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스의 방]
4. 프로듀스 (4)
“하하. 제 실력을 어떻게 보시고. 어렵지 않습니다. 오늘이 가기 전에 찾아내서 명단을 바치겠습니다. 그리고 후환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해킹을 하면서 추적을 당한 적은 거의 없거든요. 설령 걸려든다고 해도 여기에 피해가 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흔적을 교란시키는 것은 제 특기 중 하나이니 말입니다.”
“그, 그래도... 이것은 좀 반칙이 아닌지...”
원의 자신만만한 말에도 이정원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거부감을 표했다. 이에 민호는 인상을 쓰며 그의 어깨를 잡으며 물었다.
“이정원 대표. 당신은 자신의 떳떳함과 너를 믿고 따라주는 연습생 아이들의 미래 중 무엇이 더 중요하지?”
“네? 그야... 당연히 아이들이죠.”
민호의 물음에 이정원은 잠시 고민하였다가 고개를 들고 후자를 선택했다. 그러자 민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당신의 됨됨이는 알 수 있었어. 매우 따스하고 착한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졌지. 그것은 개인적으로는 대단히 훌륭한 모습이야. 하지만 한 집단의 리더라면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최고의 리더란 개인적으로는 정정당당한 길을 걷지만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비열한 짓도 서슴지 않아야 하는 것이야. 그래서 나온 말이 ‘송양지인’이지. 옛날 한 나라의 왕이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는데 지리적인 이점을 이용하는 것을 비겁하다고 하고 상대가 강을 다 건너올 때까지 기다려준 후 싸움에 들어갔지. 그리고 그 전투에서 패한 후 나라가 망했어. 이 얼마나 멍청한 일인가.”
“후후. 역사 이야기를 하자면 이 대한민국에도 그런 사례가 많지요. 삼국시대를 통일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고 칭송을 받는 신라의 진흥왕도 사실은 신의를 저버린 짓을 했습니다. 고구려가 점거하고 있던 한강 유역을 먹기 위해서 백제 성왕과 동맹을 맺은 후 고구려를 패퇴시켰는데 그 다음 백제와의 협약을 어기고 주요 지점을 다 점거해버린 것이지요.
그야말로 자기를 믿어준 상대에게 뒤통수를 때린 쓰레기 같은 짓을 한 것인데 결국 그 덕분에 신라는 통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역사는 신의를 보인 백제 성왕을 멍청하다고 매도하며 진흥왕을 훌륭한 존재로 기록하였죠.
이게 바로 현실입니다. 패자는 아무리 훌륭한 인격자의 길을 걸어도 좋지 못하게 기록이 되는 법입니다.”
원이 역사 이야기가 나오자 신을 내면서 거들었고 민호도 질세라 말을 덧붙였다.
“반대의 예를 들자면 병자호란에서 인조의 경우가 있다. 그는 후금의 기병대에게 연전연패하여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굴욕적인 항복을 할 수 없다며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여 맞섰고 결국 더 많은 병사들과 백성들을 죽음과 고통으로 내모는 결과를 낳았다. 이것은 정말로 멍청한 짓이었지. 국가의 정예 정규군으로도 이기지 못한 상대를 지방의 예비군과 민병의 힘으로 이겨내기를 희망했으니 말이다.
정말 훌륭한 군주라면 백성들을 위해서 굴욕을 감내하고 바로 납작 엎드릴 필요가 있었다.”
“훗! 고구려의 경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잘못된 역사 교육 때문에 고구려가 연개소문의 자식들 간에 생긴 내분으로 망했다고 착각을 하고 있는데 전혀 아닙니다. 고구려가 망한 가장 큰 이유는 중원의 제국에 대한 포위망이 무너진 탓입니다. 고구려와 함께 중원을 견제하고 있던 돌궐 국이 당 태종 이세민의 의해 순식간에 멸망했던 것... 그게 결정적이었습니다. 당시 돌궐 국은 고구려에 원군을 요청했었고 고구려는 설마 신생 국가인 당나라가 돌궐을 그렇게 쉽게 멸망시킬 줄 모르고 이를 거절했지요.
