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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은혈록
작가 : 실라인
작품등록일 : 2017.12.14

비일상적인 일 없이 평온한 나날을 보내는 게 나의 작은 소망이다.
그래. 내 일상은 그 누구도 부수지 못 한다!
…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금액이었다.

어느 날. 평번하던 소년의 인생이 뒤바뀌어 버렸다.
세계의 그림자. 그 속에서 새로운 이레귤러가 된 소년은 오늘도 살아남기 위해 싸운다.

 
29. 마무리(3)
작성일 : 17-12-17 20:05     조회 : 319     추천 : 0     분량 : 4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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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녀오셨습니까?”

 흰색 머리를 짧게 자른 노집사가 백윤현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래 그래.”

 백윤현은 예의바른 노집사에 비해 건성건성 대답하며 자신의 코트를 바닥에 벗어던졌다.

 “수확은 있으셨습니까?”

 “다 지켜보고 있었으면서 왜 나한테 물어봐?”

 노집사는 그 말에 검은자위밖에 없는 두 눈을 백윤현에게 고정시켰다.

 “드레이크는 확실히 쓸 만하더군요.”

 “상대가 너무 안 좋았지.”

 드레이크. 모노폴라이즈가 만든 실험용 인조 위마이다. 아직 개량할 점도 많고 충분한 화력도 나오지 않지만 협회의 병아리 둘 정도는 충분히 쓰러트릴 정도의 강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작전에 투하했는데 결과는 정반대. 엣지드 리볼버라 해도 상대할 수 있을 거란 생각과는 다르게 신입 둘은 끈질기게 버티더니 기어코 드레이크의 생체반응이 사라질 때까지 살아남았다.

 그럼에도 백윤현은 만족했다. 상대가 정말 나빴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녀석이야.”

 실험의 결과가 예측을 빗나가자 백윤현은 직접 변수를 체크하기 위해 나섰다. 그렇게 만난 건 이번에 협회에 새로 들어온 소년.

 그 소년이 가진 은장도의 방어력 때문에 엣지드 리볼버가 자유롭게 공격 할 수 있었던 점이 드레이크의 가장 큰 패인이었을 것이다.

 “확실히 그 소년은 엄청나더군요.”

 “그래. 대단하지 않아? 레이크의 능력을 바꿔버린 걸로도 모자라 은장도끼리 융합시켜버렸어. 아니, 애초에 ‘그걸’ 은장도라 부를 수 있나?”

 노집사의 말에 맞장구친 백윤현은 자동 수복되는 갑옷을 떠올리자 기분이 들떴다. 불가사의한 힘은 언제나 그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나보고 은혈귀라더니, 자기가 더 은혈귀 같잖아? 아하하핫. …그 녀석을 파헤치면 과연 어떤 힘을 얻게 될까? 역시 무리를 해서라도 데리고 왔어야 했나?”

 백윤현이 자신의 목까지 다시 스멀스멀 기어오는 불꽃을 억지로 꺼트리며 말하자 그 모습을 본 노집사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현명한 판단이셨습니다. ‘슈바르츠’가 아직 주인님과 완전히 동화되지 않은 만큼 상정외의 사태가 벌어졌을지도 모릅니다. 걱정하지 마시길. 언젠가 분명 다시 기회가 찾아 올 겁니다.”

 “하긴. 오늘만 날이 아니지. 아. 그 녀석은?”

 “어차피 이번 계획이 끝나면 폐기처분 했을 소모품. 연락망은 전부 파기했으니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래. 알아서 했겠지. 기껏 시간을 투자해 협회원을 낚았는데 걸린 게 고작 송사리라니, 역시 수백 년간 위마를 은폐한 단체답게 보안 수준이 도를 넘었다니까?”

 쓸데도 없어서 드레이크의 테스트 겸 전력 약화를 노려본 건데 헛고생도 이런 헛고생이 없었다.

 “역시 힘으로 부딪히는 수밖에 없나.”

 그렇게 중얼거린 백윤현은 고개 숙인 노집사를 뒤로하고 자신의 연구실로 들어갔다.

