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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너에게 나를 보낸다[To You From Me]
작가 : 해모
작품등록일 : 2018.12.12
너에게 나를 보낸다[To You From Me]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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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그가 느꼈을 불안.
내가 느꼈을 두려움.
동시에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음은 알지만 피부로 느끼지 못해 외로웠던 사랑.

부칠 수 없는 편지인걸 알면서도 뒤늦게 펜을 든 소녀와 초여름의 어느 날, 필시 주소가 잘못된 듯한 편지를 받은 소년. 서로 누구인지도 몰랐기에 주고 받을 수 있었던 두 사람의 사랑이 담긴 편지 속 이야기.

 
《11. 함께여서 행복했음을》
작성일 : 18-12-26 00:53     조회 : 291     추천 : 0     분량 : 6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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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거워진 눈시울이 식을 줄을 몰랐다. 나는 민폐인 걸 알면서도 마른 듯 단단한 어깻죽지에 눈가를 꾹 문대었다. 엉망으로 번진 눈물이 건조한 옷자락에 스미는 게 느껴졌다. 내 등에 가볍게 올려진 지민 씨의 손을 느낄 수 있었지만 지민 씨는 따로 나를 쓰다듬거나 토닥이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올려두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 가벼운 무게감이, 미미한 온기가, 내 옆에 누군가가 존재함을 여실히 알려주고 있었다. 자신은 어디 가지 않고 여기 있다고. 그렇게 알려주는 것 같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깊은 안정을 얻었다. 이 기분을 깨고 싶지 않아 조용히 눈을 감았다.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나중에 집에서 만나면 지민 씨가 미안하다며 사정이 있었다며 내게 얘기할 상황을 쉽게 상상할 수 있어서 괜찮았다. 아니,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는데 막상 늘 그래왔듯 혼자 아빠를 마주하고 나니 그게 아니었나 보다. 불쑥 눈앞에 내밀어진 말린 종이와 얼룩덜룩 까만 자국이 가득한 뼈마디가 불거진 손에 시야가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컥 눈물이 터졌다. 살며시 고개를 들었더니 흐린 시야 너머로 뛰어왔는지 흐트러진 머리칼에 상기된 얼굴이 보여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지민 씨를 보자마자 느낀 안심, 고마움, 미안함, 설렘…. 어쩔 줄 모르는 그 얼굴에 미안함이 가득 담겨있어서 그걸로도 마음이 사르르 녹아 흩어져 버렸다.

 '미안해요. 혼자 둬서.'

 됐다 이제. 왔으니까 이거면 됐다. 나는 이제 정말 괜찮다.

 

 “…수지 씨가 누굴 닮았나 했는데, 아버지를 닮았나 봐요. 되게 미남이시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지민 씨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숨만 내쉬었고 지민 씨는 내 등에 손을 얹은 상태 그대로 서서 나를 밀어내거나 하지 않았다.

 내가 서서히 울음을 그칠 때쯤 지민 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낮고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대리석 벽에 부딪혀 웅웅 내 귀를 파고 들어왔다. 언제더라. 처음 지민 씨를 만났을 때도 이랬던 거 같다. 그를 보자마자 나는 아이처럼 엉엉 울고 내가 감정을 추스를 때까지 지민 씨는 달리 말없이 기다려주고. 불과 오일 전에 있었던 일인데 아주 먼 옛날에 생긴 일 같다.

 

 파르르 감은 눈을 떴다. 지금쯤 지민 씨는 아빠의 사진을 보고 있을까. 아직도 지민 씨의 허리를 감싼 손이 떨려서 나는 하는 수 없이 손을 풀었는데 두 손에 갑자기 온기가 느껴졌다. 동시에 등에 얹히고 있던 무게감과 온기가 사라졌다. 순간 그게 퍽 아쉽게 느껴졌다. 내 두 손을 제 두 손으로 가볍게 잡아내린 지민 씨가 멋쩍게 웃어 보인다. 의아하게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어느새 내 손안에는 흰 두루마리 종이가 들려 있었다.

 

 “이게 뭐…?”

 “선물이에요. 선물이라기엔 좀 소박하지만….”

