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각자 다른 세상에서 살기
작업장은 늘 부산했다. 한 눈에 세기 힘들 정도의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지만 각자 정신없이 맡은 파트를 소화해야 일의 흐름이 끊기지 않기 때문에 직원들끼리의 유대감 또한 사무적이었다. 지역을 분류하는 일을 하시는 (비교적 고령인) 직원들만 제외하고는 더욱 그랬다. 오히려 내겐 좋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유독 이런 작업장의 분위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김 주임이었다.
자그마한 체구의 그였지만 일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날다람쥐마냥 손이 빠르고 정확했다. 그는 늘 시간의 틈을 주려고 노력했고 그 때마다 바쁘게 일하는 직원들을 한 사람씩 찾아다니며 독려를 하거나 시시한 농담을 던지곤 했다. 간혹 내게도 와서 말을 걸었지만 대부분은 일에 대한 자신의 노하우에 관한 이야기였다.
“승주씨?”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내가 작업을 시작했을 때, 김 주임이 어느새 내 옆에 다가와 서 있었다.
“예?!”
난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음....... 이제 제법 빨라졌네요. 천천히 해도 돼. 승주씨는 늘 뭐가 그렇게 급해?”
그가 내게 반말로 물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썼던 그였다.
“내가 형이니까 말 편하게 할게. 벌써 한 달이나 지났는데 그래도 되지?”
“예........”
그의 제안에 난 수락했다. 기분이 나쁘거나 한 건 아니지만 조금 당황스럽긴 했다.
“오늘 끝나고 바빠?”
그가 물었다.
“어........ 아니요.........”
난 대답했다.
“음........ 그럼, 오늘 일 끝나고 한 잔 어때? 우리끼리. 오늘 월급날이잖아. 더군다나 승주씨는 첫 월급일 텐데.”
그는 또 내게 제안했다.
“우....... 우리요?”
“응. 우리. 우리 조. 다섯 명.”
“아......... 어......... 그, 글쎄요........”
난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어, 뭘 그렇게 망설여? 그냥 ‘네.’하면 되지. 가는 거다? 알았지? 그럼 수고!”
그는 이렇게 말하고 가버렸다. 생각지도 못한 김 주임의 제안에 얼떨떨했다. 그냥 술 한 잔이겠지만 난 왠지 오후 작업을 하는 내내 신경이 쓰였다.
퇴근 시간이 되자, 김 주임이 사복차림으로 내가 다가왔다. 난 아직 작업 중이었다.
“강승주! 뭐해? 오늘은 칼 퇴근이야!”
그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가득 머금고 내게 말했다.
“아....... 저, 이것만 마무리하고요........”
“으이구........ 이렇게 융통성이 없어서 어떻게 해.”
그는 혀를 차며 내 앞으로 와 몇 개 남은 포장을 도와주었다. 덕분에 5분 만에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그는 급히 날 끌고 가다시피 데리고 작업장을 빠져 나왔다.
“봐! 아무도 없잖아. 우리 조 애들. 벌써 가서 기다리고 있을 걸?”
그는 잔뜩 신이 나 보였다. 회사 앞 버스정류장 근처에 있는 삼겹살집으로 그는 나를 데려갔다. 그의 말대로 동료 세 명이 먼저 와 있었고, 종업원이 테이블에 고기를 가져다주고 있었다.
“여기요, 형!”
한 직원이 우릴 보고 말했다. 일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김 주임 말고 조원들의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김 주임과 나는 자리로 가 마주하고 앉았다.
“어이구......... 자식들!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만 아주 작정을 했구나!”
김 주임은 껄껄 웃으며 소주병을 들고 각자의 앞에 놓인 잔을 채우기 시작했다.
“아, 새끼들. 어떻게 다 똑같은 놈들끼리 뭉쳐가지고........ 재미없는 놈들! 자, 마시자!”
그는 자신의 잔을 치켜들며 건배를 청했다. 다들 쭈뼛쭈뼛 잔을 들어 부딪치고는 고개를 돌려 술잔을 넘겼다. 나도 눈치를 보며 잔을 입에 가져갔다.
“참........ 내가 니들 땜에 월급날마다 힘들어 죽겠어. 니들끼리라도 좀 뭉치고 그래.”
김 주임은 빈 잔들을 확인하고 다시 술을 채우며 말했다.
“세 달 만에 처음 다 모인 건데.........”
내 옆에 앉아있던 직원이 물을 마시며 궁시렁댔다. 하지만 듣지 못한 것인지 모른 척 하는 것인지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왠지 나 때문인 것 같았다.
