달리며 애원했다.

 그제서야 준혁의 손에서 힘이 풀린다.

 

 준혁은 말없이 뒤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수완이 준혁의 뒤를 따라오며 말하기 시작했다.

 

 

 "오빠가 나빴어."

 "그 구두 우리 엄마꺼야."

 "누구 것이든! 나 오빠 사랑한다는 맘, 취소할꺼야."

 

 

 수완이 화가 난 얼굴로 팩 돌아서 사라진다.

 준혁이 사라지는 수완을 보고 서있다.

 바람이 준혁의 머리를 휩쓸고 지나간다.

 

 

 그 밤, 마굿간에 집사인 영달이 들이닥쳤다.

 영달은 반항하는 준혁의 목덜미를 질질 끌고 나갔다.

 그리고 나무기둥에 매달린 준혁은 밤새 매를 맞았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재춘이 달려와 겨우 만류한 후 나가떨어진 준혁을 품에 안아 옮겼다.

 재춘은 준혁의 다리에 약을 발라주며 눈물을 훔쳤다.

 준혁은 계속 눈물을 흘리며 고통스러워 한다.

 

 

 "아저씨...난 나쁜 사람인가봐요. 아까는 정말 선규를 죽이고 싶었어요. 숨통이 꽉 막혀서 그 자식이 영영 일어나지 못하게 만들고 싶었다구요!"

 "도련님!"

 "사람들이 미워요. 다 죽이고 싶어요."

 "도련님, 절대로 그런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아저씨.. 나 이 담에 커서 아무도 사랑 할 수 없으면 어떡하죠?"

 "도련님, 저를 보세요. 돌아가신 사장님과 사모님을 잊으시면 안됩니다. 도련님은 두 분의 사랑을 받고 자란 훌륭한 분이세요. 남들이 십수년에 받을 사랑을 도련님은 한꺼번에 받으셨습니다. 어른이 되면 도련님은 다른 사람에게 더 큰 사랑을 주실 수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러믄요.. 요 작은 가슴에 반짝반짝 빛나는 사랑의 씨앗이 자라고 있다니까요.. 기다리세요. 조금만 더 참으세요. 시간이 해결해줄거예요."

 

 

 그리고 8년 후..

 

 

 프롤로그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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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17-06-09 23:14
 
준혁이가 불쌍하네요. 복수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지네요. 다음 회차 달려야겠네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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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극 17-06-10 00:47
 
도리언님 관심 가져주셔서 고맙습니다.
열심히 으쌰으쌰 작품을 올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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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나 19-05-15 20:14
 
* 비밀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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