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보자. 호오~ 시즌4의 테마곡인 ‘하나 뿐인 내편’을 한다고? 쉽지 않을 텐데... 이건 남자 노래이고 댄스도 꽤 어려워.”
“상당히 신선한 선택이긴 한데 한 번 무대를 보도록 할까요?”
“네. 그럼 하겠습니다.”
호수의 자상한 말에 신민경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후 자세를 잡았다. 그렇게 편곡한 하나 뿐인 내편 노래가 흘러 나왔고 신민경은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어 갔다. 원래는 상당히 씩씩하고 신나는 노래이지만 이정원이 편곡한 이것은 은은하고 단아한 느낌이 있었다.
“와... 이건 언니와도 잘 맞을 것 같은데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민경이와도 잘 어울리네. 민경이도 그런 느낌이 있잖아. 아무튼 정말 잘 편곡했네.”
좌석에 나란히 앉아서 무대를 보고 있던 김소영과 정하윤은 내심 감탄하면서 분위기를 음미했다. 그렇게 신민경의 무대는 끝이 났고 연습생들은 정하윤 때와 같이 박수를 쳐주었다.
그리고 트레이너들도 나름 만족한 얼굴로 심사에 들어갔다.
“호오~ 하나 뿐인 내편 노래가 이런 분위기로도 나올 수 있는 거였어? 확실히 JW란 회사가 능력이 있네. 지금까지 조금 졸린 것 같았는데 이 무대를 보니까 확 깨는데? 아주 신선해.”
“하하. 그렇죠? 제가 심사숙고해서 뽑은 아이인데 아마 이번 시즌에서 꽤 다크호스가 될 겁니다. 실력도 좋은 편인데 뭔가 전략도 좋더라고요.”
“음~ 은은하게 편곡하긴 했고 신민경 양의 보컬에도 잘 맞았어요. 저는 굳이 흠을 잡을 데는 없을 것 같네요.”
“제가 보기에는 조금 애매하긴 한데... A나 B 모두 납득할 만한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다른 분들 선택에 따르겠습니다.”
주소라의 말에 호수는 바로 A를 내밀면서 미소를 지었다. 반면 보컬 쪽에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이렇게 무게 추는 댄스 트레이너에게로 향했다. 먼저 입을 연 이는 함영진이었다.
“음... 편곡을 하긴 했어도 하나 뿐인 내편의 어려운 안무는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을 잘 수행했다는 것은 주 포지션이 댄서라는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동작들을 보면 뭔가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 같은 흔적이 있습니다. 발끝의 각도도 조금 거슬리고요. 저는 B가 맞는다고 봅니다.”
“아무래도... 바로 등급을 정하기보다는 댄스를 따로 시켜보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방금의 부대는 좀 머리를 잘 쓴 느낌이어서 말이죠.”
메이플도 함영진의 말에 동감하며 중재안을 냈다. 이에 주소라도 동의하면서 신민경에게 댄스 무대를 따로 준비한 게 있냐고 물었고 신민경은 미소를 지으며 있다고 답하였다.
그렇게 정하윤에 이어서 2연속으로 댄스 무대가 이어졌고 신민경은 며칠 간 열심히 연습한 무대를 보여주었다. 그것이 끝나자 함영진은 박수를 쳐준 후 입을 열었다.
“음... 이번에 댄스만 따로 보니까 확실히 알겠네요. 신민경 양의 연습기간이 1년이라고 적혀 있는데 맞으신가요?”
“네. 작년 초에 JW에 들어왔습니다.”
“호오~ 1년에 이 정도를 했으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등급평가는 현재의 위치 그 자체를 보기 위함입니다. 신민경 양은 아직 댄스 면에서 내공이 부족한 느낌입니다. 그렇기에 한계가 보입니다. 이를 B반에서 확실하게 보완하시길 바랍니다.”
“아...”
신민경의 등급이 B로 정해지자 정하윤은 아쉽다는 얼굴을 하며 탄식을 했다. 반면 신민경은 씩씩한 얼굴로 감사 인사를 한 후 퇴장을 했다. 사실 신민경은 B를 받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을 하고 있었다.
‘그래. 내 실력에 이 정도만 해도 뭐... 그래도 조금 아쉽기는 하네. B반에 가서 정말 열심히 연습해서 A반으로 올라가자. 그리고 지금은 다른 분들의 무대를 즐겨 볼까나?’
신민경은 매도 먼저 맞는 사람이 낫다고 생각하며 느긋한 자세로 22번 좌석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마나미와 한수진 등은 그녀에게 정말 멋있었다며 엄지 척을 해주었다.
이후 다른 연습생들의 무대가 이어졌다. 정하윤과 신민경이 한국인 연습생 잔혹사를 끊은 후 무대는 좋고 나쁨이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등급 평가는 후반부로 갔고 나지윤의 차례가 되었다.