“자! 오늘은 승주가 합류했으니까 각자 소개 좀 해보자. 뭐 나는 다들 알 테니까, 난 빼고!”
그는 고기를 불판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에이........ 형, 그런 게 어디 있어요. 형도 해야죠.”
김 주임 옆에 앉은 직원이 말했다.
“으이구........ 알았어, 자식아. 그럼 나부터 할 테니까 그 다음 너! 차례로......! 으흠! 다 알다시피 난 김찬민 주임. 열흘 뒤가 되면 만 3년이 되지. 나이도 서른을 채우게 되고. 아직 결혼은 안했고 여자 친구는 있어. 일 년 전 주임이 되면서부터 기숙사에 살고 있고....... 운동 좋아하고 여행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뭐 이정도면 되지? 자, 이제 너!”
김 주임은 옆에 앉은 직원을 쿡 찔렀다.
“예? 어........ 저는 안현상이고요........ 일 한지는 이제 십 개월 정도 됐고, 스물다섯입니다. 대학교 중퇴하고 군대 다녀와서 취직하려고 했는데, 잘 안됐어요. 그래서 아르바이트라도 해야지 하고 시작했는데 다시 취업 준비할 엄두가 안 나네요. 그냥 겨기 눌러 앉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후.........”
“뭔 소리야? 새끼야! 공부 하고 있다며? 계속 해, 그냥!”
그는 깊은 한숨으로 자신의 소개를 마무리했고, 김 주임은 그를 다시 한 번 쿡 찌르며 말했다. 그는 그냥 씩 웃고 말았다.
“자, 다음은 너!”
“어......... 이윤식입니다. 스물 한 살이고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여기서 일했는데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아직 정규직은 못 되었고요........ 군대도 아직 못 갔어요. 소방 공무원 공부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힘드네요....... 그래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 옆에 앉아 있던 직원이 소개를 했다. 얼굴은 앳되어 보였지만 목소리는 굵직했다.
“음....... 그래. 다음 너!”
김 주임은 내 옆에 앉은 직원을 가리켰다.
“저는 김태준이고요, 스물 세 살입니다. 전 군대는 다녀왔고, 저도 9급 공무원 준비하고 있어요. 삼수 째........ 여기서 일 한지는 이제 삼 개월 됐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지만 씩씩하게 말하고는 김 주임을 쳐다보았다.
“끝이야? 음........ 그럼 너. 승주!”
그는 나를 가리켰다.
“예? 아......... 저........ 저는 강승주라고 합니다. 스물 세 살이고....... 이제 한 달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난 어설프게 인사하며 말했다. 더듬거렸고 목소리도 작았다.
“야, 인마! 넌 소개가 왜 그렇게 짧아? 넌 길게 해야 돼. 너 빼고 우리는 다 대충은 아는데, 너만 모르거든?”
김 주임은 내게 말했다.
“아........ 뭘........ 말 할 게 별로 없는데요........”
“그래? 그럼 우리가 물어볼까?”
당황한 날 보고 김 주임은 세 사람에게 제안했다.
“군대는 다녀왔어요?”
나이가 가장 어렸던 직원이 얼른 질문했다.
“...............”
대답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내가 아무 말 하지 않자, 세 사람은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 때 김 주임이 말했다.
“에잇! 대답하기 싫은가 보다. 됐어. 니들끼리 친해지면 얘기하고, 이제 고기나 먹자. 오늘부턴 서로 이름 부르면서 친하게들 지내! 서로 도울 일 있으면 돕기도 하고. 뭐, 힘든 일이 있으면 나한테 얘기하기도 하고 그래. 알겠냐? 새끼들........”
그는 힘주어 말했다. 모두들 피식거리며 웃을 뿐 대답이 없었다. 나 또한 여전히 어색했다. 그 순간부터 허기가 졌던 동료들과 난 고기를 먹기 시작했고 대화는 별 진전이 없었다. 김 주임은 우리에게 각각 개인적인 질문을 던지고 동료들과 난 간단히 대답했다. 그러다 회사 관련 얘기를 이어갔다. 김 주임이 주도했다. 흐름이 끊길 때마다 그는 소주잔을 들어 건배를 청했다. 무슨 얘기들을 나눈 건지, 몇 잔을, 몇 병을 마신 건지 셀 수가 없었다.
눈을 떴다. 잠시 멍했다. 뻑뻑하게 느껴지는 눈을 깜빡거려 정신을 차리려 했다. 천장과 벽의 벽지무늬가 낯설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텅 빈 방구석에 쌓여있는 짐들과 테이블 하나. 그 위에 걸려있는 내 작업복. 내 방이었다. 어제 조원들과의 회식이 생각났다. 정말 오랜만에 술을 마셨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또 다시 현실이 따갑게 느껴졌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어지럼이 살짝 느껴져 다시 누웠다. 그러자 문득 또 생각났다.
