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이지 않는 눈을 억지로 깜빡였다.
철컹!
어깨를 움직이자 손목에 찬 철쇄가 묵직한 소리를 내었다.
얼마나 되었지?
시간이 가늠되질 않았다.
체감으론 백 일도 넘게 습하고 더러웠던 그곳에 있던 것 같은데….
바싹 마른 입술이 닫히지 않아 투명한 침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죄인은 고개를 들라!”
언젠가 들었던 익숙한 목소리 뒤로 너무도 간절히 그리워했던 발걸음이 들려왔다.
목청을 드높이는 기사를 따라 꺾어지듯 목을 움직였다.
아무렇게나 잘린 머리카락이 아직 남아 있던 것인지 얼굴을 들자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벨리타 드 러셀! 감히 프렌시아의 기밀문서를 왕세자 이사야 본 시모어를 이용하여 빼내려 한 죄! 결단코 용서할 수 없다! 평화 협정 아래 우리 프렌시아를 능멸한 죗값은 죽음으로 갚아야 할 것이다!”
뾰족뾰족 가시를 세운 말들이 무릎을 꿇은 벨리타에게로 쏟아졌다.
하지만 정작 제 이야기를 함에도 벨리타의 반쯤 감긴 눈은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이사야….’
낡고 갈라진 목구멍에선 뱉어 내지 못하는 이름이 맴돌았다.
사랑하는 남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너무도 절절하게 사랑한 남자가 바로 앞에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일까?
한쪽 눈이 제대로 떠지질 않아 거리 감각이 없었다.
더는 움직여지지 않을 것 같았던 다리는, 이사야를 보자 금방이라도 일어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허나 왕비 전하. 그리되면 라플레 왕국과의 전쟁을 불사하셔야 할 것이옵니다.”
이사야를 향해서 조금씩 몸을 밀어 대던 벨리타는 제 가족이 있는 제 나라의 이름에 몸을 움찔거렸다.
‘전쟁….’
지난 1년간 아니, 실은 그보다 더 오래 그녀가 막기 위해서 애를 썼던 단어였다.
프렌시아와 라플레 왕국 사이 평화 협정이 이루어진 것도 모두 벨리타의 노력 덕분이었다.
자신의 피와 땀을 없애 버리려는 목소리에 벨리타는 붉은 입술을 움직이는 여자를 힘겹게 올려다보았다.
히죽.
죽음을 거론하던 입은 벨리타와 시선을 마주치자 곡선을 그려 웃었다.
“전쟁이 무서워 그러십니까? 무서워하실 것 없습니다. 이미 왕실 기사단을 보내 두었으니까요.”
‘아, 안 돼!’
철컹!
몸을 뒤흔드는 탓에 철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벌린 입 안으로 잘린 혀가 퍼덕이며 무슨 말이라도 하라 재촉했지만, 벨리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으어어! 으어!”
“시끄럽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왕세자.”
고개를 돌린 왕비는 자신의 아들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 발악을 하며 괴음을 내지르는 벨리타와 마주쳤다.
그 순간, 벨리타는 간절히 바랐다.
그가 나를 살려 주리라.
무언가 오해가 있었던 거라고.
함께 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자 약속했던 그날처럼 지금 당장 엉망이 되어 버린 자신을 안아 들고 이곳을 나가 주리라.
그러나 벨리타의 상상은 현실이 되지 않았다.
스윽.
함께 바라보고 있었던 얼굴이 돌아가고 한쪽만 보이는 눈이 질끈 감겼다.
‘어째서? 왜? 어째서?’
수많은 물음표가 머릿속으로 떠다녔다.
억 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로 이사야를 바라보던 그때였다.
몸을 일으킨 왕비가 이사야의 손을 맞잡으며 입을 열었다.
“벨리타 드 러셀을 단두대로 처형하라!”
“와아아아!”
귀가 멍해지고 사방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축제라도 벌어진 것처럼 기뻐하는 사람들 사이로 기사들이 달려 나와 벨리타의 겨드랑이를 잡아챘다.
어깻죽지가 떨어져 나갈 듯 통증이 밀려왔지만, 벨리타는 미간을 찌푸리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는 울 듯, 아니 웃는 듯 요상한 표정을 지은 이사야가 맺혀 있었다.
‘아아. 나를 배신했던 거구나. 나와 함께 가겠단 것도, 평생을 곁에 있겠다는 약속도 모두. 모두 다 거짓이었구나.’
