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툭.
“이봐. 일어나.”
나는 뺨에서 느껴지는 기분 나쁜 감촉에 심연을 헤매고 있던 정신을 다시 몸에 안착시켰다.
뜨이지 않는 눈꺼풀을 역도하듯 억지로 들어 올린 내 눈에 보인 건 지원팀 요원의 모습이었다.
“벌써 다 왔어요?”
나는 눈을 비비며 지원팀에게 물었다.
누가 업고가도 모를 정도로 완전히 푹 자버렸네.
밍기적거리는 내게 지원팀 요원이 내게 싸늘하게 명령했다.
“나와.”
‘응? 뭔 일 있나?’
처음 만났을 때부터 사무적이고 무뚝뚝한 사람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냉기를 풍기는 인물로는 안 보였는데.
나는 무슨 일이 난건지 궁금해 하며 차 밖으로 나왔고, 즉시 당황했다.
휘잉.
여름이 다가옴에도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내 몸을 스쳐지나갔다.
“…여긴 어디야?”
여명의 빛을 찬란하게 반사하고 있는 파도가 만드는 기분 좋은 백색소음 향연. 짠내가 진동하고 약간의 비릿한 향이 느껴지는 이곳은 틀림없는 바닷가였다.
뒤로는 산을 끼고 있고 바로 앞에는 낮은 암벽과 광활한 바다가 보이는 있는 해안도로 위.
인기척 하나 찾을 수 없는 오지에 왜 오게 된 건지 나는 전혀 이해 할 수 없었다.
특수 임무? 비밀 진언? 설마 서유진이 날 묻어버리라 사주한 건가?
각가지 추론을 해봤지만 곧 포기하고 나는 가장 신속하고 정확하게 답을 알려줄 사람을 쳐다봤다.
“여긴 어디에요?”
하지만 지원팀 요원은 내 물음을 무시하곤 품 속에서 무거워 보이는 기역자 모양의 쇳덩이 하나를 꺼냈다.
그것은 바로 현대의 살상무기인 권총.
칼라파트도 보이지 않았고, 들 때의 무게감과 질감을 고려해봤을 때 아무래도 장난감이 아닌 진짜 권총 같았다.
“은장도 내놔.”
“…뭐라고요?”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건가?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어벙하게 있자 남자는 성질을 부르며 외쳤다.
“은장도 내놓으라고 새끼야! 어디다 숨겼어!”
은장도에 문제라도 생긴 건가? 하지만 내가 가진 레이크 등의 특성을 안다면 이런 말을 할 수 없을 텐데?
아직도 영문을 모르는 나를 내버려두고 남자는 어딘가 실성한 사람처럼 누군가에게 변명하듯이 목청을 높였다.
“배신자 역할 따위 더 이상 해먹을까보냐! 네 녀석의 은장도로 ‘그 위마’을 정화한 거지? 서민아년의 은장도처럼 그것도 분명 상등품…. 내놔. 그걸로…. 내놓으라고!”
나는 상황이 하도 어이없어서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러니까…. 아니. 왜 이러는 건데요?”
“몰라? 그래 모르겠지. 우리들이 왜 이러는지 모르는 게 당연하겠지! 태어날 때부터 축복받았으니까! 단순히 재능 하나 때문에 그런 힘을 휘두르는 건 불공평하다고! 우리들은 이 미친 세상을 뒤바꿀 거다. 그 동안 우리들이 가지고 있던 억울함을….”
‘뭐라는 거야.’
횡설수설하는 남자를 보며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대충 남자의 말로 추측해보자면 저 남자는 모종의 이유로 협회를 배신한 사람이고, 은장도를 뺏기 위해서 이번 일을 계획. 혹은 도왔다. 가 되나?
원래는 서민아 걸 노렸는데 여의치 않으니 내 거라도 뺏어서 도망치겠다는 거고.
“빨리 숨겨놓은 은장도를 내놔! 죽고 싶어?!”
총을 곧바로 쏠 것처럼 이리저리 흔들며 발악하는 남자.
나는 피로에 조금씩 감기던 눈을 똑바로 뜨고 마음속에 잠시 담아둔 짜증과 분노를 다시 활활 불태웠다.
그러니까 오늘. 아니, 어제부터 일어난 일 전부.
“댁이 원흉이다 이거지?”
나는 으르릉 거리듯이 말하며 온 몸에 갑옷을 입혔다.
타앙!
순식간에 나타난 갑옷의 모습에 남자가 깜짝 놀라며 반사적으로 총의 방아쇠를 당겼지만 당연하게 내 갑옷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 했다.
힘없이 땅에 떨어지는 총알을 보며 남자는 경악하는 한편 마구잡이로 총을 발포했다.