‘아빠.............’
아빠가 죽었다는 사실이. 다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정신 차리자!’ 난 일어났다. 오전 10시가 넘고 있었다. 꿈을 꾼 기억도 없는데 정말 많이 잤다. 숙취가 느껴졌다. 두통과 어지럼이 느껴지고 속도 약간 쓰렸다. 난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어 벌컥벌컥 마셨다. 어젯밤 일을 떠올리려 해보았으나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몇몇 장면들(김 주임의 껄껄거리는 웃음소리, 표정, 조원들이 수줍게 자기소개를 하던 모습, 진지하게 서로의 이야기를 듣던 표정들.......)이 떠올랐지만 순서대로 연결이 되지 않았다.
난 뭔가 해장을 해야 했다. 테이블 위에 걸쳐 두었던 옷을 주워 입고 버스정류장 옆 라면집으로 향했다. ‘골목라면’. 10분을 걸어 도착했지만 아쉽게도 가게 문은 닫혀 있었다. 입구 옆 벽면에 ‘영업시간 오후 5시부터 오전 2시까지’라고 적혀 있었다. 콩나물을 잔뜩 넣은 매운 라면이 무척 당겼는데 그 문구를 보니 섭섭함이 더했다. 아쉬운 대로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컵라면을 먹었다. 정신도 없이 국물까지 다 마시고 났을 때 문득 떠올랐다.
‘내가 이렇게 맛있게 뭔가를 먹은 적이 있었던가?’
난 늘 아빠와 저녁식사를 함께 했던 때를 떠올렸다. 과거가 되어버렸지만 내겐 일상이었다. 다시 고개를 숙여 깨끗이 비운 라면 용기를 보았다. 피식하고 쓴 웃음이 나왔다.
상상조차 해 본적 없었던 삶인데도 난 적응하고 있는 걸까........ 차라리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때와 지금은 과연 무엇이 달라진 걸까........ 겨우 두 달도 채 안되었는데 아빠와 내가 어느 정도의 거리에 존재하고 있기에 난 벌써 배고픔을 느끼고 술을 마시고 늦잠을 자고, 라면 하날 정신없이 비우고, 아무렇지 않은 듯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걸까.
물류 센터 취직 후 두 번째 휴일이었다. 처음엔 하루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 하루 종일 걸었었다. 오래된 나의 동네부터 시내, 시내부터 다시 인적이 드문 외곽의 한 동네까지. 생각하며 걷지 않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보려 애쓰며 걸었었다. 하지만 오늘은 찬바람을 맞으며 라면을 소화시키고 숙취를 해소하려 걸었다. 과거와 현실을 구분하고 지금의 내 모습을 확인하면서.
같은 곳을 몇 번을 돈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시계를 보니 어느덧 오후 다섯 시가 다 되어 있었다. 난 또 다시 허기가 느껴졌다. 점심 때 먹지 못했던 해장라면이 못내 아쉬웠다. 피식하고 웃음이 또 나왔다. ‘골목라면’으로 다시 왔다. 문이 열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갔지만 아무도 없었다. 주방에선 뿌옇게 김을 내뿜으며 국물이 끓고 있었다. 난 지난번 앉았던 구석자리에 앉았다.
“어서 오세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을 때, 언제 오셨는지 사장님이 주방으로 들어가고 계셨다.
“아, 안녕하세요. 죄, 죄송해요. 제가 너무 일찍........”
“뭐 드릴까요?”
사장님은 내 말을 못 들으셨는지 대뜸 물으셨다.
“아, 어.......... 해장라면 되나요?”
“맵게 해 드릴까요?”
“네, 아주.......”
난 얼큰한 국물을 기대하며 주문을 했다. 사장님은 분주하게 움직이셨다. 국물이 끓는 소리와 그 냄새, 역동적으로 피어오르는 수증기, 야채를 써는 도마질 소리와 그릇이 딸깍거리는 소리들이 좋았다. 음악도 사람들의 음성도 없는 작은 공간이었지만 주방에서 그가 만들고 있는 그 소리들은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왜 여기 있는지, 내가 누구인지를 느끼게 해 주는 것 같았다. 그 어떤 음악보다 위로가 되었다.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이 나쁘지 않았다. 빨간 국물위로 수북하게 면과 콩나물이 올려 있었다. 아빠가 생각나지 않은 건 아니다. 머릿속엔 아빠가 떠나질 않지만 뱃속에선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라면은 꽤 얼큰했다. 이미 숙취는 사라진 후였지만 다시 소주 한 잔이 생각날 정도로. 하지만 소주는 마지지 않았다. 국물까지 모두 비운 후에 난 생각했다. 이렇게 된 김에 오늘부터는 아니, 적어도 오늘만은 아무 생각 없이 편히 지내보기로. 오늘 밤 잠이 드는 그 순간까지 현실과 과거에서 갈팡질팡하는 바보 같은 망상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해 보기로 했다.
