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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무협물
회귀불사지체
작가 : 서은하
작품등록일 : 2018.12.31

목숨을 걸고 강호를 주유하는 진운의 이야기.

 
19. 양양(2)
작성일 : 19-01-26 00:50     조회 : 372     추천 : 0     분량 : 6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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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털썩

 “커....커억.....”

 정계욱은 입에 거품을 물며 쓰러졌다.

 한손은 가슴을 부여잡은 채 숨도 쉬지 못 하고 있었다.

 “꺄아아악!”

 약을 가져왔던 하인이 새된 비명을 지르며 뛰쳐 나갔다.

 당충선은 대경하여 황급히 정계욱의 몸을 살폈다.

 손목을 짚을 필요도 없다. 곧바로 심장 부근에 손을 얹어 심장이 뛰는지부터 살폈다.

 이미 심장의 통증으로 쓰러진 적이 있다고 했다. 움직일 때 마다 아프다는 것은 심장에 화기 넘친다는 증거.

 언제 발작을 일으켜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이긴 했지만 하필 그게 지금이라니.

 ‘맥이 뛰질 않아!’

 “석호야! 광혼단을!”

 “예?”

 “어서!”

 당석호는 얼결에 짐 속에서 광혼단을 찾기 시작했다. 당석호가 의아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광혼단은 말 그대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환약이었다. 광혼단을 먹은 사람은 동공이 커지며 얼굴색이 붉어지고 그 성정이 흉포해졌다. 사람을 흥분케 하는 미약의 일종인 바, 심장에 화기가 쌓인 병자와는 상극이었다.

 허나 당충선은 이독제독으로 병을 치료하는 명의. 그는 갑자기 심장이 멎은 환자에게 광혼단을 먹이면 일시적으로 심장을 뛰게 할 수 있음을 알았다.

 이후에 생길 부작용은 나중에 생각할 일이다.

 그는 재빨리 당석호에게서 광혼단을 낚아채 반으로 쪼갰다.

 “석호 너는 어서 포정사의 고개를 젖혀 식도를 열어라.”

 그가 조카에게 지시하는 사이, 밖이 점점 소란스러워 졌다. 하인의 비명을 들은 자들이 모여든 탓이다.

 당충선은 다급해졌다.

 그는 정계욱의 목을 잡고 벌려진 입으로 광혼단 반쪽을 밀어 넣었다. 그의 검지와 중지가 약을 붙잡고 정계욱의 목젖을 지나 식도에 닿음을 확인하자, 그는 손을 빼고 입을 다물게 했다.

 이어서 그는 정계욱의 앞섬을 찢어 명치어림에다 장심을 얹었다.

 내기를 불어넣어 광혼단의 약효를 조절할 셈이었다.

 ‘이전에 먹은 청열도담탕에 고혈산 까지 있으니 조절을 잘 해야......’

 그가 정신없이 정계욱에게 내력을 불어넣자 당석호는 불현 듯 몸을 움직여 방문을 닫았다.

 진기도인을 시도하는 사람에게 외부의 충격은 치명적이다. 당석호는 다른 이가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막아설 생각이었다.

 밖의 소란은 점차 흉흉해졌다. 장원을 지키는 무사들까지 동원된 모양인지 철그럭 거리는 병장기 소리도 들렸다.

 당석호는 품속에 손을 넣어 자신이 가진 암기들을 매만졌다.

 은잠사, 백혈표, 흑철편.

 무엇하나 날이 무딘 게 없다.

 수면향이라도 있었다면 좋으련만, 치료가 목적이었던지라 챙겨온 수면제는 향낭이 아니라 액체형태였다.

 점점 문밖의 소리가 가까워졌다.

 당석호는 고개를 돌려 당충선을 쳐다봤다.

 그의 당숙은 여전히 손을 정계욱의 심장에 얹은 채였다.

 그는 어서 빨리 당숙이 정계욱을 회생시키길 빌었다. 포정사의 식솔들에게 암기를 쓸 일이 없도록.

 허나 그것이 쉽지는 모양.

