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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빙점하의 고도
작가 : ksc3239
작품등록일 : 2019.10.2
조회 : 0    글자 : 0    선호작 : 00   

시놉 (빙점하의 고도)

시놉: 1)★성격 2)★기획 및 집필의도 3)★주요 등장인물 4)★전체 줄거리.

1)★성격 : 자아 찾기
‘절대자’로서 능력은 침묵을 지키는 자연현상이다.

2)★기획 및 집필의도
폭풍주의보가 내려진 파도 속에서 해난을 당한 부원들이 각자의 의지와 능력대로 최후의 순간을 맞아할 때까지 탈출구를 모색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연현상의 불가피한 영향권에서 삶과 죽음이란 행·불행으로 예속되듯 나눠진다.
정녕 죽음을 맞이한 선장 이하 여러 부원들에게 구원자로서 곧 신격화 된 그들의 ‘절대자’는 사뭇 우주의 어느 공간에서 침묵만을 지키는 것 같다. 마치 생명체가 한사코 추구하는 ‘절대자’, 그게 어떤 형태의 허상으로든 광활한 공간에 존재하고 있었던지 모르는 것처럼···.
예컨대 생명체로서는 조물주의 능력을 시험할 수 없는 영원을 구가한다. 그런대로 죽음의 순간 ‘절대자’는 어떤 무형(無形)의 존재, 혹은 유형(有形)의 존재로 분류될 수 있는지 모른다. 어쨌든 창조자로서의 조물주, 그 ‘절대자’야말로 불가사의한 우주의 행위자처럼 막연히 느껴질 뿐이다. 이를테면, ‘절박한 죽음 앞에서 탈출해야 할 생명체가 진실로 그 무엇을 더 이상 부르고 숨 쉬어야만 하는 것일까.’
유신론자로서 무형의 ‘절대자’와 무신론자로서 유형의 ‘절대자’로 나눠 볼 수 있는 까닭 밖의 또 다른 ‘절대자’가 없지 않다면 나름대로 내다보고 싶은 희망사항이다. 그럴 테지만 그 모든 것을 무시한 자신의 의지와 행동처럼 마침내 생명체로 죽음을 맞이할 경우 최후의 바람은 또 다른 우주공간의 그 어떤 ‘절대자’로서의 존재였을까?
막상 삶이란 운기(運氣)가 다할 X분 후 이 지구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릴 생명체는 갖은 자신의 의지와 번뇌, 그리고 그 가운데 환영과 환상을 떠올리면서 줄곧 막다른 의식의 흐름을 쫓아가지 않겠는가?!
비록 최후의 순간, 형체가 뚜렷이 내다보이지 않는 가수상태의 혼미한 정신력에서 등장하는 무형의 ‘절대자’와 그 주변을 둘러싼 허상의 정령이든 요정이든 상대적인 대상의 본성을 한시적으로 느끼듯 간접체험하고 있을 따름이다.

3)★주요 등장인물••
구인모(47세) : 선 장
한상오(56세) : 기관장
정지승(36세) : 일항사
성윤기(42세) : 일기사
차정수(58세) : 조기장
이학봉(40세) : 기고수
조경욱(33세) : 일조수
우현태(29세) : 이기사
외 여러 부원들

참조 : 천지호 부원 직급 및 인명
선 장 구인모••
(갑판부) (기관부) (통사부)
기관장 한상오•• 통신장(국장) 김수만•
일항사 정지승•• 일기사 성윤기•• 통신사(차석) 심일섭•
이항사 박돈영• 이기사 우현태••
삼항사 곽상배• 삼기사 하원식•
실습생 이지함• 조기장 차정수••
갑판장 황덕보• 기고수 이학봉•• 조리장 백만복•
갑고수 오종규• 펌프수 김대영• 조리사 김수빈
일타수 김연철• 일조수 조경욱•• 일사원 신해진•
이타수 공영식 이조수 최득만• 이사원 윤덕필
삼타수 김길수• 삼조수 박수한•
일갑원 권달수• 일기원 이형직•
이갑원 신 호• 이기원 박수도•
삼갑원 이청룡 삼기원 임흥길•
사갑원 이홍철• 사기원 임경출•
오갑원 박민수 오기원 이민섭•
견갑원 김중태 견기원 노동빈•
총원 38명
4)★전체 줄거리
장생포를 출항한 중량총톤수 7,700톤 급 유조선 천지호가 인천을 향한 남해 해상에서 항해를 계속한다. 그날 오후 4시경 선미루 갑판위에서다. 본선 몇몇 부원들의 대화 가운데 기관부 직장인 환갑을 바라보는 차정수 조기장과 그 아래 직책으로 불혹의 이학봉 기고수와의 모호하기 그지없는 설전은 우현태 이기사를 비롯한 몇몇인가의 부원들로 하여금 웬 당혹스런 분위기 속에 몰아넣는다.
차정수가 미신 같은 걸 믿지 않았던 것처럼 결코 형체조차 알 수 없는 ‘절대자’, 신격화된 존재를 부각시키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는 어떤 ‘절대자’의 존재인가를 잠재의식 속에 숨겨둔 듯이 무엇인가 토해내는 그의 별명 그대로 발설자(發說者)다. 그가 선미 뒤로 트롤링낚시를 끌고 있는 이학봉의 취미생활에 아주 못마땅한 관심 밖의 부정적인 넋두리를 펼치는 것도 또한 그렇다.
강인한 체력을 가진 이학봉은 과업시간 외 자신의 도락(道樂)만은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독백을 즐기듯 마치 악질적인 어떤 거대한 백상아리 한 마리를 잡겠다는 집념적인 취향은 왠지만 차정수에게 그 어떤 ‘절대자’와 연관된 사실로써 횡설수설한다. 차정수는 얼빠진 그런 이학봉에게 소름이 끼치는 일이라고 아예 그의 취미생활을 그만두도록 마구 꾸짖어댄다. 감히 어선도 아닌 상선에서 엉뚱한 의도는 마치 에이헙 선장이 ‘모비딕크’를 추적했듯이 이윽고 몰락하고 마는 도깨비짓과 다를 바 없는 행위라고 반박한다. 그처럼 신랄한 시비를 벌리듯 그들의 말싸움을 엿듣고 난 후 우현태는 형체 없는 어렴풋한 어떤 가상의 절대자와 식인상어의 환상에 쫓겨 다닌다.
그런 일이 일어난 방과 후, 천지호가 악화된 기상 속에서 무중항해를 하고 있던 그날 밤이다. 운 사납게 레이더 고장을 일으킨 천지호가 한국 남서해 외딴섬 병풍도에 충돌, 좌초하고 만다. 그러자 부원들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쳐 나가야할 극한적인 상황에 부딪친다.
우현태는 처음 당하는 해난이란 도저히 믿기지 않은 장벽 속에서 목숨을 고수해야만 되는 막다른 장소를 떠올린다. 곧 그는 구인모 선장의 명령대로 선체 위, 바로 자기 자신이 역시 내다본 선(善)의 상징이었던 배 그곳이라 나름대로 정의한다. 하지만 바라마지 않았던 우현태의 기대는 어느덧 험악한 폭풍우에 둘러싸인 채 뭉개져 버린다.
차정수가 그리고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상징성 농후한 해신을 좇는 한상오 기관장이 그랬었듯이 현실은 우현태가 유추한 몇 차례 지순한 기도 속에서도 비치지 않는 어떤 무형의 ‘절대자’, 아니면 어떤 바람으로써 떠올린 유형의 ‘절대자’, 그 모두가 모호한 대상이다.
마침내 선박포기 명령이 떨어진다. 우현태가 침실에서 퇴선장구를 갖추는 동안, 뜻밖에 나타난 방문자는 서른을 넘긴 사고무친의 조경욱 일조수와 늙은 차정수 조기장이다. 탈출구가 묘연한 그들은 어떤 구원을 구하듯이 어딘가 서로 견해가 다를 뿐 목적은 비슷한 주장을 마치 절실한 자기 자신의 신조처럼 뱉어낸다.
