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윤현은 갑자기 위협적인 불꽃들을 손으로 툭툭 치며 털어냈다.
“이러면 안 되지. 살려야 되잖아?”
불꽃을 대강 털어낸 백윤현은 자신의 코트 안에서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이 정도면 되겠지?”
무책임하게 말하는 백윤현의 손에 들려있는 건 다름 아닌 은장도.
‘뭐야. 지금 해방 상태 아니었어?’
나는 혼란에 빠졌다.
주먹을 날리는 속도도, 맷집도. 무엇보다 저 형이상적인 검은 불꽃을 봤을 때 나는 당연히 저 남자가 은장도를 해방한 상태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아니라고? 그럼 마법이었나?
현 시대에도 마법이나 주술 같은 건 존재했다. 은장도보다 효율이 좋지 않아 회복 방어 등 보조적인 마법 따위를 제외하면 잘 사용되지 않을 뿐.
나는 처음으로 목격한 공격용 마법에 흥미가 돋았지만, 그런 거에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저 남자가 지금보다 더 강해진다는 의미니까.
백윤현은 특이하게도 가슴이 아닌 자신의 손에 은장도를 박아 넣었다. 손등에 박힌 은장도는 빠른 속도로 검게 물들어갔다. 그러더니 몸속의 은혈을 반응시켜 분출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모습을 변형하기 시작했다.
길쭉하고 삼각형의 날과 파기 편하게 손잡이가 달려있는 그 모습은 마치….
“…삽?”
어딜 봐도 땅을 팔 때 최적화된, 육군의 영원한 파트너. 삽이었다.
나는 순간 허망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다잡았다.
은장도인 이상. 그것도 이상한 힘을 쓰는 사람이 가진 은장도이니만큼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경계하지 마. 실험적으로 만들어진 F급 은장도니까. 삽 이외의 기능은 없다고?”
백윤현은 조금씩 검게 타오르는 삽을 빙글빙글 돌리며 익살스럽게 말했다.
“어쨌든. 좀 맞자. 기절할 때까지만.”
나는 몸을 급하게 숙였다. 원래 머리가 있던 자리에 삽이 흉악한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백윤현은 내가 피한 곳으로 평범한 사람이 맞으면 몸과 머리가 분리될 만한 파괴력을 담긴 삽을 다시 한 번 휘둘렀다.
“어이고. 이번엔 또 그렇게 피하게?”
그렇게 말한 백윤현은 발로 내 머리를 축구공처럼 차버렸다. 이어 머리가 흔들려 정신을 차리지 못 하고 있는 내게 달려들어 손으로 내 어깨를 잡고 발을 걸어 넘어트리려 했다.
나는 넘어지지 않으려 최대한 균형을 낮추고 쓰러지는 반대방향으로 힘을 줬지만 백윤현은 그것까지 예상했다는 듯 도리어 내 힘을 이용해서 더 쉽게 나를 넘어트렸다.
차가운 땅바닥에 큰 소리를 내며 쓰러진 내게 백윤현은 품평하듯이 말하더니 삽을 연달아 내려쳤다.
“대응력도 꽝이고. 너 정말 못 싸운다.”
나는 그 말에 이를 악 물고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백윤현은 어떻게 아는지 내가 일어서려 힘을 주는 방향으로 삽을 내려쳤다.
이대로 계속 맞기만 하면 은혈이 소모만 될 뿐이지만 나는 마땅한 타계책을 세우지 못 했다.
그렇게 전전긍긍하고 있는 도중 백윤현의 공격이 멈췄다.
“와 씨. 너 뭐야? 왜 이렇게 단단해?”
백윤현이 재밌다는 듯 몇 걸음 뒤로 물러서자 나는 그때가 되서야 간신히 일어설 수 있었다.
‘더 이상 때려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 건가?’
아마 은혈의 소모 값을 모르기에 내린 판단이겠지. 덕분에 한숨 돌린 나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강해…. 아니, 싸움을 잘한다고 해야 되나?’
