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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은혈록
작가 : 실라인
작품등록일 : 2017.12.14

비일상적인 일 없이 평온한 나날을 보내는 게 나의 작은 소망이다.
그래. 내 일상은 그 누구도 부수지 못 한다!
…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금액이었다.

어느 날. 평번하던 소년의 인생이 뒤바뀌어 버렸다.
세계의 그림자. 그 속에서 새로운 이레귤러가 된 소년은 오늘도 살아남기 위해 싸운다.

 
20. 성지순례(6)
작성일 : 17-12-16 19:40     조회 : 304     추천 : 0     분량 : 4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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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나가자. 공기도 안 좋고. 진폐증 걸릴라.”

 “네. …진폐증이 뭐예요?”

 크르륵.

 “몰라? 그 왜 광산….”

 나는 은장도를 해제하려는 서민아의 질문에 대답을 하다 멈칫했다.

 방금 무슨 뭐지? 잘못 들은 건가?

 크르르륵.

 그렇게 생각하는 도중 결단코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듯 다시 한 번 똑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제발 내가 상상하는 바가 아니길 빌며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그곳에는 가시도마뱀이. 아니, 가시도마뱀이었던 위마가 세로로 찢어진 눈을 번뜩이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탈피했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까맣게 타버린 가시도마뱀의 껍질이 새롭게 나타난 위마의 옆에 매미 허물처럼 놓여 있었으니까.

 새롭게 변한 위마는 위풍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우리를 쳐다봤다.

 그 위마는 더 이상 도마뱀처럼 짧은 다리와 낮은 몸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길쭉하고 늘씬하게 뻗은 네 다리. 작아진 머리와 윤기 나는 흰색 비늘로 덮여있는 밸런스 잡힌 몸체.

 그리고 무엇보다.

 펄럭!

 자기 몸에 두 배는 될 법한 거대한 날개까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공포감을 느끼게 만드는 그 모습은, 마치 영화에서 봤던.

 “드래곤?”

 쿠오오오오오!

 내 말에 화답하듯 드래곤이 고개를 높게 들고 동굴이 요동칠 정도로 울부짖었다.

 자신의 위엄을 충분히 과시한 드래곤은 여유 있는 몸짓으로 천천히 날개를 갈무리했다.

 나는 멀리 떨어져있는 서민아가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의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야. 어째?”

 드래곤.

 보통 여러 매체에서 드래곤은 최강의 존재로 그려진다. 거대한 몸체와 강력한 육체. 높은 지능을 가졌으며 때때로 마법이나 브레스 같은 위력적인 공격 수단을 행사할 수 있는, 세계관의 최강자로 말이다.

 ‘하지만 이 녀석은 아니야.’

 나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상황을 분석했고, 그 결과 ‘해 볼만 할지도 모른다.’라는 결과가 도출됐다.

 외형이 드래곤이란 것만 빼면 내 눈앞에 있는 녀석은 여타 매체에 나오는 드래곤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먼저 크기가 꼬리를 빼면 조금 큰 중형차밖에 되지 않았고 딱히 높은 지성을 가진 것 같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이곳은 동굴 안.

 지금 드래곤이 자랑하고 있는 저 거대한 날개는 무용지물을 넘어 걸림돌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탈피 전, 가시도마뱀이었을 때보다 압도적으로 강해지지는 않았을 거란 희망적인 예상 또한 포함되어 있다.

 물론 아직 변수는 수도 없이 남아있지만, 무작정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지금이라도 발을 빼자.”

 그렇지만 나는 서민아에게 진중하게 제안했다.

 싸울만하다. 이길만하다. 그러니까 붙어본다.

 그건 어디까지나 뒤가 없을 때의 이야기고, 이쪽은 뒤가 널널할 정도로 남아있다.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서 상어가 있을지 산호가 있을지 모르는 새까만 바다 속으로 뛰어드는 멍청한 짓을 할 필요는 없지.

 “아뇨. 저희가 할만 해요. 도망칠 필요는 없잖아요?”

 그런데 서민아의 생각은 달랐다.

 “쉽게 보지 말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괜찮아요. 아까처럼만 하면 되요.”

 내 반론에도 서민아는 자신에 차있는 얼굴로 의견을 고집했다. 그래도 근거 없는 자신감에서 나온 발언은 아니기에 나는 내키지 않았지만 수긍했다.

 “…그래. 네 말대로 해보자.”

 한 번 붙지 않고서 바로 빼는 것도 그렇고 말이야.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서민아는 선수필승이란 격언을 따르듯 예고도 하지 않고 바로 드래곤에게 단검을 던졌다.

 드래곤은 자신을 주의 깊게 관조하다 단검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몸을 움직였다.

 ‘늦었어.’

 피하는 행동이 너무 굼떴다. 단검의 불발하지만 않는다면 이번에도 상당한 피해를 줄 테지.

 “이런 미친!”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이 단검이 날아오는 것을 피함과 동시에 서민아를 머리로 들이박았기 때문이다.

 쿠쿵. 콰아앙!

 단검이 폭발하는 소리와 서민아가 벽에 들이박히는 소리가 중첩해서 들렸다.

 “케흑. 쿨럭.”

 서민아의 입에서 토혈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드래곤은 봐주지 않고 그대로 송곳 같은 꼬리로 서민아의 배를 꿰뚫었다.

 푸슉.

 나는 있어선 안 될 걸 본 사람처럼 혼이 나가버렸다.