침실에서 떠난 후, 우현태로서 결코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것은 선체가 점점 침몰돼 가고 부원들이 좌현 견시대 쪽 조타실에서 톱 브리지 위로 탈출하던 무렵 불가피하게 떠올려지는 ‘절대자’란 존재의 형상이다. 형용할 수 없는 그런 형체는 조경욱이 견시대 안쪽 키를 덮치는 파도 밭 난간 밑을 기웃거리다가 혼자 말로 ‘저 사람들이 왜 오르지 않는 거죠?’ 하고 투덜거리던 그때, 어쩌면 무서운 존재로서 어떤 악령인가 머릿속에 비쳐진다. 어쨌든 조경욱을 뒤따르는 부원들의 그림자는 왠지만 흔들리지 않고 있었던 터다.
한 순간 허전한 느낌을 던지는 조경욱의 의혹적인 말투에 우현태는 그간의 황망 중에 뚝 끊어져 있는 등 뒤의 인기척을 돌이킨다. 정적 속에 묻힌 캄캄한 어둠속으로 시선을 떨어뜨린 곳에 역시 뒤따르는 부원은 아무도 비치지 않는다. 아마 그들은 조타실 입구 목재 도어 쪽에 그대로 버티고 있는 몇 부원들이라 느껴진다.
어떻게 된 셈일까? 몸집이 작고 좀 겉늙은 모습의 김수만 통신장과 어딘가 완고한 성격형의 젊은 심일섭 통신사···, 그러니까 심일섭은 오늘 저녁 무렵 선미루 갑판에서 신해진 일사원에게 눈을 부라리며 ‘감히 신을 의심하다니?’ 하고 거칠게 목소리를 터뜨리던 장본인이다. 그때의 일들이 머릿속에서 빠른 영상처럼 스치는 우현태는 곧 그들이 그 어떤 ‘절대자’의 존재와 그 믿음으로써 모든 사물을 내다보았던 게 아닌가, 느껴본다. 그리고 그와 함께 버티고 있는 김수만 통신장은 그 역시 어떤 ‘절대자’인가에 의지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하긴 부원들이 모두 떠나버린 그곳이 피난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아주 상식적인 일이어서 도대체 그들의 흉중은 알 길이 없다. 마치 어떤 악령이 나타나서 그들의 이성마저 사로잡아둔 건지 어처구니없이 태연한 그들의 처신이다.
우현태는 ‘아, 역시 그랬구나,’ 싶어 그들의 행동거지가 이해되지 않을 만큼 난감하다. 그야 그들과 함께 버티고 있는 신해진은 오늘 방과 후 선미루 갑판위에서 심일섭에게 ‘바다의 신이란 기 어드메 있능교?’ 하고 경상도 사투리로 천진스레 물었던 애송이 부원으로서 그 동안 그들에게 동화돼 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역시 믿어마지 않는 알쏭한 어떤 ‘절대자’와 함께 안주하고 있는 듯 모두가 익히 알만한 통사부 부원들이다.
조경욱이 냅다 그들에게 무엇을 확인시키듯 소리친다.
“거긴 당신네들 밖에 없죠? 위험해요, 위험! 아시겠어요?”
정작 불퉁한 자신의 버릇처럼 그가 그들을 협박하고 나섰지만 그들은 힐끗 상대방을 쳐다볼 뿐 막무가내다.
우현태는 가슴이 멍청히 내려앉는다. 뭔가 그들은 마치 그 누군가로부터 사주를 받은 금괴를 넣어 둔 듯한 백을 양팔로 틀어 안고 있는 태도다. 그러고서 도어 쪽에 등의자처럼 기대어 보금자리라도 차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기가 막히는 광경이다. 움직이지 않고 도어 쪽에 머문 그들은 마치 ‘안락사 좌석’에 편안히 걸터앉은 듯 엉뚱한 일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왜 그래요? 당신네들··· 거기선 꼼짝없이 당한다구요. 사람 말이 들리지 않아요? 거긴 바로 지옥이야. 지옥···!”
조경욱이 짜증을 잔뜩 섞어 거듭 위협적인 말투로써 그들에게 경고했으나 어떻게 된 영문일까, 정녕 어디에다 정신을 뺏겨 버린 그들은 오히려 그러는 조경욱을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것 같다. 글쎄, 그러던 그들은 그 사이 어떤 절대자와 엄밀한 의사타진을 해두었던 것처럼 내다보인다.
우현태가 갑갑한 끝에 크게 소리친다.
“늦장 피우면 안 됩니다! 우리는 파도와 싸워 이겨야만 해요!”
그와 동시, 기둥에 묶어둔 로프가 겨우 일렁일렁 흔들린다. 이윽고 그들이 행동하는 것이다. 우현태는 그렇듯 지레짐작하고 더 늦지 않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곧 그들의 자리를 비켜 주기 위해서 좀 더 위로 오를 자세를 다시 취한다. 그런데 무엇 때문인지 조경욱은 갑자기 울먹이는 목소리로 또다시 떠들어 붙인다.
자기들 몸에다 로프를 감아대고 있는 그들은 죽으려고 환장을 했다는 것이다.
‘정말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우현태는 뭔지 모를 멍한 기분마저 든다. 그는 몸을 틀어 조경욱의 머리 위 부시는 파도 빛 속으로 기웃 내려다본다. 역시였다. 조금 아까 그들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내다보았던 것은 속단이다. 조경욱의 말 그대로 그들은 목재 도어 쪽 나둥그러진 만국기 박스 곁에서 서로가 로프를 당기고 자신들의 몸뚱이에다 칭칭 얽동이고 있는 것이다.
참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런 정경은 어떤 악령의 존재가 그들을 사로잡고 쓴웃음을 흘리는 묘한 분위기다. 마치 어둠의 가면을 쓴 악령이 순간 비말을 흩뿌리는 주변에 삼엄한 정적을 깔고 있는 듯···. 그러고는 ‘외계는 조용하라!’ 하고 의식적인 주의를 태연스레 환기시킨다.
조경욱이 냅다 소리친다.
“제길, 사기만 당했던 사람들인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어? 이봐! 여기는 바로 ‘뭍’으로 가는 길이 아직도 있다는 걸 분명히 알아둬야만 돼!”
‘뭍?’. 언뜻 그건 ‘천국’과 같은 동의어처럼 우현태에게 들린다. 그런대로 아랑곳없는 조경욱은 신랄한 조롱을 연이어 섞어낸다.
“어이, 신해진. 알아듣겠어? 제길, 이야! ‘헬리콥터’가 이리로 날아들면, 네놈은 아예 탈 수도 없어 흐흐흐···, 그게 바로 구세주란 말이야, 알간?!”
그렇게 흐느끼면서 신해진 한 부원만이라도 엄포를 놓아 타이르던 그가 돌연 그들을 내팽개치듯 벌떡 허리를 펴고 일어난다.
“으흐 쓰, 이러다간 우리까지 당하겠어요.”
그리고는 우현태에게 갈 길을 서둘러 거푸 소리친다.
“자, 이기사님! 그들이 죽든 말든···. 그만 위로 올라서세요.”
이때 다시, 외판 위쪽에서 정지승 일항사가 급박하게 파도를 경고한다.
“···전달, 파도다!”
“···?!”
“파도다!”
엉겁결이다. 우현태는 견시대 안으로 외쳐낸다.
하지만 견시대 쪽 조타실 입구 목판 도어가 깨어지면서 그들은 끝내 발판을 잃어버리자 모두 파도의 물결에 휩싸여 죽음을 당하고 만다.
그 후 조경욱은 부원들의 집결지였던 선교 위쪽 현등 홈에서 어떤 무형의 ‘절대자’가 아닌 마치 유형의 ‘절대자’의 이름을 불러대듯 오직 ‘헬리콥터’만을 믿어마지 않은 듯 줄곧 기다린다. 그러나 현등 홈에서이다. 뜻밖에 조경욱과 함께 마주친 최득만 이조수는 바로 조경욱의 오른편 곧 우현태의 왼편 한 가운데에서 어떤 무형의 ‘절대자’에게 절실한 기도를 올리고 있었던지 모른다.
하여튼 그러던 동안 선장의 명령을 어기고 선체를 이탈하는 자도 없지 않았다. 그들은 선박포기 후 구명정을 하강하고 바다 위에서 파도와 싸우고 있었던 이학봉과 그를 추종한 세 부원들이다. 또 다른 한 부원은 일단 집결지에 머물고 있었던 중년기의 성윤기 일기사로서 그는 파도를 뚫고 암벽에 올라가서 부원들을 구조해야 된다는 어째 죽음을 무릅쓴 모험을 감행한다.
