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후. 우리도 사술을 쓰는 것에서는 떳떳하지는 않지. 그렇기에 슈마의 이런 더러운 짓에 대해서 뭐라 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감히 우리 안하무인이 밀고 있는 사람을 건드리다니... 그것에 대한 대가는 아주 제대로 치르게 해주지. 내가 이런 말을 또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정의’의 이름으로 말이야.’
원이 이렇게 생각을 할 동안 전체 1, 2위를 차지한 나지윤과 미나는 각자의 자리로 가서 착석을 했다. 그리고 이제는 순위발표식의 마지막 발표만이 남게 되었다. 1위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마지막 생존자 60위의 발표였다.
이에 호수는 60위 후보 네 명을 화면에 띄웠다. 이에 신민경과 한수진의 눈빛이 흔들렸다. 거기에 하정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 정연 언니다.”
“역시! 정연이도 올라와야지. 우리 라라라 1조 다시 모이자고.”
한수진은 하정연에게 손짓을 하며 신을 냈다. 그리고 신민경은 거기에서 익숙한 얼굴을 하나 더 발견했다. 바로 등급평가 당시 앞 자리에 앉았던 마나미였다.
‘아... 마나미도 순위가 낮았구나. 그래도 꽤 귀여운 얼굴에 실력도 있는 편인데...’
신민경은 1차 경연에서 마나미가 딱히 기억에 남지 않았던 것을 떠올리면서 아쉬움을 느꼈다. 그리고 호수는 63위부터 탈락자를 호명했다. 여기에서 하정연과 마나미는 모두 불리지 않았다. 62위 호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마지막 60위 후보로 남은 두 사람을 호수는 무대 위로 불렀고 둘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나란히 섰다.
“제발... 정연이...”
한수진은 양손을 모으며 기도를 하듯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호수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두 사람에게 소감을 말할 기회를 주었다. 이에 나이가 더 많은 하정연이 먼저 말하였다.
“네. 저는 올라가면 정말 좋겠지만 떨어지게 되더라도 큰 후회는 없습니다. 너무 좋은 리더인 민경이와 최고의 동료들을 만나서 최고의 무대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두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야~ 이 자리에서 이런 멘트를 하는 경우를 제가 본 적이 별로 없는데 라라라 1조가 얼마나 끈끈하였는지를 느낄 수 있는 대목 같네요. 그럼 마나미 양은 하고 싶으신 말씀 있으십니까?”
“저는... 으흑...”
프로듀스 참가자 중 최연소 레벨인 마나미는 여러 가지 감정이 북받쳐 오른 듯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잘 잇지 못했다. 이에 신민경은 안타까운 마음을 느꼈다.
그러자 호수는 적당히 멘트를 정리한 후 순위를 발표해주었다.
“그럼 1차 순위 발표식의 마지막 합격자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대망의 60위는... 축하합니다. 히지카타 마나미 양입니다.”
“에에?”
갑자기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마나미는 화들짝 놀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에 하정연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가가서 마나미를 꼬옥 안아주었다. 그런 아름다운 모습과 함께 1차 순위 발표식은 끝이 났다.
합격석의 연습생들과 그렇지 못한 연습생들은 서로에게 다가가서 눈물을 흘리며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곳곳에서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야말로 눈물 바다였다.
라라라 1조 멤버들도 하정연에게 다가가서 길게 포옹을 해주었다. 이미 많은 말을 나누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아쉬움이 깊은 듯 하정연을 놔주고 싶지 않아 했다. 이에 의연해 보였던 하정연도 눈물을 보였다.
“흑...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해. 그래도... 나는 지금 기분 좋아. 앞으로 아이돌을 하게 될지, 다른 길을 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너희와 함께 한 무대는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 될 거야. 그럼 다들 힘내서 2차 경연도 잘 해줘. 너희가 높게 올라가야 내 자랑거리도 늘어날 테니까.”
하정연은 그렇게 응원을 해준 후 40명의 탈락 연습생들과 함께 방을 떠났다. 그렇게 남게 된 60명의 연습생은 눈물을 닦으며 감정을 정리하였고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다른 방으로 향하였다.
그곳에서는 랩 트레이너인 자파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에 연습생들은 얼른 인사를 하였다.
