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주원의 직장, 애드오.
주말이 지나고 기획안을 회의를 들어 간 주원은 자신은 대박이라고 생각한 자신의 기획안에 탐탁지 못해하는 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아니, 이대리. 이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기획안을 다시 들춰 보며 김부장은 굴리던 펜을 소리 나게 테이블에 내려놨다.
그의 돌아가는 펜 끝만 바라보고 있던 주원이 고개를 들어 부장에게 되물었다.
“왜 안됩니까? 꼭 광고에 그 때 몸값 제일 비싼 연예인 데려 온다고 다 되는 건 아니잖아요.”
어제 태오를 선자리에서 만난 후부터 그녀의 머리 속에는 딱 한 가지.
김태오만 광고에 내 세운다면 대박이라고, 플라잉 톡 광고도 따오고 반응까지 좋을 거라 자신했다.
자신의 탄탄한 비혼의 길을 열어줄 열쇠가 되어 줄 열쇠.
“물론 그렇지만, 플라잉 톡에 대해 조사 안했어? 김태오 그 사람이 보통 사람인 줄 알아? 얼마나 콧대가 놓은 데, 지금까지 플라잉톡이 광고 한번 안한 이유 못 들었어?”
물론 주원도 들었다.
아니, 알고 있었다. 주원도 플라잉톡 어플에 목 메달고 외국인 친구들과 펜팔을 할 때가 있었으니까.
스마트폰이 보급화 된 이후, 쏟아져 나오는 채팅 어플들 사이에서 단연 1위였던 플라잉톡.
다른 채팅 어플과 다르게 외국인 친구들과 펜팔을 할 수 있다는 기능 때문에 채팅을 원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영어 공부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는 같은 업계 사람들과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어플이었다.
주원도 그 곳에서 만난 일본 광고 업계 직원과 알게 되면서 밤새 톡을 주고 받으며 유학의 결심을 갖기도 했었다.
“그거야, 김태오 성격일 수도 있고 콧대는 높아도 지금은 1위를 뺐겼으니까....”
‘근데 콧대는 높아 보이기는 하더라.’
어제 김태오의 모습이 주원의 머리로 스쳐지나갔다.
부장님의 말을 들으니 그제야 플라잉톡 대표인 김태오가 쉽사리 모델을 안해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김태오 앞에 가서 당신 콧대 높이지 말고, 대표가 직접 광고에 얼굴 내미쇼. 할 수 있어? 이대리?”
대박이라고 생각했던 주원의 눈이 잔뜩 찌푸려졌다.
주원의 옆에 앉아 있던 동료들도 부장님의 말에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각자 다른 스타일의 기획안을 들고 온 그 들이었지만, 콧대 높은 김태오의 입맛에 맞을 만한 아이돌부터 시작해서 지적인 이미지인 연기자. 교육 방송 스타강사까지 모델을 기획해왔던 그들은 주원의 기획을 듣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왜들 웃고 난리야. 김태오 실물을 보면 웃음이 싹 사라질걸?’
아직 태오의 실물을 본 적도 없는 팀원들이 피식피식 웃는 모습에 주원은 괜한 오기가 났다.
“이대리. 감이 벌써 떨어져서 어떡할라고 그래. 남자친구도 없잖아? 결혼하고 일 그만 둘거야?”
오기에 가득차서 대답 없는 주원에게 김부장이 쓸데 없는 사설을 덧붙였다.
피식피식 웃던 팀원들이 김부장의 이야기에 웃음기를 지웠다.
메모를 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들고 있던 주원의 펜을 손으로 꽉 쥐는 주원의 모습을 봤다.
“그런 거 아니면 다른 사람 기획안 잘 봐봐. 다들 어떤 생각인지. 왜 혼자 튈려고 그래? 튄다고 다 받아 들여지는 지 알아?”
주원은 꽉 쥐었던 펜을 테이블에 내려놨다.
