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발모(regrowth)
중학교 졸업식 다음은 고등학교 입학식이었다. 찌뿌드드한 몸과 마음으로 기상한 나는 얼굴과 머리를 씻고 아침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니 책상에는 낯선 물체가 음침하게 놓여 있었다. 교복을 입은 나는 그 을씨년스러운 물체를 머리에 씌우기 시작했다. 잘 안 써졌다. 최대한 집중해서 써 보았으나 가발은 미묘한 차이로 계속해서 어긋났다. 중학교 졸업식 날 청명의 가발을 착용해 본 것, 며칠 전부터 연습 삼아 몇 번 써 본 게 다였으니 충분히 그럴 만했다. 그사이에 시계바늘은 정근하게 돌아갔다. 시간상 이제 최후의 기회만이 남아 있었다. 거울 속 내 이마를 뚫어져라 주시하며 나는 가발을 머리에 씌웠다. 최종적으로 가발의 무게중심은 머리의 중앙에서 약간 왼쪽으로 쏠렸다. 왼쪽 옆머리는 귓불 아래로 흘러내렸고, 오른쪽 옆머리는 귓불에 닿지 못하는 비대칭을 이루었다. 나는 야릇한 불편함을 느끼며 방문을 나섰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신발을 신고 나서 내가 말했다.
“그래. 지현아 잘 다녀와. 너무 기죽지 말고.”
오랜만에, 적어도 겉보기에는 온전한 모습으로 집을 나서는 나를 부모님은 웃는 얼굴로 배웅해 주었다. 웃음 속에 감춰진 가련한 눈빛에 내 가슴은 바늘로 쿡쿡 찔린 듯이 아려왔다.
가볍지만 무거운 가발을 쓰고 버스를 기다리는 내내, 포기하고 싶다는 충동이 머릿속을 향해 달콤하게 속삭였다. 불균형하게 착용하여, 미묘하게 거슬리는 가발과 조급하게 다가오는 버스는 충동에 불씨를 놓았다. 머릿속의 은밀한 속삭임은 휴대폰 진동소리에 의해 수증기로 증발했다. 청명의 문자였다.
'지현아. 가발은 잘 썼니? 처음이라 많이 불편하지? 오늘 입학식이라 일찍 마치니까 나중에 해산공원에서 만나지 않을래?'
문자를 다 읽었을 무렵 버스는 내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청소기에 빨려드는 먼지처럼 나는 힘없이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해산바닷가를 경유하여 30분 거리의 고등학교에 도착하였다. 나는 같은 교복을 착용한 또래들 틈에 섞여 교문에 들어섰다.
교실에 앉아 있는 내내, 수업 내용이 하나도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내 머릿속은 벌처럼 쏘아대는 피해망상으로 점철된 상태였다. 옆자리와 뒷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애가 느닷없이 가발을 확 벗기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쉬는 시간, 주변에서 킥킥대는 소리는 왠지 모르게 내 민머리를 겨냥하는 것 같았다. 파리 떼처럼 몰려드는 망령된 생각을 청명이 건넨 금쪽같은 조언으로 쫓아내며 나는 반나절을 버텼다.
개학일이라 수업은 정오가 되기 전에 끝났고 청명과 나는 해산공원에서 만났다. 해산공원은 따사로운 햇빛에 그윽하게 물든 상태였다. 마치 거대한 분무기를 뿌린 것처럼 햇빛의 기운이 사방으로 넓게 퍼져 있었다. 트랙을 거니는 와중에 한 뭉치의 바람이 가발을 선선하게 쓰다듬었다. 앞머리를 가다듬으며 청명이 말했다.
“가발 예쁘게 잘 잘랐네. 너무 자연스러워서 못 알아볼 정도야.” 눈웃음을 지으며 청명은 말을 마쳤다.
“그래?” 배시시 웃으며 나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고맙다는 표현은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너네 학교는 어때?”
“첫 날이다 보니 아무래도 조금 낯설어.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적응되겠지. 너네는?”
해산공원을 거닐며 청명과 나는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또래 고등학생들이 나누는 평범한 대화였다. 해산공원을 한 바퀴 도는 데는 15분이 소요되었다. 두 바퀴째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내밀한 대화를 시작했다.