“하하. 다들 감정은 잘 추스르셨나요? 여러 가지로 힘드실 겁니다. 그래도 남은 사람들은 떠난 사람의 몫까지 앞으로의 힘든 여정을 계속 걸어갈 책임이 있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2차 경연의 주제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2차 경연은 ‘포지션 평가’입니다.”
“아...”
자파의 발표에 연습생들은 다들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앞선 시즌에서 항상 이맘때에 했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포지션 평가란 아이돌의 3대 포지션인 랩과 댄스, 보컬을 나누어서 평가하는 것이다. 연습생들은 랩 3곡, 댄스 5곡, 보컬 4곡 중에서 원하는 곡을 선택하여 무대를 꾸린다. 1차 경연과 차이가 있다면 상대하는 조를 이겨야 베네핏을 받는 식의 팀전이 아닌 같은 조 내에서 득표 1위를 해야 베네핏을 받는 개인전이라는 점이다.
“다들 놀라지 마세요. 이번 포지션 평가에서 소속된 팀에서 1위 득표를 받는 자는... 무려 1만 표의 베네핏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각 포지션 별로 따져서 득표 1위를 한 자는 5만 표의 베네핏이... 모든 포지션을 통틀어서 득표 1위를 한 자는 10만 표의 베네핏을 받게 됩니다.”
“와아아아아아~”
다 아는 내용이기는 했지만 연습생들은 열심히 리액션을 해주었다. 이것에 자파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이번 곡 선택은 60위를 한 마나미 연습생부터 하게 됩니다. 12개의 곡 중에서 원하는 것을 선택해서 앞에 서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 각 곡의 정원은 5명인데 이미 5명이 찬 상태에서 상위의 연습생이 그 곡을 하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6명이서 무대를 하지 않을까요?”
“땡~ 아닙니다. 그럴 때는 새로 들어온 상위의 연습생이 내보낼 연습생을 지목할 권리를 가지게 됩니다. 상위 연습생에 대한 특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헉... 잔인해.”
자파의 설명에 연습생들은 다들 놀란 얼굴을 하며 몸서리를 쳤다. 이것은 지난 시즌에 비해 달라진 점이었다. 이전에는 밀어내기는 있었지만 언제나 각 곡에서 최하위의 연습생이 밀려나는 식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새로 들어온 상위 연습생이 쫓아낼 자를 지목할 수 있게 되었으니 하는 쪽이나 당하는 쪽이나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 논란거리가 있거나 잔인해질수록 인기가 늘어나는 예능 프로그램의 안 좋은 모습이기도 했다.
그렇게 곡 선택은 시작되었다. 마나미는 잠시 고민하다가 댄스 곡 중에 ‘king kang’를 선택했다. 그 노래는 다소 생소한 것이었고 한동안 아무도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렇게 마나미는 꽤 오랫동안 외롭게 서 있었고 계속되는 순위 하락으로 자존감이 상당히 낮아진 듯한 마나미는 침울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백하나는 나지윤을 보며 물었다.
“언니는 뭐 하고 싶으세요?”
“으음~ 나는 댄스는 이미 보여줬으니까 보컬 곡으로 하고 싶기는 한데... 좀 걸리는 애들이 있어서 말이야. 걔들에게 맞출 생각이야.”
“호호. 이번에도 그렇게 가는 건가요? 사실 언니는 랩이나 댄스, 보컬 가릴 것 없이 뭘 해도 빛이 날 테니까요.”
나지윤의 심복인 백하나는 히죽 웃으면서 호응을 해준 후 자기 차례가 되자 이동하였다. 그렇게 신민경의 차례까지 오게 되었고 그녀는 눈을 돌려서 익숙한 얼굴들을 찾아보았다. 아무래도 한수진 등 라라라 1조 멤버들과 좋은 기억이 많은 신민경은 그 멤버들이 어디 있는지를 살폈다.
‘호오~ 셋이 모두 분산되어 있네? 그럼 그중에서 선택해야 하나? 아니야. 원 스승님이 말씀하셨지. 진부함은 예능에서 최대의 적이라고. 익숙한 멤버들을 계속 만나서 같은 조를 이루는 건 좋지 않아. 그럼 누구를 골라야 할까. 아! 그래. 이 기회에 한번 내가 이끌어주는 것도 좋겠지.’