그가 선장과 기관장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선수와 암벽 쪽을 향하여 기어코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한갓 기대감을 던져준 것은 바로 성윤기가 그간 정지승이 보관하고 있었던, 하나의 가는 로프 다발이다. 그것을 돌려받은 그는 파도를 헤치고 선수에 나아가서 암벽을 타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뜻을 굽히지 않은 그는 모험을 결행하자 끝내 파도에 휩쓸려 로프마저 잃어버리고 만다.
그때껏 바다로 뛰어든 부원들은 모두가 파도에 휩싸여 들고 만 것이다. 왠지 무형의 ‘절대자’가 선체를 이탈한 그들의 모험을 전혀 용서하지 않았던 것 같다.
부원들은 선체가 점차 침몰되어 가자 거세지기만 하는 파도를 피하여 선교의 맨 꼭대기 톱 브리지 목판 위로 모두 모인다.
조경욱이 어쩌다가 기대하고 뱉어낸 말투로써 으레 기다릴 수밖에 없는 ‘헬리콥터’가 기상주의보 속에서 결코 나타나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다. 또한 차정수가 최대한 목판의 부력을 유지토록 선동하던, 무게 나는 짐 덩이는 물론 심지어 안전모며 구명조끼까지 바다 위로 벗어던지는 결코 장본인 이외의 다른 부원들은 그렇듯 비치지 않는다. 급기야 부원들이 의지하고 있던 목재의 톱 브리지마저 몰아치는 일격의 파도에 강타되면서 선체에서 유리된다. 그 순간은 한꺼번에 많은 부원들이 사라지고 있는 아비규환 속이다. 아니 아귀지옥과 같은 살벌한 인간 도살장이 그곳이다.
목판 톱 브리지가 선체에서 완전히 떨어져나가기 직전 여러 부원들과 함께 다시 철제의 현등 외판 위로 뛰어내린 우현태와 조경욱은 곧 죽음직전의 순간을 맞이한다. 바로 우현태의 곁에 붙어 조경욱이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동시에 그 누군가의 목숨을 위한 살인을 저질렀던 게 그때다. 정녕 그때야말로 조경욱이 현등 외판 위에 배를 깐 채 벼랑길 밑으로 또 누군가가 그의 멱살을 붙잡고 늘어져 있는 한 사나이를 제거하지 않으면 부원들이 모두 연쇄적으로 낭떠러지에 떨어져 최후를 맞이할 흑황 빛 지옥이 훤히 비치는 곳이다.
돌이킬 수 없는 절체절명의 그 순간, 충격적인 살인의 동기는 조경욱을 붙잡고 어디다 대고 손발이 다 닳도록 빌어 제치듯 경악하는 최득만의 울부짖음이 일어난 바로 그때다. 하필이면 그가 웬 ‘절대자’의 이름을 들먹거려 자신뿐 아닌 여러 부원들의 목숨을 애원하고 있었을까!? 섬뜩한 전율이 살벌한 지옥의 구렁텅이 깊숙이 전이되는 순간이다. 강파른 그 무의식적 원인제공 때문에 삼엄한 모든 흐름이 정지된 어둠속에서 갑자기 비수가 번뜩이듯 조경욱의 억센 주먹이 허공을 가른다.
아, ‘절대자’는 어느 공간에서 분노하고 있었던 것일까? 분명 조경욱은 그 아찔한 찰나적 순간 어디엔가 의식을 빼놓은 듯 미쳐 있었다. 도대체 유형의 ‘절대자’를 기다리며 믿어마지 않던 그가 어떤 무형의 ‘절대자’를 도외시했을지 모를 타성적인 돌발적 행위였을까?! 그처럼 미쳐버리지 않았다면 아마 그건 순간의 무의식만도 아닌 잔인한 의식적인 행위였던 것일까. 오로지 부원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헬리콥터’만을 갈망할 수밖에 없던 그가··!? 곧 그것이 우현태로서는 맞춤식 어떤 유형의 ‘절대자’의 행위처럼 내다보았던지는 모른다. 그때 우현태는 바로 목판 톱 브리지 쪽을 넘겨다본다.
목판은 철재의 현등 홈에서 서너 길 거리를 유지한 채 사납게 술렁거리는 물결에 부딪히자 수직의 형태로 솟구치다가 제자리로 박히며 도리질을 쳐댄다. 그런데 기우뚱, 치솟는 톱 브리지에서 곧장 한 길 더 밑으로 떨어져 버린 한 부원이 밑둥치 참 어딘가에 발판을 삼아 변두리로 둘러쳐진 쇠사슬을 붙들며 겨우 버텨 선다. 그가 그곳에 멈춰 있는 한 용솟음치는 파도 때문에 몹시 위태롭다.
잽싼 동작을 대번에 취하지 못하고 방향감각조차 잃어버린 그는 기름투성이의 한상오 기관장이다. 나붓거리는 지주에 발을 딛고 선 채로 연신 된 숨소리를 뿜어내는 그가 아예 중유 가스에 질식된 듯 기진하고 있는 몸짓이다.
사납기만 한 물결은 먹이를 쫓는 악 상어 떼의 저돌적인 습성처럼 날뛰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한 순간, 날카로운 꼬리지느러미를 휘젓듯이 크게 너울질 치는 파도가 그의 몸뚱이를 깊숙이 묻어 버린다.
지진처럼 뒤흔들리던 목판이 치솟아 오르자 거기에 이윽고 그는 눈에 띄지 않는다. 소용돌이치는 물결이 세차게 밀려나간 기름투성이로 형성된 늪지의 밑바닥에서도 그의 흔적은 사라진 채로다. 그리고 잠시 후, 콜타르 냄새가 물씬 풍기는 늪지 위에서 무엇인가가 갑자기 휘덮인 물결을 헤치고 솟구친다. 난데없이 한 마리의 용이 용솟음치듯 등천하는 이상야릇한 형체다.
기진해 버린 한상오가 이윽고 늪지 밑바닥에서 밀물을 타고 시도한 최후의 도약이었다. 동시에 그는 허공에서 머리를 꺾듯이 회전을 일으키자 물결 위로 떨어진다. 그리고는 이내 소용돌이쳐 밀려나가는 물살에 묻혀든다.
순식간 늪지 위에서 완성된 경이적인 높이의 도약을 그리고 그의 흔적을 우현태는 멀거니 정적이 가라앉은 물결 위로 쫓아간다. 그 갑작스러웠던 정경을 다시 한 번 저만치 펼쳐내면서 어쩌면 우현태는 어느 ‘해신’인가를 과연 믿었던지 모를 한상오가 마치 용이 되다 못해 혼백이나마 승천한 것 같은 어떤 긍정적인 형상을 줄곧 떠올린다.
우현태는 x분 후 저 생지옥에 떨어지는 자기 자신을 비춰본다. 바로 거기서 누구나가 목숨을 붙이고 있는 동안 정녕 무엇을 생각하며 숨을 다하는 것일까? 자기가 당할 그런 고뇌의 끝은 그로서 생명을 잃어버릴 시간이다. 그런 죽음에 앞서 우현태는 절박한 그 시각에 무형의 ‘절대자’란 과연 무엇인지, 혹시 그 어떤 ‘절대자’를 마지막 순간 딱 한 번 불러보면서 필경 자기가 ‘절대자’를 긍정 또는 부정할 지도 모를 유·무신론자로 변신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불현듯 일으킨다.
그렇듯 한 번은 어떤 ‘절대자’를 부르다가 숨을 거둘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그곳에서 그러나 최후에 불러볼 수 있는 자신의 의도가 때로는 각박한 초분에 쫓겨 실현 불가능할 경우도 없지 않을 게 아닌가. 그 이전 어떤 무형의 ‘절대자’를 간절히 불러보면 어떨까? 우현태는 늦지 않게 체험할 죽음과 사후의 고뇌 속에 묻힌다.
그러다가 우현태는 어떤 계시라도 듣기 위해 가상의 ‘절대자’를 환각한다. 그러나 왠지 ‘절대자’는 꾹 입술을 다문 채로다. 내내 침묵만을 머금는 입술에 무엇 때문인지 설핏 쓴웃음을 띄운다. 갑자기 외면하는 듯 그 웃음은 너무도 싸늘해서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싶은 당혹스런 의혹이 언뜻 우현태의 의식을 일깨운다.
