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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당연하게 사랑해줘
작가 : 서언
작품등록일 : 2017.11.21

온몸이 차가워져 결국엔 죽음에 이르게 하는 불치의 병 '콜드병'. 콜드병으로 엄마를 잃은 천재의사 김세영이 콜드병 환자인 차재훈의 주치의가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당연하게 사랑해줘. (12)
작성일 : 17-12-08 17:45     조회 : 263     추천 : 0     분량 : 4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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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화

 

 송미정에 이어 구릿빛 등을 가진 남자와도 눈이 마주쳤다. 나와 눈이 마주친 남자가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 제가 호텔에서 하자고 했잖아요.”

 

 한발로 콩콩, 뛰며 다급한 듯 팬티를 입는 남자의 갈색 머리도 그에 맞춰 흔들렸다.

 차재훈은 뒤돌아 서 있었다.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인 채 손을 떨고 있었다.

 

 “뭐, 어떠니?”

 

 여유롭게 가운을 입은 송미정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남자의 엉덩이를 두번 토닥였다.

 걸어오는 송미정의 얼굴에 빨간 립스틱이 번져있었다. 첫날 본 관리 잘된 팔자 좋은 여자는 이제 없었다.

 

 “일찍 왔네요.”

 

 나를 마주 보며 웃는 송미정이 예쁘지만, 세상 더없이 천박하다 느꼈다. 어느새 함께 있던 남자도 걸어 나와 나를 보며 인상을 팍, 구겼다. 인상을 구길 사람이 누군데. 무엇보다 이 방은 송미정의 아들인 차재훈의 방이었다. 자신의 아들 방에서 굳이 자기의 아들뻘인 남자와 자는 이유가 뭘까.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겨있었는데 차재훈의 긴 다리가 남자의 등에 닿았다.

 

 “악!”

 

 소리와 함께 남자가 계단을 굴러 떨어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어머, 재훈아”

 

 가운을 입은 송미정이 차재훈을 쳐다보며 놀란 척 입을 가리며 웃었다. 더 가까이 다가온 그녀에게서 코를 찌르는 듯한 술 냄새가 났다. 차재훈도 술 냄새를 맡았는지 인상을 찡그렸다. 그녀가 난간으로 다가가 계단 밑 아파하는 남자를 슬쩍 쳐다보곤 놀란 척을 물었다.

 

 “어머, 밀었어?”

 

 “엄마를 밀 수는 없잖아요.”

 

 차재훈이 그녀를 지나치며 말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문 앞에 있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차가운 말과 달리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과 조금만 건드려도 폭발할 것 같은 분노 속에 상처가 섞여 있었다.

 

 “우리 아들 많이 컸네.”

 

 그녀가 방 안으로 들어가는 차재훈을 보며 웃었다. 그리곤 난간에 비스듬히 기대어 1층을 향해 콧소리가 잔뜩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미스김~ 119 좀 불러줘~”

 

 첫날 완벽하게 관리된 고고한 부잣집 사모님이 아닌 천박하고, 또 천박한 그녀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나를 지나쳤다.

 

 “아, 그쪽 의사라며.”

 

 걷던 걸음을 멈추고 나를 뒤돌아보던 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 베이비 좀 치료해줘요. 우리 베이비를 계단에서 밀어버렸지 뭐야?”

 

 반쯤 풀린 눈을 보기가 부담스러웠다.

 

 “우리 아들 잘~ 치료해줘요.”

 

 그녀가 다시 비틀거리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곤 고통스러워하는 남자의 발을 팔로 꾹, 눌러 밟았다.

 

 “아!”

 “베이비~ 아파?”

 “지금 장난해?”

 

 남자는 다리가 부러진 것 같았다. 다리도 아파 죽겠는데 밟으면서 신경 거슬리게 콧소리 잔뜩 섞인 베이비~ 라니. 남자가 있는 힘을 다해 짜증을 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가 그 앞에 쭈그려 앉았다.

 

 “장난? 그럼 너랑 장난하지 내가 뭘 하겠니?”

