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찌르르릉. 때애애애앵.
시계의 발명은 기원전 4000년부터 3000년무렵으로, 당시에는 해시계나 별시계가 사용되었다. 그 후 몇 세기나 걸쳐, 기계 시계가 발명된 것은 1364년. 독일의 시계공 ‘헨리 드 비크’가 도르레의 원리를 이용하여 톱니바퀴를 일정한 속도로 회전시키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허친스’가 자명종과 시계를 결합하여 자명종 시계, 즉 지금 울리고 있는, 알람 시계의 시초를 발명한 사람 되겠다. 시계는 21세기인 지금에도 다양한 형태로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만, 아직까지 알람 시계를 쓰는 집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집 외엔 쉽게 찾지 못 할 것이다. 몇 번이나 더 고약하게 울리던 알람 시계는 더듬거리는 손으로 버튼을 꾸욱 약 3초간은 누른 뒤에야 꺼졌다. 대체 뭐가 문제였더라. 누르자마자 꺼지도록 만들었는데. 결국 잠이 다 깨버렸다. 아니, 이러려고 만든거였지. 오늘 아침 어두운 방을 쪼이던 햇볕을 보면, 하루동안 날씨가 좋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시계가 7시 50분을 가리킬 때부터 나는 할 일이 없었다. 항상 거실의 시계가 8시를 가리키게 되면 가방을 메고 신발을 신었다. 15분정도 거리의 학교까지 걸어가는데에는 지각할 일도 없고, 어느정도 여유로운 시간에 도착하기 딱 좋은 시간계산이었다. 그러나 늘 일어나는 시간에 눈을 뜨고, 늘 하던 것처럼 준비를 했지만 오늘은 10분정도가 남았다. 이렇게 애매하게 남은 시간동안은 무엇을 해야 좋을지 감이 오지 않았다. 바라보고있던 텅 빈 거실은 내가 스친 흔적도 없이 말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다시, 이번엔 휴대폰을 보니 디지털시계가 52분을 알려주었다. 앞으로 8분은 어떻게 보내야하나. 멍하니 서있는 발치를 내려다보자니 이것도 부자연스러운 것 같아 거실의 소파로 조금, 시선을 올렸다. 말끔히 정리되어 있어 먼지가 내린 것 같은 소파에는, 그 누구의 무게자국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쩐지 10년가량을 지내온 집의 위화감에 눌려버린 나는 눈치만 흘겼다. 결국 소파에는 앉지 못하고 거실의 탁자에 맞게 정리된 의자를 소리나지 않게끔 조금 들어 빼내었다. 앞으로 7분만 더 기다리자. 속으로 되뇌었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게 7분의 사용은 쉽지 않은 골칫거리였다.
나의 정적은 학교에 도착하기까지 이어졌다. 침묵이 깨진 8시 28분에는 2년동안 같은 반으로 지낸 가은이와 아침인사를 주고받았다.
“휴대폰으로 30분이라서 지각인줄 알고 완전 뛰어왔잖아!”
“아직 28분인데, 고생만 했네.”
“그러니까. 다리에 알배기면 휴대폰한테 따질 수도 없고. 진짜.”
내가 교실에 도착한 시간이 10분도 더 전인 것에 가은이는 관심이 없는 듯 했다. 이제는 그녀와 얘기를 할 때 어떤 페이스에 맞춰 대답을 해야하는지도 얼추 익히게 되었다. 숨가쁘게 뛰어왔을 그녀를 생각하며 최대한 그 장면을 본 것 마냥 대답했다. 가은이는 화창하게 웃어보였다. 투덜거리기는 했어도 매사에 긍정적인 가은이와 친구가 된 것이 지금 생각하면 고등학교를 다니며 얻은 행운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나는 자연스럽게 가은이의 가방을 뺏어들었다.
“이제 선생님 올 걸? 일어나 있는 김에 가서 물 받아와.”
“오오. 좋아, 좋아. 네 것도 받아올게. 기다려!”
