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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별일없음
작가 : 칩칩
작품등록일 : 2016.8.24

누가 잘 지냈냐고 물어보면 어 잘 지냈지라고 이야기 한다.
실제로 그럭저럭 잘 지내고는 있는데 일초 일초 틈 사이로 켜켜이
느껴지는
내가 기억하기도 하고 기억하지 못하기도 하는 일들은 늘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잘 지냈냐고 물어볼 때
상대방이 응, 이라고 할 거라고 예상하고 있고 실제로 그렇게 대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나는 상대방 몰래 상대방의 어느 순간을 안아줄 때가 있다.

 
퀼트
작성일 : 16-08-31 10:07     조회 : 458     추천 : 0     분량 : 3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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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종점

 어쩐지 바로 전 정류장에서 사람들이 모조리 내리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버스를 반대로 타서 종점까지 오고야 말았다.

 도대체 나는 고향에서 평생을 살고 있는데 왜 아직도 길을 잃어버릴까.

 

 암튼 얼떨떨한 상태로 남의 동네에, 밤에 혼자 나동그라져서 마음이 괴상했다.

 터벅터벅 걸어내려왔다.

 혼자 있을때는 배가 고픈지 안 고픈지 잘 알 수가 없고

 끼니 때 맞춰 챙겨먹으면 왠지 돈을 낭비하는 것 같기도 해서

 밥을 먹어야 할지 말아야할지 초조해진다.

 

 그냥 길 따라 내려오고 있는데 까만 밤 배경으로

 영화 속 일본 선술집 간판처럼

 국수집 간판이 별처럼 떠있었다.

 

 국수집이었지만 카페같았고 나는 나도 모르게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막상 들어가보니 카페같은 분위기는 문까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긴했지만

 어쨌든 나는 손칼국수를 주문했다.

 

 그런데 손칼국수는 마침 재료가 다 떨어져서 안 된다고 했다.

 잔치국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잔치국수를 주문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화장실을 궁금해했는데

 화장실이 불편할거라는 예언이 돌아왔다.

 

 물탱크의 물을

 비닐끈으로 잡아 당기는 그런 옛날 화장실이었고

 손 씻는 곳은 제대로 없었다.

 

 까만 통통한 고양이 한 마리가 나보다 먼저 한그릇 잡수시고

 마치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듯 입을 우물거리며 갈 길을 갔다.

 

 나는 방은 지저분하게 쓰면서

 화장실에 대해서는 약간 결벽증이 있다.

 가끔 자면서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잠에 취해서 못 깨어나면

 꿈에 상상을 초월하는 지저분한 화장실이 나온다.

 그래서 반대로 지저분한 화장실을 보면 악몽을 꾸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가능하다면 몹시 기피하고 싶다.

 

 그런데 이번엔 그냥 별 생각 없이 갔다.

 그리고 앉아서 냅킨에 숟가락 젓가락을 세팅하고

 텔레비전에서 하고 있는

 미셸 윌리엄스가 나오는 마릴린과 일주일인가 하는 영화를

 멍하게 봤다.

 

 잔치국수가 나왔고

 나는 먹기 시작했다.

 맛있었고 나는 급하게 먹었다.

 

 계산을 하고 국수집을 나왔다.

 그리고 마치 안다는 듯 반대편으로 길을 건너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고

 버스는 운명처럼 왔고 나는 버스를 타고 왔다.

 

 

 

 2. 토정비결

 작년 초에 공짜 토정비결을 봤다.

 섬세하고 상세했기 때문에 상당히 신빙성이 있었다.

 한 김에 2년 전, 3년 전 토정비결도 봤는데 그 해당 년도에는

 만나게 된다는 귀인이 누굴까, 일어난다는 안 좋은 일이 뭘까 대단히 궁금했었겠지만

 이미 미래에 있는 나는 그 귀인도 별놈 아니고 안 좋다는 일도 안 좋기만 한 건 아닌걸 알고 심드렁했었다. 이런데 좋다고 펄쩍펄쩍 뛰었었구나. 그러면서도 작년 토정비결을 보며 또 설렜다. 바보 사이클이라고 할 수 있다.

 

 저번 해에는 노란색이 나에게 핫한 색이고, 이상형을 만나고 애인이 생긴다고 했다. 나는 봄에 마음이 안 잡히는 건 누군가를 만날지도 모르기 때문인 것 같아서 길을 다닐 때도 주변을 두리번 거렸고 시외버스 탈일이 생기면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까지 늘 출입구를 곁눈질했다.

 

 올해가 왔고 나는 공짜고 뭐고 토정비결 따위 보지않았다.

 작년에 온통 노란색을 입고 다녔지만 겨자냐 강황가루냐는 질문만을 받았을 뿐이다. 먹었던 카레라이스는 유유히 나를 체하게 하고 사라졌다. 노란색은 전반적으로 나에게 똥을 먹였고 나는 노란색을 놓아줬다.

 애인은 관두고라도 뭔가 알쏭달쏭한 일도 없었다. 매번 내 버스 옆자리에는 승객들이 다 돌아다 볼만한 우렁찬 코고는 소리를 장착한 할아버지나

 4시간 내내 코를 들이 마시는 비염걸린 남자가 앉았다. 이제는 버스 탈때 옆자리가 비는 게 낫다. 가방을 앉힐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새해는 왔고 설날도 한참 지났다.

