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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무협물
회귀불사지체
작가 : 서은하
작품등록일 : 2018.12.31

목숨을 걸고 강호를 주유하는 진운의 이야기.

 
13. 사제(3)
작성일 : 18-12-31 17:36     조회 : 536     추천 : 0     분량 : 4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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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 찾아왔다.

 따뜻한 호남지방이라 해도 초가을의 산중은 제법 쌀쌀했다.

 청명한 하늘에 높이 솟은 태양만이 온기를 가져다주는 유일한 존재였다.

 진운은 여전히 헐렁한 도복인 채였다.

 “이렇게 인가?”

 진운의 검이 위에서 아래로 그어졌다.

 직선으로 내리긋는 간단한 검식, 빠르지도 무겁지도 않다. 그렇다고 패력이 느껴지지도 않는다. 지극히 평범한 초식이다.

 하지만 검을 든 진운의 손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내력을 팔과 검에 온전히 모아둔 탓이다. 검이 아래로 베어지는 와중에도 발출되는 기는 미미했다.

 뇌명검 제 삼식(三式) 환우(喚雨)의 내력운용.

 팔 속의 내공을 오롯이 흘려보내는 일식, 이식과는 달리 그대로 모아두는 것이 삼식 환우다.

 자연스런 기의 흐름을 둑으로 막은 것처럼 모아두면 팔이 서서히 무거워진다. 그리고 그 무거움을 이기지 못해 떨어지듯 아래로 내리긋는다.

 그 움직임은 환우라는 초식명처럼 비를 모아둔 먹구름 같다. 천천히 모여들고 무겁게 내려앉는다.

 그런데 내려친 검날은 보슬비처럼 미약했다.

 ‘대체 이게 뭐지?’

 진운은 검을 쳐다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는 다시 검을 들어 초식을 전개해 나뭇가지 하나를 베어갔다.

 툭.

 잔가지 하나 잘라내지 못하고 막힌다.

 진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가 몇 달 전부터 배우기 시작한 뇌명검 전반부 삼 초식.

 그중 일식과 이식은 각기 연환과 쾌검에 장점이 있는 반면 삼식은 대체 무슨 장점이 있는지 찾아볼 수 없었다.

 느리고 약하다.

 시범을 보였던 무평의 검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여름 내내 연구를 해 봐도 어떤 묘용을 찾을 수 없었다.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 진운이 풀썩 주저앉았다.

 “아. 돌겠네.”

 그는 투덜대는 말과 함께 검으로 애꿎은 땅만 때렸다.

 앉은 상태에서 툭툭 내려치는 검 또한 환우의 초식. 그의 검 끝은 땅을 파고들지 못하고 지면의 모래만 걷어낼 뿐이었다.

 그때였다.

 “이놈이. 또 농땡이구만!”

 새된 목소리와 함께 무평이 모습을 드러냈다.

 늘 입는 허름한 회색 옷에 한쪽어깨엔 커다란 망태기. 전형적인 약초꾼의 모습이었다.

 전진파는 작은 문파다.

 소림이나 아미처럼 시주를 받는 것도 아니고 점창처럼 나라에 검을 팔지도 않았다. 가진 전답이 많거나 운영하는 객잔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들이 입고 먹을 것은 스스로 마련해야 했다.

 무평이 캐온 약초가 그들의 생계수단인 샘이다.

 이번엔 제법 큰돈을 모아둘 요량인 듯했다. 달포가까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더니 망태기엔 약초가 수북했다.

 터벅터벅 걸어오던 무평은 망태기를 내려놓고 말했다.

 “거 쉬고 있을 거면 일루 와서 이거나 받아라.”

 “예에~”

 “읏차. 저기 장작 옆에 놔둬.”

 “근데 허리에 그건 뭡니까?”

 진운이 망태기를 옮기다 말고 무평의 허리춤을 가리키며 물었다. 거기엔 짚으로 엮은 주머니가 볼록하게 매달려 있었다.

 무평은 뒷짐을 지고 방으로 들어가며 대꾸했다.

 “몸에 좋은 것이니라.”

 “뭐지? 정력에 좋은 거에요?”

 “뭣이라? 정력?”

 발끈하는 무평을 향해 진운은 빈정거리며 말했다.

 “에이, 사부님. 연세가 있으신데 그런 거 먹는다고 되겠습니까?”

 “그런 거 아니다.”

 “그리고, 그 옷차림으로 기루에 갈 것도 아니면서. 쓸데가 없잖아요, 쓸데가. 읏차.”

 망태기를 옮겨놓은 진운은 계속해서 입을 놀렸다.

