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정.
마을 외곽에 자리한 이 낡은 기루는 오래된 외관만큼이나 오래 굴러먹은 기녀들이 몸을 담은 곳이었다. 한때는 환락가의 중심에서 화려한 꽃을 피우던 여인들이 몸도 마음도 시든 뒤에야 찾아드는 곳.
퇴기(退妓)들의 종착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든 꽃도 꽃이라고 싼값에 여인을 품어 보려는 남정네들이 주된 손님이었다.
그들 중, 동네 건달이나 질 나쁜 무인들은 왕왕 소란을 피우곤 했다.
“아, 그년 어디 갔냐고!”
쾅!
소리를 치며 2층 기방 문을 내려치는 남자는 살집이 두둑했다. 오른쪽 허리에 애처롭게 매달린 검은 한 번도 뽑아보지 않은 듯 손잡이가 새것 같았다.
사내가 요란을 떠는 와중에도 기루는 각자의 일을 할 뿐이었다. 그를 상대하던 기녀 또한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더니 헐레벌떡 어디론가 가버렸다.
사내는 심기가 불편했다.
그는 두툼한 볼살을 떨며 다시 고함을 쳤다.
“촌구석에 괜찮은 년 하나 있대서 왔더니만...!”
그때였다.
회색옷의 청년이 성큼성큼 사내 앞으로 걸어왔다.
사내보다 한 뼘은 더 커 보이는 키에 떡 벌어진 어깨. 헌데 청년이라고 하기엔 묘하게 솜털이 보송보송한 얼굴이다. 서글서글한 눈매에 높은 코가 인상적인 청년은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손님, 난동을 부리시면 제가 쫓아낼 수밖에 없어요.”
“뭐, 인마?”
사내는 아직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듯 했다.
그는 청년을 위아래로 슥 훑어보더니 다시 소리쳤다.
“뭔 어린놈이...... 여기 주인 나오라 그래!”
그러자 청년은 다짜고짜 사내를 계단쪽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두툼한 그 살덩이를 밀어내는 게 솜뭉치를 움직이는 듯 가벼웠다. 사내는 속절없이 밀려나며 말했다.
“어어! 야 인마. 너 뭐야! 야!”
조금만 더 밀리면 계단 아래로 떨어질 지경이었다. 급기야 사내는 검을 뽑았다.
챙
“보자보자 하니까 이자식이!”
병장기를 뽑는 소리에 기루가 조용해졌다. 기녀들 또한 하던 일을 멈추고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 또한 잠시뿐. 이내 각자의 일을 하기 시작한다. 묘하게 평온한 광경이었다.
사내는 그 모습에 열이 받은 모양이다. 검을 이리저리 흔들며 청년을 위협하는데 그 동작에 두서가 없었다. 전형적인 하류 건달의 모습이었다. 검을 든 쪽은 뚱보사내건만 표정은 회색옷의 청년이 더 여유로웠다.
“너... 이 칼 안보여?”
“보여.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할 거, 왜 들고 설치신데?”
“뭐....뭐? 이이... 너 뭐하는 놈이야!”
“나? 점소이.”
“이익!”
놀림 받았다 생각한 사내는 검을 높이 들었다.
그럼에도 점소이라 밝힌 청년은 표정하나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죽거리는 듯 했다.
그 꼴을 본 뚱보사내의 볼살이 부르르 떨렸다. 그는 눈을 질끈 감으며 검을 아래로 내리쳤다.
허나 눈먼 칼질에 맞아줄 청년이 아니었다. 그는 가볍게 검을 피하고 사내의 배를 걷어찼다.
절묘한 발길질에 사내는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서너 바퀴를 구른 사내는 1층 바닥에 거품을 물고 누웠다.
“또?”
기방 안주인인 소미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네! 진운이가. ‘나? 점소이.’ 하고 발로 팍! 미는데, 한방에 나가떨어졌지 뭐에요.”
그녀의 앞에서 입을 나불대는 기녀는 홍진이었다. 입이 방정맞기로는 소소정에서 제일가는 기녀였다. 그녀는 진운의 활약을 말하는 내내 입에서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그래 진운이는 어디 있니?”
“어디겠어요? 그 뚱보 업어다 객잔에 맡기러 갔죠.”
“후우... 그래 가서 일보렴.”
“네 언니!”
홍진은 밝게 대답하고는 방을 나갔다.
소미는 자신의 방에서 매출 장부를 넘겼다. 장부에는 이전까지 볼 수 없던 기록적인 매출을 찍고 있었지만 그게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하아... 그러려고 거둔 아이가 아닌데......’
