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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은혈록
작가 : 실라인
작품등록일 : 2017.12.14

비일상적인 일 없이 평온한 나날을 보내는 게 나의 작은 소망이다.
그래. 내 일상은 그 누구도 부수지 못 한다!
…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금액이었다.

어느 날. 평번하던 소년의 인생이 뒤바뀌어 버렸다.
세계의 그림자. 그 속에서 새로운 이레귤러가 된 소년은 오늘도 살아남기 위해 싸운다.

 
33. 회식(1)
작성일 : 17-12-20 17:41     조회 : 310     추천 : 0     분량 : 4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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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운 레이는 몇 번 정도 쓸 수 있어?”

 성지 안. 한소윤의 물음에 나는 머릿속으로 대충 계산해 답했다.

 “한 스무 번 정도?”

 다운 레이는 내가 소모한 은혈에 비례하여 강해지고 약해지는 특성이 있다.

 백윤현과의 일전 이후. 다른 임무에서 다운 레이를 실험적으로 사용했을 때 은혈의 1/3 정도가 소모되는 것을 확인했다. 아마 그게 다운 레이의 최대 출력인지 더 이상 은혈을 공급해도 위력은 늘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반대로 다운 레이를 발사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점점 줄여나갔다. 원금의 95퍼센트. 80퍼센트. 조금씩 줄어든 은혈의 최저 소모 값은 이제 최대 소모 값의 15퍼센트까지 줄어들었다.

 더 갈고 닦으면 지금보다도 더 줄일 수 있겠지만 사용 횟수가 스무 번이면 웬만한 전투가 아닌 이상 충분 할 거고, 더 이상 위력을 감소시킬 바에는 레이크로 베어버리는 게 편하기에 나는 이쯤에서 타협했다.

 “알았어. 그럼 여기서 내가 위마에게 접근할 때까지 최소 위력으로 계속 견제해줘.”

 나는 한소윤이 말한 위마를 바라봤다. 검은색 줄기에 커다란 방패처럼 두터운 노란 꽃잎 안에 종과 같은 흰색 꽃잎이 겹쳐 있는 모습의 식물. 마치 잎사귀 없는 수선화를 닮은 거대한 괴생물체는 도심 한 복판에서 태양빛을 마음껏 빨아먹고 있었다.

 크기가 7M는 되보이는 저 위마의 이름은 군자수선화. 수선화를 닮은 몸에 현실에 출몰해도 그곳에 뿌리를 내린 채로 가만히 성장하기만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라져.”

 한소윤은 멋들어질 정도로 목소리를 낮게 깔고 과도하게 혀를 굴린 내 대답에 별 다른 반응을 하지 않고 그저 담담히 작전의 시작을 알렸다.

 “가자.”

 갑옷을 입고 레이크를 뽑은 나의 임무는 매우 간단했다. 바로 한소윤이 군자수선화의 지척에 도달할 때까지 군자수선화의 솔라빔을 막는 것.

 ‘정확한 이름은 광충전 입자방출이지만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지.‘

 군자수선화의 공격패턴은 매우 단순했다. 누군가 원거리에서 자신을 공격하면 방패 같은 노란 꽃잎을 펼쳐 방어막을 생성한다. 근처에 자신에게 위협이 될 만한 생명체가 있으면 종처럼 생긴 흰색 꽃잎으로 에너지를 모은 뒤 방사한다. 이 두 가지뿐이다.

 여기서 광충전 입자방출. 그러니까 솔라빔은 방어막과 동시에 전개하지 못 한다. 그래서 한소윤이 군자수선화에게 다가가 약점인 배주가 있는 씨방을 도려낼 때까지 솔라빔을 쓰지 못 하게 내가 견제해야 되는 것이다.

