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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선택적인 삶, (to be or not to be)
작가 : 곽자
작품등록일 : 2020.8.9

세상에 모든 생명체는 선택권이 없이 탄생한다.
죽는 이유와 사유는 정말 다양하지만, 탄생은 오로지 무조건적으로 주어진다.
그 와중에 인간은 삶을 고통스럽게 여겨 죽음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은 매일 힘든 삶을 살며 죽느냐 사느냐 고민을 한다.
그들에겐 단지 선택지에 살아가느냐 죽느냐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탄생자체에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어떨까?
당신은 과연 탄생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태어나지 않고 소멸해 버리겠는가?

 
- 2화 - 신의 목적
작성일 : 20-08-10 20:56     조회 : 238     추천 : 0     분량 : 5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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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말 없었죠?”

 신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연지가 물었다. 연지는 라텍스 장갑을 끼고 인공 자궁을 청소하고 있었다. 신은 입고 있던 가운을 벗어 옷걸이에 걸어 놓고는 가방이 서류를 넣었다.

 “별거 없지. 이제 슬슬 동물 실험은 그만할 것 같더군.”

 “예? 정말요? 그럼.”

 “그래. 인간으로 하겠지.”

 눈이 동그랗게 커진 연지와 다르게 신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신은 짐을 다 싸고 연지를 도와주려고 라텍스 장갑을 끼고 있었다.

 “아. 박사님 그거 안 끼셔도 돼요. 다 끝났어요. 그건 그렇고 언제부터요?”

 “글쎄. 나갔다 오면 바로 시작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신은 장갑을 끼고 그녀의 곁으로 갔다. 그리고는 닦여있지 않은 기계 주변을 닦기 시작했다.

 “제가 해도 되는데…. 드디어 시작이군요.”

 “겁나나?”

 신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계속 기계를 닦으며 물었다. 그녀는 아차 싶었는지 멈추었던 손을 움직여 기계 내부를 다시 닦기 시작했다.

 “조금요. 아무래도 더 신중해야 하니까. 잘못되면 큰일이잖아요.”

 “별다를 건 없어. 똑같이 하면 돼. 자네 전공이 뭐였지?”

 “저는 생물학이죠. 몇 번이나 말씀드렸었는데. 물리학자들이란.”

 뾰로통한 그녀의 말에 신은 웃었다.

 “아. 미안하군. 어쨌거나 마음가짐이 달라질 필요가 없다는 말이지.”

 “그런가요? 그래도 아직 사람으로는 실험한 적이 없으니까요. 처음은 언제나 변수가 많잖아요.”

 “처음은 아니야.”

 “네?”

 “한 번 이곳에서 사람이 태어난 적이 있었어.”

 “정말인가요? 언제요?”

 “30년 전에 이게 처음 만들어졌을 때.”

 “30년 전…. 제가 태어나기도 전인데. 박사님이 태어나셨을 때네요? 근데 왜 아무런 기록도 없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죠? 거짓말 아니에요?”

 “아무런 기록도 없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일은 아니지. 하지만 숨기고 싶어 하는 건 맞는 것 같으니 비밀로 하지.”

 “박사님은 어떻게 아셨어요? 그리고 그 사람은 어떻게 됐죠?”

 “우연히. 글쎄. 나도 5살 때까지 밖에 몰라. 그때까진 완벽했다는군.”

 “그런 일이…. 그런데 이상하네요. 성공케이스가 있는데 왜 이제까지 동물로 진행을 한 거죠?”

 “그런 거야 위에서 결정할 일 아니겠나? 아직도 많이 남았나?”

 자신이 맡은 구역은 청소를 끝냈는지 신은 일어나 그녀가 청소하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당황해 다시 팔을 거세게 움직였다.

 “아. 거의 다 했어요.”

 “보아하니 그런 것 같군.”

 신은 뒤돌아 장갑을 벗어 휴지통 안에 버렸다. 그리고는 옷걸이에 걸어두었던 가죽 재킷을 입었다. 그리고는 안경을 벗어 책상 위에 올려놓고, 가방을 등에 멨다.

 “바쁜 일이 있어서 그런데 먼저 가도 되겠지?”

 “아…. 네. 그럼요 저도 곧 갈 거예요.”

 “고맙군. 그럼 고생 많았어. 2주 뒤에 보지.”

 신이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그녀가 “잠깐만요.”라며 신을 붙잡았다.

 “저. 박사님 저랑 저녁이라도 드실래요?”

 그녀는 말해 놓고 신의 얼굴은 쳐다보지 않고, 기계를 계속 닦으며 물었다. 그녀의 얼굴이 평소보다 약간 빨갛게 변해있었다. 그 모습을 신은 빤히 지켜본 신은 살짝 미소 지었다.

 “이번에는 힘들 것 같은데. 음. 혹여나 시간이 나면 연락하지. 미안하군.”

