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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hair)헤어날 수 없는 탈모
작가 : 탈모인
작품등록일 : 2017.12.16

의대생 한지현은 탈모 강의를 듣고 7년 전을 떠올린다. 평범한 여중생이던 자신의 머리카락이 급작스레 빠지게 된,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탈모 병변은 돌연변이가 일어난 암세포처럼 분열하고... 결국 지현은 대학병원 피부과에 내원한다. 열일곱의 나이로 모든 머리카락을 잃게 된 지현은 대인기피증과 극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되는데...
여느 때처럼 모자를 눌러쓰고 진료를 받고 나온 지현은 '전신 탈모증'을 앓는 동갑내기 유청명을 만나게 된다. 자신의 아픔을 이해해 주고, 진심 어린 위로를 해주는 유일무이한 친구이다.
훗날 의대생이 된 지현은 자신의 힘으로 전신 탈모증을 치료하려 하는데...
가발부터 피부과, 동의보감, 심리상담까지 탈모의 모든 면을 다룬 메디컬 소설!

 
6~7장: 니조랄 샴푸, 조롱
작성일 : 17-12-16 17:04     조회 : 362     추천 : 0     분량 : 4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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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니조랄 샴푸(nizoral)

  그 무렵, 탈모 병변은 겉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초기에는 윗부분의 머리카락들이 뒤통수의 병변을 덮어주었다. 중력에 이끌린 머리카락들이, 대지를 뒤덮는 숲처럼 병변을 수십, 수백 겹으로 가려주었다. 그랬던 뒤통수의 황무지가 이제 외부로 노출되었다. 모두가 알아차릴 만큼 원형 탈모 병변이 확장된 것이었다.

 “원형 탈모는 스트레스성이잖아. 그러니 다 날 거야.”

  학교에서도 다들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내 머리카락은 계속해서 빠졌다. 점점 더 영토를 확장하는 병충해 탓에 병변은 거의 음료수 캔 밑바닥만한 면적이 되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이제는 두정부에서도 슬며시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두정부에서는 타원에 가까운 모양으로 머리카락이 빠졌다.

  작은 갈림길인 고등학교 지원이 시작되는 12월 초에 나는 네 번째 주사를 맞게 되었다. 지난번과 달리 나는 엄마와 함께 U피부과에 갔다. 엄마는, 내 뒤통수를 요리조리 살펴보는 피부과 의사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머리카락이 왜 안 자라고 계속 빠지는 거죠?” 처음 왔을 때보다 한층 더 근심과 염려가 담긴 목소리였다.

  엄마의 말에 피부과 의사는 양 손을 이리저리 휘저어가며 설명해 주었다. 피부과 의사의 손놀림은 토크쇼를 진행하는 MC처럼 능수능란했다.

 “원래 원형 탈모가 생겨서 머리카락이 빠진 곳은 다시 나려면 시간이 좀 오래 걸려요. 제가 확인해 보니까 주사 맞은 데는 솜털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거든요. 사실 원형 탈모가 원래 예측하기가 좀 힘들어요. 그러니 일단은 주사를 계속 맞아봅시다. 그리고 머리에 기름기가 좀 많아요. 니조랄 샴푸를 처방해 줄 테니까 이제부터는 그걸로 머리를 감으세요. 머리 감을 때 좀 빠지더라도 신경 쓰지 말고 감으면 됩니다.”

  애매했다. 계속되는 탈모에도 불구하고 솜털이 자라고 있으니 좀 더 지켜보자는 피부과 의사의 말은 불안하게 평형을 유지하는 시소처럼 모호했다.

  다음 날 아침, 머리를 감기 전에 나는 굳은 결심을 했다. 피부과 의사가 처방해 준 니조랄 샴푸를 머리에 듬뿍 묻히며 몇 번이고 다짐했다. 설령 머리카락이 빠지더라도 두피를 빡빡 문질러서 기름기를 깡그리 씻어 내자고, 대뇌의 운동중추가 척수신경을 타고 내려와 손가락의 근육에게 몇 번이고 권고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후들후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나는 두피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손끝과 두피가 마찰하는 강도를 높여갔다. 마찰력에 비례하여 머리카락은 서서히 빠져나갔다. 이윽고 내가 샴푸거품이 고일 정도로 두피를 빡빡 문질러대자 머리카락은 가을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 버렸다.