그 실착으로 인해 돌궐 국을 당나라가 흡수하면서 힘의 균형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그 시점에서 고구려가 해야 할 행동은 굴욕감을 이기고 강자 앞에 납작 엎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연개소문은 그리 하지 않았고 결국 이세민의 말려 죽이는 식의 전략을 당해내지 못하고 패망의 길을 걷고 말았지요. 만약 제가 고구려를 이끌었다면 그런 지경까지 가지도 않았겠지만 그런 지경에 이르렀을 경우 바로 납작 엎드렸을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아... 그, 그렇군요.”
민호와 원의 엄청난 설명 퍼레이드에 이정원 대표는 멍한 얼굴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미카는 민호와 원의 뒤로 다가가 둘의 귀를 잡아당겼다.
“이 분위기 어떡할 거야. 내가 아무한테나 역사 얘기 늘어놓지 말라고 했을 텐데...”
“응? 아. 그, 그야 이해를 시키려다보니...”
“미카 님. 역사 얘기는 언제나 유익한 것이라고요.”
민호와 원은 다급한 어조로 변명을 했고 이정원이 오히려 미카를 말리면서 민호의 뜻대로 하겠다고 연신 말하였다. 그렇게 원은 뮤직바이블에 대한 해킹 작업에 들어갔고 그의 말대로 그날 자정이 넘기 전에 심사위원 명단을 민호에게 바쳤다.
“후후. 상당히 까다로운 보안을 가진 서버였지만 역시 저를 이기지는 못하는군요. JW에 방문할 심사위원 셋의 명단입니다. 하나는 전설적인 1세대 아이돌인 HTS의 비주얼 센터이자 현 4대 엔터테인먼트인 세인트의 이사인 ‘호수’입니다. 방송 출연을 여러 번 했었는데 항상 따스하게 모두를 대해주기로 유명합니다. 두 번째는 발라드 가수인 ‘김종한’입니다. 아이돌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인물인데 좀 신기하군요. 노래 실력에서 워낙 탑 클래스로 불리는 인물이라서 보는 관점이 꽤 까다로울 수 있습니다. 이건 주의 대상에 해당합니다. 세 번째는 유명한 안무가인 ‘메이플’입니다. 아이돌들의 히트 안무를 몇 번 제작하였고 안무 트레이너로서도 꽤 실력자에 해당하죠.”
“흐음~ 비주얼과 보컬, 댄서의 조합이로군. 이 정도면 까다로운 편인가? 다른 곳과 비교해서 말이야.”
“뭐... 그 정도는 아닙니다. 김종한이 복병이긴 한데 호수와 메이플은 일단 인상부터가 좋고 그동안의 행실을 봐도 부드러운 편이지요. 이쪽에서 잘 하기만 한다면 불이익은 없을 것 같습니다.”
원은 나름 조사한 것까지 덧붙이며 의견을 말하였다. 이것에 이정원은 전략을 잘 짜기만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보고 나름 생각을 해서 의견을 밝혔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요? 호수 님과 메이플 님은 사람이 좋은 편이고 둘 모두 댄스 담당이니 김종한 님의 인정만 받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 분에게 어울릴 만한 노래를 선택해서 보컬 쪽으로 연습을 시키는 것이지요.”
“흐음~ 제 생각은 반대입니다. 이 요강을 보니 세 명의 심사위원 중 2명에게만 패스를 받으면 합격입니다. 그렇다면 복병인 김종한 쪽을 아예 포기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아예 댄스 적으로 부각을 시키는 것이 좋지요. 세인트 엔터테인먼트 소속인 수호라면 신민경의 비주얼을 좋게 볼 것이고 댄스까지 잘 한다면 메이플의 인정도 받게 될 겁니다. 그럼 합격은 무난하겠지요.”