그 와중, 우현태는 눈꺼풀을 활짝 열어젖힌다. 그 순간 황량한 칠흑빛 속에서 아무 형체가 비치지 않는다. 휘 돌아치는 진한 흙빛 어둠이 쏜살같이 몰려든다. 세차게 소용돌이치는 회오리바람이다. 그것은 멍한 가슴에 덩어리째 붙박이면서 구멍을 펑, 뚫어내고 온몸에 침투한 채 모든 묵은 찌꺼기를 씻어내듯 세포조직 속까지 뻗혀 귓전에서 울어댄다.
멀리서 울어 에는 회오리바람은 웬 깨달음을 짚어주는 허무하기만 한 맹한 느낌을 던져줄 뿐이다. 무엇보다 누구에게 거기서 지레 절대자를 보았다고 입 밖에 내놓을 수 있다면 그게 곧 허튼 수작이라는 것이다. 아니 어쩌다 그랬다간 어느 누구는 역으로 무슨 천벌을 받을 깊은 수렁 속에 빠져드는 감회다. 참 뭐라 형용해야 좋을지 모를 전율적인 환각에서 이뤄진 현상이다.
우현태는 그 모든 기억을 되돌려 한 동안 깜박했던 자신의 주변을 환기시킨다. 곁의 나뭇등걸 같은 살인자의 형체를 의식하고 그제야 그는 느즈러진 자신의 기도의 자세를 더 부끄러울 수 없이 풀어 제친다. 그리고는 얼른 오른쪽 팔뚝을 뻗어 그 동안 곁에서 함께 머물었던 살인자 조경욱을 더듬는다. 그러나 손아귀에 그의 덩치가 집히지 않은 어둠속으로 가파른 외판 낭떠러지만이 비친다.
우현태의 등 뒤로 망부석처럼 시커먼 그림자를 드리우고 버텨 서 있는 자가 조경욱이다. 언제 그가 자리를 옮겨 거기서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현태는 그때껏 그의 동요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게 의아하다. 아마 그때 환각 속에 묻혔던 우현태로부터 외면당한 조경욱이었던지 모른다. 바로 그가 얼마나 상대방를 경원시했던 것일까?! 우현태는 자신의 엉뚱한 행동거지 때문에 미안쩍고 더없이 후회스런 자괴감 속에 묻힌다.
그런데 살인자 조경욱은 순식간 덮씌워진 파도의 그림자를 등진 채 벼랑길 밑으로 몸을 던지고 만다. 철썩이는 물결소리가 늪지 위로 뻗히자 웬 파도 빛이 쓴 웃음을 날리는 듯 흩어진다. 우현태의 눈살이 내리깔린 곳에는 언제 어떻게 미쳐버렸는지 분명 그 살인자 혼자뿐이다. 아예 그럴 수 없이 못난 행위자로서 그 사나이는 벌써 머리꼭지까지 번뜩이는 중유투성이로 비쳐 있을 뿐이다.
우현태는 ‘절대자’의 정체인가를 새삼스레 되새기듯 떠올려 본다. 그런 존재를 불러일으킨 것은 보다 이해하고 싶은 착각이다. 하지만 그는 갖은 의식적인 환영과 더하여 정령들의 놀음 속에 묻혀 든다. 그렇듯 정령들은 또 어디서·어떻게 존재하고 나타나는 것일까!? 우현태가 여전히 모든 고뇌와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다. 물결을 타고 기이한 휘파람소리가 혼미한 의식 가운데 들린다. 어느 전성관 쪽에서 공기가 흐르는 마개 빠진 휘슬 소리처럼 엇비슷하게 거기서 갖은 법석을 피우는 마치 정령들의 움직임이 어렴풋이 비친다.
무엇보다 온갖 정령들의 반사적인 행동은 최득만에게 저질은 그때의 불가항력적 조경욱의 살인행위로 꼬투리를 잡는다. 물론 우현태의 텅 빈 가슴 속에 새겨져 있는 그 싸늘한 가시적 ‘절대자’의 환영에 빠져 있었을 때, 곧 자신이 의식하지 못한 수상스러운 조경욱의 극한적인 결단에서 비롯된 소란이다. 그러니까 그때 살인자가 얼마나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던지 그예 자리를 차고 일어나서 뜻하지 못한 자살행위를 저질렀을 것 같은 의혹과 뚜렷하지 않은 의식적 추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던 얼마 동안인가, 우현태는 그들의 시끄러운 놀이와 갖은 허튼 소리에 개의치 않는 듯 이윽고 늪지 위로 응시한다. 거기에는 상식적으로 벌써 엎어져 깨어지고 형체조차 사라졌을 목판이 비친다. 그걸 탄 채 버티고 있는 얼마인가의 부원들은 모두가 아비규환 속에서 죽음을 당했을 생명들이다. 밑둥치만 반쯤 부서진 목판은 중유로 형성된 늪지 밑바닥의 어느 칼날같이 세워진 바위 틈바구니에, 아니면 그 바로 옆에 깔려 있을 우현 선교의 견시대 난간과 그곳 바위틈에 교묘히 박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파도굽이와 소용돌이치는 물결 속에서 껑충, 치솟아 오르다가 용케 제자리를 찾아서 기우뚱 흔들리면서 억척같이 지탱한다. 결코 예사스럽지 않은 현상이 그것이다.
우현태는 감탄할 그런 불변의 현실을 더 의심할 것 없이 받아들이듯 혼자 말로 ‘···기적!’이라 크게 뇐다.
하지만 주변은 한 동안 끝 모를 캄캄한 미궁 속이다. 그 속에서 뒤척이며 거의 무의식적으로 웅얼대던 우현태는 어느덧 모든 정령들의 정체를 수긍하듯 그들의 환영을 그때까지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현태는 언뜻, 칠흑빛 속에서 희미한 그림자처럼 노닐던 정령들을, 그리고 동시에 어디엔가 숨어서 조종하고 있는 웬 가느스름한 눈매를 떠올리며 쫓아간다. 언제부턴가 거기에는 웬 찢어진 눈초리 하나가 싸늘한 미소를 띠고 있었던 것이다.
우현태는 눈에 어린 아둔한 수마를 쫓기 위해 헝클어진 자신을 다잡는다. 한 순간이 지겹게 느껴졌던 그 운명적인 최후의 시각은 감쪽같이 얼마만큼 길게 연장돼 있었던 것 같다. 실상 ‘X’ 그 기점으로부터 수분 후, 아니 30분 후에 다가서리라고 짚어보았던 그 동안은 갖은 환영의 구렁텅이 속이다. 그 질곡의 한가운데서 시간의 흐름은 환각적인 갖은 환시 현상을 일으키고 이어져 나간다.
어쩌면 눈두덩에 부시는 환시적인 빛살과 어우러진 흐릿한 형상들이 회오의 고뇌 속에 묻혀들 때다. 누군가가 갑작스레 ‘불빛이다!’하고 외치자 우현태는 꿈결처럼 비쳐들던 혼미한 그림자를 헤쳐 버린다.
외판 위에서 터진 참 생소한 그 목소리는 오랜만의 기척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 동안 몇 번인가 터졌던 격정 어린 목소리로써 솔깃이 믿기지 않는 외침이다. 영 싱겁게 들린 그저 기대감뿐인 실없는 유혹이다. 낌새를 알아차린 부원들이 겨우 의식의 잠을 깨우고 고개를 쳐든다. 아니 그들 가운데 몇몇은 다시 한 번 활짝 눈을 치켜 뜬 채 한 순간 무엇을 더 바라고픈 은밀한 눈치를 서로가 던지고 있는 지도 모른다. 역시 저 멀리 내다보이는 것은 한밤중에 어쩌다가 한 번씩 나타나서 허공으로 지펴 있었던 서치라이트다. 그 빛을 내다본 부원들은 곧바로 속임수를 당한 실의의 분위기에 젖어든다.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린다. 좀 파도가 수굿해지니까 마지못해 형체를 드러내는 2차 대전 유물인 4천 톤급 수송선 시마비 형 인천호라고 수군댄다. 그 동안 인천호가 험난한 파도를 타고 오락가락거리고 차라리 동료들의 임종을 지켰던 것일까?!
우현태는 유난히 창백하게 부시는 그 수은등의 불빛을 내다보다가 저 멀리서 비치던 집어등을 떠올린다. 그것들은 아직도 저 먼 해무 속에 묻혀 있으리라, 싶다.