 군자수선화의 배주는 녀석의 유일한 약점이기도 하면서 사람을 치유하는 성분이 들어있는 보물창고라고 한다. 그 덕에 엣지드 리볼버나 내 최대 출력의 다운 레이는 사용할 수 없다. 방어막이 단단하기도 하지만 행여 잘못 되서 배주가 손상되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피슈웅-

 레이크에서 비교적 얇은 은색의 빛줄기가 시원한 소리를 업고 군자수선화를 향해 쏘아졌다.

 군자수선화는 위험을 감지했는지 자신의 노란 꽃잎을 기역자로 접었다. 그러자 노란 꽃잎에서 꽃가루가 새어나오더니 군자수선화의 온 몸을 뒤덮었다.

 다운 레이의 은색 빛줄기가 마치 안개마냥 둘려있는 꽃가루에 부딪치자 정수 필터에 걸린 것처럼 멈춰 쌓이더니 얼마 안가 소멸했다.

 그와 동시에 한소윤이 우리가 있는 옥상에서 뛰어내리며 은장도를 해방했다. 떨어지는 한소윤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곧게 뻗은 외날의 검신, 자루머리에 둥근 수레바퀴 모양 고리와 고리에 달려있는 푸른 물결 모양 노리개가 인상적인 환두대도.

 코등이가 없는 약 110cm 길이의 환두대도를 한손으로 굳게 잡은 한소윤은 고양이처럼 지면에 살포시 착지하고 표범처럼 소리 없이 달려 나갔다.

 과거. 레이크를 들고 버스트를 사용했을 때보다도 더 빠른 스피드에 군자수선화는 노란 꽃잎을 움찔거렸지만 내 포격으로 인해 보호막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연달아 다운 레이를 발포하고 있는 나는 작게 투덜거렸다.

 ‘워낙 멀어서 그런가. 맞추기가 힘드네.’

 내가 있는 빌딩의 옥상은 군자수선화와 약 3KM 정도 떨어져있다. 7M나 되는 크기지만 이 정도 거리에서 보니 손톱보다도 작게 보였다. 강화된 시력과 뛰어난 운동능력으로 인해 아무리 빗나가도 방어막을 스칠 정도는 됐지만 나는 만족하지 못 했다.

 뛰어난 저격수는 평범한 소총으로 들고 2KM 떨어진 거리의 사람 저격도 성공한다는데, 신체가 강화된 나는 7M 높이의 표적도 제대로 맞추지 못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사람들과 비교하는 게 잘못 된 일이겠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벌써 군자수선화의 코앞까지 다가선 한소윤은 검을 한 번 휘두르는 것으로 군자수선화의 꽃가루 같은 방어막을 전부 걷어냈다.

 아무리 최소출력의 다운 레이라지만 웬만한 위마는 버틸 수 없을 정도의 공격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다운 레이를 연달아 막은 방어막을 검풍만으로 깨트리다니. 전부터 생각한 건데 지금의 한소윤은 말도 안 되게 강했다.

 6팀 전원이 특별한 일 때문에 모여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한소윤 혼자서도 뚝딱 해결했을 것이다.

 방어막을 걷어낸 한소윤은 지면을 살짝 박차더니 배주가 있는 높이까지 점프했다.

 군자수선화는 당황하며 급하게 하얀 꽃잎에 힘을 모았지만 이미 늦었다.

 한소윤의 환두대도가 배주 위를 가르며 지나가자 꽃잎이 만개한 거대한 꽃이 지면에 떨어졌다. 머리처럼 보이는 꽃이 낙화했지만 그럼에도 군자수선화는 아직 살아있는 모양인지 줄기를 꿈틀거렸다. 그러자 한소윤은 배주가 있는 곳으로 다시 한 번 뛰어오르더니 이번엔 밑에 있는 줄기 부분을 베어버렸다.

 쿵!

 7M나 되는 줄기가 이름 모를 차들 위로 쓰러지며 거대한 굉음을 냈지만 한소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허공에서 떨어지는 배주를 낚아챈 뒤 내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세이크리드 게이트의 위치는 이곳 옥상. 굳이 내려갈 필요가 없던 나는 한소윤이 건물 벽을 오르며 걸어오는 것을 느긋하게 지켜봤다.