 

 쑥스러운 듯 여전히 멋쩍게 웃고 있는 지민 씨를 올려다봤다가 다시 종이를 내려다봤다. 멈칫. 조심스레 둘둘 말린 종이를 펼쳐보았다. 서서히 드러나는, 나…? 팔을 넓게 들어야 온전히 보이는 커다란 종이 안에는 흑백의 연필로 그려진 내가 있었다. 바람에 가닥가닥 흩어진 머리칼이 얼굴 위를 넘실대고 손에 반짝거리는 폭죽을 들고서 아무 걱정도 근심도 없는 깨끗한 눈을 하고서 미소 짓고 있는 내 모습이었다. 뒤에는 미세하지만 바다로 보이는 배경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을 보자마자 정신이 멍해졌다. 나는 이제 정말 괜찮구나. 이렇게 마음 놓고 활짝 웃고 있는 내가 나 같지가 않아서 낯설게 느껴졌다. 보는 내가 다 행복한 얼굴이다.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사진으로 남긴 부분도 아니라서 그리려면 꽤나 힘들었을 텐데.

 

 “사실 며칠 전부터 그리고 있었는데 수지 씨한테 오늘 주려고 막판에 밤을 새웠더니 학교에서 깜빡 자버렸지 뭐예요. 늦어서 미아… 아 아니 그러니까, 으….“

 “…….”

 

 내가 미안하단 말을 하지 말랬다는 게 기억이 났는지 황급히 입을 합 다무는 지민 씨였다. 어떡해. 또 눈시울이 뜨거워지려고 한다. 내가 굳은 듯 미동도 없이 그림만 뚫어져라 보고 있자 지민 씨는 점점 안절부절 못 했다.

 

 “호, 혹시 마음대로 그려서 기분 상했어요…?”

 

 그 조심스러운 물음에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니,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라….

 

 “왜… 이렇게 급하게 주려고 했어요? 아직 이틀은 남았는데….”

 “아….”

 

 내 눈치를 살피던 지민 씨는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는지 잠시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겨우 그림에서 눈을 떼고 지민 씨를 응시했다. 다른 쪽을 보며 고민하던 지민 씨가 천천히 나를 쳐다본다.

 

 “그냥, 빨리 보여주고 싶었어요. …머뭇거리다가 놓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곤 이내 살며시 웃는다. 예의 곱게 휘어지는 눈꼬리가 분명 웃고 있었지만 그 속에 담긴 눈동자는 꼭 우는 것만 같았다. 쿵, 심장이 내려앉았다. 별 뜻 없이 얘기하는 거 같아도 단순히 그뿐만이 아닌 거 같다. 기다리는 게 익숙했던, 기다려야만 할 것 같았던, 어릴 때부터 그렇게 믿고 지냈던 지민 씨였다. 하지만 막연히 기다리기만 해선 아무도 그 길고 질긴 시간에 보답해주지 않는다는 걸 알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엔 놓치지 않으려 먼저 손을 뻗은 게 아닐까 하고. 찰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려앉은 심장은 순식간에 위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혼자 있을 내가 걱정이 되어, 하루빨리 그림을 보여주고 싶어, 행여 내가 가버릴까 다리가 부서져라 뛰어왔을 지민 씨를 떠올리니 온몸의 감각이 통제가 되질 않았다. 시선을 피하고 천천히 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 확연히 붉어진 얼굴이 나까지도 느껴질 지경이었다.

 

 “한 번도….”

 “네?”

 “살면서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선물이에요. 너무, 기쁘다….”

 “그래요? 다행이다―.”

 

 정말, 기뻤다. 평생 살면서 받은 선물 중에 단연 최고였다. 어떤 값진 것과 견주어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그려준 이 그림과 잠자코 옆자리를 채워준 온기와 나를 생각해주는 어여쁜 마음이. 마지막으로 윤지민, 이 사람의 존재가.

 

 

 ***

 

 

 “결국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네요…. 내가 늦지만 않았어도….”