‘후우.’
김부장에게 당장 일어나서 ‘언제는 신박하고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광고 만들라며!’ 라고 하고 싶은 말을 외치고 회사를 떠나고 싶었지만 아직은 회사를 그만 둘 때가 아니었다.
‘그래. 아직은 아니야. 그만 두더라도 내가 김태오 광고에 내세우고. 그러고 그만두자.’
주원은 침을 한번 꼴깍 삼키고 입을 뗐다.
“부장님. 플라잉 톡이랑 미팅하고 나서 결정하시죠. 김태오 대표 만한 모델 없습니다. 제가 보기엔.”
쟨 뭘 믿고 저렇게 당당해? 라는 부장의 반응에도 주원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았다.
**
어제 밤에도 밤새 어플 구동을 확인하며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낸 태오의 사무실로 김실장이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마케팅 팀에서 회의한 재료들이 들려있었다.
지난 번 회의 때는 광고 회사 쪽에서도 유명하고 반응 좋은 광고를 잘 뽑기로 소문난 씨엘기획 쪽으로만 초점을 뒀었지만, 경쟁업체 쪽과 관련 없는 회사만 고집하는 대표인 태오 때문에 이번에는 다른 회사 위주로 회의를 맞췄다.
생각보다 괜찮은 기획안들을 받은 지훈은 흡족했지만, 막상 태오가 들으면 노발 대발 할 지도 모르는 기획안을 가슴에 품고 대표실로 들어왔다.
조심스럽게 대표실로 들어온 지훈은 어제도 퇴근을 안한 듯한 피곤한 모습의 태오를 바라봤다.
‘독한 놈. 업데이트가 내일이라고 3일 째 밤을 세다니. 저러니 결혼을 못하지.’
지난 주말에 맞선을 보고 사무실로 들어 온 후에 한발자국도 떼지 않고 업데이트 준비만 신경쓴 태오였다.
지훈은 장담할 수 있었다.
아무리 태오의 부모님, 아니 할아버지가 선자리를 들이 밀어도 태오의 눈에는 당장 업데이트 할 코딩 작업이 중요하다는 걸.
아마 당장 봤던 맞선녀의 이름도 기억 못할게 뻔했다.
업데이트 직전이라 예민한 태오는 이번 회의 결과를 말하러 들어와서는 한참을 자신을 안타깝다는 듯 내려다 보고 있는 지훈을 날카롭게 바라봤다.
피곤함에 눈에 힘이 잔뜩 들어간 상태였던 태오의 눈을 본 지훈은 움찔했다.
‘아, 진짜. 난 저렇게 바라 볼때가 제일 부담돼.’
물론 그가 피곤함에 눈에 잔뜩 힘을 주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오랜 친구인 지훈도 태오를 플라잉톡 대표로 대할 때는 깍듯했다.
“김실장. 왜 그렇게 바라만 보고 있어?”
태오의 물음에 지훈은 14년 지기 친구를 안타깝게 보던 눈에서 김실장으로 돌아왔다.
“대표님, 지난 번 씨엘 광고를 제외한 업체를 선정하라고 하셔서 마케팅 팀에서 회의를 통해 다른 업체들 기획안도 들고 왔습니다.”
“그래서 결론은요?”
쌍커풀이 짙게 진 눈을 힘주어 뜨며 태오가 물었다.
“네, 자료는 두고 나가겠습니다.”
지훈은 태오의 책상에 파일들을 내려놓았다.
“아니, 마케팅 팀 회의 결과는 뭡니까?”
예민한 태오를 뒤로 하고 자료만 두고 나가려는 지훈에게 태오가 물었다.
“팀원들이 제일 강력히 밀고 있는 회사는 애드오 기획입니다. 그 다음은 에이기획, 캐스팅애드 순입니다.”
파일을 들춰 보던 태오는 피곤함에 미간이 욱씬거리는 걸 느끼고 다시 접었다.