까다로운 쪽의 공략을 중시하는 이정원과 확실한 길만을 선택하려는 원의 의견이 엇갈렸다. 약점의 보완, 강점의 강화라는 관점의 차이였다. 이에 민호는 잠시 고민을 한 후 이정원을 보며 말하였다.
“사실 이 회사는 당신의 것이고 우리가 뭐라 할 권리는 없다. 하지만 미카가 신민경을 분신처럼 생각하고 아끼고 있기에 우리는 가급적이면 그대가 최선의 길을 가길 원한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신민경의 춤이나 노래가 압도적이지 않기에 우리는 100점 짜리 무대를 원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원의 의견대로 가는 것이 좋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지?”
“음...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정원은 과거 YBY를 결성하여 론칭할 때 민호와 미카의 말을 들어서 잘 되었던 것을 떠올리며 이번에도 믿고 가기로 하였다. 그에 따라 네 사람은 복병인 김종한은 버리기로 하고 호수와 메이플이 선호할 만한 곡과 댄스를 연구하였다. 이 작업은 5일에 걸쳐 이어졌고 마침내 최선의 답을 찾아냈다.
기획사 선배인 YBY의 최고 인기곡인 ‘예쁜 애 옆의 예쁜 애’를 좀 더 파워풀하게 리메이크하여 단체 무대를 한 후 신민경의 개인 무대에서는 난이도가 높은 편인 댄스 음악 ‘노스웨스트’를 추게 하기로 했다.
그렇게 JW의 연습생들은 심사위원이 방문하기로 한 12월 15일까지 죽을힘을 다해서 연습에 매진했다.
“자! 댄스 곡이라고 해서 춤만 잘 춘다고 되는 게 아니다. 댄스를 하면서도 보컬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힘들 것이다. 하지만 딱 이 노래만 가지고 연습한다면 할 수 있다. 계속 연습을 하면서 방법을 찾아라. 어느 시점에서 자연스럽게 숨을 들이킬 수 있는지 말이야.”
“네.”
JW의 전속 트레이너들은 퇴근을 반납하고 계속 남아서 연습생 아이들의 연습을 도와주었고 민호는 이정원을 대신하여 그들에게 보너스를 지급해주었다. 그것에 트레이너들은 더욱 열의를 다해 가르쳤다.
그렇게 12월 14일 저녁이 되었을 때 아이들의 무대는 제법 봐줄 만한 정도가 되었다. 4명이라서 군무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넷은 동시에 ‘착착’ 기분 좋은 발 소리를 내었고 누구도 틀리지 않고 무대를 마칠 수 있었다.
이에 민호와 미카 등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쳐주었다. 이후 4명은 돌아가면서 개인 무대를 하였고 신민경은 댄스곡 노스웨스트를 추면서 상큼한 표정을 계속 보여주었다. 이를 보며 미카는 같은 여자로서도 반할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 옆에 앉은 민호는 연습생들을 보며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는 것을 애써 참아야 했다.
눈치가 빠른 편이기에 이미 민호와 미카의 관계를 알고 있는 원은 그런 민호를 안쓰럽다는 것이 바라본 후 마음 놓고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럼 이제 다들 쉬고 마인드 컨트롤에 들어가라.”
“네? 밤새 연습하는 거 아니었나요?”
“그것은 쌍팔년도 방식이지. 실전을 앞두고는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것이 상책이야. 괜히 자신을 믿지 못하고 불안하니까 밤을 새서 연습을 하는 것이고 그게 그리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이미 며칠을 죽어라 했는데 몇 시간 정도 더 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 것은 없어.
오히려 앉아서 내일 있을 무대에 대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것이 몇 배는 더 효과적이다. 그러니까 내 말대로 해.”
민호의 조언에 연습생들은 어찌해야 하냐는 표정으로 이정원을 쳐다보았다. 이에 이정원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고 연습생들은 90도 인사를 한 후 물러갔다. 이후 연습생들은 민호의 말대로 따랐고 1차 예선 전날은 저물었다.