경비정은 어둠속의 잠수함이다. 등화관제를 취한 선체가 섬 기슭에서 시커먼 윤곽을 드러내자 넓은 시야 쪽으로 나아간다. 거기서 부연 해무를 뚫는 불빛이 저편으로 명멸한다. 인천호를 향해서 번쩍거리고 있는 발광신호다. 저 먼 거리의 수은등 쪽에서 잠시 후 응신이 일어난다. 그러다가 얼마 후 그들의 내통은 어지간히 가라앉은 희부연 비말과 해무 속에 뚝 그쳐 버린다. 경비정은 점점 시야의 안쪽으로 들어선다. 인천호보다 좀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선체의 중량 톤수가 가볍기 때문이다.
그러고서 얼마나 시간이 다시 흘렀을까. 일순 발그스름한 전지불이 도깨비 불빛처럼 목판 위로 켜진다. 두어 개 그런 빛살은 자못 흐려 결코 좋은 신호용은 못 되는 것이다. 해무 속을 뚫는 빛살이 이쪽으로 훤하게 부셔댄다. 썩 가까이 접근해온 서치라이트다. 빛살은 연거푸 번뜩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부원들은 더는 발광신호에 현혹되지 않는다. 마냥 침울한 눈빛으로 상대방의 동정을 살펴낼 뿐이다. 다만 몇 개의 회중전등 불빛만이 다시 켜져 빙글빙글 원을 그려댄다. 발광신호는 서치라이트로 바뀌자 섬 등성이 쪽으로 이리저리 비춘다. 그러다가 어둠속에 빨려든 그것은 다시금 침묵을 지킨다. 역시 해무 속에 묻혀드는 통 종잡을 수 없는 경비정의 동향이다.
저 먼 어둠의 공간으로부터 우현태가 고개를 돌려세운 지도 꽤 오래된 시간이다. 이런저런 서운한 잡념이 우현태의 머릿속에 몰려든다. 부원들은 거의 모두가 아예 암벽 쪽 칠흑빛 늪지 위로 멍청한 눈을 던져둔 채로다. 거기에서 죽음의 그림자가 형체를 드러내듯 허깨비 놀음을 다시금 지루하게 즐기는 듯하다. 야릇한 예감마저 던지는 그런 환영은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춤을 춘다. 마치 원혼들이 등장하고 있는 듯 어쭙잖은 형상들을 곧 부정해 버린 우현태의 눈에 어려든 것은 빙글 빙글거리는 반딧불이 같은 전지 불이다. 아니 누군가가 불빛을 여태껏 휘두르고 있었던지 모른다.
눈두덩에 부듯한 수마가 몰린다. 잠깐 눈을 붙여 수잠을 잤으면 싶은 피로감이 나른하게 덮친다. 설핏 가수상태로 빠져드는 듯하다. 무엇인가가 은근히 내다보인다. 깜박하는 순간, 그는 아련한 몽환 속에서 헤매듯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머문 꼭 정신착란증에 걸려든 환자 같은 자기 자신을 상기한다.
그러다가 그가 수면부족 상태에서 잦아드는 피로감의 후유증 속에서 몇 번인가 악몽을 꿔버렸던지 모를 머리를 휘 뿌린다. 경비정은 언제 다시 섬의 기슭을 돌아 등성이 뒤로 잠적해 버렸는지 통 알 길조차 없다. 부원들이 모두 냉담한 침묵 속에 갇힌 주변이다. 그러고 보니 목판 위로 발그스름한 빛살을 흘리던 반딧불이 같은 전지불도 캄캄한 공간속에 꺼져 있다. 멀리서 유난히 빛을 발하는 수은등만이 해무 사이로 한 번씩 드러난다.
그가 혼돈의 시간을 메우듯 깊은 바다 속을 꿰뚫어본 것은 그러고 나서 한참 후의 일이다. 그때껏 손목시계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어둠이 가득 가린 곳이다. 무엇인가 뺨과 콧등을 간질인다. 상기도 해풍에 실려 희끗거리는 듯한 엷은 해무다. 그런 게 막 눈에 얹혀 한결 어둠의 껍질을 벗겨내는 건지 희끗희끗 흩날린다.
우현태는 선체에서 떨어져나간 목판 쪽 어슴푸레한 빛살이 깔린 곳을 내다보다가 새삼 ‘기적’이라는 단어를 ‘자연적 현상’과 동의어처럼 대치시켜 연상한다. 그러고서는 어떤 ‘절대자’인가의 조물주와 우주공간의 질서정연한 별들의 궤도를 떠올린다. 순간 그는 집히는 게 있어 고개를 쳐든다. 깎아지른 암벽의 등성이 쪽에서 두어 발 거리를 둔 해읍스름한 새벽하늘 위로다. 그는 그곳을 향하여 등을 돌린 채 활짝 두 눈을 열어 제친다.
유난히 시야를 가득 메우고 다섯 날의 강렬한 빛을 흩뿌리는 별 하나가 망막 속에 박힌다. 엷은 해무 속의 신기루 현상처럼 그것은 주먹만큼 크게 돋보여 손에 잡힐 듯 낮게 떠서 곧장 하늘나라에서 내려선 전령자와도 같다. 마치 축복을 드리우고 있는 그것은 동쪽 하늘에서 매우 밝게 비치는 샛별이다. 우현태는 사뭇 그 비너스(venous )에 두 눈을 붙박아 ‘사랑과 미’의 여신을 내다보듯 지켜본다.
그는 어둠속으로 언뜻 무엇인가 내다보고 싶다. 그가 그러다가 고개를 좀 더 돌리며 한 부원의 옆구리 틈새로 멀리 시선을 던져낸다. 울퉁불퉁한 수평선이 거대한 원형의 납빛 톱날처럼 이글거린다. 희붐한 동이 저편에서 트고 있었던 것이다. 웬만큼 해무가 걷혀 있는 거무스레한 바다 위로 아직 두어 개 집어등의 불빛이 반짝거린다. 쓸쓸한 오렌지 빛살이다. 못내 어둠의 그림자를 걷어내듯 그게 정녕 생기 어린 빛살을 뿌려댄다.
창연한 하늘 속에서 별들은 빛살을 감추며 사라져간다. 그 하늘색과 대조적인 것은 섬 등성이 밑으로 시야를 가로막은 채 드리워져 있는 암벽의 어둑한 음영이다. 거기에는 선체로부터 떨어져나간 목판이 마치 외로운 섬처럼 물살을 타고 흔들거린다. 거의 수직으로 세워져 버린 뗏목 같다.
그 뗏목 위로 그지없는 침묵을 지키고 있는 부원들은 밤사이 대개 안전모를 날려버렸든지 쓰지 않고 있다. 게다가 시커먼 중유를 전신에 덮어쓴 채 누가 누군지 쉽게 분간되지 않는 흡사 흑인들의 얼굴빛이다. 열 명 미만인가의 부원들이 주로 목판의 꼭대기와 그 주변에 매달려 있다.
생존자는 외판 위에서도 십여 명 보일 뿐 어딘가에 더 숨어있는 지야 알 수 없다. 생각건대 선체는 공교롭게도 썰물이 끝난 곧 밀물 직전에 그리고 칼날 같이 쭈뼛한 암초 위로 얹혔던 게 분명하게 느껴진다. 아무튼 선체와 목판 위로 그지없는 침묵을 지키는 아직 20여 명 부원들인가 비친다.
우현태는 간밤에 시계가 멈추지나 않았으면 싶은 간절한 생각이 부질없이 일어난다. 물론 밤중에는 비춰볼 수 없었던 야광도 아닌 그 시계다. 흐릿한 유막이 가려 있는 유리표면을 흠뻑 젖은 소맷자락으로 훔쳤지만 적중된 예감이 눈 속에 박힌다.
하긴 쨀각쨀각···, 듣고 싶었지만 정밀한 기계음은 들려오지 않는다. 허전하기만 하다. 마치 자기 자신이 그 멈춤처럼 숨을 쉬지 않고 있었던 느낌이다. 그는 그 죽음과는 상반된 어떤 생명의 애착에 끌리며 곧 자기 자신을 위로하고 싶은 생각에 잠긴다. 육신에서 울리는 간절한 생명의 소리가 오히려 들려온다.