가은이는 등교를 하면 시원한 물부터 받아오는 습관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나의 것까지 받아, 양손이 빈 물통이 된 가은이는 뒷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나는 곧바로 손에 쥔 가방을 복도창가쪽 앞에서 두번째 자리에 둔 다음에,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아직까지 학교에서 자리를 뽑는 방법은 제비뽑기 같은 투박한 방식이지만, 어쩌면 사실, 누군가의 최첨단 방식은 아닐까. 아니라면 나와 가장 친한 가은이의 자리가 이렇게 대각선방향으로 가장 멀 수도 있을 수 있나. 창가자리에서도 뒷자리인 나는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옆자리의 친구와 인사를 나누고, 답답했던 교복의 외투를 벗어 의자에 걸치었다. 아무 소리도 내지 못 했던 한 시간 전과는 다르게, 나의 말과 행동에도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이 곳은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의 3학년 교실 마지막 7반. 이제 막 여름이 지나 아침의 공기가 식고, 아이들이 히터를 언제 틀 것인 지 토론을 하는 시간대이다. 이 나이의, 이 시간은 나도 처음 겪는 것이지만, 붙잡아 둘 수가 없는 것이라 매번 새롭고 불안하다. 날씨가 맑으니 되려 생각이 많아지는 기분이다.
2교시가 되어 가은이가 떠다 줬던 따뜻한 물은 미지근하게 식어 있을 때였다. 멍하니 아침 시간을 보내는 내게 누군가의 소리가 들려왔다.
“야. 안받냐.”
“아, 미안.”
이름을 모르나? 물론 딱히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지만, 이제 반년정도는 같은 반에 지낸 것 같은데, 앞의 아이는 말투에 날을 세우는 것 같았다. 괜히 기분이 상했지만 나는 미안하다는 말 외에는 할 수 없었다. 앞에서 뒤로 넘기던 종이를 받아 다시 뒤의 아이에게 건네 줄 때쯤 그런 잡생각은 잊어버리기로 했다. 아니 그렇지만, 안 친할수록 더 조심스러운 것 아닌가. 조금만 더 돌려말해줬더라면 좋았을텐데. 안내문에는 학교에서 진행하는 자율학습에대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그제서야 생각해보니 요즘은 19살인 친구들의 날이 설 시기가 맞았다. 간과했던 사실이 머릿속에 들어오고나서야 투덜대고싶던 마음이 조금 흩어졌다. 이 반의 아이들은 저마다 목표하는 대학이 다르기도하고, 같기도하고. 노리는 전공이 그렇기도 하고. 힘이 들겠지 분명. 그래서 그 날이 다가올수록 모두가 흐트러지고, 괴로워하고 있다. 어서 그 날이 지났으면 좋겠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디로 흘러갈진 모르겠지만, 그럴수록 내가 더 벗어나고 싶었다. 향하는게 아니라, 부유해서 떠다니는 것이라면, 이 수문을 통과하면 달라지진 않을까 하여. 나에게 있어서 마지막이 아니라 거치는 것과 같으니까, 졸업만 한다면, 다른 공기로 채워진 한 해가 있진 않을까하는 기대가 막연히 있었다.
“어, 너 오늘은 야자하게?”
“그러려고. 사실 집에 가서 하는 것도 없잖아.”
“나라면 갔다, 집에. 여기 있어도 하는 건 없어.”
“좀 하세요, 해. 응?”
“매점에 피자빵 남아있으면.”
저녁을 먹고 교실에 모였던 친구들과 한데 모여 매점으로 향했다. 보통 이 시간엔 집으로 잘 가곤 했지만 요즘은 집에서 하는 것도 없고, 집에 있느니 친구들이랑 좀 더 있다가 돌아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진작 한 달전부터 나는 야자를 했어야 했던 것 아닐까. 저녁시간에 보는 친구들은 뭔가 새로웠다. 가은이와 친구들은 항상 이렇게 매점을 가곤했구나. 나는 더욱 낯설지 않은 척 그 무리에 숨어들었다.
“송. 나 수학 좀 알려줘라.”
“헐. 네가 수학을 왜 해. 예체능 아니었어?”
“아니거든.”
“정말 아니었어? 헐.”
“그만 놀라라. 그걸 이제 안 너도 신기하다.”
“아니, 맨날 집에 가고, 성적도 별로 신경 안 쓰고, 그래서 따로 학원이라도 다니는 줄 알았지.”
“알았으니까 수학 좀 알려줘. 수학 제일 잘하잖아.”