 

 툭툭, 남자의 뺨을 치며 말한 미정이 다시 한번 세게 발을 밟았다.

 

 “너 때문에 우리 아들 기분이 안 좋아졌잖아.”

 

 고통에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그녀가 시끄럽다는 듯 표정을 구겼다. 그 광경에 자연스럽게 눈이 차재훈의 굳게 닫힌 방문으로 향했다. 아까의 그 표정이 눈에 아른거렸다.

 위로가 필요한 표정이었지만 굳게 닫힌 문을 열 자신이 없었다.

 

  * * *

 

 방에 들어가자마자 서재에 앉았다.

 

 “뭐야, 이게.”

 

 차경현이 준 약의 성분 결과가 적힌 종이가 내 손에 들려있었다. 결과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고작 이거야?”

 

 특별할게 전혀 없는 비타민이 다량 함유된 약이었다. 이런 걸 여태까지 복용했다고? 설마. 약을 만들었다고 약통을 흔들어가며 싱긋, 웃던 차경현의 모습이 생각났다.

 

 “창피하지도 않나.”

 

 나는 그대로 약통을 들었다. 약간 허무했다. 정말, 차경현의 약과 엄마가 복용했던 약은 서로 관계가 없는 걸까. 정말 내 소설에 지나지 않았던 걸까.

 

 “차재훈은 대체 왜 쓰러지는 걸까.”

 

 탁, 소리 나게 약을 내려놨다. 속이 무겁게 답답해졌다. 약의 성분만 알면 그때부터 의문이 풀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더 엉키고 엉켜버렸다.

 

 결국,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문을 열고 나갔다. 저택의 잘 정돈된 정원을 한바퀴 돌고 있을 때쯤이었다.

 

 “야!! 이거 안놔?”

 

 저택의 담벼락 너머 괴성이 들렸다. 더 가까이 듣기 위해 계단을 내려갔다. 아까도 빌어먹을 호기심 때문에 문을 연 걸 후회했으면서 또 궁금해서 이렇게 계단을 뛰듯이 내려가는 나도 참 이해가 안됐다. 근데 어쩌겠는가 궁금한걸.

 

 “목소리 낮추세요. 야, 빨리 김비서 불러.”

 

 목소리의 주인공은 미정이 베이비~ 라고 부르던 남자였다. 남자는 깁스를 하고 있었고 중년 남자와 함께 나타났다. 저택 곳곳에 배치된 경호원들이 저택에 들어오려는 남자를 제지했다. 저 남자는 누구지. 호기심이 더 발동됐다.

 

 순간 헤드라이트를 밝히며 검은색 세단에서 셔츠를 입은 남자가 나왔다. 그리곤 곧바로 깁스를 한 남자에게 다가갔다.

 

 “뭐야 당신은? 다 됐고, 나 이렇게 만든 자식 나와서 싹싹, 빌라고 해.”

 

 목발을 들어 담벼락을 향해 삿대질 하는 남자에게 세단에서 내린 남자가 하얀색 봉투를 꺼내 보였다.

 

 “치료하시고 걸어 다닐 일 없으실 겁니다.”

 

 남자가 하얀색 봉투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받았다.

 

 “아, 씨.”

 

 세단에서 내린 남자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이내 미정의 베이비와 같이 온 남자에게 다가갔다.

 

 “형사님? 오랜만이네요.”

 “아, 김비서님~ 합의는 되셨습니까?”

 

 아, 형사였구나.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닌 것처럼 둘은 아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눴다.

 

 “네.”

 “서류는 내일 작성하실 거죠?”

 “네, 내일 저희 쪽 직원이 방문 할 겁니다. 항상 고생이 많으십니다.”

 

 형사에게도 하얀색 봉투가 건네졌다. 형사는 멋쩍게 웃었다.

 

 “아이, 뭐, 아드님이 아직 어려서 장난하신 건데요, 뭐. 앞으로 이런 사건은 저에게 맡기세요.”

 

 두사람이 사라지고 사건을 해결한 남자가 피곤한 듯 눈가를 매만졌다. 문득, 저 하얀색 봉투에는 얼마가 들어있을까 하는 어이없는 의문이 들었다.

