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소병연결
“크아아아아아아-!!!!!!”
“콰---앙---!”
비합과 건암이 긴장된 얼굴로 맞은편의 두꺼운 원목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충격이 심상치가 않았다.
“어떡하지?”
“싸워보죠......”
건암이 팔을 걷어붙이자 비합이 찡그린 표정으로 건암을 말렸다.
“자네의 호승심을 만족시키고자 위험을 감내할 수는 없네. 지난 싸움에서도 자네는 죽을 뻔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그러니 한 번 더 싸우고 싶다고?”
비합이 되묻자 건암이 말을 더 잇지 못했다. 비합이 입 다문 건암에게 한 마디 더 붙였다.
“저 괴물은 해운 아기씨가 아니면 조용히 시킬 수 없네. 자네가 감당 못해.”
“...... 해보지 않으면 모르지......”
건암이 두꺼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작은 소리로 군시렁댔지만 비합은 못 들은 척, 다음 행동으로 옮겼다.
“올라 가시게. 그리고 이 최하층의 계단을 막아 폐쇄하자고, 항현이란 관원 놈이 여기 있다면 저 괴물 이징옥에게 먹히게 될 지도 모르니 그것도 좋은 일이지......”
“......”
항현이 고민을 했다. 저 방안의 물건이 뭐란 말인가? 아까 이징옥이란 이름을 얘기하는 데 그 이름도 항현의 머리에서 계속 맴돌고 있었다.
‘이징옥? 이징옥? 이징옥이 누구더라..... 뭔가 들어 본 이름인데..... 아니 그것 보다 지금 여기에 이리 머물고 있어도 되는 일인가? 쫓아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하는 항현을 뒤에 안견이 옷자락을 꼭 잡았다. 그 손끝의 부들거림에 항현이 의아하게 안견을 보았다.
“어르신? 왜 그러십니까?”
“방금..... 자네도 들었는가?.......”
“예? 무엇을.......”
“이징옥이라...... 이징옥이라 하지 않았던가?......”
항현은 부들거리며 떨리는 안견의 손끝이 느껴졌다.
안견이 무서워하는 것은 뭔 가를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생각하는 항현은 계단이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일단 안견이 이토록 무서워하고 있으니 문이 닫히는 것을 막는 것이 우선이다싶은 생각에 서둘러 계단으로 뛰어 갔다. 그러나 이미 계단이 위에 돌 판들이 올려지며 통로를 막고 있었다.
“멈춰라!”
“역시 네 놈, 여기 있었구나. 후후후...”
“계단을 열어라! 여기에는 안견 어른도 계시다.”
잠시 멈칫했지만 다시 돌 판들이 놓여 지며 결국 상층으로 이동할 길이 완전히 막히고 있었다.
항현이 계단을 올라 막혀있는 돌판을 밀어 보았지만 그 위에 계속 뭔 가를 올려 놓았는지 무게가 항현 혼자서는 더 이상 어찌 못할 무게가 되었다.
“호군 어른이 일을 마저 완결해주어 한양 진공의 포진이 완벽하다면 좋겠지만 할 수 없지...... 지금의 포진 만으로도 이유(세조)의 숨통을 끊기에는 충분하다.”
“네놈은 그 밑에서 최하층의 괴물과 놀아 보거라. 후후후.....”
건암과 비합이 계단을 폐쇄하고는 멀어지는 발소리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항현이 뒤로 돌아 계단을 내려 왔을 때 한층 더 거세고 커다란 소리가 맞은 편 방에서 뿜어져 나왔다.
“크어어어어어어-!”
“쾅쾅쾅.....!”
두터운 원목의 빗장이 금방이라도 부러진 것 같았다. 항현은 서둘러 계단을 내려와 방문에서 눈에 띠지 않는 각도의 방 뒤로 숨었다.
안견은 여전히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어르신, 이징옥이 누구인지 아시옵니까?”
“..... 그래 자네는 어릴 때였겠으니 모를 수도 있겠구만......”
