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JT의 퍼포먼스는 시작되었다. 그녀들은 한국의 3인조 아이돌 ‘마시멜로’의 히트곡으로 무대를 꾸몄다. 그것은 상당히 괜찮았다. 신민경은 그중에서도 ‘혼다 레이’라는 아이에게 눈이 갔다. 춤과 노래 모두 좋았고 외모도 귀여우면서 예뻤다.
‘와~ 일본의 중소 기획사라고 하는데 이 정도가 나오는구나.’
신민경은 그리 생각하며 저도 모르게 박수를 쳤고 무대가 끝나자 그 박수는 모두에게 전염되었다.
그런 박수 속에서 주소라는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며 다른 트레이드들에게 말하였다.
“괜찮은데? 아주 좋았어. 다들 한국어 발음도 좋고... 나는 현지인인 줄 알았다니까. 하하.”
“아... 선배님. 그건 자동번역기 때문일 겁니다. 이 사이버 세계에서는 말을 함과 동시에 번역이 돼서 상대방에게 들리거든요. 그래서 다국적 연습생들이 모여도 아무 문제없이 합동 무대를 만들 수 있습니다.”
“아! 그런 거였어? 파핫. 내가 착각을 했네. 그런데 발음을 빼고 봐도 다 훌륭했어. 특히 저 혼다 레이인가. 저 아이가 정말 잘하던데? 나는 A를 줘도 될 것 같아.”
“음... 제 생각도 같습니다.”
주소라가 주도적으로 말하자 다른 트레이너와 호수도 별로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내부 심사는 바로 끝이 났고 주소라가 마이크를 대고 발표를 했다. 혼다 레이는 A를 받았고 나머지 둘도 B를 받았다.
“와우...”
굉장한 호 평가에 한국 연습생들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박수를 쳤다. 사실 지금까지 일본 연습생이 참가했던 두 번의 시즌에서 그들이 좋은 등급 평가를 받았던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이기 때문이었다. 춤과 노래를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 일본 아이돌 문화 특성상 그들의 수준은 한국 연습생들에게 밀릴 수밖에 없었고 항상 D와 F를 차지해왔었다.
그런 상황에서 처음에 나온 세 명이 A와 B를 차지하자 한국 연습생들은 감탄을 하면서도 긴장감이 들어갔다.
그 다음에는 YTK 엔터테인먼트의 일본인 연습생들이 나왔다. 총 4명이었는데 하나 같이 한국 형 아이돌의 외모와 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뭔가 동네 아줌마 같은 패션의 의상을 입혀왔던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리고 신민경은 그중 ‘우에스기 아야네’라는 연습생에게 눈길이 갔다.
‘어딘가 익숙한 느낌인데... 아. 맞아. 하윤 언니와 비슷한 분위기야. 헤헤.’
신민경의 느낌대로 우에스기 아야네는 매우 다소곳하면서 귀티를 풍기고 있었다. 뭔가 대갓집의 며느리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무대가 시작되었다. 이 팀은 전의 JT팀과는 달리 일본 아이돌의 무대를 꾸렸다. 그렇지만 춤이나 노래 실력은 전혀 어설프지 않았다. 상당히 연습하고 단련된 느낌이었고 이 무대가 끝났을 때에도 주소라의 표정은 밝았다.
“아야네라... 저 아이 괜찮네. 아주 좋아.”
“다른 세 멤버도 음정 등의 실수가 있긴 했지만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야네는 A를 줘도 좋을 것 같은데요?”
“이야~ 내가 일본 연습생 팀들의 무대를 보고 이렇게 좋은 느낌이 들었던 것은 처음 같네. 정말 일본 회사에서 그동안 이를 악물고 연습을 시켰구나.”
주소라는 뭔가 신이 난 듯한 얼굴로 말하였다. 그렇게 YTK 팀도 각각 A B B C 등급을 받았다. 이런 일본 팀의 선전은 계속 이어졌다. 처음의 평가는 모두 일본 팀이 받았는데 20명이 할 동안 D와 F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 후 한국 연습생들이 무대를 시작했다. 이는 일본 연습생들의 그것과 좀 차이가 있었다. 워낙 경쟁이 치열했던 탓에 한국 연습생들은 대부분이 회사 당 하나 정도만이 합격을 하였고 그래서 팀 무대가 아닌 독무대를 해야 했다.
이것은 시선이 집중되는 효과가 있기는 했지만 무대가 꽉 차 보이지 않는 단점이 있었다. 사실 댄스라는 것은 팀원끼리의 합이 맞을 때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인데 그런 요소가 없는 것은 마이너스였다.
또한 동료와 함께 할 때는 서로 의지하며 그만큼 긴장을 덜 수 있는데 독무대는 그렇지 못한다는 문제도 있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한국 연습생들은 계속하여 실수하는 모습이 나왔다.
그 모습에 업 되어 있었던 주소라의 표정은 다시 표독스럽게 바뀌어갔다.
“이야~ 이거 이상한데... 제가 궁금한 게 있는데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네? 아. 네.”