“잘 먹었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내가 계산을 하며 사장님께 인사하니 사장님은 내 얼굴을 바라보지 않고 대답하셨다. 말투와 표정이 상반되어 보였다. 가게 밖을 나오면서 마침 가게로 들어오는 한 손님과 부딪쳤다.
“아! 죄송합니다.”
난 급히 사과했지만 그 손님 역시 날 바라보지 않고 말없이 가게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사장님의 목소리가 등 뒤로 들렸다.
6. 두렵지 않은 시간이 포함된 두려운 삶.
“승주야!”
깜짝 놀라 돌아보니 김 주임이었다.
“야, 인마! 무슨 생각을 하기에 그렇게 불러도 몰라?”
그가 날 원망하듯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서 생각해 보았는데, 난 방금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고 정말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엇! 죄송해요.”
“뭐가 죄송해, 인마? 죄송할 것도 많다. 넌........”
그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김 주임과 나는 회사 정문부터 작업장까지 함께 걸었다.
“어젠 잘 쉬었어? 오....... 술 제법 마시던데? 순둥인 줄만 알았더니....... 술은 내가 너 못 이기겠더라. 하하.......”
“..............”
그의 말에 난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참, 너 휴대폰 없어? 생각해 보니까 네 전화번호를 몰라서 이력서 확인해 봤더니 안 적혀 있길래.......”
그는 내게 물었다.
“네.”
“진짜? 진짜 없어?”
그가 놀라는 듯 다시 물었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이 놈? 휴대폰도 없고....... 참 나, 가지가지 희한한 놈이네. 하나 만들어, 인마! 전화 하나 없이 어떻게 사회생활 하려고? 응?”
“.............”
그의 말에 난 다시 미소로만 답했다.
“응? 대답을 해, 인마! 웃기는....... 꼭 해. 알았지? 하면 나한테 바로 알려주고....... 회사에서도 알아야지!”
그가 말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날 난 퇴근길에 버스에서 내리면 맞은편에 보이는 휴대폰 판매점에 들렀다. 입대하기 전까지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지만 연락하는 사람은 아빠와 내가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가게의 사장님뿐이었다. 그나마 휴대폰을 가지고 있을 이유가 있었지만, 제대 후엔 그럴 이유가 없었다.
“쓰시던 번호 있으세요?”
휴대폰 판매점 직원이 내게 물었다.
“네........”
“그 번호로 하시겠어요? 아니면 변경하시겠어요?”
“음......... 다른 걸로 할게요.”
난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특별히 원하는 번호 있으세요?”
직원이 또 물었다.
“아니요, 없어요. 아무 것으로나 해 주세요.”
난 대답했다.
휴대폰이 다시 생겼다. 회사에서 김 주임이 적어줬던 번호를 먼저 저장했다. 그리고 회사 총무와 대표번호를 저장했다. 허전하고 이상했다. 필요해서 새로 한 전화이지만 이 작은 기기 하나로 난 어제와는 전혀 다른 기분으로 길을 걷고 있었다. 아직은 저녁인데도 공기는 차가웠다. 이대로 집에 들어간다면 난 또 다시 작은 공간에 갇혀 버릴 것 같았다. 집 앞까지 왔다가 발길을 돌렸다. 몇 미터 전방에서 냄새가 전해져 왔다. ‘골목라면’. 난 그곳으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사장님은 바빠 보였다. 입구로 들어서는 나를 잠깐 확인하시고는 큰 소리로 인사하셨다.
“안녕하세요.”
나도 인사했다. 그에게 들렸을지는 모르지만.
“해장라면 주세요.”
분주함에 난 혹여 그가 듣지 못할까봐 굳이 주방 쪽으로 다가가 큰 소리로 주문을 하고 어제 그 자리로 와 앉았다. 다른 손님들이 몇 있었다. 벽 쪽 테이블엔 남녀, 출입문을 마주한 4인용 테이블엔 직장인으로 보이는 남자 손님 둘이 정신없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자리를 마주 보고 있는 반대편 구석 테이블엔 한 여자 손님이 라면국물을 떠 마시며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사........ 사장님! 저, 소주 한 병........”