“가발 쓰니까 어때? 많이 불편하지?”
청명의 말에 나는 불씨가 붙은 도화선처럼 오전에 있었던 일들을 토로하였다. 다 안다는 표정으로 청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연신 맞장구를 치며 나를 진정시켰다.
“결국은 서서히 적응해야 할 거야. 나도 처음엔 힘들었지만 차츰차츰 적응이 되더라구.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갈수록 더 나아질 거야.” 청명이 말했다.
두 바퀴를 돈 청명과 나는 해산공원을 빠져나왔다. 집이 반대 방향이라 우리는 곧 헤어져야 했다.
“지현아. 다음에 대학병원에서 보자.”
“그래. 잘 지내.”
중학교 동창들 중 몇몇은 나와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내가 가발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당연히 알았지만 별다른 내색 없이 나를 대해 주었다. 갑작스레 맞닥뜨린 이질적인 삶이 너무나도 버거웠지만 나는 어찌어찌 버텨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머지않아 나는 첫 번째 장벽을 맞이하게 되었다. 고등학교도, 가발도 아직 익숙지 않은 3월이었다. 개학하고 3주가 지난 어느 날 조례 시간이었다.
“다음 주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수련회를 간다. 다들 갈 거지? 지금 동의서 돌릴 테니까 내일까지 부모님 싸인 받아서 갖고 와.”
그 순간 나는 와르르 무너지는 돌무더기에 깔린 듯했다. 그야말로 낭패를 당한 심정이었고, 잠시 동안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동의서를 받으면서 제정신을 차린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변의 다른 애들은 덤덤한 낯빛으로 조례를 듣고 있었다. 담담한 어조로 조례를 하는 담임선생님처럼 반 아이들 모두 무덤덤한 기색이었다. 불과 1년 전의 나라면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머릿속이, 말 그대로 새하얘졌다. 가발을 쓰고 2박 3일 수련회를 가는 건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가발을 벗고 민머리로 자지 않는 이상, 2박 3일은 물론이고 1박 2일도 불가능했다. 씁쓸한 고립감을 느끼며 나는 하는 수 없이 수련회를 빠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외감을 느끼던 나에게, 그러다 불현듯이 한 가지 의문이 고개를 내밀었다. 머릿속에서 문득 청명이 떠오른 것이었다. 9살 때부터 가발을 써 온 청명은 수학여행이나 수련회를 어떻게 대응했을지, 나는 몹시 궁금해졌다.
점심시간에 밥을 먹은 후 나는 곧바로 청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등학교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나누다가 나는 서서히 이야기를 본론으로 몰아갔다.
“우리 학교는 다음 주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수련회를 가는데, 너네 학교는 수련회가 언제야?” 내가 말했다.
“우리 학교는 다음 주 월요일, 화요일이야. 너네는 2박 3일이구나.”
청명의 대답을 들은 나는 숙연하게 가라앉은 음색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수련회는 못 가겠지?”
의문문으로 말했지만 비관적인 대답이 나올 거라고 나는 내심 확신하고 있었다. 내 말을 들은 청명은, 그러나 태연한 어조로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수련회에 간다고 대답하였다. 예상을 완전히 빗겨간 대답에 작은 충격을 받은 나는 뿅망치를 얻어맞은 두더지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나는 혹시 주위에 다른 사람이 있는지 한번 쭉 둘러보았다. 두 명의 모습이 보였지만 나에게 귀를 겨누고 있진 않았고 간격 또한 충분히 떨어져 있었다. 그제야 마음을 놓은 나는 자그마한 목소리로 청명에게 물어보았다.
“가발은 어떻게 할 거야?”
휴대폰 너머에서 배시시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다 요령이 있지. 가르쳐 줄까?”
씨익, 하고 웃는 청명의 얼굴을 나는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대답을 재촉하며 나는 휴대폰을 귀에 바짝 갖다 댔다. 청명은 자신의 팁을 전해 주었다.