그제야 머리가 제대로 회전되기 시작했다.
공주의 신분도, 왕세자의 신분도 모두 버리고 평범한 남녀로 함께 살기 위해 야반도주를 하기로 한 날이 떠올랐다.
홀로 달빛을 받으며 기다리던 그녀 앞엔, 이사야 대신 프렌시아의 기사단이 나타났었다.
무언가 착오가 있었던 거라 믿고 모진 고문도 견뎠던 지난날이 허망해졌다.
끼익!
커다란 문이 열리고 찬란한 햇빛이 벨리타의 머리 위로 내리쬐었다.
점점 희미하게 보이는 이사야를 보며 벨리타는 잘린 혀를 움직였다.
‘당신은 나를 진정 사랑하긴 했던 걸까?’
1화
복수를 위하여 (1)
긴 꿈을 꾸는 듯했었다.
죽음은 상상한 것보다 더 처절했으며, 단두대의 칼날은 생각한 것보다 무뎌 고통을 몇 배로 만들었었다.
“공주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아…. 로즈.”
작은 눈을 몇 배나 크게 만든 로즈가 입을 삐죽 내밀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정원에 앉은 벨리타는 화려한 보석이 반짝이는 목걸이가 걸린 목을 만져 보았다.
“오늘 만찬 있는 거 잊지 않으셨죠? 어머니께서 공주님을 잘 모시라고 얼마나 잔소리를 하셨는데요~”
죽었다고 생각한 것과 달리, 덜렁이는 목이 마침내 피를 뿜지 않을 때 벨리타는 1년 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자신에게 벌어진 일이 무엇인지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로즈가 아직 데뷔탕트를 치르지 못했어도 라플레 왕국의 제1공주인 벨리타의 전속 시녀가 된 데에는 그녀의 가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주 왕실 식구들만의 만찬이 있는 날임을 알려 주는 로즈에게 벨리타는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아이참! 알겠다고만 하실 게 아니라 준비를 하셔야죠! 어서요!”
“알겠어. 로즈. 알았다니깐.”
꾸물거리는 벨리타의 등을 작은 손이 떠밀었다.
언제 준비를 해 둔 것인지, 들어선 욕조엔 따뜻한 물이 가득 차 있었다.
향긋한 입욕제를 풀어 거품을 풍성하게 만든 로즈가 입을 꾹 다물자, 벨리타는 하는 수 없이 옷을 벗었다.
“또 혼자 하실 거죠?”
“응. 필요하면 부를게. 고마워.”
성년이 된 이후론 목욕 시중만큼은 받지 않은 벨리타였다.
고집이라면 황소보다 센 그녀를 이길 사람은 없었기에 로즈는 조용히 물러났다.
탁.
불투명한 문이 닫히고 오롯이 혼자 남은 벨리타는 참았던 긴 한숨을 토해 냈다.
“앞으로 1년….”
찰랑이는 물속에서 하얀 손이 올라와 얼굴을 가렸다.
따뜻한 물이 얼굴을 감싸고, 불현듯 지난 기억이 떠올랐다.
이사야 본 시모어.
그를 처음 만났던 건 죽기 1년 전이었다.
라플레와 오랫동안 냉전 상태로 있었던 프렌시아의 왕세자인 그를, 벨리타는 평화 협정 무도회에서 만나 첫눈에 반했었다.
그래. 정말이지 첫눈에 반한 첫사랑이었다.
프렌시아의 왕 데미안의 사생아.
왕비의 입양아.
사랑받지 못해 주눅이 든 외눈박이 왕세자를 사랑했다.
모든 걸 다 버리고 그와 행복한 삶을 꿈 꿀 만큼….
하지만 이사야는 아니었다.
-단두대로 처형하라!
죽음을 말하는 순간에도 이사야는 초지일관한 표정으로 앉아만 있었다.
기사들에게 끌려가는 동안, 벨리타는 그가 자신을 배신했음을 깨달았었다.
처음 회귀한 것을 알았을 땐 슬펐다.
사랑한 이에게, 믿은 이에게 배신을 당했음을 알았을 땐 천지가 개벽하고 토악질이 올라왔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자 의구심이 들었다.
진정 날 사랑하긴 했던 걸까?
함께 나눈 모든 말들이 거짓이었다면? 처음부터 사랑은 없었다면? 그저 이 모든 것이 라플레 왕국을 공격하기 위함이었다면?
뚝!