힘이 강하거나 속도가 압도적으로 빠른 건 아니었다. 오히려 종합적인 신체능력만 보자면 내 쪽이 우위다.
검은 불꽃이 위협적이기는 하나 사용하지 않고 있고.
결과적으로 내가 압도해야지 정상적인데, 백윤현은 막대한 전투센스로 그 결과를 뒤바꿨다.
“이건 더 이상 못 쓰겠네. 아깝다.”
백윤현은 그렇게 말하며 검은 불꽃에 잠식된 삽을 땅바닥에 내던졌다. 삽은 다시 은장도로 돌아가지 못하고 검은 불꽃에 의해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은장도가 소멸했다고? 어떻게 싸울 생각이지?’
그런 나의 의구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소멸한 은장도에 눈길도 주지 않은 백윤현의 코트 안쪽을 봐버렸기 때문이다.
백윤현의 코트 안에는 은장도 수십 개가 정렬되어 있었다. 밋밋한 모습의 F등급 은장도부터 화려해 보이는 고등급의 은장도까지.
“이걸로 할까? 아냐. 이걸로 하자.”
미팅 전날 옷을 고르는 남자처럼 백윤현은 몇 번을 고민하더니 한 은장도를 꺼내 아까처럼 손에 꼽았다. 이번에 해방된 은장도는 일반적인 장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제 좀 더 아파질 걸? 그냥 얌전히 따라오는 건 어때?”
장검을 한손으로 휙휙 돌린 백윤현은 만족했다는 표정으로 내게 제안했지만 그 질문에 대답한 건 내가 아니었다.
“안 돼.”
바로 한소윤이 상기된 얼굴로 산속에서 거친 숨을 고르며 나온 것이다.
한소윤은 은색 롱소드를 백윤현에게 겨누며 말했다.
“저 사람을 따라가면. 안 돼.”
백윤현은 자신을 향한 베일 것 같은 살의에도 개의치 않고 환하게 웃었다.
“아니 이게 누구신가. 소윤이 아니야? 정말 오랜만이야. 몇 년 만이지? 한 2년 됐나? 오빠는 잘 있고?”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지인처럼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백윤현을 보며 한소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는데.
“아 맞아! 네 오빠. 내가 죽였지?”
“죽여버리겠어.”
백윤현의 도발에 한소윤이 땅을 박차고 은색 롱소드를 어깨높이로 들고 백윤현에게 찔러 들어갔다.
저렇게 격분한 한소윤이라니. 처음 봤다.
그러나 나와 다르게 백윤현은 감흥도 안 오는지 한손으로 한소윤의 은장도를 가볍게 집어내곤 느긋하게 말했다.
“소윤아. 뭐하는 거야. 설마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레이크들 들었을 때도 가망이 없는데, 심지어 이거 D급 은장도잖아? 아냐? 레이크는 어디다 팔아먹었어?”
한소윤의 은빛 은장도에 백윤현의 검은 불꽃이 옮겨 붙었더니 한소윤의 검을 부식시켰다.
나는 백윤현의 시선이 다른 곳에 쏠린 지금이 기회라고 여겨 깜짝 놀랄 만큼 빠르게 백윤현을 향해 날아갔다.
“와. 정말 식상했어.”
하지만 백윤현은 그렇게 품평하더니 한소윤의 은장도를 놓고 슬쩍 옆으로 피한 뒤 내 몸을 걷어찼다.
“크윽!”
날아가는 방향에 한소윤이 있다는 걸 확인한 나는 몸을 한계에 가깝게 비튼 뒤 지면을 긁듯이 잡았다.
간신히 멈춰선 나는 배후에 자리하고 있는 한소윤에게 말했다.
“괜찮아?”
“…응.”
한소윤다운 단답형 대답이 돌아왔지만 그건 평소처럼 냉정하지 않고 주저함과 복잡함이 담긴 목소리였다.