 당충선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정계욱의 호위무사들은 밖을 포위하고 문을 두드렸다.

 “나리! 괜찮으십니까? 들어가겠습니다!”

 다급해진 당석호는 문에 걸쇠를 걸며 당충선을 불렀다.

 “당숙!”

 허나 당충선의 신경은 온통 정계욱의 내부에 머물러 있었다. 그가 도인하던 세 가지의 약기운 중 하나가 이질적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청열도담탕의 기운이었다.

 ‘어째서...?’

 그가 알던 청열도담탕과는 달랐다.

 이것은 심장을 보하는 약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광혼단의 성질과 비슷했다.

 멀쩡히 심장이 뛰는 사람에게 이런 성질의 약재는 독약이다. 더군다나 정계욱처럼 화기가 많은 이에게는 극독이나 다름없었다.

 거기다 진짜 광혼단까지 입속으로 밀어넣었으니.

 이래서는 회생불가다.

 그의 판단이 잘못되었다?

 아니다.

 애초에 청열도담탕이 가진 불순한 기운이 문제였다.

 어째서 심장을 보하는 탕약에 저런 약재가 들어갔는가.

 그때 불현 듯 당충선의 뇌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독살......?!’

 암살이다.

 정계욱의 병세를 알고 있는 자가 꾸민 술책이다. 그자는 당문이 그를 치료하는 순간을 노렸음이 틀림없다.

 당충선은 이미 숨이 끊어진 정계욱의 몸에서 손을 뗐다.

 그제야 주변의 웅성거림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리자 당석호의 등이 보였다.

 당석호는 차마 암기를 쓰지는 못하고 권장으로 호위무사의 창칼을 막아내고 있었다.

 이미 포정사의 호위무사들은 그들을 둘러싼 뒤였다.

 당충선의 움직임을 느꼈는지 당석호가 이를 악물고 그를 불렀다.

 “당숙......”

 “석호야. 포정사께서 돌아가셨다.”

 “......!”

 그 말을 들은 호위무사들이 웅성거렸다.

 치료를 잘못했다는 둥, 살인이라는 둥, 그들을 탓하는 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당충선은 조용히 품속에 손을 넣으며 일어섰다.

 그러자 잔뜩 경계심을 품은 무사들이 창칼을 바로잡았다.

 천천히 품속에서 암기와 약병들을 꺼낸 당충선은 조심스럽게 책상위에 그것들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만 손을 거둬라 석호야.”

 “하지만 당숙!”

 “되었다.”

 당충선은 빈손을 들어 보이며 무사들에게 말했다.

 “우린 어디 갈 생각이 없소. 그대들은 법도대로 행하시오.”

 도망쳐봐야 암살을 인정하는 꼴이 될 뿐이다.

 순순히 붙잡히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당석호 또한 저항을 포기한 듯 품속의 암기들을 버렸다.

 그러자 호위무사들 중 일부가 오라를 들고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당충선은 눈을 감았다.

 ‘일이 고약하게 되었구나.’

 

 * * *

 

 당희지는 양양 도성 내를 걸어 다녔다.

 머리에 은비녀를 꽂았음은 물론이다. 복도 한쪽 벽에 박힌 걸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고 결론내리면서.

 물론 그렇다고 머리에 꽂을 이유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자기합리화를 끝낸 그녀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양양 성내의 번화한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고양이같은 눈을 빛내며 거리를 구경했다.

 비단을 옮기는 포목점의 직원들, 좌판을 벌리고 물건을 파는 노점, 호객행위를 하는 객잔의 점소이들까지.

 생동감이 넘치는 거리였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자신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게 좋았다.

 성도는 당문의 영역. 어느 곳 하나 당문의 비호를 받지 않는 데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당가의 인물을 볼 때면 슬금슬금 눈치를 봤다.

 그러나 이곳은 양양이다.

 양양은 그녀를 모른다.

 그녀는 자신의 시선을 무시한 채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는 양양성내의 시장을 즐겼다.

 아직 어리긴 한 모양인지 그녀는 당과 하나를 사서 입에 물었다.

