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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봉주르 주피터(Bonjour Jupiter.)
작가 : 안경잡이
작품등록일 : 2017.11.17

한류에 빠진 프랑스국적의 저승사자(주피터)가 죽어야하는 사람을 잘못 데려가면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21.
작성일 : 17-12-18 00:39     조회 : 306     추천 : 0     분량 : 3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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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수업이 모두 끝난 뒤 한결과 미나는 세은이 있다는 병원으로 향했다. 같은 반이었지만 접점이 아무것도 없었던 세은과 미나는 얼굴만 알고 지낼 뿐,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영혼이 바뀐 뒤에도 미나에 대한 호감보다는 무관심이 컸던 한결도 멀리 지내는 게 나쁘지 않았다. 목적지는 같지만 서로가 부담스러웠던 세은과 미나는 앞, 뒤로 10정도 떨어진 채 걸었다.

 

 “어? 여기 어찐 일이야?”“어떻게 오긴. 걱정돼서 왔지 카톡도 안 되고, 전화도 안 받고 여기에 있는 것도 선생님이 말씀해주셔서 겨우 알았어. 무슨 일 생긴 거야?”

 

 한결보다 앞서 걷고 있던 미나는 병원 정문에서 서성대고 있는 세은을 보게 되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내심 뒤에서 걷고 있는 한결이 신경 쓰였던 미나는 일부러 한결을 바라보며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세은한테는 미나가 먼저 도착했을지 몰라도, 세은한테 필요한 사람은 미나가 아니라 한결이었다. 세은은 미나의 말은 듣지도 않고 한결이 도착하기만 기다렸다. 하지만 한결은 정문 쪽으로 오지 않고 골목에서 모습을 감췄다. 깜짝 놀란 세은은 옆에 미나가 있다는 것도 잊은 채 한결이 사라졌던 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으로 들어간 세은은 바로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한결을 보게 되었다.

 

 “따라와.”

 

 어릴 때부터 아빠가 일했던 병원을 놀이터마냥 자주 들낙날락했었던 한결은 세은을 데리고 바로 병원에서 가장 조용하고, 인적이 드문, 그래서 마음 놓고 둘 만의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쪽저쪽으로 빠르게 움직이던 한결은 인적이 거의 없는 자재창고에 도착한 뒤에야 발걸음을 멈췄다. 그 덕에 숨을 헐떡이며 쫓아오던 세은도 걸음을 멈출 수가 있었다. 당장 궁금한 걸 물어보고 싶었지만, 일단 사람부터 살려야했던 한결은 1~2분간 숨쉴 시간을 줬다. 거칠게 내쉬던 세은의 숨소리가 잦아들자 한결은 궁금한 걸 묻기 시작했다.

 

 “오늘 주피터가 찾아왔지? 그래서 학교에 못 온 거지? 주피터가 뭐래? 우리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대?”

 

 한결은 세은이 학교에 오지 못한 이유로 주피터를 생각하고 있었다. 한결의 생각이 한 쪽으로 쏠려있는 지금, 세은은 거짓말로 이 상황을 모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세은스럽지 않은 방법이었다. 공부를 잘하지도, 그렇다고 특별나게 잘 하는 게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세은은 정직했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하라는 잔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거짓말하지 말라는 잔소리는 수 백 번도 넘게 들었던 세은에게 거짓말하는 건 한결이 공부하지 않는 것처럼 부자연스럽고, 어색한 일이었다. 그래서 어젯밤에 있던 일부터, 그 전에 있던 일까지 모조리 한결에게 털어놓았다. 세은의 이야기를 듣던 한결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공부하는 게 그렇게 싫어? 너 학생이잖아. 학생은 공부하는 게 일인데, 공부를 안하겠다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공부하는 게 싫은 건 아닌데, 내가 따라잡기 너무 힘드니까......”

 “노력이라도 한 번 해봤어?”

 

 비수를 찌르는 한결의 말에 세은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세은에 대한 인간적인 분노와 어머니에 대한 걱정이 섞이면서 한결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나왔다. 당황한 세은은 티슈를 꺼내줬지만, 한결은 받지 않았다.

 

 “병실 몇 호야?”

 

 세은과 단 둘이 있다는 사실이 끔찍이도 싫었던 한결은 어머니가 입원해있는 병실로 향했다. 세은은 자재창고에서 나가는 한결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 뿐, 쫓아가지 못했다. 이대로 문제를 해결되길 바랄 수도 있겠지만, 그건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 해야하는 생각이 아니었다.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한결을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한 세은은 뒤늦게 한결의 뒤를 쫓아갔다. 902호. 엘리베이터도 이용하지않고 지하2층부터, 9층까지 한 걸음에 올라온 세은은 병실 앞에 도착한 뒤에 숨을 돌렸다. 그때 병실문이 열리더니 간호사와 아버지가 나왔다. 깜짝 놀란 한결은 숨 돌리는 와중에도 꾸벅 고개 숙여 인사했다. 한결의 인사에 아버지는 흐뭇한 미소로 대답했다.