우현태는 문득 감탄하는 눈길을 한 부원에게 고정시킨다. 그가 분명히 등에는 구명조끼를 걸치지 않고 있는 늙은 육신의 차정수 조기장이다. 하물며 헤엄조차 못 친다고 했던 그가 아니었던가. 과연 그가 자신의 생명과 다름없는 그것을 벗어 던져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지난날의 수상스럽기도 한 그의 모든 언동이 새삼 우현태의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단연코 차정수가 그것을··· 곧 자신의 생명을, 그리고 타의 생명도 될 수 있는 그 구명조끼를 결국 자신과 모든 부원들을 위하여 벗어 던져버릴 수 있었던 용기가 우현태에게는 비범인의 행동주의자의 행위처럼 새삼 느껴진다. 평소 조기장으로서 과연 죽음을 초월할 수 있었던 그의 투철한 희생정신의 표본과 같은 어떤 질서를 위한 ‘분수·분별’을 분명히 여러 부원들에게 강조할 수 있었던 웬 고집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저것이 무엇인가? 기름덩이가 부연 물결 위에 군데군데 일렁이고 있는 곳이다. 곧 목판에서부터 시야의 바른편 저만치 기름거품에 싸여 희끄무레한 부유물이 비친다. 그게 오싹한 느낌을 던진다. 괸 개울물 위에 어쩌다가 회초리로 얻어맞고 떨어진 한 마리 개구리가 흰 배때기를 드러내고 있는 듯···, 그러나 그것은 회색 빛 구명조끼다. 언제부터 그 가벼운 것이 지금까지 물살에 휩쓸리지 않고 떠 있었던 건지 의심스럽다.
이때, 나직한 말소리가 수상쩍게 외판 위로 흐른다.
“선장님이 보이지 않는데요?”
무슨 말인가? 선장이 보이지 않는다니? 우현태는 목판 위로 두리번거리며 황망히 간밤의 기억을 돌이킨다. 분명히 그때는 구인모 선장이 거기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 때문인가? 그가 이상하게 비치지 않는다. 선장이 어째 계획적인 자살이라도 했었단 말인가? 그런 사실을 우현태는 강하게 부정한다. 아마 목판 저편에 숨어 있는 생존자의 한 사람이라는 예감만 스쳐간다. 왜? 선장이란 직책이 꼭 배와 운명을 같이 해야만 되는 것이었던가. 아무리 그렇다지만 선장이 자살했다는 데 대해서 수긍할 수 없는 의혹의 꼬리가 진한 색깔을 띤다. 아무튼 늪지 위로 부동하고 있는 이상한 회색빛 구명조끼다. 그것을 뚫어지게 내다보던 한 순간 우현태의 눈시울에 뜨거운 웬 눈물이 핑 돈다.
그러던 우현태는 잠시 후 암벽 쪽으로 시선을 던져낸다. 곧 간밤에 웅장한 폭포수를 펼치던 곳이다. 무엇 하나 붙잡고 매달릴 수 없었던 죽음의 계곡이다. 시커먼 기름을 머금은 절벽에서부터 골짜기에 이르기까지 미끄러운 이끼 위로 물기를 흘리는 그곳은 보얀 해무가 실오리처럼 엉키듯 짙게 깔려 음습한 정적을 스펀지로 흡수하는 듯하다. 써늘한 해무다. 그것이 골짜기를 타고 서서히 그리고 점점 깎아지른 암벽 위로 피어올라 거의 130미터 높이의 섬 등성이를 하얀 구름처럼 휘덮고 있다.
이른 아침 무렵 마치 어느 산마루에 걸쳐 있는 자욱한 해무의 정경이 이와 비슷했던 것일까. 그러나 거기에는 아직 그 따뜻하고 소담스런 햇살이 비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하늘은 잿빛 구름에 가려 우중충 변해 있다. 해무 철의 기상은 별로 좋지 않는가 보인다.
눈두덩 위로 얼핏 번뜩이는 섬광이 흐른다. 그러나 빛살은 섬 등성이의 해무 위 어디서도 다시 반사되지 않는다. 혹 잠재의식의 빛살이 시야에 스쳤던 것일까. 그처럼 환시적인 순간의 빛처럼 느꼈을 뿐이다.
난데없이 섬 등성이 위에서 호방한 웃음소리가 뻗혀온다.
‘하하하···.’
누굴까? 연기처럼 뭉클거리는 해무 속에 누군가가 숨어 있는 듯 혹시 환청을 일으키게 한 주인공은 희미한 형상의 이학봉을 닮은 그림자였던가, 느껴진다. 아니 그가 어느 신화 속의 거인 같다. 해무를 헤치며 등성이 위로 초연히 버텨서고 있는 환영처럼 돋보이는 그였다. 마치 바다를 향해 어깨를 쩍 벌린 ‘헤라클레스’ 자태가 그러하다. 그런 동작은 거대한 백상아리 한 마리를 낚아 올리는 몸짓과도 다를 바 없다.
눈두덩이 앞에서 퍼드덕거리는 거대한 그 악 상어 한 마리가 뿌듯이 비친다. 하지만 그건 지난 날 인도양에서 사이클론이 휩쓸고 지나자 천지호 고물 뒤로 끌려오던 바로 트롤링 낚싯줄에 걸렸었던 방추형 머리의 청상아리처럼 비쳐 보인다. 흡사 검푸른 바다를 가르고 솟구쳐 오르는 두어 길의 짙은 푸른색을 띤 몸빛처럼, 성질껏 놀아나던 놈은 곧 사양하는 태양빛을 받아 자디잔 물방울의 비늘 빛을 미끄러운 등과 배 위로 번쩍번쩍 뿌려댄다.
환청과 환각을 지우는 목소리가 곁에서 조용히 흘러나온다.
“‘역발산’이 정말 소식이 없은 께 영 모르것소잉?”
임흥길이 묻자 권달수가 암벽 쪽 자욱한 해무 속을 넘겨다보며 말한다.
“생존하고 있다면야··· 벌써 우리를 구조하려고 나타났을 게 아닌가?!”
삭막한 정적이 주변에 가라앉는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은 ‘역발산’ 이학봉은 물론, 그에게 동조했던 털북숭이 김연철 일타수, 그리고 백만복 조리장과 서글서글한 눈시울을 가진 김대영 펌프수, 모두 네 부원들로서 그들은 영 이곳 암벽 위로는 기척이 없다. 그들의 부재로 침묵은 한 동안 다시 이어져나간다.
아침 8시가 지니고 있다. 온몸을 으깨듯 한류의 냉기와 그래도 그 위로 온난다습한 대기가 교차되듯 해무 속에 엉겨 자못 바다는 아름다운 정경이다.
경비정은 저편의 덩이진 해무 속에서 나타나더니 점차 가까이 접근해온다. 전방 1마일 안쪽이나 되는 거리일까. 진한 잿빛의 선체에 씌어진 ‘TA―X’라는 하얀 빛 글씨가 선명히 부셔진다. 그것은 커다란 덩이를 이룬 해무 속으로 선체를 감춘다.
와그르르, 쏟아져 내리는 굉음이 울리고 있다. 막 권양기가 맹렬히 선회하고 있는 소음이다. 닻이 바다 깊숙이 떨어져 박히는 그런 울림은 한 동안 물결 위로 고적하게 들려온다.
그러다가 굉음이 뚝 끊어진 자욱한 해무 속에 정적이 고여 든다. 섬광이 해무를 뚫고 흘러나온다. 발광신호가 어디론가 밝게 부셔진다. 그러다가는 뚝 꺼져 버린다. 침묵은 계속 이어진다. 그 시간은 얼마나 흘렀던 것일까? 바다 위로 가랑비가 부슬부슬 흩날린다. 인천호는 해무 속에 묻혀 얼마 동안 섬광을 뿌리다가 시야에서 점점 멀리 사라져 간다.
여우비 날리는 뿌연 바다 위로 밀썰물 치는 파도의 주기는 간헐적이다. 암벽 쪽에 너울이 부딪치자 선체의 밑둥치를 휘감고 활 모양의 이랑을 크게 펴면서 저편으로 굽이친다. 여전히 높은 너울이 뻗치는 저 멀리 잘게 뒤집히는 조개무늬의 물결 위로 몇 개의 빨간빛 구명조끼가 햇빛에 부신다. 그 위에 얹힌 것은 하얀 파도 빛의 갈매기 모자다. 세 수병들이다.