  머리카락이 빠지게 된 그날부터였다. 탈모량에 비례하여 나는 점점 움츠러들었다. 빠지는 양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자 나는 샴푸거품이 일어날 정도로 두피에 충분한 마찰을 가하지 못하게 되었다. 입스에 걸린 운동선수처럼 위축된 터였다. 두피는 그런 심리적 메커니즘을 거쳐 지용성으로 변질된 것이었다.

  참혹했다. 피부과 의사의 말대로 독하게 마음먹고 두피를 빡빡 문지른 결과는, 그러나 너무나도 잔인했다. 화장실에서 일어난 조용한 학살에 내 가슴은 쇠망치로 내려친 유리처럼 으깨져버렸다. 그날 이후로 나는 ‘머리를 빡빡 문지르기’라는 종목에서 은퇴를 했다. 두 번 다시는 머리카락으로 뒤덮인 두피를 빡빡 문지를 때의, 그 야릇하고 절묘한 감촉을 맛볼 수 없었다.

  그해 겨울바람은 여러모로 차가웠다. 기상청에서 역대급 한파라고 공고한 차가운 바람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부의 틈이란 틈마다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후두부에만 있던 탈모 병변이 측두부에도 그리고 두정부에도 새로 생겼네요. 확실히 원형 탈모가 번지고 있네요. 아무래도 약을 좀 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전보다 한결 진지해진 표정으로 피부과 의사가 말했다.

  12월 중순이 되면서 나는 원형 탈모증 2개월을 맞이했다. 마지막인 여섯 번째 주사를 놓아준 뒤에 피부과 의사가 약을 먹자고 권유한 것이었다.

 “대학병원에 데려가려고 하는데 진료의뢰서 좀 써 주시겠습니까?” 엄마는 약 대신 진료의뢰서를 요구했다.

 “아, 대학병원에 가 보시겠어요? 그럼 그렇게 하세요.” 말을 마친 피부과 의사는 흰 봉투에다 종이 한 장을 넣어주었다.

  대학병원에 가야 한다는 게 믿기지 않으면서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거울 두 개를 동원하여 살펴본 내 머리는 분명 심각한 상태였다. 처음 머리카락이 빠졌던 후두부의 50원은 이제 1리터짜리 음료수병 밑바닥만 했고, 측두부와 두정부에도 각각 두세 개의 병변이 양쪽에서 나타난 상태였다. 설핏 봐도 20퍼센트 이상의 머리카락이 빠진 상태였다. 지난 일주일 사이에 급속도로 진행한 결과였다. 무기력하게 집으로 돌아온 엄마와 나는 곧바로 대학병원 피부과 진료를 예약했다. 대학병원이다 보니 진료를 받기 위해선 2주 가까이 기다려야 했다.

  하다못해 2주만이라도, 제발 탈모가 멈췄으면 했다. 모종의 휴전을 하고 싶었다. 인정머리 없는 원형 탈모증은,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영토를 넓혀갔다. 정점에서 떨어지는 롤러코스터처럼 원형 탈모증은 되레 빠른 속도로 머리털을 휩쓸어갔다. 머리카락은 마치 병충해가 확산되는 소나무 숲처럼 속절없이 쓰러져갔고, 아침마다 화장실 바닥엔 공동묘지가 세워졌다.

  아침마다 가슴속이 쑥대밭이 되었다. 머리카락이 빠지기 전까지, 머리감기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던 행위였다. 세수하고 아침 먹고 학교에 가듯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당연한 절차 중의 하나였다. 이제는 아니었다. 머리 감을 때마다 나는 날카로운 메스로 심장을 긁어내는 듯한 아픔을 맛보았다. 대학병원 피부과 의사를 24시간 내 곁에 상주시키고 싶은 심정이었다.

 

 7. 조롱(mockery)

  원형 탈모가 심해질수록 주변의 반응은 뜨거워졌다. 병변 하나가 드러났을 때는 주위의 모두들 덤덤한 표정으로 다 날 거라고 말했다. 마치 이삼 일 지나면 호전되는 몸살이나 감기처럼 말이다. 180도 달라졌다. 음료수캔 밑바닥만 하던 원형 탈모가 내 머리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자 주위의 반응은 확연히 달라졌다. 나를 제외한, 머리털이 빠지지 않은 나머지 사람들은 흡사 동물원에서 오랑우탄을 감상하는 관람객 같은 태도를 취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구경꾼들의 시선은 즐거움과 호기심으로 번쩍거렸다.