 

 해가 완전히 진 시각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민 씨는 시무룩하니 어깨를 늘어뜨렸다. 지민 씨가 들고 온 작은 꽃다발을 유리 표면에 붙여둘 때쯤엔 7시가 다 되어 납골당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출입 가능한 시간이 오후 7시까지라 어쩔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제대로 된 인사도 못 드렸다며 지민 씨는 팍 풀이 죽었다.

 

 “뭐 괜찮아요. 우리 아빠 그렇게 속 좁은 사람도 아니고… 지민 씨가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실 거예요.”

 “미안해요. 뭐라 할 말이 없네요….”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는 사과를 중얼거리는 지민 씨를 새초롬하게 쳐다봤다. 그에 내 시선을 느꼈는지 손으로 입을 살짝 가린다. 나는 장난스레 치켜떴던 눈에 힘을 풀고 피실 웃음을 흘렸다. 행여 구겨질까 소중하게 만 종이를 들고서 지민 씨와 나란히 걸었다. 사방이 뻥 뚫린 도로 주변으로는 어둠에 물들어 짙어진 코스모스가 흔들리는 게 보이고 저 멀리 짭짜름한 향기를 풍기는 바다도 보였다. 쌀쌀한 바람에 얼굴이나 손끝이 시원해졌다. 뺨에 달라붙는 잔머리를 떼낼쯤이었나 우웅 바지춤에서 울리는 핸드폰 진동 소리에 그제야 미뤄둔 연락이 생각났다.

 

 “어, 전화 오는 거 아니에요?”

 “……그냥 엄마랑 친구예요. 굳이 안 받아도 돼요.”

 

 지민 씨의 의아한 눈을 마주 보고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지민 씨는 말없이 그런 나를 본다. 주춤. 살짝 고민하다가 결국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사실, 여기 와서 한 번도 연락을 안 했어요.”

 “네?! 그럼 다들 걱정하잖아요?”

 “그야 내가 어디 가는 줄도 이미 알고 있고, 어차피 일주일 정도니까 굳이 할 필요가 있을… 까요?”

 “하아, 수지 씨.”

 “…네?”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시선을 피하자 갑자기 지민 씨가 걸음을 멈췄다. 어색한 분위기를 감추려 괜스레 하하 웃어 보였지만 도리어 낮게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나도 덩달아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가족이나 친구들은, 그게 궁금한 거예요. 무사히 도착은 잘 했나. 겨우 며칠이지만 밥은 잘 챙겨 먹고 있나. 지내는 동안 행복하진 않더라도 힘들지는 않을까. 그런 게 걱정되는 거라구요. 연락이라고 별거 있나요. 문자 하나 틱 보내놔도 안심하고 수지 씨가 잘 돌아오길 기다릴 텐데.”

 “……그런 거예요?”

 “응, 나 같은 경우는 연락하는 것도 바쁜 부모님이 걱정은 되지만 또 나 없이 너무 잘 지낼까 봐 겁나서 기다리기만 했어요. 어쩌다 할머니 통해서 소식이라도 들으면 그래도 잘 지내서 다행이다 안심하고. 그러니까 연락해 봐요.”

 

 순간 지민 씨가 크게 느껴졌다. 유순하게 눈매를 늘어뜨린 애달픈 얼굴로 담담하게 말하는데 순간이나마 나보다 어른인 듯이 느껴졌다.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갛게 웃는 걸 보니 금방 평소의 지민 씨로 돌아왔지만. 그에 왠지 모를 용기를 얻었다. 나는 망설이다 바지춤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진작에 끊겨버린 화면엔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남겨져있었다. 두 통은 엄마에게서 나머지 두 통은 은기에게서. 처음부터 연락이 잘 안 될 수도 있다고 언질 해두긴 했지만 그래도 이때까지 아무 연락도 없던 것치곤 남겨진 부재중이 별로 없다. 엄마도 은기도 지금 내가 어떤 마음으로 여길 왔는지 아는 거다. 그래도 역시 엄마한텐 무사히 이장을 했단 사실을 전해줬어야 했다.

 

 「잘 도착했니? 굶지는 않고 밥 잘 챙겨 먹으면서 지내는 거지? 전화를 안 받네. 나중에 꼭 연락 줘.