 “거 힘 잔뜩 모아봐야 뭐합니까. 받아줄 상대가 없는데. 이 산중에 누가 있다고.”

 무평은 중얼대는 진운을 향해 소리쳤다.

 “이눔아! 헛소리 그만하고 얼른 방으로 들어오너라.”

 “왜 갑자기 방으로 부르시는지...... 헉! 설마...... 그 상대가?”

 “이놈이 뭔 소릴 하는 게야!”

 기어코 역정을 낸 무평이 번개처럼 몸을 날려 진운의 귓불을 잡아챘다.

 “아야야야! 사부! 말로 하세요. 말로!”

 자그만 체구의 노인의 손에 덩치 큰 청년이 쩔쩔맨다.

 무평은 곰을 부리는 조련사마냥 진운을 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사부님. 아무리 그래도 저는 이쪽 취향이......억!”

 헛소리를 늘어놓는 진운의 정강이를 걷어차는 무평. 그리고 한손으로는 주머니 속에서 뭔가를 꺼내 진운의 눈앞으로 가져다 댔다.

 “자 봐라! 이게 정력에 좋은 건가!”

 작은 초옥 안으로 퍼지는 청명한 기운. 시원하면서도 코끝을 짜르르 울리는 알싸한 향.

 그것은 사람모양의 풀뿌리였다.

 정강이를 부여잡고 신음하던 진운의 눈이 동그래졌다.

 “산삼?”

 “그냥 산삼도 아니고 인형삼이다. 200년은 넘었을 게야.”

 “이게......”

 “네가 먹을 것이다. 소림의 대환단처럼 죽은 목숨을 되살리는 정도의 효능은 없지만 단순 내공증진만 따지면 비슷할 거다.”

 “제가 먹는다고요?”

 “그래 이눔아!”

 순간 진운은 무릎을 꿇고 무평의 바지춤을 부여잡으며 말했다.

 “아이고! 사부님. 스승님! 이 제자, 스승님의 혜안을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그 주머니를 보던 순간부터 저는 스승님의 따뜻한 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스승님이 이 제자를 위하는 마음이 이토록 깊으니 그 은혜가 하해와 같사옵니다.”

 딱!

 무평은 과장되게 말을 하는 진운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네놈은 언젠가 말 때문에 한번 경을 칠게다. 얼른 뒤돌아서 앉거라.”

 무평이 근엄한 표정으로 말하자 그제야 얼굴에서 장난기가 사라진 진운은 냉큼 뒤돌아 앉았다. 가부좌를 튼 진운의 귀에 사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인형삼은 생으로 먹는 게 가장 좋다. 자 받아라.”

 진운은 인형삼을 받아들었다. 어린아이의 몸체 같은 뿌리와 더듬이처럼 올라온 줄기. 그 위로 파릇한 잎이 양쪽으로 펼쳐져 있었다.

 “머리부터 꼭꼭 씹어 먹거라. 다 먹고 나면 반각도 지나지 않아 뱃속에서 기운이 올라올 것이다.”

 천천히 인형삼을 입으로 가져가는 진운.

 그가 인형삼의 머리부분을 씹으려는 찰나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어린아이의 울부짖는 소릴 들은 것 같았다.

 진운이 흠칫하며 동작을 멈추자 무평이 뒤에서 호통을 쳤다.

 “정신 차려 이놈아! 200살을 넘게 먹은 놈이다. 괜히 영초고, 괜히 인형삼 이겠느냐! 그깟 미물의 기운에 휘둘리지 마라!”

 내공이 실린 목소리다. 순간 혼란스럽던 진운의 머리가 맑아졌다.

 실로 영초였다. 무평의 호통이 아니었다면 진운은 먹는 걸 포기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진운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입을 벌렸다. 눈을 질끈 감고 삼을 와작 씹자 입속에 청량한 기운이 퍼졌다.

 ‘와! 이런 맛이 있다니!’

 진운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천천히 씹어 삼키자 싸한 향이 목구멍을 타고 위장까지 내려갔다. 마치 시원한 바람이 입과 식도에서 소용돌이치는 것 같았다.

 “꼭꼭 씹어 삼키거라.”

 무평의 말을 들은 진운은 첫 한입에 그치지 않고 두 번, 세 번 인형삼을 씹어 넘겼다.

 이윽고 인형삼의 다리부분 까지 모조리 먹고 나자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쩝. 이게 다인가요?”

 “아쉬워 할 것 없다. 이 이상은 네놈이 소화를 못할게다. 어서 운기를 준비하거라.”