“지극히 단순한 방법이야. 듣고 나면 어이없어 할지도 모르겠어. 가발을 두 개 가져가는 방법인데, 이 계획의 핵심은 낮에 활동할 때는 새 가발을 쓰고, 밤에 잘 때는 헌 가발을 쓰는 거야. 그러니 하나는 지금 쓰고 있는 이른바 새 가발을, 나머지 하나는 손상되어도 상관없는 이른바 헌 가발을 가져가야 해. 가발은 밤에 자기 직전에 교체하면 돼. 화장실에 들어가서 새 가발을 헌 가발로 바꿔 쓴 다음에, 새 가발은 다른 애들이 못 보게 가방이나 봉투에 감춰 두는 거야. 그러고 나서 헌 가발에다 적당히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자면 돼. 다음 날 아침에, 기상예정시간보다 일찍 일어나서 헌 가발을 새 가발로 바꿔 쓰면 이 계획은 완료돼. 저번에 내가 헌 가발을 하나 줬잖아. 수련회 가고 싶으면 그거 가져가.”
뭔가 기발한 노하우가 있지 않나 싶었으나 지극히 단순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무식한 방법이었다. 살짝 허탈감이 밀려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방법이었고, 어쩌면 벽을 뛰어넘을 유일한 방도였다. 잠시 골똘한 생각에 잠긴 나에게 청명은 추가적인 조언을 남기었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어. 두 개의 가발만 믿고 중학교 때 3박 4일 동안 수학여행을 갔다가 마지막 날에 봉변을 당한 적이 있었거든. 나는 전날 밤에 기상예정시간보다 30분 일찍 알람을 맞춰 놓고 잤어. 다음 날 아침에 예정대로 30분 일찍 일어났는데, 나보다도 더 일찍 일어난 애가 있었어. 하물며 그 애가 내 가발을 발견한 거야. 그 애가 내 짐을 자기 걸로 착각한 나머지 가발을 발견했거든. 정말 심장이 두 동강 나는 줄 알았어. 그러니 이 방법을 쓰려면 한 가지 사실을 명심해야 해. 잠자기 전이랑 깨어난 후를 조심해야 해.”
차가운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오싹한 경험담이었다. 가발이 발각된다는 건, 생각만 해도 재앙 같은 일이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정말 조심해야겠네.”
수련회 참석 여부를 두고 고심하다가 나는 결국 수련회에 갔다. 새 가발을 착용한 나의 가방 속에는 청명이 준 헌 가발이 담겨 있었다. 밤에 자기 직전과 아침에 일어난 직후에 나는 화장실 문을 잠그고 다른 애들 몰래 새 가발과 헌 가발을 바꿔 썼다. 흡사 내밀한 임무를 수행하는 간첩처럼 말이다.
춥고 어두웠던 겨울이 미지근한 봄으로 밝아졌듯이 나도 이전의 삶으로 복귀하는 듯했다. 고교 생활도 익숙해졌고, 처음 가발을 착용할 때의 불편한 느낌도 많이 수그러들었다. 체육시간 때 얼마간의 불편함을 제외하곤 그런대로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가발을 써야 했기에 등교 시간-8시 20분-을 고려하여 오전 6시에 일어나야 했고, 일주기 리듬은 거의 반강제로 회복되었다. 워낙 이른 아침에 일어났기에 밤이면 깨어날 수 없을 듯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병원과도 멀어지는 듯했다. 첫 진료 때 협의했던 대로 나는 한 달에 한 번만 대학병원에 내원하였다. 매달 마지막 주 화요일에 나는 조퇴를 하고 대학병원 의사에게 머리를 보여준 다음 약을 처방 받았다. 아침과 점심 약은 학교에서 먹었고, 야간자율학습을 하지 않았기에 저녁 약은 집에서 복용했다.
머리카락이 고개를 내민 건 교정이 개나리 빛으로 물든 4월 초였다. 4개월 만에 몰살당한 머리털이 4개월 만에 다시 돋아난 것이었다. 위태로워 보였다. 채 1센티미터가 안 되는 높이에 간극도 듬성듬성한 탓에 머리카락은 0.3밀리미터 샤프심보다도 가냘파 보였다. 미숙아를 출산한 모성의 심정으로 나는 새싹들을 바라보았다. 애처로운 눈길로 그저 바라보았다. 이래저래 머리털 농사의 첫 발을 뗀 셈이었지만, 가야할 길은 아스라이 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