“쾅-! 쾅-! 쾅-!”
문이 다시 한 번 연속된 충격음에 요동쳤다.
안견이 불안해 하는 눈빛으로 문을 가로지른 빗장을 바라보았다.
“저거 괜찮겠지?”
“......”
항현도 자신이 없어 묵묵부답으로 안견이 쳐다보는 문의 빗장을 같이 보았다.
눈은 빗장을 쳐다보며 안견은 계속 이야기를 이었다.
“이징옥은 이를테면 절제 김종서 대감의 숨김패였다네. 세종 조에 무관으로 임관하여 여진족을 압록강 이북으로 다 밀어내며 북방에서는 칼 쓰는 멧돼지로 유명했다네. 여진족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었지.”
“......엇!”
얘기를 듣다 보니 언뜻 들었던 이야기 한 자락이 항현도 생각났다.
“전조의 척준경보다 칼을 잘 쓰고 금강야차 이의민보다도 힘이 세다는 사람말입니까?”
“그래, 여진 추장 올적합이 침입해 왔을 때 그 잔인한 부대장 가탕기와 수고의 목을 벤 다음에는 그런 얘기가 조선에 떠들썩했다네. 역사에 있는 그 어떤 장군보다도 강하다고......가첩목아나 올적합가(家) 여진족들에게는 완전 저승사자였지.”
“헌데 김종서의 숨김패라는 것은......”
항현의 말에 안견이 떨며 대답했다.
“김종서는 어린 임금께서 옥좌에 오르셨을 때 자신이 수양대군에게 먼저 죽게 될 경우를 대비하여 이후 어린 임금을 지켜줄 다음을 이징옥에게 부탁했다네. 그런데 뭐가 잘못되었는지......”
“그리 강하다는 데 어찌 그리 허망하게 죽었을까요?”
“..... 자세한 것은 나도 모르네. 그러나 저 사람도 죽고 안평대군 어른도, 어린 임금도....... 모두...... 그리 되셨지......”
"......"
항현은 하나 더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런 무장의 시신을 어떻게 구하여 이 금강산 지하에 자기들 스스로 괴물이라 부르는 귀갱시로 만들었을까? 궁금이야 했지만 안견에게 물어봐야 알 것 같은 얘기가 아니라 더는 묻질 않았다.
“크아아아아아-앜-!”
“파직-! 쾅-!”
안견의 회고가 끝남과 동시에 최하층 끝방문을 가로로 걸고 있던 빗장이 부러지고 문 경첩이 떨어져 내동그라졌다.
항현이 입술에 손가락을 하나 올려 안견에게 조용하란 신호를 보냈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다.
안견은 스스로 손으로 입을 꽉 막고 숨소리하나 밖으로 새지 않고 벌벌 떨고 있었다.
항현이 벽으로 눈만 살짝 내밀어 방에서 나온 거구를 보았다.
커다란 덩치가 단순한 거한이 아니었다.
양팔이 매달린 승모근(목과 팔을 이은 근육)이 괴상하게 비대했고 삼각근과 이두박근도 여름날의 잘 익은 수박 만하게 부풀어 있었는데 오른 손에는 없는 집 문짝만한 거대한 평도(날이 한 쪽에 있는 네모 반듯한 칼, 부엌 식칼을 연상하면 된다.)를 쥐고 있었다.
갑옷을 꿰어 만든 거대한 통에 팔다리만 달아놓은 일종의 기계같았다.
그 순간 항현은 피끝마을에서의 해명의 설명이 생각났다.
“일종의 기계...... 넋의 동력로인 염통을 여럿 넣어....... 신선한 피로 채워....... 만든 후에 거꿀넋의 언문주로 움직이게 하는........”
‘저것도 그럼 그런 종류의.......’
거대한 그림자에 산발인 머리에서 붉은 눈빛이 쏘아져 나와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항현은 눈빛을 피해 얼른 벽 뒤로 몸을 숨겼다. 그러나 이징옥이라 불리는 그림자는 항현들이 숨어있는 방벽으로 다가왔다.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지자 항현은 당황했다.