“한국은 경쟁이 치열해서 예선을 3차에 걸쳐서 했다고 들었는데... 대체 어떻게 그것을 다 뚫은 거예요?”
“......”
매우 공격적인 주소라의 질문에 한국 연습생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주소라는 약간 화가 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춤은 실수 연발이고 무대를 하면서 표정 연기는 하나도 되지 않고 굳어 있고. 3번의 예선을 뚫은 친구가 이것 밖에 안 되면 이거 한국 회사에서는 대체 애들을 어떻게 가르치는 건지 모르겠네요.”
“아... 저 그게 제가 1차 예선 때 심사를 했었는데 그 때는 꽤 잘 했는데 지금은 좀 긴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헤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댄스 트레이너인 ‘함영진’이 슬그머니 나서서 대신 변호를 해주었다. 이에 주소라도 고개를 끄덕이며 연습생을 보고 말하였다.
“뭐 혼자 나왔으니 떨 수도 있겠죠. 하지만 프로의 세계에서 그것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결국 결과물을 만들어야 성공할 수 있는 겁니다. 사람들은 뒤에서 어떤 힘든 문제가 있었는지 절대 봐주지 않습니다. 아시겠죠?”
“네에...”
주소라의 충고가 어린 말에 연습생은 약간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공포의 평가가 끝이 났고 그런 분위기는 대기하고 있던 다른 한국 연습생들에게도 전해 졌다.
사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칭찬 같은 좋은 분위기가 더 나은 성과를 내게 한다. 그렇기에 지금과 같은 공포 분위기 속에서 나오는 한국 연습생들은 잘 하기가 쉽지 않았다.
“에이~ 별로네. 나는 D가 좋을 것 같은데?”
“쟤는 F야. 밑에서부터 다시 배워야 돼.”
“으음~ 이번에는 C네요.”
“뭔가를 가지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일단 이 무대는 D 수준입니다.”
트레이너들은 연속으로 나오는 한국 연습생들에게 계속하여 혹평을 했다. 그렇게 20여 명이 할 동안 대부분이 C~F를 받았고 A는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그야말로 지난 시즌의 한일 관계가 역전된 듯한 모습이었다.
이런 혹평의 연속 속에 좌석에서 이를 보고 있던 한국 연습생들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관계자가 다가와서 신민경에게 말을 걸었다.
“다음 다음 차례이십니다. 준비하세요.”
“네? 아. 알겠습니다.”
하필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자기 차례가 다가온 것에 신민경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그녀에게 한수진과 마나미는 고개를 돌려 바라봐주며 파이팅 포즈를 해주었다.
이것에 고마워하면서 신민경이 대기실로 향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카의 조언을 떠올렸다.
“민경아. 결국 모든 상황은 받아들이기 나름이야. 길조도 흉조도 모두 마음먹기에 달렸지. 만약 네 앞에서 좋은 평가가 연속으로 나온다면 그만큼 좋은 분위기를 탄 거니까 마음 편히 따라가면 되는 거야. 그런데 혹시 그 반대가 되어서 싸한 분위기가 된다면 그것 역시 기회가 된다고 할 수 있어. 모두가 못하는 가운데 네가 잘해준다면 단번에 주목을 받을 수 있지. 그러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말고 네가 준비한 것만 그대로 보여주도록 해.”
신민경은 마치 이런 경우가 벌어질 것을 알기라도 한 듯 정확한 조언을 해준 미카에게 감사하면서 대기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헉! 하윤 언니. 꺄악~ 반가워요.”
“어. 민경이가 내 다음이구나. 호호.”
이런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만난 정하윤은 마치 지옥에서 본 부처님과도 같았다. 이에 신민경은 만면에 미소를 띠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정하윤은 정말 부처님이라도 되는 듯 침착한 표정으로 인자한 미소와 함께 인사를 해주었다.
그 순간 신민경은 그런 인자함 속에 감춰진 무언가를 느끼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정하윤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로 준비한 무대의 보컬 부분을 연습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신민경은 언제나 여유롭고 침착해 보이는 정하윤이라고 해도 지금과 같은 상황은 떨릴 수밖에 없음을 알고 귀찮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둘은 인사를 그 정도에서 멈추고 연습을 하였고 곧 정하윤의 차례가 되었다. 이에 신민경은 연습을 멈추고 고개를 대기실 밖으로 조금 내밀어 무대의 상황을 살폈다.
‘으윽...’
신민경은 풍기는 분위기만으로도 직전의 무대 반응이 어떠했을 지를 알 수 있었다. 주소라를 비롯한 트레이드들은 여전히 냉기가 풍풍 풍기는 얼굴로 팔짱을 끼며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에 신민경은 만약 자신이 이런 상황에서 혼자 나가서 무대를 한다면 과연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면서 신민경은 이제 지인이나 다름이 없는 정하윤이 좋은 무대를 해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이런 차가운 분위기 속에서 정하윤은 준비한 무대를 시작했다. 그것은 자리에 앉아서 하는 보컬 무대였고 침착하게 눈을 감고 노래를 불렀다. 이에 정하윤 특유의 기품 있는 음색이 흘러 나왔고 그녀는 고음 파트도 시원하게 소화하면서 노래를 마쳤다.