 꼬챙이에 꽂혀버린 것처럼 서민아는 공중에서 버둥거거리다 축 늘어졌다.

 철퍼덕.

 드래곤에 의해 드래곤은 힘없이 늘어진 서민아를 저 멀리 거칠게 내던지고 이번엔 내 차례라는 듯이 날 노려봤다.

 나는 그런 드래곤의 눈빛을 신경도 쓰지 않고 바닥을 피로 적시고 있는 서민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설마.

 아니. 설마.

 ‘죽…. 지 않았어!’

 대뇌가 절망에 물들 때 서민아의 연약한 숨소리가 내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었다.

 은장도로 강화된 신체 때문인지 급소를 기적처럼 빗겨간 건지 서민아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미 사망에 이르렀을 부상을 입고도 명줄을 붙잡고 있었다.

 ‘아직 살아있었어.’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야. 아직 안심하긴 일러.’

 서민아는 말 그대로 가느다란 생명끈을 간신히 붙들고 있을 뿐. 약간이라도 충격을 더 받거나 전투가 길어져 조치 가 늦어진다면 사신에게 명계행 뱃삯을 지불해야 될 수도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드래곤은 서민아가 무력화 되었다고 판단해서인지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고 있기에 나는 재빨리 아까 집어넣었던 레이크를 다시 뽑아들었다.

 ‘뚫리겠지? 제발 뚫려라.’

 탈피 전 녀석은 레이크로 흠집조차 낼 수 없을 만큼 흉악하고 단단한 가시에 둘러싸여 있었다.

 반면 지금은 매끈하고 세밀해 보이는 비늘로 몸을 뒤덮고 있다.

 탈피 직후의 동물들처럼 저 드래곤의 비늘 또한 비교적 말랑할지도 모른다.

 ‘빠르게 근접해서 최대한 깊게 레이크를 박아 넣고 끝내버리자.’

 그렇지만 드래곤은 그런 내 작전을 눈치 채곤 전투 스타일을 바꿨다.

 피이잉-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하얀 섬광이 드래곤의 입 주위로 모이기 시작했다.

 “잠깐. 야! 잠깐!”

 그것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아낸 나는 다급하게 외쳤지만, 당연히 드래곤은 내 말을 듣는 척도 안 했다.

 키이이잉!

 커다란 아가리를 안에 모인 하얀 섬광들은 이윽고 섬뜩한 소리를 내는 커다란 빛의 덩어리가 되었다.

 나는 언젠가 인터넷에서 봤던 한 게임의 스크린샷이 떠올랐다.

 브레스! 피해욧! 구석으로!

 지금 당장 나는 그 사람을 찾아가 묻고 싶었다.

 이렇게 빠른 걸 그쪽은 피할 수 있는지?

 크워어어엉!

 드래곤의 포효와 함께 빛 덩어리가 분사되기 시작했다. 척 봐도 모든 것을 분쇄시킬 것 같은 빛줄기는 피할 새도 없이 나를 덮쳐왔다.

 갑옷이 연거푸 융해됐다. 은혈이 쉼 틈 없이 전신의 갑옷으로 공급되며 갑옷을 복구해나가는 게 느껴졌다.

 “끄윽.”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빛줄기는 숨도 쉬지 못 할 정도로 내 몸을 끊임없이 억압했다. 날아가지 않고 버티고 있는 건 거의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쉬위이익

 얼마 후.

 자욱한 연기와 달궈진 땅의 흔적만을 남기고 동굴을 환하게 밝혔던 빛줄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이 미친….”

 나는 몸 상태를 점검하곤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의 브레스 한 번에 몸속의 은혈이 1/3이나 날아간 것이다.

 1/3.

 적어보이지만 서유진의 붉은 에너지탄을 상대할 때도, 아니. 애초에 서유진과의 첫 대련에서도 소모된 은혈의 총량이 1/3을 넘지 않았다는 걸 감안하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양이 소모된 것이다.

 적이 한소윤처럼 스피디하게 꾸준히. 장기적으로 갉아먹는 스타일만 아니라면 전투 때 은혈 소모로 난항을 겪을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브레스 한 방에 이렇게 날아가다니.’

 나는 경악하는 한 편 힐끔 드래곤을 살펴봤다.

 만약 연달아 브레스를 사용한다면 그건 정말 더할 나위 없는 최악의 사태다.

 ‘다행히 저쪽도 썩 좋은 상태는 아닌 것 같네.’

 드래곤은 진이 빠진 듯 헉헉 거리면서 마치 ‘왜 안 뒤지는 거야?’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는 눈치였다.

 기회라 생각한 나는 레이크를 선두로 드래곤에게 냅다 달려들었다.

 피슉!

 ‘얕아!’

 탈피한 직후라서 인지 몰라도 비늘은 생각보다 단단하지 않았지만 그게 끝이었다. 레이크는 단지 드래곤의 피륙만 상하게 했을 뿐 더 이상의 피해를 주지 못 했다.

 하지만 실망할 틈은 없었다. 서민아의 숨결은 시간이 경과할수록 더 미약해지고 있으니까.

 브레스를 사용한 대가인지 고속 이동에는 제약이 있는 건지 드래곤의 움직임은 아까 서민아를 공격했을 때와 비하면 현격하게 느려진 상태다.

 나는 쉴틈 없이 공격을 몰아쳤다.

 드래곤의 몸에 은색 혈선이 그어졌다. 하필이면 은색의 피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꺼림칙했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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