“뭐냐! 그 은장도는 뭐냐고!! 왜 해방도…. 죽어! 죽으라고!”
타앙타앙!
총구에서 연달아 불꽃이 튀었다. 나는 어디를 쏘든지 막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안 돼. 안 돼!”
철컥철컥
총알이 다 떨어진 총을 망가진 장난감을 가진 어린아이마냥 흔들고 있는 남자를 향해 나는 주먹을 쥐며 말했다.
“이…. 개새끼야!”
내 고함이 남자의 고막에 닿기도 전에 내 주먹이 남자의 안면에 직격했다.
퍼억!
남자는 서커스 하듯 허공에서 몇 바퀴를 빙글빙글 돌며 날아다니더니 다이빙 선수처럼 지면에 머리부터 떨어졌다.
“헉! 이런 미친!”
나는 순간 깜짝 놀라 남자에게 다가갔다.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잠기운이 쏜살같이 물러갔다.
미친. 죽은 거 아냐?
아무리 잘못을 저질렀다지만 어엿한 인간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생명의 존엄성을 배워온 내게 살인이란 무엇보다 중대한 문제다.
또한 이 사람은 ‘우리들’이라고 했다. 또 다른 배신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피해 없이 사로잡을 수 있다면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라도 죽이지 않는 게 최선인데 일을 내버렸다.
“휴. 다행이다.”
아무래도 힘이 전부 전달되기 직전 무의식적으로 손속에 자비를 두었나보다.
이빨이 전부 빠진 남자의 입에서 쉬이익하며 바람이 새는 소리가 들렸다. 광대뼈가 함몰되었고 턱이 박살나 반 정도는 삐뚤어졌지만 살아있는 게 어딘가.
말을 못 해도 사람은 글을 쓰는 것으로 정보를 전달 할 수 있다.
음음. 잘 됐어.
나는 조금의 연민도 내포하지 않은 채로 기절한 남자를 무심하게 내려다봤다.
‘이제 어쩌지. 일단 어딘지나 볼까.’
위치를 확인하고자 나는 갑옷을 해제하고 혹여 전투에 휘말려 부셔질까 차 안에 고이 모셔둔 내 핸드폰을 찾아 켜서 지도 어플을 실행했다.
“허….”
울진.
현재시각 아침 7시. GPS로 확인한 결과 지금 내가 있는 곳이 경상북도 울진군의 구석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굳이 과천에서 울진까지 왔다고? 왜 이리 멀리 온 거야? 인적 없는 장소를 찾기 위해서라기엔 너무 멀지 않아? 심지어 시간을 보면 빙빙 돌아온 거 같은데. 뭐야 도대체? 아니 그것보다.
‘어떻게 돌아가지.’
나는 집으로 돌아갈 걱정을 하면서 지원팀 요원의 상의를 벗겨 대충 찢고 꽉 말아 즉석으로 밧줄을 만들었다.
“흣챠! 아오.”
무겁다. 기절한 사람을 옮기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괜히 한소윤이 날 양호실로 옮길 때 은장도의 힘을 사용한 게 아니었어.
나는 다시 갑옷을 입고 손과 발을 묶은 남자를 차 조수석에 실었다. 사실 안전하게 트렁크에 가둬두고 싶었지만 여는 방법을 몰라 어쩔 수 없었다.
쿵 소리와 함께 문을 닫은 나는 다시 갑옷을 해제하고 핸드폰을 꺼내 메신저 어플을 실행했다.
‘아침부터 괜히 전화하면 민폐겠지?’
깨어있을 수도 있지만 꿀잠을 자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기에 전화번호부를 닫은 나는 메신저 어플을 열어 장문의 글을 작성했다.
끙. 보내기 싫다.
지금쯤이면 나와 서유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도 전부 보고 받았을 텐데.
‘일단 그 부분은 넘어가자.’
나는 지원팀 요원과 있었던 일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쓴 뒤 이지인 누나에게 보냈다.
쁴쁴븽 쁴쁴삉븽~
“깜짝아.”
보내고 나서 괜히 사족과 추론을 곁들인 건지 고민하며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으려는 순간 익숙한 벨소리와 함께 스마트폰이 들어가기 싫다는 듯 진동했다.
발신자는 내 메시지를 수신한 이지인 누나.
일찍 일어나시네.
느긋하게 전화를 받자 이지인 누나 대신 이초성 본부장님이 다급하게 외치며 물었다.
“야! 괜찮냐?”
“네? 네.”
“울진이랬지? 위치 좌표. 아니다. 너 네비나 지도 켜서 현재 위치 찍은 다음 메신저로 보내. 바로 갈 테니까.”
“네.”
뚜둑.
연결이 끊기자 나는 본부장님의 말을 실행하기 위해 지도 어플을 켰다.