난 소주를 주문하려다 등을 보이고 뭔가에 열중하고 있는 사장님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소주를 가져왔다. 자리로 와서 빈 테이블에 소주 한 잔을 따라놓자, 언제 아셨는지 사장님이 얼른 어묵 국물을 내 앞에 놓고 가신다.
“가....... 감사합니다!”
이번엔 그에게 내 인사가 들렸으리라 믿었다. 난 따라놓은 소주를 우선 놔두고 어묵 국물을 그릇째 한 모금 들이마셨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어차피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일 뿐이야. 겁내지 마! 다시 돌아갈 일은 없어. 앞으로의 일은 알 수 없을 뿐, 그것이 고통이 될 순 없지! 자꾸만 회상하지 마. 지니고 가려고도! 그냥 버려! 버리면 돼.........’
난 생각했다. 휴대폰 하나를 놓았을 뿐인데 기억 속 누군가가 자꾸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네가 버릴 수 있겠어? 그게 버린다고 버려질까? 과연 네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일까? 만약 그럴 수 있다 해도 끝까지 변하지 않는 건 결국 변하지 않아. 어차피 희망이란 건 없어. 그저 참고 사는 게 최선일 뿐!’
내 생각은 또 대답하고 있었다. 답은 없겠지. 버려야 하는 게 맞을 수도 있고 참고 사는 게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내가 어떤 사람이냐는 말에 난 혼란스러웠다. 난 나를 아직 모르고 있다. 그것이 답답했다. 해장라면으로 빈속을 달랠수록, 또 소주를 한 잔 두 잔 마실수록 채워지지 않는 허상 같은 것을 계속 채우고 있는 기분이었다. 두통이 왔다. 난 내 자신을 믿지 못하고 원망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의 휴대폰 개통을 김 주임은 무척 반겼다. 그것을 가지고 이것저것 살피더니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어 무언가를 확인했다.
“우리 조원들끼리는 알아야지. 현상이, 윤식이, 태준이....... 알지? 여기 저장해 뒀으니까 서로 연락도 하고, 밖에서도 좀 보고 그래. 걔들도 다 똑같아. 짠하도록 기특하고 이쁜 놈들이야........ 으이구! 이 징한 새끼들!”
김 주임은 내 어깨를 툭툭 치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저장된 연락처가 다섯 개로 늘었지만 그게 얼마나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일할 땐 서로 얼굴 한 번 쳐다보기도 힘들었다. 모두들 정신없이 바빴다. 쉬는 날도 각자 달랐고 퇴근 후엔 학원을 가거나 공부를 하러 가거나 했다. 김 주임이 ‘똑같은 놈들’, ‘징한 놈들’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 또한 그들과 그랬으니까. 가끔씩 김 주임은 지난번처럼 우리들을 불러 모았다. 처음처럼 모두가 아닌, 이런 저런 사정으로 한두 명씩 빠지기도 했고 늘 같은 삼겹살집이기도 했지만 나에겐 그렇게라도 누군가와 함께하는 연습을 할 기회이기도 했다. 자부할 만큼은 아니어도 난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일을 시작하고 몇 달이 지나고 나서야 방 안의 살림들을 정리했다. 아빠의 기억을 하지 않기 위해서이거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게 편한지, 죽지 않았다 믿고 사는 게 편한지 매일 나를 시험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내 마음을 본다면 기가 막혀 웃을 일이라 생각하면서도 문득 그의 흔적을 보면 숨이 막혔다. 마음이 사소한 감각들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사실이었지만, 난 그 사실을 구차하게 겉으로는 애써 외면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는 내 고집스런 행동들에 대한 핑계로 삼고 있었다. 박 지부장님이 생각났다. 굳이 아저씨에게 연락을 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한심했다.
난 한동안 열지 않은 배낭을 꺼냈다. 조금 두렵기도 했지만 가방을 뒤적였다. 옆 주머니에 박 지부장 아저씨의 연락처를 적어둔 메모가 있었다. 난 그것을 한참 바라보다가 우선 휴대폰에 번호를 저장해 두었다. 언제가 됐든 연락을 하게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눈을 떴다. 한기가 느껴졌기 때문이지만 시계를 보니 벌써 여섯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난 바로 일어나지 않고 이불을 꼭 끌어다 덮고 눈동자만 움직였다. 작고 네모난 천장과 어제 정리해 놓은 책상과 의자, 옷과 잡동사니들을 정리해 쌓아둔 박스들이 어슴푸레 보였다. 내가 아니면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작은 변화가 다시 날 흔들었다. 이만큼 오면 다시 원점으로, 저만큼 가면 또 다시 원점으로 누군가 날 자꾸 데려다 놓는 느낌이었다. 어두운 방 안을 한번 훑고 나서 다시 천장위에 그려지는 아빠의 얼굴이 날 괴롭혔다. 아빠가 아니라, 내가 미웠고 어제의 노력은 소용없었다. 허공에 소리쳤다.