덩이진 해무 속에서 가물가물 나타난 그 작은 배는 점점 머플러 소음이 들릴 듯 말듯 가까이 접근해온다. 이윽고 전방 300여 미터가 되는 거리다. 수병 하나가 꽤나 가불거리는 구명정을 잠시 정지시킨다. 비틀거리며 이물에 타고 있는 수병이 뭐라고 소리친다. 우현태는 잠잠히 귀를 기울인다. 잘 들리지가 않는다.
곧이어 그들은 서로 외치기를 중단하자 엔진을 걸어댄다. 하지만 커다란 활대를 펼치는 파도의 굽이가 달려 나가면서 이물과 뱃전에 부딪치자 구명정은 위태롭게 기우뚱거린다. 머플러의 소음이 꺼질 듯이 이어진다.
고물에 타고 온몸을 가누던 수병 하나가 재빨리 ‘ㄱ’자 손잡이 키를 옆으로 돌린다. 파도굽이를 가까스로 피한 구명정은 원호를 크게 그리듯 저편으로 이물을 돌리고 빠르게 나아간다.
괭이 갈매기가 울고 있다. 부원들은 적적한 울음을 좇아서 어느덧 삭막한 침묵을 지킨다. 그러고서 다시 한 시간 여 지난 꽤 한산한 바다 위로다. 흩뿌리던 여우비도 멈춰 있는 채 햇살이 엷은 해무 속을 쬐듯 하늘하늘 부셔댄다.
파도의 소리가 대자연의 숨결처럼 들린다. 숨을 들이고 내쉬듯 조수가 교차되는 곳으로 내닫는 커다란 파도굽이는 홍수 철 넘실거리고 흐르는 흡사 강물이다. 그 너머 덩이진 부연 해무가 부드러운 증기처럼 주변에 깔린다.
부시는 햇살을 받고 찌부러뜨린 부원들의 눈두덩 위로 부듯한 졸음이 덮인다. 우현태는 살포시 눈꺼풀이 감기는 수마를 일깨운다. 그러나 어느새 혼미해져 버린 그의 눈은 저 먼 바다 위로 고정된다.
해무 속에서 웬 회색바탕의 무엇인가가 아롱거리듯 비쳐진다. 망막에 희미하게 어리는 그것은 투명한 마치 작은 점 같은 크기의 형태다. 한 순간 미립자가 한 데 뭉쳐진 흑점이다. 그 흑점이 점점 확대되듯 이윽고는 크게 변환되어 간다. 거기서 무엇인가가 선히 내다보인다.
작은 고기잡이 배 하나가 미끄러지듯 달려온다. 그 위로 홀연 ‘역발산’이 어부로 변신한 듯 타고 있다. 바다 빛이 부셔대자 반사적으로 찌부러진 눈두덩 저편에서 정녕 무엇인지 흰빛의 물체가 비친다. 등 쪽이 회청색인 백상아리가 물결 위로 치솟아 오른다.
트롤링 낚싯줄에 걸린 듯 식인상어 그것은 강인한 ‘역발산’의 힘에 끌려들면서 쳐 던져진 곳은 곧 주갑판이다. 쇳소리를 내지르는 백상아리는 원뿔 모양의 커다란 주둥이 밑으로 겹겹의 날카로운 톱니빨을 드러내며 날뛴다. ‘역발산’이 동시에 무쇠 해머를 휘둘러댄다. 정수리에서 붉은 피가 비산한다. 피가 눈 쪽에 엉겨 흘러내리는 동안 아직 의식은 머문 건지 파랗게 눈빛이 변하면서 또 다른 그 어떤 눈초리를 투시해보는 듯 번뜩인다. 유난히 살기가 어린 눈빛이다. 그것이 핏빛에 싸여 부각되어 오자 우현태는 움찔 소스라친다.
우현태는 그새 잠결에서 요지경 속을 들여다본 듯 무서운 그런 환영을 새삼 떠올린다. 그러나 막 어디선가 물결 위로 깔리는 머플러 소음이 멀리서 이어져 온다. 보얀 해무 사이로 마침내 다시 나타난 것은 조그만 구명정이다. 그것은 작은 고기잡이배가 아니었기에 점점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갑판 위로 당연히 서로 반기며 웃음을 날리는 ‘역발산’ 이학봉은커녕 다른 낯익은 부원들이 비쳐 있을 리 없다.
역시 세 수병들이 거기에 타고 있다. 그들이 희소식을 갖고 오는 건지 모른다. 그런데 이번에는 우현태가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여 꼭 무슨 소리인가를 들어 보리라 마음먹는다. 파도가 한결 잠자고 있는 듯···, 하지만 그 작은 구명정이 구불텅구불텅 내닫는 너울을 얻어맞자 위태롭게 가불거린다. 기우뚱한 비행기의 한쪽 날개처럼 뱃전이 물결에 잠기면서 머플러의 소음은 꺼질 듯 간신히 되살아난다.
그곳은 처음 나타났을 때보다 썩 안쪽에 들어선 거리다. 구명정은 겨우 파도굽이를 피하여 키를 돌려세운다. 그러고서는 시야의 바른편으로 기우뚱거리는 이물을 꺾어두자 크러치를 빼고 조용히 미끄러져 나아간다. 이물에 앉아 있던 수병 하나가 몸을 일으켜 세운다. 상반신을 뒤로 젖히면서 나팔을 만든 두 주먹이 하얀 갈매기 모자 밑의 입으로 올라간다.
우현태는 그 수병을 주시하며 잔잔한 해면 위로 귀를 던진다. 철썩거리는 물결의 소음 속으로 외치는 소리가 이윽고 들려온다. 분명히 알아들을 수가 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들의 고함소리는 갑작스럽게 들리지 않는다. 삽시간 귓속이 멍해져 온 정적 속에 갇혀버린 그의 시야에는 소용돌이치는 어둠이 몰아친다. 그곳은 어느 결 캄캄한 장막에 가린 칠흑빛 속이다. 아니 태풍전야와 같은 정적이 그곳을 에워싸고 있는 것이다. 거기서 일진의 거센 회오리바람이 귓바퀴로 스쳐 지난다.
황량한 그 어느 공간의 바다에서 번뜩이는 눈초리 하나가 ‘역발산’의 이글거리는 눈빛에 어지럽게 꽂힌다. 날카로운 삼각형 톱니빨을 드러낸 핏빛 눈초리의 백상아리가 물결 위로 용솟음친다. 그와 동시, 바로 그 식인상어의 원뿔형 정수리 위로 내리꽂히는 육중한 해머의 쇳소리가 싱싱 반향 되어 간다. 그러는 순간 무엇인가 환각작용의 잔상이 얽히는 소란한 그의 머릿속이다.
선체 위로 완강히 버티며 악을 쓰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연거푸 귓속을 파고든다.
“야, 이 개새끼들아!”
“···.”
“웬 놈의 구조가 뭐, 이래!”
“···.”
멀리서부터 철썩이는 싸늘한 물결 위로 머플러의 소음이 뻗친다.
우현태는 물결의 저편 그 시끄러운 소음이 깔리는 곳으로 그제 확인의 눈을 고정시킨다.
시리는 바다 빛이 눈에 부딪혀 부셔진다. 가불거리는 구명정 위에서 세 수병들의 몸짓이 흔들린다. 그들 가운데 수병 하나가 곧이어 외쳐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이. 살고 싶은 자는 헤엄쳐 나오시오!”
그는 숨 막히는 그 소리에 그예 보다 자신을 평온하게 진정시키듯 귀를 기울인다. 그런데 그러한 외침은 거친 파도 등성이 넘어 울리는 막 연주되고 있는 타악기의 음률처럼 느껴진다. 파도 소리에 부딪치는 전위적인 불협화음 반향과 같은 그것을 한 번은 들어보아야 하듯 우현태는 애써 즐거운 감상을 위한 자세를 가다듬는다.
정지승이 자리에서 어정거리다가 일어난다. 어딘가 서둘지 않는 과묵한 모습의 그는 걸치고 있는 구명조끼 끈을 풀어댄다. 그러고서 잠시 주변을 휘둘러본다.
그가 구명조끼를 벗어 오른손에 옮겨 쥐자 목판 쪽으로 건너다보며 소리친다.