 

 

 백윤현은 책상을 적당히 정리하고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두 눈을 감고 어린 시절. 같이 수학할 때부터 서로 많이 닮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은 친구 한 명을 떠올렸다.

 ‘그 녀석은 지금 우리를 우습게보고 있겠지. 그래.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모노폴라이즈는 이미 한 번 공중분해 된 조직이다. 한 명의 테러리스트 때문에 세계를 변혁하겠다는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툭 건드리면 공중분해 될 조직. 그렇게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저도 살아날 구멍은 있다던가. 모노폴라이즈에게 천재일우의 기회가 찾아왔다.

 ‘설마하니 그 놈과 손을 잡게 될 줄이야.’

 옛날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과거의 자신이라면 역겨움에 자살을 선택했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지금의 나라면 감수할 수 있다.’

 자신은 범우주적인 절대적인 사명을 품고 있다. 이 꿈을 이룰 수만 있다면 보다 더 한 것과도 손을 잡을 수 있었다.

 ‘그 놈’과 손을 잡아 나온 결과물을 바라보며 백윤현은 차게 웃었다.

 “반 년은 이르지만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부디. 모쪼록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

 

 

 

 

 

 

 

 

 

 

 

 “헉. 헉….“

 어느 시가지의 사거리.

 땀으로 온 몸이 범벅된 정장 차림의 여자. 유세아가 절망 가득 담긴 외침을 토했다.

 “왜, 왜 아무도 없는 거야!”

 유세아의 주변엔 단 하나의 생명체도 없었다. 마치 악몽을 꾸고 있는 거 같았다. 달리고 달려도 사람은 물론이고 개나 새와 같은 동물 하나 보이지 않았다.

 사무치는 외로움에 유세아는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아무도 없는 도시. 언젠가 한 번 상상해 본 적 있다. 명품을 마음대로 두르고 양껏 음식을 먹으며 원하는 만큼 자는 생활을 한 때 꿈꿔본 적 있다.

 하지만 현실은 지옥 그 자체였다. 아무도 없고 세상에 홀로 남겨진 고독은 정상적인 사람이 감내할 수 있는 고통이 아니었다. 그 때문인지 머리는 주기적으로 자꾸만 지끈거렸다.

 끼악- 끼악-

 그런 그녀에게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의 신음소리 같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건 하염없는 절망감에 빠져있던 그녀에게 있어서 한 줄기의 빛이었으니까.

 “누군가 있어요?”

 유세아는 소리가 난 골목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외쳤다.

 “거기 누구 있어요!?”

 그 외침에 반응하듯 골목 구석에서 어떤 그림자가 움찔했다. 유세아는 그게 무엇이든 상관하지 않았다. 인간이 아니라도 좋다. 하다못해 개나 고양이여도 만나고 싶었다.

 반가운 마음에 유세아는 한달음에 그림자가 있는 곳까지 달려갔다.

 “…어? 어?”

 그런 그녀가 조우한 것은 인간도, 그렇다고 다른 동물도 아닌 괴생명체였다.

 “끼악. 끼아아아악!”

 그 괴물은 마치 거대한 새를 닮았다. 하지만 그건 근본적으로 새라 부를 수 없었다.

 부리는 세 개가 겹쳐있었고, 네 개의 다리가 달려있었으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여자는 신장이 3M가 넘어가는 새 따위는 알지 못 했다.

 괴물은 먹을 것을 발견했다는 듯 기괴하게 울며 두 개의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 유세아에게 달려갔다.

 “아…. 아아….”

 자신 외에 누군가를 발견했다고 여겨 느꼈던 흥분은 이미 싸하게 식은 지 오래다. 괴조의 입속 다닥다닥 붙어있는 이빨에 압도된 유세아는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괴조의 아가리가 코앞까지 다가오자 유세아는 체념하며 눈을 감았다. 두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렇게 죽는구나. 취직은 하고 죽고 싶었는데. 취업 활동 열심히 할 걸. 미안해요 엄마. 아빠. 내가 다음 생에는 반드시 엄마아빠 딸로 태어나지 않을 게요. 나보다 머리 좋고 착한 딸 얻으세요. 혹시나 내가 다시 엄마아빠의 딸로 태어난다 해도….