‘아빠, 미안해! 정말 미안한데........ 나........ 좀 살게 해줘요!’
일찍 출근길에 나섰다. 분위기전환을 위한 노력들이 수포로 돌아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강승주!”
익숙한 목소리에 놀랄 건 없었지만 어느새 옆에 와 팔로 내 목을 안듯이 어깨동무를 했다. 난 순간 몸이 휘청거렸다.
“뭐야? 새끼........ 며칠 굶기라도 했어? 힘이 하나도 없어가지고........”
김 주임은 말했다.
“안녕하세요........”
난 그에게 인사했다.
“안녕 못하다! 넌 안녕하냐? 너도 안녕 못하지? 에휴.........”
그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한숨을 쉬었다.
“왜요? 안녕........ 왜 못하신대요?”
내가 물었다.
“음......... 얘기 못하겠는데? 네가 먼저 말해주면 나도 말해줄게.”
김 주임의 표정은 매우 밝았지만 왠지 씁쓸함이 묻어나 보였다. 난 조금 궁금하긴 했지만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지금 말하기 싫으면 생각해 봐. 일하면서 생각해 보고, 일 끝나고 삼겹살 먹으면서 얘기해 주기로!”
그는 밝게 웃으며 내 목을 감쌌던 팔로 내 어깨를 꼭 잡더니 앞장서 갔다. 연말이 다가와서인지 점점 일거리가 많아졌다. 점심시간도 삼십분을 채 쓰질 못했다. 오후에 잠깐 쉬는 시간도 역시 없었다. 오히려 맘이 더 편했다. 퇴근시간이 다가왔을 땐 조금 불안했지만.......
좀처럼 일을 제 시간에 끝내지 못해 모두 시계와 동료들을 번갈아 보며 서두르는 기색이었다. 그 때 김 주임이 다가왔다.
“자! 얼른 마무리들 하고 퇴근 준비 합시다!”
그는 나를 스쳐 지나가며 내게 찡긋 눈짓을 보냈다. 눈치를 보던 직원들의 손이 더욱 빨라졌다. 나도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김 주임이 작업복을 벗고 내게 다시 왔다.
“가자!”
그는 내게 고갯짓을 하며 말했다.
“예....... 잠깐 옷 좀 입고 올게요.”
“하아........! 춥다!”
작업장을 나오자마자 김 주임이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크게 숨을 내뱉었더니 짙은 쪽빛 하늘에 허연 입김이 뿌려졌다. 김 주임은 두툼한 패딩점퍼의 모자를 덮어쓰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가 느끼는 한기는 나에게도 전해졌다. 난 점퍼 주머니에 손을 깊이 찔러 넣었다.
“이모! 저희 삼겹살 이인분이랑 소주요!”
별 대화 없이 회사 앞 큰 길을 가로질러 우리는 삼겹살집으로 들어섰다. 그는 주문을 하며 구석자리에 앉았다.
“다른 조원들은요?”
“몹쓸 놈들이야! 간만에 한 잔 하자고 했더니 학원 간다, 알바 간다, 바쁜 척들은.......쯧쯧.”
김 주임은 물을 마시며 볼멘소리를 했다. 나도 그를 따라 물을 마셨다. 곧 이모님이 주문한 삼겹살과 소주를 세팅해 주셨다.
“감사합니다!”
김 주임은 얼른 고기를 불판에 올려놓고는 소주병을 따서 두 잔을 채웠다.
“많이 먹어, 인마. 얼굴에 핏기도 하나 없고....... 만날 그렇게 휘청대지 말고! 머지않아 쓰러질 거 같다, 너.......”
그는 말했다. 난 내 잔을 들고 그에게 내밀었다.
“자식! 먼저 말하겠다 이거지? 하하. 은근 귀여운 녀석이야!”
김 주임은 껄껄 웃으며 잔을 부딪쳤다. 난 그제야 오늘 아침 출근길 상황이 생각났다. 그와 나는 첫 잔을 동시에 넘겼다.
“무리는 하지 말고! 오늘은 술보다 고기를 더 많이 먹어야 돼.”
그는 불판위의 고기를 뒤집으며 말했다.