 신은 그렇게 말하고 그 방을 빠져나갔다. 그가 나가고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절망하듯이 말했다. “내 연락처도 모르면서.”

 

 신은 바로 주차장으로 달려가 자신의 오토바이를 찾았다. 오토바이는 2주 전에 주차해 놓았던 그대로 서 있었다. 고작 2주 서 있었을 뿐인데도 먼지가 묻어 있었다. 신은 살짝 먼지를 털어내고 오토바이 위에 타 고글을 썼다. 그리고는 곧바로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빠르게 건물을 빠져나가 산속을 달렸다. 신은 언제나 이때가 가장 좋았다. 숲 냄새가 진동하는 곳에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길을 찾아 달리는 이 순간을 사랑했다. 지금은 다 알고 있는 길이라 처음보다는 전율이 조금 없어졌지만, 만족감은 떨어지지 않았다. 이 숲은 꽤 크기 때문에 한참을 달려야 했다. 한참을 달려서 숲을 빠져나오니 쓰레기장이 나왔다. 넓은 황야에 쓰레기로 된 언덕이 수십 개나 있었다. 구도를 잘 잡아서 찍는다면 언 듯 피라미드처럼 보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이 쓰레기장을 가로질러 지나가야 출구가 나왔다. 그 앞에는 작은 초소가 있었는데 내 오토바이를 보고는 그냥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손짓으로 인사를 하고 도로로 나갔다. 도시로 나가려면 아직도 더 달려야 했다. 신은 오토바이를 멈추고 의자를 들어 헬멧을 꺼냈다. 고글을 벗어 넣고 헬멧으로 바꿔 썼다. 경찰에게 걸린다면 벌금을 내야 하므로 보이는 곳에서는 늘 착용하고 있었다. 신은 그렇게 계속 달렸다. 어느새 도시가 나왔다. 신은 그대로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그가 오토바이를 세운 곳은 높은 건물들이 빼곡히 서 있는 도시 한복판 바로 뒤인 학원가였다. 1층에는 편의점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2층부터 5층까지는 전부 음악에 관련된 학원이었다. 그 건물 뒤에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앞으로 돌아들어 갔다.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문이 열렸는데도 등이 켜지지 않았다. 마치 사용하지 않고 방치된 창고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그래도 지하를 걸어가 문을 열고, 바로 또다시 문을 열었다. 그제야 비밀번호를 눌러야 들어갈 수 있는 방이 나왔다. 신은 능숙하게 번호를 누르고 들어갔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아주 크고 깨끗한 공간이 등장했다. 입구 바로 왼쪽에는 CCTV가 있어 이 건물의 입구와 이 방까지의 경로를 전부 확인할 수 있었다. 오른쪽에는 엄청나게 긴 테이블이 있었고 그 뒤에 방이 하나 더 있었다. 하지만 문은 닫혀있어 안까지 보이지는 않았다. 그 긴 테이블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오늘은 일찍 왔네?”

 “바로 달려왔지.”

 “또 오토바이 타고 왔냐?”

 신이 들어오자 유다운이 정체불명의 기계를 설계도를 보며 조립하며 말했다. 신도 바로 가죽 재킷을 벗어 의자에 던져놓고 앉았다.

 “그럼 걸어왔겠냐?”

 “차 하나 뽑으라니까. 그러다가 훅 간다. 휴 다 됐다.”

 “뭐야 이건?”

 “넌 네가 만들어달라고 해놓고 기억도 못 하냐?”

 “아니. 다 기억하는데 너무 많아서 그렇지.”

 “그건 그래. 놀라지 마라.”

 “알았어. 뭔데?”

 “아냐. 놀라도 돼. 척이라도 하던가.”

 “참나. 알았어.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뇌파를 이미지로 전송해 주는 장치야.”

 시큰둥하게 앉아있던 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눈은 커져 빛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만족한 듯 다운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리액션 좋네. 그 정도 반응은 해야지.”

 “놀랍군. 작동은 해봤어?”

 “당연하지. 너도 해볼래?”

 신이 고개를 끄덕이자 다운이 그 기계를 가지고 신의 앞으로 왔다. 그리고는 머리에 무언가를 부착하고 헬멧 하나를 씌웠다. 그리고는 그 장치를 작동시켰다.

 “자. 이게 모니터야.”

 “아직 까맣잖아.”

 “네가 이미지를 넣어야지. 어떤 것이든 상상해봐.”

 신은 눈을 감고 이미지를 상상했다. 한 장면을 생각한 뒤에 눈을 떠 모니터를 확인했다. 모니터 안에서는 자신이 오토바이를 타고 바다 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바로 다시 까만색 화면으로 돌아왔다.

 “놀라워. 대단해.”