시덥지 않은 얘기를 농담하듯 이어갔다. 사실 이제와 내가 공식을 몇 개 더 본다한들 성적이 급상승하지 않을 것도 알고있다. 그렇지만 이제부터하는 공부가 부질 없는 거라면, 우리는 왜이렇게까지 힘들어할까. 수학을 잘하는 친구만 봐도 그런 것이, 이렇게 시원시원하게 웃는 친구가 이주전만해도 울음에 불어터진 목소리로 전화를 해왔다. 그것을 나는 어떻게든 위로해주려고 안달이었었지. 서툴게 말을이어가며 위로해주는 것을 아는 그녀는 실컷 속풀이를 한것만 해도 고맙다며 통화가 끝나기 직전에야 웃어주었다. 그 때, 나는 그것이 가족이었다 할지라도 그녀를 울게 만드는 건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강하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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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백 영! 어디가!”
“퇴근하겠습니다.”
“풉. 그게 뭐야. 수학알려달랬잖아.”
“수학은 제 길이 아니더라고요. 저는 제 길 찾으러갑니다.”
“아 네, 찾는 김에 내 것도 찾아오시고요!”
자율학습을 다 버티지 못하고 이미 가방을 메어 들었을 때 나의 수학선생님이 눈치를 챘다. 나에게 있어서 자율학습이란 집에 가는 시간을 한 시간 정도 늦춘 것 뿐이었다. 의자에 걸어놓았던 겉옷을 챙겨들고 계단을 내려왔다. 건물이 쌀쌀한 것이 이제 완전히 추워져서 덧입는 겉옷을 챙겨입어야 할 것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하늘은 이미 어두운 색이 되었다. 어제와는 다른 어두운 색이다.
누군가 그랬다. 하루에 하늘을 세 번 이상 올려다 보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나는 그말을 들은 날부터 종종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아, 오늘은 저녁 하늘이 깨끗해서 달보다도 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보니 아침에 생각하기를 오늘은 날씨가 좋을 것 같았는데, 그랬던가. 이제와서 푸른하늘을 찾으려 해봤자 때는 늦어버렸다. 그 때, 나는 좀 더 빨리 깨달았어야 했던 것이다. 눈에 언뜻 익숙한 별자리가 들어왔다. 아마도, 지금은 희미하게 보이지만 저 자리의 이름은 기린자리였을 것 이다. 바로 저 위에 북극성이 있고, 카시오피아 자리도 옆에 있다. 별자리들은 계절마다 볼 수 있는 게 달라져서, 그 순간 배웠던 지식이 일년 후 다시 떠올랐을 때 뿌듯함은 은근히 기분을 좋게 했다. 이제는 혼자서도 잘 찾을 수 있게 된 걸까. 몇 년 전에 별자리에 관심을 갖고 별자리 책을 빌려선...
삐익-
갑작스럽게 끼어든 소리에 급히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맞은편에서 자전거가 오고있었던 것이다. 거리엔 자전거와 자전거를 탄 사람과 나 뿐이었고, 아마 하늘을 보며 걷고있던 내게 아저씨가 주의를 준 것 이다. 괜히 민폐를 끼쳤다는 생각에 조금은 부끄러워져 다음에 나는 구석으로 걸어갔다. 코끝이 조금 시려진 것도 모른 채,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새 아파트의 앞이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아파트단지에 사람들이 듬성듬성 걸어 다녔다. 잠깐 아무 생각없이 걸어가니 우리 집이 위치한 동 앞에 섰고, 기울어진 우체통이 하나, 먼저 나를 반겼다. 이 앞엔 수백가구가 사는 아파트에 어울리지 않는 우체통이 하나 있다. 그것도 예쁘게 생겨서 인테리어 역할을 하는 걸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 낡고 녹슬어서 색이 탁해진 물건이다. 그리고 이건 내가 7년쯤 전에 만든 우체통이다. 물론 이 단단하고 그 때의 내 키만한 우체통을 혼자서 만들진 못했다. 만들고나서 뿌듯해하던 나를 두고 그 우체통을, 처치곤란해했던 엄마는 한소리부터 먼저 쏘아붙였다. 그 당시 같은 높이의 우체통과 나란히 서있던 내가 혼나던 모습이, 오늘 이 우체통을 보면 떠오른다. 물론, 그 후에 이 고철덩어리가 철거되지 않도록 도와준건 엄마였지만 말이다.
엄마의 노력이 무색하게, 지금 이 우체통은 아무런 일도 하고있지 않다. 우체통은 분명 편지나 소포를 받을 이유로 존재하는 건데, 언제부턴지 이 우체통에는 거미줄이 들어앉기 십상이었다. 나는 차갑게 식은 우체통의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내 머리위에 내려앉은 어둠보다도, 우체통 안은 깜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