 -2017.10.3.AM.9:10 엄마♥」

 

 「생존신고 바람. 걱정된다.

 -2017.10.4.PM.8:36 은기」

 

 문자를 확인하고 나도 모르게 손톱을 물었다. 하긴 나라도 내 지인이 나처럼 행동했다면 심히 걱정됐을 거다. 핸드폰을 들고 지민 씨를 한번 쳐다보자 미세하게 고갤 끄덕였다. 괜찮다는 의미인가. 지민 씨는 길가에 멈춰 나를 기다려줬다. 간혹 내가 신경 쓸까 봐 딴청을 부리며 멀리 있는 바다를 내다보거나 땅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신발코로 건드리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자니 전화를 안 걸 수가 없더라. 결국 엄마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몇 번 울리지도 않았는데 건너편에서 엄마의 음성이 넘어왔다.

 

 - 수지야, 무슨 일 있었어? 하도 연락이 없어서 걱정했잖니….

 “그냥, 아빠랑 지내느라 좀 바빴어. 8살 이후로 처음이잖아.”

 - 아빠는….

 “응, 무사히 이장했어. 걱정 마.”

 

 염려 가득했던 엄마의 음성은 점차 나와 대화를 하며 안도의 한숨으로 바뀌어 갔다. 몇 가지 간단한 소식을 전했고 나는 곧 돌아간다는 말과 함께 작은 목소리로 말을 하나 덧붙였다.

 

 “엄마, 나 여기서 굉장히 좋은 사람 만났다? 돌아가면, 해줄 얘기가 많아.”

 

 그리 말하며 살짝 돌아본 시야 안에 쭈그려 앉아 바람결에 움직이는 코스모스를 따라 고개를 이리저리 기울이는 지민 씨가 걸렸다.

 해줄 말이 아주 많아. 고작 일주일 여기 있었을 뿐인데 여태 찾지 못했던 무언가를 찾은 것만 같아.

 엄마와의 통화를 끝내고 은기에게 곧장 전화를 걸었다. 역시 얼마 걸지 않아 달칵 통화가 연결됐다. 동시에 왁자지껄한 소음이 섞여들렸다.

 

 “생존신고.”

 - …공기 좋고 물 좋으니까 내 생각은 하나도 안 났지?

 “치, 다 알면서 그런다. 주위가 시끄럽네?”

 - 그놈의 OT 지 뭐. 잠시만―. 어, 말해.

 “나 내일모레 서울 올라 가.”

 - 이제 괜찮아?

 “응, 괜찮아. 이번엔 확실해.”

 

 실내에서 밖으로 나왔는지 갑자기 조용해진 핸드폰 너머로 간간이 도로 위 차가 지나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술을 좀 마셨는지 은기의 낮게 웃는 웃음소리가 늘어졌다. 은기한테도 해줄 얘기가 많겠구나. 이렇게 나를 걱정해주던 친구에게 나는 이때까지 완전히 나를 보여주지는 않았구나. 그 생각을 하니 조금 서글퍼졌다. 은기는 나의 대부분의 사정을 안다. 하지만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뒤부터 남몰래 아빠에게 편지를 썼다는 건 모른다. 다정하고 좋은 친구지만, 나조차 이해가 가지 않는 의미 없던 내 행동을 친구라고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지 않았다. 그런데 이젠 얘기할 수 있을 거 같다. 내가 어디에서 어떤 식으로 지내든 응원해주고 기다려주는 친구니까.

 

 - 그래, 괜찮으면 됐다. 빨리 오라곤 안 할게. 조심히 와.

 

 그제야 연락을 끝냈다.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손에 꾹 쥔 채 뒤를 돌아봤다. 어느새 지민 씨는 멀지 않은 곳에 떨어져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럼 갈까요 우리?”

 

 연락하길 잘 한 거 같다. 내 주변엔 온통 좋은 사람들뿐이라 나도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 주고 싶다. 특히나 지민 씨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 아니지 않나 싶다.

 그가 옆에서 힘을 북돋아줘서 참 다행이다. 나 자신이 괜찮다고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이랑 일주일이나 함께라 정말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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