 신은 만족한다는 듯 감탄했다. 하지만 뿌듯하게 바라보던 다운은 약간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설계도랑 원리가 너무 완벽했어. 만드는 거야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지. 네가 설계한 그대로지?”

 “맞아. 정말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신은 정말 감탄의 의미로 말했지만, 다운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신을 질투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넌 정말 천재야.”

 갑자기 날라온 칭찬에 신은 억지로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그리고 만든 건 너잖아. 그건 그렇고 이게 그거와 연결이 될까?”

 “난 모르겠는데 해봐야지. 네가 그렇게 설계했잖아.”

 “해보자.”

 신은 헬멧을 벗고 머리에 붙은 것을 전부 땠다. 그리고는 기계를 가지고 옆의 닫혀있던 방 안으로 들어갔다. 다운도 모니터를 끌고 그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의 불을 켜자 7명의 사람이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 다운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신은 그 무엇도 말해주지 않고, 자신을 믿고 도와달라고만 말했다. 죽마고우인 신의 말에 다운은 그저 신만 믿고 그가 원하는 것만 만들어주고 있었다. 누워있는 사람들은 전부 생명유지장치를 하고 있었고, 머리에는 조금 전의 신처럼 머리에 헬멧을 쓰고 있었다. 신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에게 가 그 기계를 연결했다. 그리고 다운도 그 옆으로 가 모니터를 연결했다. 둘은 숨을 죽이고 모니터 화면을 봤다. 몇 초 지나자 모니터가 빛을 냈다.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사람이 친구들과 농구를 하고 있었다. 신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는 다운을 보며 외쳤다.

 “됐어. 역시 혼수상태에 빠진 게 아니었어.”

 “이 장면은 뭐지? 이 사람 맞나? 꿈을 꾸는 건가?”

 “꿈이 아니야. 지금 이 사람은 과거를 다시 한 번 경험하고 있는 거야.”

 “과거라고?”

 “그래. 이제 너에게 말해 줄 때가 된 거 같다.”

 “이제야!”

 “그래 나와 봐.”

 둘은 모든 상태를 그대로 놔두고 그 방을 나왔다. 아직도 모니터의 그 남자는 열심히 농구를 하고 있었다. 정말로 즐거워 보였다. 그대로 문이 닫혔다. 신과 다운은 서로 의자에 앉았다. 앉자마자 신이 입을 열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알고 있지?”

 “인공 자궁에 관한 일?”

 “맞아. 나는 극비로 그 연구를 하고 있어. 원래 아무에게도 말을 하면 안 되지만 널 믿고, 또 너에게 최소한의 신뢰라고 생각했어.”

 다운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신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나는 우연히. 아니 어쩌면 필연적으로 이 인공 자궁이 뜻하는 바를 알게 됐지. 아니 인공 자궁이 뜻하는 바라기보단 정부가 노리는 목적을 말이지.”

 “목적?”

 “그래. 그들은 통제를 원하고 있어.”

 “통제라고?”

 “그래. 아니 지배라고 표현하는 게 정확하겠네. 그들은 이 인공 자궁을 법으로 만들 생각이야. 모든 사람들이 인공 자궁으로만 출산할 수 있게 말이지. 그렇게 되면 모든 사람들은 태어나는 동시에 감시를 받게 되는 거야.”

 “그게 가능하다고? 그렇다면 그 법을 막아야 하는 것 아니야?”

 “막아? 무슨 방법으로? 절대로 막을 수 없을 거야.”

 다운은 생각을 하고있는 듯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는지 한숨을 쉬었다.

 “나는 모르겠다. 원래 관심도 없었고, 네가 그렇다면 맞겠지. 그런데 막을 수 없는 걸 아는데 넌 뭘 하려고 하는 거야?”

 “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어. 내가 감히 가늠할 수도 없을 만큼 사람들은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단 말이야. 지금 세상에 낭만은 없어지고, 꿈은 없어지고 지독한 현실만이 남았지. 어릴 적에 자의든 타의든 내 주변 사람들이 죽어가는 걸 지켜보면서 그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지켜보면서! 그리고 그 사람을 사랑했던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을 지켜보면서 생각했어. 그들에게 선택권을 주고 싶다고.”

 격양되어 말을 하는 신의 모습은 정말 슬퍼 보였다. 다운은 신이 어릴 적에 고아원에서 자랐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저 늘 당당한 모습에 이런 아픔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줄도 몰랐다. 신은 생각보다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것 같았다. 다운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택권이라면 어떤 선택권을 말하는 거야?”

 “거창한 건 아니야. 이런 세상이어도, 이런 삶이어도 태어날 건지 선택권을 주고 싶은 거야.”

 “잠깐. 이해가 안 가.”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choice. 죽느냐 사느냐 그건 더 이상 문제가 아니야. 선택이지.”

 신은 어리둥절한 표정의 다운을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어느 때보다 슬프면서 진지했다. 둘에게 잠시동안 침묵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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