그 모습에 나는 조금 안타까운 감정이 들었다.
‘가족을 죽인 사람이 눈앞에 있다니….’
조금 충격적이었다. 한소윤의 친오빠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것도, 그걸 당당하게 말하는 저 싸이코패스의 당당함도 말이다.
‘뭐라고 말해야 될지 모르겠네.‘
한소윤 입장에서는 최악의 원수가 눈앞에 있으니 당장이라도 공격해 저 남자를 찢어발기고 싶겠지만, 나는 이 자리를 회피해야한다는 생각이 팽배했다.
이길 수 없다.
전력과 변수를 아무리 계산해 봐도 이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다.
전투센스가 없고 상상력이 빈곤한 나지만 확신할 수 있다. 우리 둘만으로는 백윤현을 이기지 못 한다.
나는 협공에 대한 기초도 배우지 못 했다. 내가 주력, 한소윤이 보조로 손발을 맞추려 해도 백윤현의 F급 은장도에 농락당했던 나인만큼….
‘젠장.’
순간적으로 자신의 무력감 때문에 열이 확 뻗쳤다.
갑옷을 입고 난 이후 나는 은연중에 자신감이 가득했다. 은혈이 잔재하는 한 절대 쓰러지지 않게 만드는 내 갑옷은 그 누구라도 상대할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
격투능력이 달린다곤 하지만 그건 학습과 경험이 보충해 줄 것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훗날, 내 앞에 당당히 서 있을 적은 없으리라!’…까진 아니었지만, 적어도 날 위태롭게 할 적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만난 두 적은 그 자신감을 산산이 조각내버렸다. 한 위마는 경시할 수 없는 방어력으로 손 쓸 도리가 없게 만들었고, 다른 한 명은 범접할 수 없는 기술로 나를 완전히 농락하고 있다.
‘냉정해지자.’
나는 가까스로 감정을 추스렸다.
가득이나 한소윤이 어쩔 수 없는 이유로 흥분해 있는 만큼 나라도 냉철을 고수해야 한다.
“조금 더 놀고 싶지만 빨리 끝내야겠다. 오늘은 산책 나온 거라 적당히 꾸미고 왔거든.”
새내기 대학생이 조깅 나온 것 같은 말투로 백윤현은 장검을 군대의 의장대처럼 한손으로 빙빙 돌렸다.
카앙!
내 주먹과 예고도 않고 들어온 백윤현의 장검이 맞부딪쳐 대치 상태가 만들어졌다. 힘 싸움이 되자 밀리지 않기 위해 발악하는 내게 백윤현이 말했다.
“잠깐 멈춰 있어.”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백윤현이 장검을 비틀어 내 주먹을 옆으로 흘리더니 반대쪽 손바닥을 내 몸에 밀착시켰다.
“바인드. 어이쿠.”
무언가를 말하며 자신의 손에 모여 있던 검은 불꽃을 내 몸으로 옮긴 백윤현은 엄습해오는 한소윤의 검을 피하기 위해 저 멀리 떨어졌다.
나는 백윤현와 거리가 생기자 내 몸에 붙은 검은 불꽃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안 뜨거워?’
몸에 붙은 불꽃에선 강렬한 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어?’
그렇게 이상 현상에 의문을 품은 그 짧은 사이. 검은 불꽃은 증식하며 내 하반신을 모조리 집어삼켜버리더니 끝내 땅바닥까지 내려가 마치 접착제처럼 나와 대지를 완전히 고정시켜 놓았다.
“뭐야! 안 움직여!”
전혀. 조금도 하체가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발버둥도 쳐보고 불꽃을 소화하기 위해 손으로 툭툭 치기도 했지만 검은 불꽃은 꾸준히 타오르기만 했다.
“음. 좋아 좋아. 잘 붙었네. 그럼 이제 이쪽을 해결할 차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