 성도에서는 좀체 허락되지 않는 짓이었다. 그녀는 내친김에 시장 안쪽, 사람들이 빼곡한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사람들이 웅성대며 구경하는 그곳에는 약장수의 호객행위가 펼쳐지고 있었다.

 “자~ 이것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저 멀리 운남에서 사는 거대한 지네, 백년오공의 내단으로 만든 환약이올시다. 무림인들이 먹으면 내력이 불길처럼 치솟고, 보통 사람이 먹어도 정력이 넘쳐흘러! 두 달 전에는 일흔 먹은 노인네가 이 약을 잡숫자마자 기방으로 달려가지 않나. 한 달 전에는 삼류무인이 일류고수가 됩디다!”

 주절주절 말을 하는 이는 키가 어찌나 작은지 인파에 가려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말을 이어 옆의 덩치를 소개했다.

 “이 친구로 말할 것 같으면! 천음절맥을 타고난 아이로 약관이 되기 전에 죽을 운명을 타고났지만, 삼년전! 이 약을 먹고 새로운 생명을 얻은 것은 물론, 일신에 내공까지 지니게 되었소!”

 약장수의 말이 끝나자 덩치는 웃통을 벗었다.

 키가 큰 당희지는 수북한 인파들 사이에서도 그 상체를 볼 수 있었다.

 울퉁불퉁한 근육이 한 두 해 다듬은 몸이 아니었다.

 그녀는 처음 보는 외간 남성의 맨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덩치는 곧이어 기다란 철 막대기의 양 끝을 잡고 들어올렸다.

 팔뚝의 근육이 부풀어 오르고 힘줄이 솟았다.

 그러자 천천히, 철 막대기가 말발굽 모양으로 휘어지기 시작했다.

 “오오!!”

 “이야~”

 웅성웅성 사람들이 놀라는 소리와 함께 박수가 이어졌다.

 “자! 이 놀라운 만병통치의 영약이 단돈 스무냥!”

 그렇게 약장수의 약팔이가 이어지는 사이 당희지의 품속을 노리는 손이 있었다.

 소매치기였다.

 질 좋은 비단옷에 당과를 할짝이는 소녀. 소매치기에 딱 좋은 대상이었다.

 허나 당희지는 무림인. 그것도 품속에 암기를 넣고 다니는 당가의 여식이다.

 그녀가 자신의 몸에 접근하는 손을 눈치 못 챌 리 없었다.

 당희지는 재빨리 소매치기의 손목을 낚아챘다.

 “엇!”

 웅성대는 사람들 틈에 헛바람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손목의 주인이었다.

 그는 실패한걸 알자 곧장 몸을 돌렸다.

 하지만 당희지의 손아귀가 그의 손목을 놓아주지 않았다.

 당황한 그가 손목을 빼내려 용을 썼지만 내력이 실린 무인의 힘을 당해낼 순 없는 법.

 당희지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범인의 손목을 냅다 꺾어버렸다.

 “아야야야!”

 앳된 목소리다.

 당희지는 그제야 인파 틈에 섞인 범인의 얼굴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녀보다도 서넛은 어려보이는 꾀죄죄한 소년이었다.

 “요 꼬맹이가!”

 당희지는 어린 소매치기의 따귀를 날릴 생각으로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하지만 그때 누군가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뭐야?”

 당희지는 눈을 치켜뜨며 돌아봤다.

 그곳엔 상아색 도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진운이 서 있었다.

 

 진운은 양양에 도착하자마자 무작정 관청의 담을 넘었다. 하지만 곧장 그는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음을 깨달았다. 그는 관청 내부에 옥사가 어디 있는지, 아직도 소미가 갇혀있는지, 소미가 양양으로 잡혀온 것은 확실한지,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다.

 그는 정보가 필요했다.

 날이 밝자 진운은 그길로 도심을 기웃거렸다. 그는 그곳에서 관청 내부에 대해 빠삭한 자를 찾아낼 생각이었다.