머리를 쥐어뜯으며 한 상상과 예측은 벨리타를 다시 태어나게 했다.
‘복수하겠다. 내 마음을 멋대로 희롱하고 우습게 안 죗값을 프렌시아 왕국에 피를 뿌려 받아 내겠다. 그리하여, 네가 나를 본 것처럼 그렇게 나도 너의 최후를 지켜봐 주겠다. 그래. 내 사랑을 가벼이 여긴 너에게 이 정도는 해 줘야지.’
며칠 전까지 했던 생각들을 곱씹으며 벨리타는 그만 욕조에서 일어났다.
“다 씻으셨어요? 화장 먼저 할 거니까 앉으세요.”
포근한 가운을 입고 벨리타가 나오자마자 로즈는 무엇이 그리도 급한지 호들갑을 떨었다.
아직 만찬까지는 세 시간 이상이나 남았는데도 어머니의 특별 지시가 있었던 탓에 로즈는 마음이 급했다.
어서 앉으라며 화장대 의자를 끌어 주려던 로즈가 벨리타의 행동에 적잖게 당황하며 소리쳤다.
“어? 공주님! 옷장은 왜요? 드레스부터 고르시게요?”
침실 바로 옆인 드레스 룸이 열리고 화려한 갖가지 드레스들이 나타났다.
보통 화장을 먼저 하는 게 순서였기에 로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 깊은숨을 들이마신 벨리타가 마침내 결심을 하며 검지를 가리켰다.
“저걸로 할게. 어울리게 부탁해.”
“예? 하지만 공주님! 저 드레스는…!”
손가락 끝에 걸린 드레스를 본 로즈가 화들짝 놀라 도리질을 쳤다.
수많은 드레스 중 왜 하필 저거란 말인가? 특별한 날도 아닌데!
도통 이해되지 않아 당황해하는 로즈에게, 벨리타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응. 알아. 그래서 입는 거야. 오늘은 매우 중요한 날이거든.”
새하얀 드레스를 잡는 벨리타의 손가락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죽기 1년 전, 오늘이 바로 그녀가 일궈 낸 평화 협정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 * *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다이닝 룸까지는 백합궁과 멀지 않았다.
로즈를 비롯한 두 명의 시녀를 대동한 벨리타는 그리 늦지 않게 도착을 할 수 있었다.
도금이 된 양 문에 벨리타가 서자 미리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시종장 에단이 허리를 숙였다.
정중한 인사를 끝낸 에단이 문을 손바닥 넓이만큼 열고 고개를 틀었다.
“벨리타 공주님이십니다.”
한 손으로 열기 힘든 육중한 문이 열리자, 미리 도착한 이들의 얼굴이 보였다.
코밑의 수염이 인상적인 늙은 남자와 그의 곁에 앉아 있는 비교적 젊은 여자.
그리고 그 옆에 줄지어 있는 세 명의 소년, 소녀들.
마지막으로 젊은 여자와 매우 닮은 젊은 남자까지.
자신이 제일 늦었음을 깨달은 벨리타가 고개를 숙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전하.”
“아니다. 그것보다 네 옷차림이….”
손바닥을 보여 흔드는 로만의 얼굴 위로 당혹스러움이 물들었다.
이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그는 벨리타의 호칭처럼 라플레 왕국의 왕이자, 그녀의 아버지였다.
누구보다 왕실의 법도를 잘 알기에 로만은 벨리타가 입은 드레스의 의미를 모르지 않았다.
눈이 내린 것처럼 새하얀 드레스는 그 흔한 프릴조차 달리지 않았다.
대신 드레스의 아랫부분은 금가루를 뿌린 듯 반짝였고, 어깨 위엔 금색의 술이 달려 있었다.
단정해 보이지만 실은 어떤 드레스보다 화려함이 어울리는 드레스.
저것은 왕실에 큰 행사가 있을 때만 입는 제복과 같은 것이었다.
“흐음. 오늘 짐이 모르는 일이라도 있는 건가? 평소와 다름없는 만찬인 줄 알았는데.”
“아녜요, 전하. 저도 모르겠군요. 벨리타? 그 차림은 무엇이니?”
팔짱을 끼는 로만에게 고개를 저은 이는 왕비 르네였다.
긴 속눈썹이 아름다운 르네의 눈초리에는 벨리타를 걱정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친어머니는 아니었다.
벨리타의 어미는 그녀를 낳을 때 일찍이 죽었었다.