‘지금 출발해도 몇 시간은 걸릴 텐데 느긋하게 오시지.’
나는 급할 것 없었기에 태평하게 생각하며 핸드폰을 조작했다.
어차피 오늘은 성지방문에 따른 신체 이상을 체크하기 위해 꼬박 하루를 연구소에 묶여있어야 했다. 덕분에 가족들에겐 미리 친구네서 자고 올지도 모른다고 말해둔 상태.
아무런 근심 없이 그럭저럭 좋은 잠자리가 될 리무진의 시트 위에서 한숨 자고 일어나면 된다.
지원팀 요원이 정신을 차리고 탈출 할 가능성도 있지만 피가 안 통할 정도로 꽉 묶어놨으니 괜찮을 거다.
‘그건 그렇고 정신줄 놓고 자버렸네.’
잠자리가 편해서 그런지 피로가 너무 쌓여서 그런지 차에 타고나서부터 6시간은 넘게 지났는데 도중에 깨지도 않고 그동안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푹 자버렸다.
‘보약이라도 지어 먹어야 되나.’
진지하게 건강 플랜을 짜며 나는 차문을 열고 리무진의 문을 열었다.
쉬이이이잉!
“엥?”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도로 위에서 갑작스럽게 선명한 빛이 솟아났다. 그 후 하늘을 꿰뚫을 정도로 높게 솟은 황금의 빛기둥 속에서 사람의 인영이 어렴풋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거. 저거 설마.
나는 뜨악하며 뒷걸음질 쳤다.
생각해보면 저 남자가 아무 생각 없이 이런 곳으로 왔을 리가 없다.
‘이곳이 바로 접선장소였구나!’
나는 침을 삼키며 갑옷을 입었다. 도대체 몇 번 입고 벗는 건지 모르겠다.
빛기둥의 정체는 뭐고 누가 나올지도 모르지만 나는 최대한 경계심을 높이며 다가오는 적들을 바라봤다.
인영들은 장막이 걷히듯 서서히 본래의 모습을 갖추며 다가왔다. 그들이 지척까지 다가오자 나는 그 사람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처음 보는 남자와 …본부장님이었다.
본부장님은 차를 향하는 올백머리의 남자를 냅두고 나를 쳐다보며 재밌다는 듯이 물었다.
“뭐해?”
나는 쪽팔리지만 내색하지 않고 갑옷을 벗으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거에요? 근처에 계셨어요?”
“텔레포트. 처음 보지?”
텔레포트? 순간이동이라고?
그렇게 편한 게 있으면서 왜 지금까지 안 쓴 거야?
그런 표정으로 본부장님을 바라보자 본부장님은 내 반응을 보고 다 이해한다는 듯이 설명했다.
“엄청 비싼 거다. 이렇게 두 번이나 쓴 날은 손에 꼽는다고. 한 번 가동할 때마다 드는 비용이 얼만지 알려줄까?”
“아뇨….”
나는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오버테크놀로지의 결정체. 들어간 돈만 해도 억 소리가 난다는 스마트워치를 그냥 툭하고 던져주는 사람이 비싸다고 말할 정도면 얼마나 값비쌀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두 번이라. 서민아도 이렇게 돌아갔나 보네.
“그래. 다친 곳은 없고?”
“멀쩡하죠.”
“다행이네. 그쪽은 어때?”
본부장님의 말에 차 안에서 올백머리의 남자가 내가 기절시킨 지원팀 요원을 어깨에 들쳐 업고 나오며 말했다.
“턱이 함몰되어 뭉개진 것만 빼면 생명 유지에 지장이 없습니다.”
담담한 올백머리 남자의 말에 나는 괜히 양심이 찔렸다. 나름대로 합리화를 했지만 문명인이 저지를만한 폭력의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오. 적당히 했네? 나 같으면 몇 군데 더 분질러놨을 텐데. 뭐 좋아. 일단 돌아가자.”
“…네.”
나는 새삼 상식 밖의 인물들이라는 걸 다시금 상기하며 본부장님의 뒤를 따라가며 기대감이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텔레포트로 돌아가는 건가요?”
내 말을 긍정한 본부장님은 자신들이 나왔던 은은한 황금빛 빛기둥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 저건 한 번 가동하면 삼십 분 동안 유지되거든.”
‘그 시간동안 최대한 뽑아먹어야지’라며 뒷말을 늘어트린 본부장님이 기지개를 피며 빛기둥 안으로 들어가자 나도 살짝 경계하면서 그 안으로 들어갔다.
이어 올백머리 남자와 지원팀 요원이 들어오자 이초성 본부장님이 땅바닥을 짚으며 말했다.
“텔레포트.”
쉬잉.
휘파람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마치 영화의 장면 전환처럼 단 하나의 딜레이도 없이 내 시야가 순식간에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