그녀는 생기발랄한 미소를 지으면서 무대 위로 올라가서 모두에게 인사를 했다. 그런 나지윤의 미모와 비글미에 좌석의 연습생들은 다들 감탄을 했다. 슈마 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같이 나온 다른 연습생도 좋은 비주얼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지윤의 옆에 서니 그 빛이 많이 바래보였다.
이에 신민경은 그녀의 춤과 노래가 궁금해졌고 곧 무대가 시작되자 나지윤은 그쪽으로도 그리 떨어지지 않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최상의 비주얼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정도 무대를 했으니 A등급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후 한수진도 나가서 준수한 무대를 한 후 B를 받았고 마나미는 다소 실수를 하며 C를 받았다. 그렇게 99명의 연습생이 등급 평가를 받았고 마지막 한 연습생의 차례가 되었다.
그녀는 바로 일본 SIO48에 소속된 타케나가 미나였다.
“와...”
미나가 대기실에서 나오자 연습생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럽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는 트레이너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야말로 자체발광이라는 말이 이를 두고 나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지윤도 정말 상큼하고 예뻤는데 미나는 차원이 또 다르네.”
“이 정도면 시즌1과 시즌3의 선배님들을 다 포함해서 봐도 최강 아닐까?”
“일본과 우크라이나 혼혈이라는데 역시 혼혈은 위대해.”
미나의 등장은 이 공간의 사람들 모두를 흔들 정도의 힘이 있었다. 그 모습에 1위석의 나지윤은 미간을 찌푸리며 혼잣말을 했다.
“흥! 얼굴은 제법 예쁘기는 한데 춤이나 노래는 별로겠지.”
나지윤은 내심 그러기를 바라며 미나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미나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다른 일본 연습생들은 모두가 팀을 짜서 한 반면 그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독무대를 선택했고 모두는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미나는 춤과 노래 역시 상당한 수준이었다. 음색은 청아하면서도 아름다웠고 춤의 선 역시 부드럽고 고왔다. 그러면서 표정 연기까지 전혀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것을 보며 신민경은 독무대가 꼭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독무대를 저렇게 잘하면 팀 무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아우라를 주는 구나. 와~ 그런데 얼굴도 저런데 춤과 노래까지 이 정도면 이건 A가 아니라 S는 줘야겠네.’
신민경은 그리 생각하였고 무대가 끝나자마자 손이 아플 정도로 박수를 쳤다. 진심으로 감탄한 데에서 나온 박수였다.
이런 감탄은 트레이너도 마찬가지였는지 호수는 만면에 미소를 가득 담은 채로 질문을 했다.
“타케나가 미나 양이라고 했지요? 미나 양은 왜 한국으로 아이돌을 하러 오신 거죠?”
“에... 저는 한국 아이돌의 아티스트적인 면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활동하면서 많이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에 오게 되었습니다.”
“이 정도 실력이면 솔로를 해도 전혀 문제없을 것 같은데...”
“네? 아니 아니. 전혀 아닙니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호수의 칭찬에 미나는 부끄러워하며 손을 내저었다. 무대에서는 마치 여왕과 같은 아우라가 있던 사람이 이런 질문에는 다소 겁을 먹고 수줍은 모습을 보이자 신민경 등은 왠지 더 호감이 드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신민경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민호의 조언이 있었다. 1번 석에 앉지 말라고 조언을 하면서 덧붙였던 말이었다.
“항상 연예계를 관통했던 특유의 미가 있었다. 옛날에는 청순미가 대세였다면 최근에는 비글미가 인기를 끌고 있지. 그리고 내가 보기에 향후 대세는 ‘쭈굴미’가 될 것이다. 앞서 이 시대를 관통하는 가장 지배적인 감정이 열등감이라고 했는데 이런 쭈굴미는 열등감과 잘 어울린다. 무대에서 너무나 눈부셔 보이는 사람이 사석에서는 쭈굴거리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팬들에게 상당한 호감을 살 수 있다. 괜히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낫다. 신민경 너는 이런 쭈굴미와 잘 어울릴 것 같으니 한 번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당시 민호의 이 조언을 들으면서 그게 뭔지에 대해 이해가 잘 안 갔던 신민경은 미나의 모습을 보면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완벽함 그 자체였던 무대와 달리 심사위원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에서 풍기는 쭈굴거리는 느낌은 매우 좋은 반전미이자 조합이었다.
이렇게 등급평가는 끝이 났다. 100명의 연습생은 18:17:20:21:24의 비율로 A~F반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상위권이라고 할 수 있는 35명의 A, B반을 20명의 일본인 연습생이 차지했다. 지난 두 번의 시즌에서 항상 절대 소수였던 것을 감안할 때 오히려 수에서 앞선 것은 상전벽해라고 할 일이었다.