 비서라고 불리던 남자는 저택으로 들어왔다. 그바람에 나도 도망치듯 뛰어 저택으로 들어왔다.

 순간, 내가 왜 이렇게 도망치듯 뛰는거지 싶었지만, 그 생각은 안타깝게도 방에 들어가고 나서야 든 생각이었다.

 

 “일은 잘 처리했습니다.”

 “네.”

 

 비서의 말 뒤로 차재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달밤에 본의 아니게 운동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대체 왜 뛴 거야. 얼마나 전속력으로 뛰었는지 목이 말랐다.

 

 “형...”

 

 차마 문을 열지 못했던 것은 기운 없이 늘어진 차재훈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오늘 엄마가 내 방에서 또... 그랬어.”

 

 문고리를 잡았던 손에 힘이 점점 더 풀렸다. 이상하게 쉽게 나갈 수가 없었다. 잠깐의 정적 끝에 차재훈의 목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재훈아.

 “응.”

 -어머니가 모르시나 봐.

 “뭘?”

 -자기 방에서 아들이 낯선 여자랑 뒹구는 기분을

 “어?”

 

 차재훈의 목소리가 커졌다. 대체 차경현이 뭐라고 하길래. 다시 문고리 위로 손을 올렸다.

 

 -사람은 모두 겪어봐야 알아.

 “....”

 -자신의 일이 돼봐야, 이해라는 걸 해.

 

 괜한 짓이다. 나가서 뭐 어쩔건데, 목이 마르지만 그냥 참기로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어쭙잖은 위로가 차재훈에게 더 상처가 될거다. 문고리로 올라갔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 * *

 

 쿵쿵, 꽤 큰 발소리가 들렸다. 인상이 저절로 구겨졌다.

 

 “아!”

 

 다시 한번 큰 소리와 함께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넘어졌는지 짧은 비명소리와 함께 다시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쿵쿵거리는 소리를 끝으로 곧이어 문소리가 들렸다. 문제는 그 문소리가.

 

 “뭐야?”

 

 내 방문이라는 것이었다. 빨간색 원피스를 입고 예쁘게 화장을 한 연지가 새벽 두시가 넘는 이 시간에 내 앞에 있었다.

 

 “아, 씨.”

 

 연지가 짜증스럽게 인상을 구기며 머리를 쓸었다.

 

 “네가 여기서 왜 나와?”

 

 왠지 오늘 하루가 너무 길게 느껴졌다.

 

 “아, 진짜 짜증 나네. 야, 너 진짜 뭐야, 뭔데!”

 “너는 이 밤에, 아니 이 새벽에 무슨 일인데.”

 

 내 물음에 연지가 팔짱을 끼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이 새벽에 내가 이 집에 왜 왔겠니.”

 

 연지가 손가락을 들고 내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생각이란 걸 해봐, 아, 상상하는 게 더 재미있으려나?”

 “알아듣게 말해.”

 

 연지의 손을 잡아 제지했다.

 

 “재훈이가 불렀어. 나.”

 

 의기양양한 표정의 연지를 보고 다시 두통이 오는 것처럼 머리가 아팠다.

 

 “너는 여기 왜 있는데? 설마 재훈이가 너도 불렀어?”

 

 자연스럽게 눈이 차재훈의 방쪽으로 향했다.

 

 “아, 너 여기 왜있냐고!!!”

 

 연지가 다시 한번 크게 소리를 질렀다. 두통을 앓는 사람의 느낌이 이런 것일까.

 

 “개판이구만.”

 

 밑에서 메이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였다.

 

 “야! 대답안해?”

 

 연지의 목청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목소리 좀 낮...”

 “여기야.”

 

 내 말이 끝나기도 전 차재훈이 문을 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차재훈이 내 눈을 피하며 고개를 숙였다.

 

 “들어와.”

 

 낮고 굵은 목소리가 한번 더 울리고 연지가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머리를 정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게 문을 열고 서 있는 차재훈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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