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나 평온한 날이 지속되기를.
그런 작은 소망을 가슴에 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나에게 내 인생을 뒤바꿔버리는 특별한 날이 갑작스레 닥쳐왔다.
성별은 남자. 나이는 풋풋하다는 18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남학생까진 아니더라도, 부지런히 눈을 돌리면 흔하게 찾을 수 있는 한부모가정의 장남이다.
한부모가정이라는 편견어린 시선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고생하는 엄마를 위해서라도 어릴 때부터 큰 사고 한 번 없이 무난하게 학교생활을 해왔던 나다.
‘그런 내가 왜 이런 곳에 쓰러져 있는 거지?’
한 밤중인지 하늘에는 달과 별이 반짝이기만 했다.
고개를 들고 몸을 반쯤 일으킨 나는 밝은 달빛을 조명삼아 주위를 둘러봤고, 곧 거대한 조립식 건물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뭐야 여긴? 공장? 윽!’
휘청
의문을 품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하는 순간 갑작스런 현기증이 찾아왔다. 제대로 균형을 잡을 수가 없었기에 다시 바닥에 철퍽 주저앉았다.
괜히 일어서다 넘어지면 손해니까.
나는 앉은 상태로 어디 이상이 있는 곳은 없는지 몸 상태를 점검하다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니 미친. 내 교복!”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3년 동안 입어야 되니 좋은 걸로 맞추자면서 큰돈을 들여서 산 교복의 상의에 당구공만한 구멍이 뚫려있던 것이다.
‘하. 진짜. …뭐야 이건? 왜 이리 축축해?‘
마치 찢어진 것처럼 뚫려있는 교복은 빨래에서 갓 꺼낸 세탁물처럼 무언가에 젖어있었다.
“어?”
도대체 왜 지금에서야 눈치 챘을까.
‘이건…. 피잖아?’
손을 적시는 진득한 액체에서 기분 나쁠 정도로 비릿한 철분 냄새가 났다. 달빛밖에 없는 어두운 밤이지만 모든 감각을 통해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손을 떨며 피가 묻은 내 손을 바라봤다.
무섭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 느낌도 들지 않던 공장가인데 당장이라도 공포스러운 무언가가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다른 사람의? 아니면 동물의 피? 설마 내….?
한참 어렸을 적.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시절 처음으로 공포영화를 봤을 때처럼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한 밤중. 기억에 없는 장소. 옷에 묻어있는 피.
평범한 인간이라면 공포심을 느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몰래카메라 아니냐며 억지로 발랄한 생각을 해보았지만 주위의 고요함이 만든 공포감은 희망찬 생각을 비웃듯이 가볍게 집어삼켰다.
이젠 넘어지는 게 문제가 아니다.
나는 아직도 어질어질한 머리를 부여잡고 몸을 가까스로 일으켜 최대한 빠르게 주변 공장에서부터 멀어졌다.
다행히도 더 이상의 현기증은 느껴지지 않았기에 주위를 둘러보며 최대한 빛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러길 얼마나 지났을까, 그 공장에서 얼마만큼 떨어진 걸까. 도대체 얼마나 달린 걸까.
환한 빛을 비추는 가로등과 함께 잘 정돈된 포장도로가 눈앞에 나타났고, 안도감 때문인지 긴장을 푼 나는 다시금 피로에 지쳐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