 ‘왜 이리 오래 걸리지?’

 유세아는 의아했다. 시간이 오래 지났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늦어지는지 궁금해져 살포시 실눈을 떴다. 그리고 보았다.

 괴조가 새하얀 빛에 집어삼켜지고 있는 모습을.

 빛의 파도는 자신의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소멸시켰다. 성스럽다 못 해 신령스러운 기운이 담긴 그 빛줄기는 분명 자신을 구원해줄 따뜻한 손길이었다.

 그 빛이 전부 사그라 들었을 때 유세아의 앞에 남은 건 움푹 팬 바닥과 구멍 뚤린 건물. 그리고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갑옷을 입은 사람의 모습뿐이었다.

 유세아는 직관적으로 저 남자가 자신을 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구세주.

 저 사람이야말로 이 삭막한 세상을 구해줄 유일한 구세주라 확신한 그녀는 억지로 다리를 움직였다.

 자신을 멍하니 보고 있는 구세주에게 가까이 다가간 유세아는 먼저 감사를 표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끼어들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장난해? 다운 레이 쓰지 말고 육탄전으로 처리 하라 했지? 그게 위력은 높다지만 효율이 안 좋다는 거 잊었나봐? 어제 알려준 것도 잊을 정도면 차라리 강아지 한 마리 키워서 걔한테 외우라고 해. 데리고 다니면서 매일 알려달라고 굽신거리는 게 낫지. 안 그래?”

 뒤에서 등장한 키가 작고 긴 머리를 가진 여성은 갑옷을 입은 사람에게 다가오며 속사로 독설을 쏟아냈다.

 그에 갑옷을 입은 사람은 머쓱해하며 유세아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 상황이 상황이잖아요?”

 그제야 새로 나타난 긴 머리의 여성도 상황을 파악했는지 입을 다물자 갑옷의 남자가 조용히 물었다.

 “어떻게 해요?

 “…교범대로. 적혀 있었잖아? 이것도 경험이 되니까 네가 알아서 해결 해.”

 갑옷의 남자는 그게 불만이었는지 다 들릴 정도로 크게 중얼거렸다.

 “갈수록 떠넘기는 것만 늘어나네. 자기 히스테릭한 거 과시하는 것도 아니고.”

 “뭐?”

 “두 번이요. 꼬우면…. 아시죠? 지인 누나가 적어준 협약서.”

 “큭.”

 왜인지 분해하며 아무 말 못 하는 여성을 내버려두고 갑옷의 사람은 성지를 헤메던 유세아에게 나가왔다.

 “어휴. 아! 괜찮으세요? 잠시 기다려주세요. 먼저 해제 좀 하고.”

 그렇게 말한 남자는 정자세로 가만히 서서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더니 갑옷이 이상하게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그 남자의 몸속으로 스며들어갔다.

 후우.

 한숨을 쉰 남자는 유세아 자신보다 네다섯 살 정도 어려보였다. 아마 고등학생이지 않을까.

 “결계에도 영향 받지 않고 성지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설마 눈으로 보는 날이 올 줄은 몰랐네요. 걱정 마세요. 저희가 왔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집으로 돌아가시기 전 몇 가지 테스트를 받으실 테지만, 그 후에는 별 탈 없이 자택으로 돌아가실 수 있으실 겁니다.”

 영문을 모르는 소리를 내뱉은 소년.

 유세아는 떨리는 목소리를 최대한 가다듬으며 소년에게 질문했다.

 “그쪽은…. 누구세요?”

 “아. 그러고 보니 소개가 늦었네요. 반갑습니다. 대위마 정화협회. 한국본부 현장 제6팀 소속 주홍의 순례자.”

 소년은 그렇게 말하면서 사원증으로 보이는 카드를 내밀고, 보는 자신이 상쾌할 정도로 밝게 웃었다.

 “송하진입니다.”

 

 

 

 
작가의 말
 

 1권 분량이 끝났습니다.

 자잘하게 쓰고 게으름 피우다보니 어느덧 공모전이 끝나가네요.

 과연 어떻게 될지.

 날씨가 춥네요. 모두 감기 안 걸리고 건강하게 겨울을 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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