‘여기 어르신도 있는 데 저거랑 싸워야 하나? 어르신을 보호하며 싸울 수 있을까?’
뒤에 숨은 안견도 양손으로 입을 틀어쥐고 떨며 필사적으로 침묵을 유지했다.
이징옥은 계속 다가 오는 가 싶더니 둘이 숨어있는 벽 앞의 방, 철창을 잡고는 단숨에 뜯어냈다.
“파가각-!”
“어흥-!”
이미 죽은 창귀호도 공포를 느끼는 걸까? 뜯어진 철창안의 범 울음소리가 묘하게 힘없이 들렸다.
“날 죽인 놈들...... 죽일 것이다...... 이 원한을 반드시”
“푸엌-!”
대도가 아무 감정도 없이 허공을 가르더니 창귀호가 단숨에 썩은 고깃덩이로 변했다.
“푸엌-! 퍽-! 추엌-! 푸깍-!”
“......원한을 반드시...... 풀 것이......다....... 날 죽인...... 놈들.......으워어어어어......”
창귀호에 달려 있던 원귀가 저주를 푸념같이 읊으며 사람의 형체를 잃고 조용해져 갔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형체를 잃고 찬불이가 되어 이징옥의 주변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깃들 육체였던 호랑이가 다진 고기쪼가리가 되어 동작할 수가 없는 쓰레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창귀호를 아주 간단히 해체하는 전 과정을 옆에서 숨어 지켜본 항현은 완전히 질려버렸다.
쇠산고을 밝곰이 자매 사건 때, 처음이라 서툴렀다고는 해도 저 창귀호를 하나 처리하는 데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었던가?
그런 괴물을 저 이징옥이란 괴물은 개백정이 강아지 잡듯, 창귀호 한 마리를 몽땅 다지는 데 열 호흡도 안 걸렸다.
어지간해서 무서움이란 것을 느끼지 않는 항현은 이징옥에게 압도적 힘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
‘만일 이런 괴물을 해명이 자유자재로 조종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싸울 수가 있을까?’
만족할 만큼, 아니면 질릴만큼 호랑이를 다진 이징옥은 앞의 계단으로 걸어갔다.
다른 방의 창귀호와 귀갱시들은 벽만 보고 이징옥과 눈도 안 마주쳤다.
계단을 올라선 이징옥은 위에 막혀있는 돌 판을 어깨로 밀치기 시작했다.
항현은 뒤에서 다져진 호랑이 너머로 이징옥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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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이란 아이는 계속 같은 사람과 얼굴을 맞대고 살았던 영향인지 새로운 사람을 보면 쇳가루가 자석에 가 붙듯이 찰싹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이건 우리 오빠! 해명오빠! 이건 비합할아버지, 이건 건암아저씨......”
자기가 그린 그림을 보여주며 신이 나서 계속 떠들었다.
수빈은 해운의 귀여운 모습에 헤에~ 미소 지으며 연신 추임새만 넣어주었다.
“아~ 그래, 오빠?” “아~ 할아버지야?” “아하~ 아저씨고?”
원체 아이를 좋아하는 수빈이었으나 해운이란 아이는 아이 특유의 귀여움이 폭발하는 느낌이었다.
곰살궂게 자기 가족을 자랑하는 아이의 큰 눈에 수빈은 넋을 잃었다.
둘은 깔깔대며 해운의 가족자랑을 수빈이 듣는 형태로 계속해서 정담이 오고갔다. 그러던 중 한 갑자기 바깥이 소란해졌다.
방의 복도로 여진인 사수들이 이리저리로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종희가 잠시 밖으로 나갔다.
“잠시 해운아기씨를 부탁하겠습니다. 수빈씨.”
“네에.......”
종희의 말에 상황을 짐작하는 수빈은 다소곳이 대답했다.