“민경 양은 생각이 많으시네요. 가고 싶은 곡은 정하셨나요?”
“네. 너무 끌어서 죄송합니다. 정했습니다. 제가 할 곡은... ‘킹 캉’입니다.”
“핫!”
신민경이 노래를 정하여 말하자 마나미는 화들짝 놀라며 앞을 보았다. 이 노래로 아무도 오지 않은 것을 보며 결국 다른 조에서 밀려난 이들과 함께 팀을 짜야 될 것을 걱정했던 마나미는 신민경과 같은 데뷔조가 와주는 것에 바로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신민경은 그런 마나미를 귀엽다는 듯 바라보며 다가가서 꼬옥 안아주었다. 그리고 이를 눈여겨보고 있던 10위 왕수원은 자기 차례가 되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킹 캉을 선택하며 신민경의 앞에 섰다.
“헛. 안녕하세요. 이번에는 같은 팀이네요? 헤헤.”
“네. 함께 해서 반가워요. 라라라 1조의 무대는 적이긴 했지만 정말 감명 깊게 봤어요. 우리 잘 해봐요.”
12위에 이어서 10위까지 같은 노래로 가자 킹 캉 조의 무게감은 갑자기 커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5위인 정하윤까지 이 노래로 들어온 것이었다. 이에 신민경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하윤 언니가 왜 보컬이 아니라 여기로 오신 거죠? 언니 안무 창작도 잘 하시는 거였어요?”
“그건 아니고. 보컬 쪽은 인원이 다 찼잖아. 내가 거기로 가면 누구를 지목해서 쫓아내야 하는데 그건 별로 하고 싶지 않았어. 그리고 이 기회에 안 해본 것을 한번 해서 반전미를 주는 것도 좋겠지.”
“아... 그것도 좋겠네요. 아무튼 드디어 언니랑 같이 무대 해보네요. 너무 좋아요. 헤헤.”
“나도 마찬가지야. 내가 언젠가 만날 거라고 했지? 훗.”
정하윤은 어른스럽고 단아한 미소를 지으면서 진심으로 기분 좋아 했다. 정하윤 이후로 4위와 3위 연습생도 인원이 찬 조를 고르지 않았다.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아내는 식의 그림이 이미지에 좋지 않을 것을 우려한 듯 했다. 그렇게 평화로운 곡 선택이 이어졌고 2위인 미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인원이 비어 있는 쪽으로 향하였다. 바로 킹 캉이었다. 그녀는 가끔씩 보이는 쭈굴미를 보여주면서 쪼르르 달려가서 정하윤 앞에 섰고 킹 캉 조의 모두를 향해 연신 인사를 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미나라고 해요. 함께 해서 반가워요. 잘 부탁드립니다.”
“네. 우리도 반가워요. 잘 해봐요.”
미나는 네 명의 같은 조 멤버 중에서 유독 신민경에게 시선을 보내면서 배시시 웃었다. 이에 신민경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인사를 해주었다. 미나가 이 노래를 고른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1차 경연에서 최악의 리더를 만나서 워낙 고생을 했던 그녀는 상대 팀의 리더인 신민경을 보며 큰 감명을 받은 상태였다. 그래서 그런 리더와 함께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즉, 이번 2차 경연을 위한 조 선택에서 미나가 바란 곳은 무조건 신민경이 있는 조였다.
“헛! 새로운 어벤저스 조인가요? 2위인 타케나가 미나, 5위인 정하윤, 10위인 왕수원, 12위인 신민경이 함께 있네요.”
“와~ 대박이다. 그런데 왜 저런 노래를 고르는 거지? 별로 인기 없지 않나?”
“그러게? 아무튼 저기도 5명이 다 찼네. 그럼 남은 것은 랩인데...”
연습생들은 1위인 나지윤의 선택을 궁금해 하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지윤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여러 조를 살폈다.
‘흐음~ 보컬을 하려고 했는데... 생각을 바꿔야겠다. 저렇게 좋은 타깃이 있는데 말이지. 호호.’
나지윤은 그리 생각하며 마이크 앞에 섰고 자신의 곡을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