 진운이 눈을 감고 운기를 준비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뱃속에서부터 뜨거운 기운이 치고 올라왔다.

 “흡!”

 “너무 빠른데? 꼭꼭 씹어 삼키라니까!”

 무평은 끝까지 말을 듣지 않는 진운을 타박하며 장심을 진운의 명문혈에 갖다 댔다.

 진운의 단전에는 벌써 인형삼의 막대한 양기가 꿈틀대고 있었다. 진운이 제대로 씹어 먹지 않은 탓인지 투박하고 거친 기운이 군데군데 뭉쳐 있었다.

 무평은 중양심공의 구결을 따라 그 기운을 도인했다. 무평의 인도에 따라 진운의 내공과 인형삼의 기가 뭉쳐 움직였다.

 지금 진운의 몸속에서 움직이는 기운을 합치면 무평 자신의 내공과 필적할 정도였다.

 ‘생각보다 양기가 너무 많아.’

 문제는 그것이었다.

 중양심공은 양기가 강한 무공이다. 거기다 양기의 결정체인 인형삼을 생으로 먹었다.

 허나 사람의 몸은 음양의 조화가 필요한 법. 음기가 부족하면 양기를 아무리 쏟아 부어도 그것을 담아 낼 수 없다.

 청명한 산의 기운이 음양의 조화를 이뤄 주리라 생각했지만 진운의 축기 속도는 그 이상이었다.

 결과적으로, 진운이 가진 내공에는 양의 기운이 너무 강했다.

 무평은 이대로는 진운이 인형삼의 기운을 모두 흡수하긴 글렀다고 판단했다.

 그는 천천히 인형삼의 기운을 분리해 진운의 단전에 가뒀다.

 나머지 내력은 진운 스스로가 중양심공의 구결을 따라 대주천을 할 것이다.

 무평은 일주천, 이주천 진운의 내공이 돌때마다 조금씩 인형삼의 기운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진운이 흡수하고 남은 기운은 한데 뭉쳐 내단처럼 만들었다.

 삼주천, 사주천.

 진운은 끊임없이 내력을 돌렸다. 그렇게 내력을 돌릴 때 마다 미약하게 흘러나온 인형삼의 기운을 더해 그 크기를 불렸다.

 밖은 이미 어둑해져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진운은 내력이 지나간 곳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튼튼하던 혈맥이 불에 가까이 한 듯 후끈했다.

 양강지기가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진운의 온 몸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무평은 그제야 인형삼의 기운이 세는 것을 막았다.

 그 뒤에도 진운은 한참동안이나 운기 했다. 하지만 양기가 강해진 내공은 밤이 될 때 까지도 식지를 않았다.

 자정이 돼서야 운기를 끝낸 진운의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가을밤의 쌀쌀한 공기와는 다르게 초옥의 내부는 군불을 땐 것 마냥 후텁지근했다.

 진운의 명문혈에서 손을 땐 무평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아...... 그러게! 꼭꼭 씹어 먹으라 했잖느냐!”

 그 때문이 아님에도 괜한 화풀이였다.

 진운은 말이 들리지도 않는지 그저 앉아서 숨을 쌕쌕 내쉴 뿐이었다.

 아직도 몸이 뜨거운지 콧김에서 더운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고뿔에 걸린 사람처럼 온몸에 열이 가득했지만 기분은 더없이 상쾌했다. 힘이 넘쳐흐르는 기분이었다.

 무평은 그런 진운의 등을 발로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얼른 나가! 너 때문에 덥다 이눔아.”

 진운은 돌아보며 말했다.

 “지금요? 이렇게 캄캄한데?”

 “그럼 평생 열 내면서 살래? 밖에서 찬바람을 쐬던 물속에 몸을 담그던 몸을 식혀야 할 것 아냐!”

 무평의 말에 진운은 투덜거렸다.

 “에이! 옷은 갈아입고 가고 싶은데.”

 “더우니까 얼른 나가!”

 결국 진운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온 몸에 힘이 충만했다. 내력은 물론 몸 곳곳의 근육들 까지 한껏 팽창한 것 같았다.

 심지어 그의 아랫도리까지.

 한계를 넘어선 양기가 그곳까지 영향을 미친 탓이다.

 진운은 문을 나서며 말했다.

 “흐흐흐. 정력에 좋은 거 맞네요.”

 진운의 말을 들은 무평은 당장에라도 한 대 쥐어박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소리치는 것뿐이었다.

 “이이...... 이눔의 자식이! 어이구.”

 진기도인을 하느라 탈진한 몸이 그리도 한탄스러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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