“안녕하지 못한데....... 왜 그렇게 웃으세요?”
내가 그에게 먼저 물었다.
“에잇, 비겁한 놈!”
그는 내게 나무라는 듯 말하며 비어있는 잔에 소주를 다시 부었다.
“사는 게, 어차피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거 정도는 누구나 알잖아. 그래도 원하는 대로 살려고 계속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그런데 그게........ 난 참 모르겠더라. 어떻게 보면 누구는 이렇게 살아도 되고 누군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거고........ 그런 게 정해져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고기 굽는 일을 멈추지 않고 그는 얘기했지만 표정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것이 어색했다.
“주세요........”
난 그가 쥐고 있던 집게와 가위를 건네 들어 고기를 잘랐다.
“난, 누구나 할 수 있는 정도의 노력이냐, 할 수 없는 정도의 노력이냐를 따지는 건 아닌데....... 너무 어긋난다 싶다. 너무.........”
그는 아직 본론을 꺼내진 않았지만 난 캐묻지 않고 자른 고기를 그의 접시위에 올려놓았다.
“허, 제법이네. 자식!”
그는 내게 말하고 얼른 쌈을 하나 싸서 내 입 앞에 가져다 댔다.
“돼....... 됐어요.......”
“먹어, 새꺄! 쪽 팔리게 만들지 말고.”
정말 부끄러워하는 듯한 그의 말투에 난 못 이기는 척 쌈을 받아 입에 넣었다.
“많이 먹어라. 많이 먹고 힘내야지, 우리!”
그는 물수건에 손을 닦으며 말했다. 우리는 잠시 먹는 데에만 집중했다. 소주도 몇 잔 더 마셨다.
“이모! 저희 김치찌개랑 밥도 주시고....... 소주도요!”
김 주임은 빈 소주병을 흔들며 이모님을 불러 추가 주문을 했다. 내가 그를 쳐다보자 그는 말했다.
“먹는 것도 열심히! 하하.........”
그가 웃었고, 난 그의 웃음에 미소로만 답했다.
“새끼........ 이제 웃네........ 여자 친구가 헤어지자고....... 형이....... 아! 앞으로는 그냥 형이라고 불러....... 형이 그 친구를 너무 좋아해서 정말 열심히 일해서 결혼도 하고 싶었는데....... 곧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는데....... 그 친구는 헤어지자고 하네....... 내가....... 그 이유를 모르는 게 아니라서....... 그 친구를 이해하니까........ 그래서 그렇더라....... 붙잡을 수가 없는데 붙잡고 싶어서.......... 내가 안녕하지 못한 이유, 이제 말했다. 어때? 이제 이해돼? 이제 네 차례야!”
그는 이모님이 가져다주시는 소주를 받아 다시 내 잔을 채우려 했다. 난 얼른 잔을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그리고 그의 잔도 채워 주었다. 그러자 그는 잔을 놓고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어......... 저는........ 글쎄요......... 모르겠어요. 안녕한 건지 아닌지........ 제 자신도 잘........ 그래서 그런 것 같아요. 매일 왜 그런지 내가 어떤 상태인 건지만 생각해요. 그걸 알아야 제대로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 것도 모르겠어요, 정말........”
난 느리게 말했다. 소주잔에 시선을 고정하고 말하다가 얼굴을 들어 그를 보았다. 그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순간 당황했다. 그의 시선을 피하며 무슨 변명 같은 거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어........ 그냥........ 전....... 주임님처럼 여자 친구....... 친구도 없고 계획도 없고....... 사실 하루하루를 어떻게 지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난 더듬거렸다.
“미친 놈!”
그는 여전히 날 빤히 보며 말했다. 그를 슬쩍 보았다. 그의 두 눈이 동그래져 있었다.
“혼자구나?”
“...............”
그의 물음에 난 대답하지 못했다.
“가족 말야. 너, 가족 없지?”
“................”
그의 반복되는 물음에 난 역시 대답하지 못하고 다시 시선을 떨구었다.
“새끼.......... 걱정 마. 나도 없어, 가족! 너만 없는 거 아니니까 그렇게 암말 못하고 고개 숙이고......... 그런 거, 그러지마. 인마!”
그는 소주를 입 안에 털어 넣으며 말했고 난 떨구었던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동그래졌던 눈은 원래 상태로 돌아와 있었고, 때마침 이모님께서 김치찌개와 밥을 가져다 주셨다.
“감사합니다. 이모님! 아, 맛있겠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먹자!”