이런 일본인 초강세 속에서 한국 연습생들은 분발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오늘 본선 무대로 오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 연습생들은 나름의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시즌1 때 한국 연습생들에게 100개의 자리가 있었던 것과 비교할 때 시즌3 부터는 그것이 반으로 줄어들었지만 이것에 크게 불만을 제기하는 기획사는 없었다. 왜냐하면 실력에서 일본 연습생들이 많이 떨어지기에 최종 12명의 합격자 다수는 한국 연습생의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시즌3에서 9:3, 시즌4에서 8:4로 우세하면서 그것은 사실이 되었다.
그렇기에 이번 시즌5에서도 험난한 예선만 통과하면 큰 무리 없이 상위 라운드로 진출하여 합격까지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한국 연습생들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런 여유로운 생각은 등급 평가에서 완전히 깨지게 되었다.
마사무네를 필두로 일본 기획사들의 대표들은 프로듀스를 노리고 연습생들을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철저하게 육성해왔고 그 결실이 지금 나오고 있었다. 모두가 비주얼은 물론 춤과 노래 실력까지 훌륭했다. 최소 6:6이 나올 것이라는 마사무대의 공언은 절대 허언이 아니었다.
‘만약 한국 연습생이 여섯 자리도 차지하지 못한다면...?’
그리 상상하자 한국 연습생들은 눈앞이 막막함을 느꼈다. 그렇게 본다면 자신들의 자리는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한국 연습생 사이에서는 이미 최종 합격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존재가 있었다. 이날 A를 받았고 스타성도 있으며 회사까지 빵빵한 나지윤, 정하윤, 김소영 등이 그들이었다. 일본 연습생이 여섯 자리 이상을 가져가고 이런 특급 한국 연습생이 나머지를 먹는다면 남는 것은 거의 없는 것이었다.
이런 현실은 그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고 한국 연습생들은 일본 연습생들을 견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호수는 다시 모두를 돌아보며 무대 위로 올라왔고 멘트를 시작했다.
“자! 여러분 모두 등급평가를 소화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진짜 고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거 알고 계시죠? 등급평가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등급은 임시이고 한 가지 과정을 더 거쳐야 확정이 될 겁니다. 그 과정이 뭔지 아시나요?”
“테마곡 평가요~”
호수의 질문에 권지원이 바로 손을 들고 답했다. 매 시즌마다 등급평가 후에 해왔던 것이기에 모두가 아는 답이었고 호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프로듀스 시즌5의 테마곡이 발표가 됩니다. 노래와 안무가 동시에 나올 것이니 다들 집중해서 봐주시기 바랍니다.”
“네에~”
호수는 기분 좋은 목소리로 설명을 한 후 화면을 가리켰고 곧 화면에는 ‘다 가질 거야’라는 노래의 제목이 떴다. 이후 노래와 함께 안무가 재생이 되었고 연습생들은 이를 보며 상당히 난이도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4분 정도의 노래가 끝이 났고 호수는 표정이 복잡한 연습생들을 향해 씨익 웃어주며 입을 열었다.
“자! 이게 여러분들이 앞으로 하셔야 할 무대입니다. 그럼 앞으로의 일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정확히 4일 후 밤 8시에 여러분은 각 연습실에 배치된 카메라로 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영상을 찍어야 합니다. 그것을 통해 트레이너 분들의 등급 재평가가 있을 겁니다.
그렇게 등급을 다시 나눈 후에는 등급에 따라 다른 혜택이 있을 겁니다. 특히 A반에게는 많은 이점이 있을 테니 다들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호수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말을 마친 후 물러났다. 그렇게 트레이너들과 함께 나갔고 연습생들은 넋이 나간 얼굴을 하며 서로를 보았다.
“와~ 저걸 4일 내로 마스터하라고? 이게 할 수 있는 거냐?”
“정말... 죽어라 해야겠네요. 잠도 못 자고... 그래도 수진 언니랑 같이 연습할 수 있게 돼서 기쁘네요. 호호.”
“헛. 고마워. 나도 그런데... 헤헤.”
신민경의 말에 한수진은 쑥스러운 얼굴을 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에 신민경은 앞에 앉은 마나미를 부르며 격려를 해주었다.
“마나미. 우리 나중에는 꼭 같이 무대 한 번 하자. 알았지?”
“응. 언니. 나중에 또 봐.”
실수를 한 탓에 좋지 않은 등급을 받았던 마나미는 신민경의 격려에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며 미소를 짓고 답했다.
그렇게 각 연습생들은 배정된 연습실과 숙소로 향하였다. 그녀들은 사이버 세상에도 잠을 잘 수 있는 숙소가 있다는 것에 신기함을 느끼면서 자기의 침대를 정했고 간단히 짐을 푼 채 바로 연습실로 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