 “자.”

 옥상에 도착한 한소윤을 향해 손을 내밀자 한소윤은 들고 있던 군자수선화의 배주를 건네주었다. 수박보다 조금 더 큰 배주를 가볍게 건네받은 나는 성지에서 빠져나가기 전 쓰러진 군자수선화를 잠시 바라보며 감상에 젖었다.

 단단한 방어력, 압도적인 공격력을 가진 상급의 위마치고는 매우 허무한 최후였다. 역시 중요한 건 공격력과 방어력이 얼마나 높은지가 아니라 공격 패턴과 방식이 얼마나 다양한지인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상대할 때 딱 저런 느낌이겠지. 됐고.

 “이번 주 임무는 이걸로 끝이군. 피곤하다 진짜.”

 성지 밖으로 나오며 기지개를 피는 나의 말처럼 수요일인 오늘. 우리 현장 6팀에 부과된 이번 주 통상 업무는 전부 종결됐다. 내일부터 나와 한소윤이 없기 때문에 일찍이 몰아서 처리하기로 합의를 봤기 때문이다. 덕분에 정막 팍팍한 하루였다.

 “수고했어. 오빠.”

 “너도. 기다리느냐 고생 많았다.”

 성지 밖에서 기다리던 서민아가 나를 향해 인사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첫 성지순례 이후 서민아는 조금 살갑게 변했다. 아직도 간간히 틱틱거리긴 하지만 말도 놓고 꼬박꼬박 오빠 소리를 붙여주고 있다.

 “언니! 괜찮아?”

 뭐. 그래도 저 정도는 아니지만.

 세이크리드 게이트를 나온 한소윤에게 달려가는 서민아를 뒤로하고 나는 손에 들린 배주를 바라봤다.

 위마는 성지에 귀속되어있는 물건들과는 다르게 위마 본체나 잔해를 성지에서 가지고 나올 수 있다. 그렇기에 내 손에는 노란색 메론 같이 생긴 배주가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

 나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기 위해 가져온 서류박스에 배주를 적당히 담으며 둘을 향해 질문했다.

 “이건 어떻게 쓰는 거야?”

 사람을 치료하는 약이라는데, 그냥 달여 먹으면 되나?

 “유성의 주요 소재야. 중요한 거니까 떨어트리지 마.”

 “아. 이게?”

 한소윤의 말에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유성. 그 만능 회복기기의 비밀이 여기에 있었을 줄이야.

 위마는 은에 대한 내성을 기준으로 총 세 단계로 구분한다. 은이 가진 파사의 힘만으로 해치울 수 있는 하급. 소멸 직전까지 약해지는 중급. 마지막으로 어느 정도 본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상급까지.

 이 중 상급의 위마는 출몰 빈도가 적다. 어느 정도냐면 보통 성지가 등장하면 그 중 약 2퍼센트 정도만이 상급 위마라고 보면 된다. 그런 상급의 위마를. 그것도 한 개체를 소재로 삼는다니.

 하긴. 원재료가 쉽게 구해졌다면 조금만 다쳐도 바로 유성행이겠지. 오래 있을수록 효율이 낮아진다지만, 그래도 부작용이 없는 만큼 유성 안에서 완치시킬 테고.

 “엄청 귀한 거였네.”

 “응. 요즘 많이 사용했는데 다행이지. 창원 아저씨도 한숨 놨대.”

 서민아가 말하는 창원 아저씨는 유성을 관리하는 좋은 인상을 다 갉아먹는 산적수염의 아저씨다. 정훈 아저씨와는 술친구이며, 지금은 은퇴했지만 한 때 높은 등급의 순례자였다고 한다.

 최근 유성의 소모량이 높다며 투덜거리는 걸 본 적 있다. 그 중 두 번은 나로 인해 소모되었기 때문에 뜨끔한 나는 더 이상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고 잡담을 하며 건물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건물에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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