새어머니였지만, 르네가 벨리타를 사랑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혹시라도 로만의 심기를 거슬러 꾸중을 듣지 않을까 르네는 초조함을 숨기지 못했다.
“벨리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벨리타를 르네가 다시 한번 조심히 불렀다.
벨리타와 로만은 서로 몹시 사랑하는 부녀 사이였지만, 정치적으로는 어느 정도 대립을 하는 사이였다.
게다가 벨리타가 성년이 된 이후로는 더욱 골이 깊어지고 있었다.
떨리는 르네의 음성을 들은 벨리타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었다.
“식사를 하면서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그건 안 되겠네요.”
“네 옷차림이 그렇구나. 그래. 무슨 일이더냐?”
“프렌시아와의 일 때문입니다. 전하.”
의자를 끌어 앉은 벨리타가 로만의 깊은 갈색 눈동자를 쳐다보았다.
순간 침묵이 텅 빈 접시 위를 맴돌더니 꼼짝을 하지 않았다.
꿀꺽.
가장 막내인 왕자 에이슨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소리 내어 침을 삼켰다.
그리고 이내 로만의 미간이 구겨졌다.
“그건 이미 다 끝난 이야기가 아니더냐? 이 관계를 회복할 평화는 없어. 나 역시도 우리 라플레 왕국의 시민들이 피를 흘리거나 안타깝게 죽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너도 알지 않느냐? 프렌시아가 2년 전부터 군대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고 있는 걸 말이다. 이게 뭘 뜻하겠니?”
불쾌함이 서린 눈은 벨리타를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 차례 들은 이야기를 곱씹으며 벨리타는 회귀 전의 기억을 더듬었다.
원래대로라면 여기서 벨리타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으니 기회를 달라 해야만 했다.
그 이후에는 딸이자 한 나라의 공주인 벨리타의 의견을 무시하지 못한 로만이 끝내 고개를 끄덕이고, 2주가 되지 않아 프렌시아에서 평화 협정에 관한 무도회를 열자며 회신을 줄 터였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지난번과 모든 것이 똑같진 않아야 했다.
“전쟁. 전쟁이겠죠.”
“…잘 알고 있구나. 그런데도 또 그 이야기를 할 거니?”
덤덤하게 대답한 벨리타를 로만은 조금 놀란 눈으로 보았다.
고지식하다 싶을 정도로 목숨을 귀하게 여기고 평화를 사랑하던 딸이 저리도 단호한 눈빛이라니.
순간 로만은 제 딸이 아닌 것만 같았다.
달그락.
물이 채워진 잔을 손으로 만지며 벨리타가 입을 열었다.
“평화 협정은 진행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되어선 안 될 겁니다. 프렌시아는 결코 쉽게 칼을 내려놓지 않을 거니까요.”
“그게 무슨 소리니? 벨리타.”
칼을 놓지 않을 거라니?
화들짝 놀란 르네가 물었다.
로만 역시도 르네만큼이나 눈을 크게 뜨고서 벨리타를 바라보았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것을 느낀 벨리타는 조목조목 준비한 말들을 꺼내었다.
“현 프렌시아의 실세가 누굽니까? 이미 십 년 전부터 왕인 데미안 본 시모어는 눈을 뜨지도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상태죠. 그의 하나뿐인 핏줄인 이사야 본 시모어는요? 대외적인 살롱에도 얼굴 한 번 비추지 않는 자입니다. 누구겠습니까?”
“왕비. 아밀리아 본 시모어.”
“네. 맞아요, 외숙. 금융업으로 유명한 서멋가의 장녀. 그녀가 실세입니다.”
여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던 벤자민 공작의 입에서 흐릿한 신음과 함께 하나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아밀리아 본 시모어.
서멋가의 장녀로 태어나 프렌시아의 왕비가 된 그녀는 대내외적으로 프렌시아의 실세였다.
공공연하게 입양아인 이사야를 괴롭힌다는 소문이 있는 만큼 아밀리아에 대한 평판은 그리 좋지 못했다.
벨리타가 단두대의 서늘함을 느끼게 해 준 이도 바로 아밀리아였다.
다시 한번 저를 비웃던 얼굴을 떠오르자 벨리타의 등에는 소름이 돋아났다.
“그럼 어쩌자는 말이냐? 네 생각은?”
꽤 일리가 있는 말이었기에 로만은 조금 더 벨리타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잠시 숨을 고른 벨리타는 식탁 아래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