 이를테면 관에 종이, 면포 따위를 납품하는 상인이라던가, 수시로 감옥을 들락날락했을 범죄자라던가.

 그러던 와중에 익숙한 녹색 옷이 눈에 띄었으니 그게 바로 당희지였다. 당문 일행이라면 고관의 치료를 위해 양양으로 간다 했으니 그 내부 사정도 알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당희지가 붙들고 있는 소년은 소매치기다.

 당문일행과 범죄자. 진운이 듣고 싶은 얘기를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둘이나 있었다.

 진운은 주저 없이 개입했다.

 

 “애가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 그러나?”

 “너는...... 말코! 음적!”

 “뭐 말코는 맞다 쳐도, 음적은 아닌데.”

 당희지는 진운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소매치기와 진운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뭐야? 둘이 한패야?”

 “한패는 아니고, 얠 봐서 반가운건 맞아.”

 “설마! 혼자남길 기다렸다가 날 어찌하려고......”

 어째 얼토당토않은 오해를 한 것 같다.

 “아니, 그런 목적은 아닌데 널 봐서 반가운 것도 맞아.”

 “이 쓰레기 같은 말코가!”

 당희지는 말과 동시에 진운의 손을 뿌리치며 발을 뻗었다. 진운은 당희지의 발이 턱을 노리고 날아들자 곧장 몸을 젖히며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당희지는 기다렸다는 듯 품에서 비도를 날렸다.

 하지만 암기라는 것은 상대방이 모를 때야 위력을 발하는 법. 마차에서처럼 당해줄 진운이 아니었다.

 진운은 바로 검을 뽑아 비도를 쳐냈다. 첫 번째 비도를 막아내기가 무섭게 다음 비도가 날아들었다.

 진운은 고개를 틀어 비도를 피하며 당희지에게 접근했다. 당희지는 비도를 던질 수 없는 거리가 되자 양손에 비도를 들고 맞섰다. 진운의 검과 두 자루 비도가 불꽃을 튀기며 엉겼다.

 갑작스런 소란에 주변 사람들이 거리를 물리며 웅성거렸다. 이미 약장수의 차력구경은 뒷전이고 사람들의 이목이 죄다 그들에게로 쏠렸다.

 당희지는 틈만 나면 비도를 날렸다. 하나를 쳐내고 나면 곧장 품에서 다른 비도가 나왔다. 근접전투에서는 항상 양손에 비도를 들어야 하는 모양이었다.

 슬슬 파악이 끝난 진운은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당희지는 이번엔 두 개의 비도를 동시에 날렸다.

 그때였다.

 진운은 바람처럼 움직여 그녀에게 쇄도했다. 여태까진 봐주던 것인지 속도가 판이하게 달랐다. 마주오던 비도는 그의 검에 막혀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동시에 그는 왼손을 뻗어 당희지의 팔을 덮쳤다.

 당희지의 양 팔은 아직 품속에서 비도를 꺼내는 중이었다. 진운의 왼손은 그녀의 양팔을 막는데 그치지 않고 당희지의 몸까지 밀어붙였다. 그 충격에 당희지는 그대로 균형을 잃고 등부터 떨어졌다.

 털썩

 “억!”

 온전히 폐에 전해진 충격에 당희지가 짧은 신음을 토해냈다. 진운의 손은 여전히 그녀의 양 팔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힘겨운 목소리가 세어 나왔다.

 “이...... 이 음적!”

 그러면서 커다란 두 눈에 눈물을 글썽인다. 어째 아픔보다는 수치심이 짙어 보이는 눈물이다.

 그제야 진운은 깨달았다. 자신이 그녀의 양 팔과 함께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진운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아, 이게 그럴려고 그런 건 아냐.”

 동시에 그는 오른손의 검을 날렸다. 순식간에 녹옥은 혼란을 틈타 도망치려는 소매치기의 발 앞에 꽂혔다.

 “히익!”

 소매치기 소년은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진운은 당희지를 덮친 그 자세로 고개를 돌려 말했다.

 “내가 얘기했잖아. 너도 만나서 반갑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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