 어릴 때 받는 세뱃돈은 어쩌면

 알고나면 재미없을지도 모르는 세상에 애들은 자라야하니까

 빨리 크고 싶다, 어른이 되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주려고 그런건 아닌가 모르겠다.

 

 

 3. 일기

 며칠전에 언젠가 써놨던 일기를 봤다.

 

 "어릴 때부터 몹시 겁나는 게 있었다.

 외계인이 납치해가면 어쩌나 하는거였다. 아마도 초등학교 때 부들부들 떨면서 충격 우주인 보고서 같은 책을 읽고 난 뒤의 부작용이었던 것 같은데 꽤 오래갔다. 물론 주위의 대부분 사람들은 니가 뭐 쓸모있다고 데려가겠느냐고 나를 안심시켜주려했다.

 

 그것 말고 또 상당히 겁나는 게 있었는데 그건 아무런 이유없이, 라는 거였다. 아무 이유없이 일어날 수 있는 일. 소라 구멍을 탁 막고 있는 그 끝의 딱지가 목구멍을 막고 있는 것 처럼 비명도 나오지 않고 기함할 정도로 겁이 났다. 이유가 없다는 건 정말로 겁나는 일이다.

 

 그 두 개가 합치면 아무런 이유 없이도 외계인이 나를 납치해다갈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나로서는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그것에 대한 보호색을 만들었는데, 쥐죽은 듯이, 보이지 않는 듯이, 투명하게 술에 술탄 듯 물에 물탄 듯 살자는 거였다. 사실 인공위성이 천리 만리 밖에서 학교 운동장에 떨어진 신문지의 기사를 읽어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 그 신문지에 초특급 비밀이 적혀있다고 하더라도 그냥 굴러다니는 분리수거물일 뿐이다.

 외계인들이 할 수 있다는것과 그래서 그 능력을 써서 그 일을 하겠다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마음에 없으면 봐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맛을 모른다고 그랬다. 따라서 그냥 그럴 마음이 안 드는 존재가 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게 뭔 소리여. 뭘 쓸려고 했던건지 기억이 안난다. 이런 썅."

 

 이 일기에 그날 정말로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어쩐지 약간은 알 것도 같았다.

 

 

 4. 벚꽃

 시계로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트럭 후진 벨 소리만 규칙적으로 스물네시간 내내 울린다. 그것말고는 이 방안에서, 나는 정확하게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겠다.

 어릴 때, 대학다닐 때의 다른 도시에서, 그리고 언젠가 기억안나는 시간 장소가 여기 다 뭉쳐져 있어서 아무것도 안했는데도 피곤하다.

 

 금방 정말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턱에 있는 수염을 뽑는데

 턱이 있는 힘을 다해 수염이 안 뽑히게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두 개 다 내 육신이지만,

 뭔가 내 턱이 내 턱수염을 그토록 간절히 뽑아지지 않도록 잡는게

 고마웠다.

 내가 둘이되서 말이다.

 봄이 언제부턴가 이렇다.

 예전에도 그랬나 모르겠다.

 레몬원액을 혈관주사로 놓는 느낌이 든다.

 봄 때문에 죽겠다, 벚꽃이 사람 미치게 만든다했더니

 나를 벚꽃 바로 앞에 갖다 놨다. 새로 이사 온 이 방은 창문만 열면 벚꽃이 웨이터들처럼 바로 바깥에 좍 늘어서있다.

 왜 나에게 엿을 먹이려는 것이지.

 

 5. 자리

 나는 시외버스든 시내버스든 주로 맨 뒷자리에 앉는다.

 뒷자리에 앉으면 버스 전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거나 내리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 앞자리에 앉은 학생이 타자마자 침을 뱉았다. 처음에는 몹시 신경이 쓰였는데 저 정도 되면 무슨 이유가 있을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마치 침을 뱉기위해 버스를 탄 것 같다.

 

 외투를 송편 오므리듯 잘 모으지 않으면 옆 사람이 깔고 앉게 되는 경우가 있다. 조금 전에 등산 갔다 오시는 듯한 아저씨 한분이 내 옆에 앉으시며 말릴 새도 없이 내 외투 한 쪽을 깔고 앉으셨다. 대단히 어찌하고 싶었지만 그냥 가만히 있었다. 아저씨 얼굴이 약간 쓸쓸해 보였기 때문이다.

 

 아저씨가 내리고 다시 내 옆자리에 앉은 아줌마는 오른팔이 아픈것 같다.

 

 아까 버스가 손님을 모두 태우고도 잠시 문을 활짝 열어젖힌 채로 서 있었다. 그 뿐 아니라 운전사 아저씨가

 사레 들렸을 때 기침과 함께 튀어나오는 먹고 있던 음식처럼 펄쩍 뛰어 문밖으로 뛰쳐나가기까지 했다. 그리고 아스팔트 위에 엎드려서 뭔가를 하셨는데 같은 공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그게 무슨 일이었을지 상상이 안 간다. 아저씨는 다시 들어오셨고 버스는 문을 닫고 출발 했지만 이런 일은 평생 가야 그 일이 무슨 일이었는지 알게 될지 궁금하다.

 

 버스에서 내리고 잠시 정류장에 서 있는데

 할머니가 팔고 있는 다시마가 너무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빨간 다라이도.

 이것은 전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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