 “저거 원형 탈모가? 원형 탈모가 저래 될 수도 있나?”

 “저거는 절대 다 안 난다. 내 손모가지를 건다.”

 “으아, 쟤 머리 봐라. 밥맛 떨어진다.”

 “푸하하, 여자애가 대머리가? 대박인데.”

 “진짜 불쌍하다. 탈모가 저 정도면 나중에 아무것도 못할 거야.”

 “우와, 이 나이에 탈모라니 안 됐다. 내가 쟤라면 진심 자살한다.”

  원형 탈모가 전염되지 않는다는 빤한 사실을 역으로 이용한 지능적인 애도 있었다.

 “야, 쟤한테 가까이 가지마라. 전염되겠다. 하하하.”

  정수리가 살짝 벗겨진 도덕 선생 한 명도 내 머리를 감상하더니 감정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메마른 사막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그 나이에 탈모냐? 그것도 여자애가. 참 기막힌 일이네.” 도덕 선생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가 벌써부터 탈모냐’라는 눈빛으로 나를 내려보았다.

  혀를 날름거리는 하이에나 때에 둘러싸인 한 마리의 임팔라가 된 심정이었다. 배고픈 하이에나들은 날카로운 이빨로 내 가슴을 물어뜯었다. 칼처럼 날카로운 웃음소리에 나는 선혈을 뿜어내며 두부처럼 속절없이 베였다. 해맑은 웃음소리 한 구절마다 붉은 선혈이 마일리지처럼 쌓여갔다. 가슴속에 쌓인, 배수될 길 없는 핏물은 차곡차곡 누적되기 시작했다.

  종합선물세트처럼 쏟아지는 웃음소리를, 나는 두 가지로 대응했다. 우선 원형 탈모 병변을 가리기 위해 비니를 착용했다. 또한 거의 매일, 오전 수업이 끝나고 조퇴를 했다. 조퇴가 아닌 자퇴를 하고 싶었지만 겨울 방학을 2주 남겨둔 터라 앙칼지게 버터내기로 했다. 종례가 끝나거나 조퇴할 때면 나는 지옥을 탈출하는 심정으로 학교를 뛰쳐나와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구경꾼들의 웃음소리는 한여름 밤의 모기떼처럼 귓가를 윙윙거렸다. 기쁨은 나눌수록 배가 된다는 말처럼 웃음소리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구경꾼들의 웃음소리가 하늘로 치솟을 때마다 나는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는 시간 내내, 받줄에 묶인 듯이 가슴이 옥죄어 왔다.

 “원형 탈모는 괜찮아진대. 너무 걱정하지 마.”

 “밥 먹으러 가자. 다른 애들 너무 신경 쓰지 마.”

  몇몇으로부터 받은 위로는 휴지로 만든 너절한 방패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던진 날카로운 창에 찔러 거미줄처럼 속절없이 찢어졌다.

  그 무렵 나는 희한한 꿈을 꿨다. 꿈속의 나는 두 달 전의 나처럼 머리털이 풍성했다. 전두부, 측두부, 두정부, 후두부 모두 머리카락으로 새까맣게 덮여 있었다. 숯검정처럼 검고 풍만한 머리카락은 가슴께까지 찰랑거렸고 나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기뻐하고 있었다. 꿈속의 내가 길고 부드러운 머릿결을 어루만지는 모습을 나는 한참 동안 지켜보았다.

  잠에서 깬 나는 혹시나하는 초조한 마음으로 머리를 더듬어 봤지만 역시나였다. 현실이 아니라 한낱 허상에 불과했다. 꿈속의 내 머리는 무거운 망치로 내려친 거울처럼 산산조각 나있었다.

 “중학교 마지막 방학이다. 여러모로 너희들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다들 방학 잘 보내기 바란다.”

  담임선생이 종례를 마치자 겨울 방학이 되었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방학이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나는 비니와 외투 모자를 뒤집어쓰고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왔다. 탁, 하고 현관문을 닫고 나서야 비로소 가슴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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