그리고 결전의 12월 15일이 되었고 원이 해킹했던 대로 호수, 김종한, 메이플이 예정된 시간에 JW 엔터테인먼트 본사를 방문했다. 이에 이정원은 이날을 위해서 스케줄을 비워둔 YBY를 데리고 그들을 맞아 주었다.
“안녕하세요~”
“헛! YBY네요. 팬입니다. 하하.”
프로듀스 시즌3 출신의 상큼한 일곱 소녀의 환영에 호수는 매너 있게 웃으면서 일일이 악수를 해주었다. 김종한과 메이플도 엷은 미소를 지으며 함께 악수를 했다. 그리고 이정원은 YBY가 끝나고 마지막에 악수를 하며 그들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환영합니다. 이런 누추한 곳에 모시게 돼서 죄송합니다.”
“하하. 누추하다니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회사입니다. 그간 프로듀스 출신들로 만든 파생 그룹이 잘 되었던 적이 없었는데 그걸 최초로 깨지 않았습니까. 프로듀스 애청자로서 참 아쉬웠던 것이었는데 그걸 해내줘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호수는 정말로 고마워하는 얼굴로 양손으로 이정원의 손을 잡으며 반가워하였다. 그의 말은 맞았다. 사실 프로듀스는 프로그램 자체의 시청률과 론칭한 아이돌 자체는 언제나 대박을 쳤지만 그 외의 성과는 전무하다는 약점이 있었다. YBY처럼 최종 합격 명단에 들지 못한 연습생들끼리 프로젝트 아이돌 그룹을 만든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최종 합격을 하여 2년간 활동을 한 후 원 소속사로 돌아가 새롭게 만든 아이돌 그룹까지 모조리 다 실패를 했었다. 그런 이유로 시즌2의 합격자들부터는 대부분이 원 소속사에서 새롭게 출시하는 아이돌 그룹에 들어가기보다는 연기자나 솔로 가수의 길을 가려고 하는 편이었다.
후자의 경우는 상당히 큰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최종 합격 12인에 들 정도라면 분명 올스타 급의 멤버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이 고작 2년만 활동하고 그 후에는 아이돌로서 쓰지 못한다는 것은 상당한 낭비였다.
이런 비판을 받은 뮤직바이블은 이번 시즌5에서 변화를 주기로 했다. 최종 합격 멤버들의 활동기간을 무제한으로 둔 것이었다. 일단 3년간은 확정적으로 활동을 시키고 이후로는 해마다 합격생들의 원 소속사들과 협의하여 수익배분을 정하고 활동의 갱신을 결정하기로 했다.
그런 상황에서 무명 기획사였던 JW에서 시즌3가 끝나고 1개월 후 론칭한 YBY는 그 모든 징크스를 깨고 당당히 성공했다. 물론 시즌3 합격생들의 그룹만큼은 아니었지만 꽤나 근접할 정도의 성과를 냈었다. 당시 이정원의 행보는 모든 것이 박수를 받을 만 하였고 아이돌 판에서 이정원은 꽤 요주의 인물로 불리고 있었다.
“아이고. 김종한 님이시군요. 제가 발라드 노래를 좋아해서 김종한 님의 곡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영광입니다.”
“별말씀을...”
김종한은 호수와는 달리 상당히 뚱한 표정으로 이정원의 환대에 답하였다. 이에 이정원은 머쓱한 얼굴을 하며 메이플에게도 인사를 하였고 그녀는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해주었다. 젊은 여성 안무가 중에서 가장 스마일한 표정으로 유명한 만큼 그녀도 호수와 분위기가 비슷했다.
그렇게 이정원은 세 심사위원들을 모시고 연습실로 향하였고 그러면서 자기 회사에 소속된 4명의 연습생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주었다. 호수와 메이플은 이것에 고개를 끄덕이며 주의를 기울였고 김종한은 그런 것은 무대를 봐야 제대로 알 수 있다면서 별로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 심사위원과 연습생들의 만남이 이어졌고 신민경을 포함한 네 연습생들은 그간 열심히 준비한 ‘예쁜 애 옆의 예쁜 애’를 편곡한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