진운이 소소정에 온지도 5년이 지났다.
사건의 마무리는 늘 이런 식이었다.
어느 때 부터인지. 기루의 귀찮은 일들은 죄다 진운이 처리하고 있었다.
돈도 내지 않고 기녀에게 치근덕대는 사람. 시시때때로 폭력을 일삼는 길거리 파락호. 술값 못 내겠다고 난동을 부리는 건달까지.
자기 밥값은 자기가 하겠다고 쪼그만 손을 거들던 아이가 이리 헌헌장부가 되었으니 대견하기도 하건만.
아직 약관도 지나지 않은 소년이 벌써부터 어두운 세계에 익숙해져 가는 걸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답답해져왔다.
소미는 눈가를 어루만졌다.
주름이 하나 늘어가는 기분이었다.
진운이 소미의 방을 찾아온 것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그는 방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밀며 말했다.
“큰 이모, 아침 드세요.”
“응, 그래 진운아. 다른 사람들은?”
“루화 누님만 깨우면 되요.”
소미는 흠칫 놀라며 말했다.
“루화가 잠들었니?”
평소라면 아침까지 깨어 있을 아이였다. 요즘 부쩍 힘에 부친다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잠들어버렸단다.
“네. 마지막 손님 받다가요.”
진운의 말대로라면 오늘도 마지막 손님까지 루화의 몫이었다. 소미는 또 다른 근심거리인 루화를 생각하며 눈가를 만졌다.
진운은 그런 소미를 향해 슬쩍 웃으며 말했다.
“그럼, 루화누님 깨워 올게요. 먼저 드시고 계세요.”
진운은 내밀었던 고개를 빼고는 문을 닫고 사라졌다.
소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아침엔 둘 중 하나라도 해결을 봐야 할 듯싶었다.
루화는 소소정에 들어 온지 얼마 되지 않은 기녀였다.
갈 데 없는 퇴기(退妓)들이나 몸담는 이곳까지 흘러온 창기라면 누구 하나 사연이 없겠냐만 루화는 조금 특별했다.
퇴기라기엔 지나치게 젊은 것이다.
이십대 초반. 여인의 미모가 활짝 꽃피우는 나이다. 아직 주름하나 잡히지 않은 얼굴은 소소정의 다른 기녀들 보단 오히려 진운과 비슷한 또래라 할 만 했다.
그래서인지 진운도 다른 기녀들에게는 꼬박꼬박 이모라 부르면서 루화에게 만큼은 누님이라 불렀다.
진운은 잠든 그녀를 깨워 같이 1층으로 내려왔다. 진운과 루화가 도착한 곳에는 기녀들이 삼삼오오 모여 아침을 들고 있었다. 일이 다 끝난 뒤, 남은 음식으로 벌이는 기루의 만찬이었다.
만두를 집어먹던 소미가 그들을 발견하고는 말했다.
“얼른 와서 아침 먹으렴.”
“네.”
진운이 짧게 대답하고 음식이 차려진 탁자에 앉는 사이 루화에게는 다른 기녀들이 우후죽순 말을 걸어왔다.
“매번 아침까지 깨있더니 오늘은 어쩐 일로 손님방에서 잠들었대?”
“피곤해서 곯아떨어졌나보지 뭐.”
“마지막 손님이 보기보다 힘이 좋았나보네? 깔깔”
그러자 소란이라는 작은 체구의 기녀가 나서서 그녀들을 나무랐다.
“어휴. 언니들! 어제 루화가 손님을 몇 명이나 받은 줄 아세요? 자그마치 여섯 명이에요 여섯 명.”
“뭐?”
그녀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제도 여섯, 그제는 다섯. 이러다 루화 쓰러져요. 소미언니, 이제 루화 손님은 적당히 받읍시다.”
소란의 말 대로였다.
루화가 이곳에 온 뒤로 소소정은 때 아닌 호황을 맞았다.
기녀에게 젊음은 무기다.
루화는 빼어난 미인은 아니었지만 큰 눈망울이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데가 있었다. 거기다 젊고 탄력 있는 피부가 더해지니 그녀를 찾는 손님은 나날이 늘어갔다.
최근 소소정을 방문하는 사람들 중 절반은 루화 몫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맞아, 맞아. 요즘 손님이 왔다하면 루화가 불려가더라고.”
소란의 말에 홍진까지 가세하자 소미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루화야. 언제든 힘들면 말하렴. 손님은 거절하면 되니까.”
루화는 탁자위 오리고기를 젓가락으로 깨작거리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허나 푸석해진 입술로 얘기해 봐야 설득력이 없었다.