“자, 조기장님! 이걸 걸치세요! 우리는 제일 늦게야··· 여기서 함께 떠나는 거예요.”
그는 구명조끼를 훌쩍 차정수 앞으로 던져낸다. 멍한 표정의 늙은이가 잽싸게 그걸 낚아챈다. 갑작스런 일로써 그로서는 섣불리 정지승 일항사에게 뭐라 감사해야 좋을지 모르는 썩 어색한 표정이다. 한갓 자신의 결심에 개의치 않은 조용한 몸짓을 취하는 정지승은 아예 추위를 잊고 있는 듯 쌀쌀한 바닷바람에 나부끼는 마치 걸레모양 찢겨진 세일러 우의조차 주섬주섬 벗어젖힌다. 그가 본선에서 인명구조 역할을 담당하려는 듯···.
벌써 몇 부원인가가 밀물로 부풀리는 물살에 휩쓸리면서 헤엄을 치고 있다. 곧이어 뒤를 따르려는 한 부원이 비스듬히 몸을 세우고 일어난다. 저쪽의 누군가도 일어나서는 몸을 풀기 위한 간단한 준비운동을 하고 있다.
그 동안 제일 먼저 뛰어든 부원은 조금만 더 버티면 구조될 게 틀림없다. 우현태는 그제야 웬 저항적인 비굴한 생각을 저버린 마음을 다져둔다. 저 작은 구명정 모선의 천국과 같은 푹신한 침구에서 그는 거의 3일 동안 뜬눈으로 지새웠던 깊은 잠속에 우선 떨어지고 싶다.
그가 왼쪽 무릎에 눈을 준다. 핏빛이 물들여 있는 것 같은 찢겨진 감색 바지가 소금과 기름에 절인 채 펄럭거린다. 상처부위는 샛바람의 추위를 타고 몹시 쓰려드는 듯하다.
맨 먼저 뛰어든 부원은 마침내 라이프라인에 길게 매어진 부이를 움켜쥐고 구명정 쪽으로 끌려간다. 그러고는 노획된 한 마리 고기처럼 수병들에게 목덜미와 허리띠를 잡히면서 구명정 안으로 던져진다.
이윽고 우현태가 바다 위로 몸을 내던진다. 차디찬 냉기가 피부에 부딪친다. 언뜻 바다 속을 들여다보고 싶은 호기심이 앞선다. 물빛 속에서 무엇인가가 정녕 보일 것 같은 느낌이다.
그는 곧 바다 속 깊숙이 얼굴을 묻고 눈을 칩떠 앞을 내다본다. 파란 물빛 저편에서 얼핏 어머니의 모습과 함께 아내가 웃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웃음 이쪽에서 아예 칼날같이 시린 냉기가 피부에 삼투작용을 일으킨다. 애초부터 그건 살결 속 깊게 에는 성엣장과 다름없는 냉도였기에 어느 누구라도 거기서 한 동안 견뎌낼 수 없는 것이다. 역시 뼛속까지 오싹한 냉기가 갑자기 스며들자 그는 듬뿍 숨을 들이쉰다.
겨울철 바닷물 속에서 이렇듯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채 30분도 걸리지 않을 터였다. 온통 심장이 옥죄이면서 희미한 의식마저 캄캄 사라질 게 뻔하다. 그럴 때의 냉도를 얼핏 그는 ‘빙점’이라 일러본다.
얼음가루의 냉기는 온몸을 휘덮는 짜릿한 전율처럼 더욱 깊게 몸속에 박힌다. 경련을 일으키듯 굳어지는 근육은 나무토막 같다. 그와 동시, 그는 느슨히 몸을 풀어두면서 보다 천천히 마치 어느 고도(孤島)로 향하듯 헤엄쳐 나간다.
열기가 일고 있는 훈훈한 실내. 천국과 같은 푹신한 침대 속인데도 스산한 바람이 온몸을 휘감고 돈다. 발가숭이 몸을 덮은 모포 한 장의 온기가 뼛속까지 삼투된 냉기를 서서히 몰아낸다. 꿈결 같은 시간이 얼마 동안 흐르고 있었던지 모른다. 온전히 기억되지 않는 혼수상태로 그는 그 곤한 수마에 줄곧 떨어져 있다.
디젤 기관의 소음이 선실에 뻗친다. 프로펠러가 소용돌이치는 물결소리와 더불어 격벽을 우르릉우르릉 울린다.
누군가가 흔들어 깨운다. 그 순간 꿈결의 의식을 되돌린 그는 푸석한 눈두덩의 감촉을 느끼며 눈을 뜬다.
‘아, 이게 누군가?’
정녕 그의 시선이 꽂힌 그곳에 웬 중유투성이의 한 낯선 얼굴이 박힌다. 그는 모든 의혹을 떨쳐버리자 벌떡 허리를 굽혀 일어난다.
‘아, 선장님!’
뜻밖이었다. 희열만큼 입술은 떨려 영 발음되지 않는다. 실종자가 생존자로 뒤바꿔져 버린 구인모가 굳게 다문 입술에 쓸쓸한 미소를 띤 채로 버텨 서 있다. 분명 꿈속은 아니다.
구인모가 막 흘러내린 발가숭이 우현태의 어깨 위로 모포를 자상하게 덮어주면서 말한다.
“좌초 후··· 만 14시간만에 살아났었군, 그래.”
‘만 14시간···?!’
그 시간은 무슨 뜻인지 우현태는 흐릿한 기억 뿐 와 닿지 않는다.
“그 후엔··· 그럼 이기사는 전혀 모르고 있었겠군.”
대체 또 무슨 말인가? 깊게 가라앉은 틀림없는 구인모의 목소리다.
“이봐. 뒤늦게 무슨 불행한 이런 일이 또 일어날까? 정지승 일항사가···.”
“···네?”
왜?! 무엇 때문인가? 청천벽력 같은 소리다. 분명 난파선에서 떠날 때까지 생존했던 그가 혹 유명을 달리했다는 것일까? 뭔가 선장의 목소리는 꼭 뒤바꿔진 꿈속의 이야기를 나누는 듯 그지없이 구슬프다. 우현태는 애석한 얼굴빛이 역력한 구인모 선장을 넋 잃은 듯 쳐다본다. 충혈 진 그의 눈빛이 금세 어디엔가 쏠린다.
수병들의 떠들썩한 목소리가 싸늘한 파도소리에 실려 해치 도어 안으로 밀려든다. 구인모는 이내 몸을 돌린다. 그는 분주히 바깥의 냉기 속으로 뛰어나간다.
우현태는 한참 장벽 속에 갇혀 든다. 주변을 살펴봐도 이곳은 정녕 꿈속이 아니다. 엄연한 현실 속에 모든 것은 뒤얽히듯 드러난다.
불그스레한 전등 빛이 잿빛의 선실을 비쳐 내린다. 그곳에 나란히 놓인 상하 겸용의 철재침대 위로 조난부원들이 모두 드러누워서 안락한 수면에 떨어져 있다.
우현태는 군용 모포 한 장을 발가숭이 몸뚱이에 걸친 채 침대 아래로 내려선다. 왼쪽 무릎 부위로 하얀 붕대가 감겨져 있는 그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선장의 뒤를 좇아 밖으로 나선다. 수병들의 떠들썩한 목소리가 윙윙거리는 모터 소음에 싸인다. 지금 막 사체 한 구를 싣고 온 구명정이 데비트에 걸리고 있다.
얼음가루 바닷바람이 살갗 속을 후벼 파듯 꽂힌다. 선미등이 훤하게 밝혀져 있는 바깥 쪽 변두리로 칠흑 같은 어둠이 싸여 있다. 그 동안 벌써 해가 빠져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불빛을 받은 창백한 얼굴빛의 차정수가 구명조끼를 걸친 채 머리를 푹 숙이고 서 있다. 그 옆에 엄숙한 침묵을 지키는 구인모 선장이 함께 버티고 있다.
물결을 세차게 차대는 프로펠러의 진동 때문에 꽤 덜덜거리는 선미루 갑판위로 한 수병이 가마니때기를 들춰낸다. 사체 하나가 드러난다. 그 사체는 아직 구명조끼를 걸치고 있는 바로 살인자 조경욱이다. 그런데 그의 왼손 바닥에는 아직 지워지지 않은 검정 매직 글씨가 약간 빛바랜 색깔로 비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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