애드오의 파일을 열었다가 포기하고 다시 닫는 태오의 모습을 보고 지훈은 다시 이야기를 덧붙였다.
“애드오 기획이 다른 곳과 가장 차별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산도 가장 적구요.”
“예산은 문제가 되지않는 거 알잖아. 내가 뭐 저렴한 광고 찾는 다했어?”
예산은 문제가 되지 않는 다고 말한 태오는 눈을 꾹꾹 누르며 대답했다.
애드오 파일을 열고 기획을 읽자마자 짜증을 낼 거라 예상했던 지훈은 태오가 피곤함에 기획안을 살피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그럼 미팅은 어떻게 할까요.”
눈을 뜨고는 다시 모니터 안의 자신의 코딩작업을 들여다 보며 태오는 대답했다.
“팀원들이 차별성 있고, 제일 괜찮다고 했던 애드오랑 시간잡아요.”
생각보다 쉽게 결정을 내린 대표의 대답에 지훈의 표정이 밝아졌다.
“더 안보셔도 후회, 아니 괜찮으시겠습니까?”
후회라는 말에 태오가 지훈을 다시 바라봤다.
“후회?”
“아니, 나도 제일 낫긴 나은데 태오 너가 이렇게 쉽게 결정하는 게 없잖아.”
지훈은 의외라는 듯이 대답했다.
“모르겠다. 지금 3일을 밤샜더니 지금 작업 붙잡고 있는 것도 피곤해. 다른 사람들 눈에 괜찮으면 그게 제일 낫겠지.”
“그래. 잘 선택했다.”
태오의 말에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드오의 기획을 보고는 파일이라도 던지는 건 아닌가 걱정을 했는 데, 다행히 그는 기획안을 들여다 보지도 않고 미팅을 결정했다.
미팅을 결정한다고 다 결정 된건 아니었지만, 미팅조차 하지 않고 퇴짜 놓을 줄 알았던 기획이었던 기획이 단숨에 통과 되다니 지훈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훈은 태오의 대답에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들고 왔던 파일들을 혹시나 태오가 맘이 바뀌어 다시 들여다 보기 전에 들고 나가려 했다.
“아, 태오야. 너 얼굴 많이 상했다. 미팅 전에 팩이라도 좀 해. 내가 내일 팩 사올게.”
파일을 든 채 태오의 사무실을 나가던 지훈은 다시 뒤 돌아 그가 알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
김부장과 함께 플라잉톡 본사 로비에 선 주원은 지난 주말 만났던 맞선남을 클라이언트로 마주 할 생각을 하니 기분이 묘했다.
사실 김부장이 있지도 않은 남자친구며, 결혼이야기를 언급하길래 미팅을 한 후 다시 말하자고는 했지만.
기획안을 플라잉 톡 쪽에 보낸 후에는 자신할 수 없었다.
제 아무리 대박이라고 생각한 기획이라도 플라잉톡에서 퇴짜 놓으면 김부장 얼굴을 어떻게 봐야하나,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지나 말껄이라는 생각을 수 없이 했었다.
하지만, 의외로 플라잉톡에서 미팅 날짜가 빠르게 잡혔다는 연락을 받은 주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김태오 대표가 얼마나 콧대가 높은 줄 알아?
-김태오 앞에 가서 당신 콧대 높이지 말고, 대표가 직접 광고에 얼굴 내미쇼. 할거야?
김부장의 말이 생각해 보면 하나 하나 맞는 것 같았다.
‘진짜. 김태오 대표 앞에 가서 대표가 직접 광고 모델이 되는 건 어떻습니까? 라고 해야하는 거야?’
주원은 콩닥이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PT를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14층에 있는 플라잉톡 회의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버튼을 누르고 있는 주원의 머리 속에는 PT생각 밖에 없었다.
띵-
엘리베이터 도착음이 울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PT생각 뿐이던 주원의 두 눈이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고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