그 힘없는 목소리를 들은 홍진이 그녀를 타박했다.
“으유! 괜찮긴 뭐가 괜찮아. 또 너 찾는 손님이 난동 부릴까봐 그러지?”
“아...아니에요!”
루화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지만 이미 기녀들은 저들끼리 결론을 낸 모양이었다.
“에이~ 그런 건 걱정 없지. 진운이가 있잖아.”
“저번에도 진운이가 그놈 배때지를 팍!”
“그럼 그럼. 우리 진운이가 나서면 그딴 왈패놈들은 찍소리도 못하지!”
몇몇이 자랑스럽게 진운의 이름을 말했다.
비록 고아가 되어 점소이 노릇을 한다지만 그는 분명 무가의 자식. 이가장 대대로 내려오는 호흡법을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연마했다.
그가 배운 호흡법은 내공을 쌓는 운기토납법은 아니었으되 그 자체로 심신을 강건하게 만드는 공능이 있었다.
여기에 지난 5년간 부쩍 자란 몸까지.
그것만으로도 소소정 같은 작은 기루를 지키기엔 충분했다.
그녀들에겐 든든한 방패였다.
소미는 묵묵히 식사중인 진운에게 힘겹게 말을 꺼냈다.
“진운아. 괜찮겠니?”
진운은 입안 가득하던 소면을 삼키고는 씩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뭐, 힘자랑 몇 번 더 하면 되죠.”
그러자 옆에 앉은 기녀가 슬며시 진운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흐응, 그럼 진운아 이 누님에게도 힘자랑을 한번 해주련?”
조카뻘인 진운에게 하는 농담치고는 지나치게 끈적했다. 하지만 진운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했다.
“음... 이모, 힘자랑은 밤에만 하는 거라면서요?”
말뜻을 알고나 뱉는 것인지. 허나 확실한 것은 그가 이미 이런 농담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소미는 그 꼴을 보며 만두를 베어 물었다. 다 식어 딱딱해진 만두가 입속에서 꺼끌거렸다.
* * *
이후 소미는 손님을 가려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운에게는 바쁜 나날이 이어졌다.
늦은 시각에 루화를 찾은 손님들이 난동을 부린 것이다.
멀쩡히 쉬고 있는 게 보이는데 품을 수가 없다니. 그녀를 찾은 손님들로써는 화날 법도 했다.
그렇게 불만을 표출했던 사람들이 진운의 손에 호되게 나가떨어지길 몇 번.
이젠 소소정의 결정에 대놓고 반발하는 손님은 없었다.
대신 소소정에는 초저녁부터 손님이 줄을 서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감히 진운을 상대로 행패부릴 간담은 없고 저들끼리 경쟁을 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한, 두 명 뿐이었다.
하지만 허름한 기루 문 앞에서 대낮부터 줄선 모습이 평범할 리 없을 터. 사람들의 의구심은 곧 소문이 되었고 소문은 또 다른 사람을 불러왔다.
“자네는 루화라는 기녀, 품어봤나?”
“당연하지. 이리 일찍 오지 않으면 품기 힘들어. 자네도 지금이 기회야. 언제 홍화루 같은 고급 기루로 옮길지 모르니 말이야.”
“하긴 우리가 그런 델 가보기나 하겠나.”
아직 해가 지긴 이른 시각. 날이 훤한데도 소소정 앞에는 남정네들 여럿이 줄을 서고 있었다.
그들은 이런 일상이 익숙한지 자기네들 끼리 떠들며 순번을 기다리는 참이었다.
그때였다.
얼굴 한쪽에 칼자국이 길게 그어진 험악한 인상의 사내가 소소정 문 앞으로 걸어왔다.
한쪽 어깨에 걸친 대도, 방만한 걸음걸이.
거친 기파가 문 앞에 줄 선 사내들을 비켜서게 만들었다.
자연스레 새치기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뱀 앞의 개구리처럼 움츠러든 사내들은 조용히 자리를 내주었지만 개중에도 용기 있는 자가 있기 마련.
그것이 용기인지 만용인지, 그들 중 한명이 말을 걸었다.
“어어...... 어이, 우리 줄 서 있는 거 안보여?”
허나 험악한 인상의 남자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크크크...... 줄설 정도의 미인은 아니었을 텐데......”
무시당했다고 느낀 개구리 하나가 결국 소리쳤다.
“어이, 이봐!”
그러자 사내는 슬며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크크. 들어가기 전에 몸 좀 풀고 갈까.”
스산한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