덩치가 너무 커서 그런지 말은 상냥하게 하는 데도 좀처럼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그러나 어린 아이를 보호해달라는 말에 수빈이 다른 말을 할 리가 없었다.
곧 종희가 나가고 수빈은 해운과 단 둘이 방에 남았다.
“뭘까? 언니?”
“아마..... 언니 찾으러 온 사람들일거야......”
“응? 언니를 누가 잃어 버렸어?”
“하아~”
아이의 순진무구한 질문에 수빈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음~ 그런 셈이지. 나를 잃어버린 셈이지~.”
“그럼 돌아갈 거야?”
“......”
수빈이 말없이 해운의 눈을 바라보았다.
서운함이 역력한 커다란 눈망울에 수빈이 미소를 지으며 꼭 껴안아 주었다.
“또 놀러 오면 되지. 그 때도 반겨줄래?”
“응...... 근데....... 안가면 안돼?”
“웅...... 나두 안가구 싶은데.......”
“가지마..... 언니~”
“나두 안가구 싶은데.....”
“가지마..... 언니~”
한도 끝도 없는 얘기로 서로를 붙잡고 놓지 않고 있을 때, 종희가 여진인 하나를 데리고 들어왔다.
“저~ 수빈씨? 잠깐 따라 나오시죠.”
종희의 말과 동시에 여진사수가 수빈의 팔을 거칠게 잡아 끌었다.
잡아 끄는 거센 기세에 수빈이 아파 얼굴을 찡그리자 해운이 격노했다.
“무슨 짓이야-!”
어마어마한 기의 분출에 의한 천리전음! 머릿속에 큰 범종소리처럼 울리는 소리에 여진사수는 침상 아래로 굴러 떨어졌고 문 앞의 종희는 무릎이 꺽여 주저앉을 뻔 했으며 수빈은 침상에 엎드려 버렸다.
새삼 기억이 났다.
피끝 마을의 오위도총부 토벌군이 전멸된 뒤 그 자리에 남아 있던 모두의 기혈을 뒤집었던 어마어마한 전음.
“언니......”
침상에 엎드려 있는 수빈을 해운이 미안한 표정으로 불렀다.
수빈이 고개를 들어 해운을 쳐다보았다.
미안해서 금방 울 듯한 표정의 해운을 수빈이 품 안에 쏙 넣어 안아 주었다.
“언니 갈게. 해운이 잘 있어.”
“......”
말없이 안겨 있다가 수빈이 놓아주자 종희가 해운에게 타이르듯 얘기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아기씨, 잠깐 나가시는 거니까 해 되는 일 아니에요.”
해운은 종희의 해되지 않는다는 말을 도리어 거꾸로 들었다.
어쩐지 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든 것이다. 해운이 침상을 내려와 신을 신었다.
종희가 그런 해운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나도 갈래!”
“아기씨!”
“언니 배웅할꺼야! 안녕히 가세요하고 손 흔들어 줄꺼야!”
“해운.......”
수빈이 해운에게 고마운 미소를 지어주었다.
“아기씨, 앞은 위험해요. 가시면 안돼요.”
“종희!”
해운이 단호하게 말하자 종희가 움찔 놀랐다.
수빈이 해운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가만히 쳐다보자 해운이 태도를 바꾸었다.
“종희 언니~”
“......”
해운은 종희에게 언니라 높여 말했다. 문장은 단호했지만 말투는 한결 부드러웠다.
“나 꼭, 수빈언니 가는 거 보고 싶어. 무사히 떠나는 거 꼭 보고 싶어.”
종희는 해운이 자신의 욕구를 안으로 갈무리하여 정확한 문장으로 차분히 말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품안의 어린애가 한걸음 어른에 다가가는 순간을 본 느낌에 종희는 더 해운을 말릴 수가 없었다.
종희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예~ 대신에 제 옆에서 떨어지시면 절대 안돼요! 아셨죠?”
해운이 말없이 싱글싱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빈도 웃으며 해운과 미소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