그 모습에 주소라 등 트레이너들의 표정은 크게 밝아졌다.
“와우~ 목소리가 정말 깨끗한데?”
“네. 완전 시원하네요. 지금까지 중에 보컬 부분은 제일 좋았습니다.”
“음정, 박자, 음색, 성량 모두 다 최상입니다. 역시 LEW는 다르네요. 밴드 형 아이돌로 유명한 회사답게 메인보컬 감 하나 만들었군요.”
두 명의 보컬 트레이너는 주소라의 말에 동의하며 감탄을 했다. 반면 댄스 트레이너를 맡고 있는 메이플과 함영진은 약간의 의문을 표하면서 말하였다.
“그런데 가만 앉아있기만 해서... 댄스 쪽은 알 수가 없네요.”
“한 번 댄스 같은 거 해보라고 요청해도 될까요? 선배님.”
“음? 왜 그걸 나한테 물어봐. 우리는 같은 트레이너야. 그냥 원하는 거 있으면 다 시켜. 하하.”
함영진의 질문에 주소라는 어이가 없다는 듯 호탕하게 웃으며 답했다. 이에 함영진은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인 후 마이크를 잡고 말하였다.
“정하윤 양. 댄스 쪽으로 준비해온 것 있나요?”
“네. 해보겠습니다.”
함영진의 요청에 정하윤은 침착하게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가 준비해온 무대의 음악이 흘러나왔고 정하윤은 리듬을 타며 안무도 잘 추었다. 아주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준수함 이상의 무대였다.
이에 좌석에 있던 연습생들은 오랜만에 박수를 칠 수 있었고 함영진과 메이플도 나쁘지는 않다고 평가를 하며 자신이 매긴 등급을 주소라에게 보여주었다. 그렇게 의견이 모이자 주소라는 마이크를 잡고 미소를 지으며 정하윤에게 말했다.
“정하윤 양이 LEW엔터테인먼트 소속이라고 하였죠?”
“네. 맞습니다.”
“LEW... 밴드 형 아이돌로 유명한 곳이죠. 보컬이라면 한국에서 알아주는 곳입니다. 확실히 그곳 출신이라서 정말 제대로 배운 것 같네요. 그런데 그간 시즌을 네 번이나 치르면서 LEW에서는 단 하나의 합격생도 배출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 이유는 이 회사 출신들이 댄스에서 좀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정하윤 양의 무대를 보니 이제는 그 실패의 고리를 끊어줄 사람이 나타난 것 같네요. 댄스 무대도 잘 보았습니다. A입니다.”
“헛. 감사합니다.”
“와아아아아~”
한국인 연습생 중 처음으로 A등급이 나오자 뒤에서 보고 있던 한국 기획사 쪽 연습생들은 다들 환호를 해주며 자기 일처럼 기뻐하였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슈마 소속의 나지윤은 아쉽다는 얼굴로 혼잣말을 했다.
“쳇. 내가 제일 먼저 A를 받았어야 했는데...”
그런 반응 속에 정하윤은 원래의 퇴장 루트를 벗어나 일부러 신민경이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고는 그녀의 손을 잡아주며 말하였다.
“잘해. 반드시 잘해서 A반에서 같이 만나 연습하자.”
“네. 감사해요.”
정하윤의 격려에 신민경은 힘을 받으며 무대로 나아갔다. 한 사람의 활약 덕분인지 무대는 방금 전의 냉랭함이 완전히 가셔 있었다. 그런 급 변화를 보며 신민경은 미카의 조언을 떠올리며 약간의 아쉬움도 들었다. 자기가 정하윤 순서에서 잘 했다면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거란 생각이었다.
그러나 신민경은 그런 것은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며 머리를 흔들고 정신을 집중하였다. 그리고는 무대 위에서 트레이너들을 향해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고 호수는 빙긋 웃으며 마이크를 잡았다.
“신민경 양. 민경 양은 JW엔터테인먼트에서 오셨지요?”
“네. 맞습니다.”
“JW? 거기가 어디야? 처음 들어보는데...”
“하하. YBY라고 시즌3에서 아쉽게 탈락했던 멤버 일곱을 모아서 만든 프로젝트 형 그룹 있지 않습니까. 그 그룹을 맡고 있는 회사입니다. 그 쥬리도 있고...”
“아아! 나 거기 알아. 뭔 듣도 보도 못한 회사가 원 소속사 일곱을 설득해서 한다기에 어렵겠다 싶었는데 정말 잘 활동하고 있다고 해서 좀 놀랐지. 저 애가 거기 소속이었어?”
주소라는 매우 직설적으로 자신의 기억을 말하면서 신민경을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YBY의 일곱 멤버들 모두 주소라가 가르치면서 나름의 정이 들었기에 그녀는 신민경에게도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