 

 “병문안 왔니?”

 “네, 네........”

 

 한결아빠는 안타깝게도 한결을 알아보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한결과 세은이 바뀐 건 단 둘 밖에 모르는 비밀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걸 현실로 느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마치 남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한결은 다시 한 번 울컥했다. 그러면서 어머니 혼자 있는 병실에 들어가기가 두려워졌다. 잠시 후 9층에 도착한 세은은 넋을 잃은 채 복도 벤치에 앉아있는 한결을 보게 되었다. 무슨 말을 한들 한결의 화가 풀리지 않겠지만, 우울해하는 한결을 내버려둘 수 없었던 세은은 조심스럽게 옆자리에 앉았다.

 

 “내가 도와줄까?”

 “그래......”

 

 세은이가 꼴도 보기 싫었지만 혼자서는 낯선 고등학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한결은 어쩔 수 없이 세은과 함께 어머니가 입원해있는 902호로 들어갔다. 문소리가 들리자 한결엄마는 바로 고개를 들렸지만, 한결을 보고는 다시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멋진 장소를 찾으면, 이색적인 이벤트를 알게 되면 한결엄마는 고민할 것도 없이 한결에게 향했었다. 때로는 엄마의 지나친 관심과 사랑이 부담스러웠지만, 그게 싫다고 느껴졌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한결엄마는 한결을 보고 등을 돌려버렸다. 꿈에서도 이런 모습을 상상해 본적이 없던 한결의 눈엔 또다시 눈물이 고였다. 더 이상 자신을 외면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지 않았던 한결은 조용히 병실에서 나갔다.

 

 “정말 죄송해요. 어머니.”

 

 그냥 나갈 수도 있었지만 한결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고 싶었던 세은은 크게 소리내 사과한 뒤, 병실에서 나갔다.

 

 “세은아?”

 

 눈물 흘리며 복도를 지나가던 한결은 세은과 만나게 되었다. 깜짝 놀란 미나는 세은에게 말을 걸었지만, 한결은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쏜살같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몇 초 뒤, 병실에서 나온 한결은 세은을 쫓아갔다. 몇 분 전, 병원 정문에서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미나는 직감적으로 이 둘 사이에 무슨 일다는 걸 파악할 수 있었다. 이 둘 사이에 있는 일이 궁금했던 미나는 조심스럽게 한결 뒤를 쫓아갔다. 조심스럽게 한결을 쫓아가던 미나는 옥상까지 가게 되었다. 옥상 안쪽에 있는 벤치엔 세은이 앉아있었고, 한결은 조심스럽게 세은이 있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오지마.”

 

 벤치에 앉아있던 세은의 말에 한결은 동상이라도 된 것처럼 꼼짝하지 않았다. 한결의 모습을 몰래 지켜보고 있던 미나는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한결이 엄친아이자 모든 친구들한테 친절한 학생이었지만, 타인 의존적인 학생은 아니었다. 친구들을 도와주면서도 언제나 자신이 해야 하는 걸 잊지 않았던 한결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던 미나한테 세은의 말 한 마디에 꼼짝 못하는 한결의 모습은 낯설게 느껴졌다. 이 둘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지켜보고 싶었던 미나는 계단에서 나와 자판기 뒤에 숨으면서 이 둘의 모습에 집중했다.

 

 “공부는 계속 안 할 거야?”

 “안 하는 건 아닌데, 너처럼 할 자신은 없어.”

 

 한결의 대답에 세은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한결은 창피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세은의 성적은 모르지만, 전교석차가 아닌 전국석차로 등수를 매기는 한결한테 공부에 대한 조언을 할 정도는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세은은 한결에게 공부에 대한 조언을 했고, 이에 풀이 죽은 한결은 고개를 숙였다. 직접 눈으로 보고 있지만 이 상황을 좀처럼 믿을 수 없었던 미나는 조심스럽게 스마트폰을 꺼내 한결과 세은의 모습을 담기 시작했다.

 

 “최근엔 주피터 본 적 없고?”

 “저번에 꿈인지, 현실인지 잘 구분은 안 되는데 한 번 보고 난 뒤에는 본 적 없어.”

 “그래. 부모님한테 잘해드려. 나도 노력하고 있으니까.”

 “알았어.”

 

 할 말을 마친 한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비상구로 향했다. 비상구로 나가는 길목에 세은이 서 있었지만 한결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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