그리고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밥에 김치찌개를 한 숟갈 푹 퍼 올리고 쓱쓱 비벼서 한 입 크게 입에 넣었다. 난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또 그를 따라서 찌개에 밥을 비벼 한 입 먹었다.
“새끼!”
그는 우적우적 밥을 씹으며 나를 보고 웃었다. 이번엔 그를 따라 행동하지 않았지만 멋쩍게도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래. 그렇게 먹으면 되지, 뭐. 뭘 어떻게 살아, 어떻게 살긴. 그렇게 그냥 지내면 되는 거지. 배고프면, 먹고 싶으면 먹으려고 하고 보고 싶으면 보게끔 하고, 원하지 않으면 피하고....... 어려우면, 어려워 하다보면........ 포기하거나 풀어내거나 둘 중 하나야. 정답은 없지만 끝은 있겠지. 바보같이 있지도 않은 답만 찾아 헤매지 말고, 그렇게 지내, 인마! 이 김치찌개가, 삼겹살이, 이 소주가 다 우릴 위해 존재해 주는데 모른 척하고 살 순 없잖아? 하하.”
김 주임은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허기진 사람처럼 찌개와 밥을 열심히 먹었다. 그리고 나도 그랬다. 맛있었다. 우리는 또 소주 한 병을 함께 비웠다.
다시 눈을 떴다. 잠이 깬 이유는 아니었지만 역시 방 안 공기는 찼다. 심호흡을 했다. 코로 알코올 냄새가 느껴졌다. 어제저녁 김 주임과 보냈던 시간이 순간순간 떠올랐다. 피식 하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여전히 사각 천장과 내 책상, 지난 밤 벗어 던져 놓은 점퍼. 똑같은 방의 풍경이었지만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아빠 생각은 늘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은 그것이 날 괴롭히진 않았던 것 같다.
아빠가 없는 현실은 현실감이 없다.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에 떨어져 아빠를 생각하면 깊이를 알 수 없는 캄캄한 물속에 빠져드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건 분명 견디기 힘든 느낌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그것이 견딜 만 했던 것 같다. 난 같은 곳에 있었지만 내게 주어지는 새로운 상황들이 깊은 물속의 내가 혼자만은 아님을 알게 해 주는 것 같았다. 이렇게 현실은 내 안으로 점점 스며드는 걸까, 이렇게 아빠는 현실 속에 점점 묻혀 지는 걸까...........
개운하게 해소되지 않은 숙취 덕분에 잡생각을 떨치고 출근 할 수 있었다. 평소보다 십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옷을 갈아입고 작업장에 오자마자 김 주임을 찾았다. 그는 보이지 않았고 모두들 작업 준비에 바빠 보였다. 약 5미터 전방에서 작업복을 추스르며 윤식이가 다가오고 있었다. 난 그에게 김 주임의 행방을 물어보려고 했다. 우물쭈물 하고 있던 찰나에 그는 어느새 내 앞을 그냥 지나가 버렸다. 멍하니 그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직원들에게 물어보는 것을 바로 포기했다. 그 때, 내게 휴대폰이 있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왜 진작 생각하지 못했을까. 근무시간까지는 약 5분 정도 남아있었다. 난 다시 락커룸으로 가서 점퍼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을 꺼냈다.
[출근 잘 했지? 형은 술병 났어. 오늘 월차 쓴다. 월요일에 보자.]
그에게서 이미 문자메시지가 와 있었다. ‘휴.......’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주말이었던 그 날, 산더미 같았던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골목라면’에 들러 저녁을 해결했다. 그리고 김 주임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마쳤다.
[몸은 괜찮으세요? 쉬시고 월요일에 봬요, 형.]
월요일 출근길은 늘 그랬다. 주말동안 혼자서 보내는 시간은 힘들었어도, 그저 시간을 보내는 일이 다시 한 번 고역임을 깨달으며 출근 버스에 오른다. 아직 푸르스름한 새벽녘에 회사에 도착했다. 야간 작업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아직 출근 전이었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락커룸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이삼십 분 정도가 흐른 다음에야 주간 작업자들이 출근하기 시작했다. 같은 조원인 윤식씨, 현상이 형, 태준씨가 차례로 락커룸으로 들어오면서 나와 간단한 목인사만 나누었다. 근무 시간을 5분 정도 남겨 놓았을 때 김 주임이 들어왔다.
“형!”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 일찍 왔네? 자식!”
“예.........”
그의 인사가 반가워 난 나름 밝게 대답했고 그런 내 표정을 그가 살피는 듯 했다.
“늦겠다. 먼저 나가. 곧 나갈게!”
그는 내 뒤쪽 벽에 걸린 시계를 보더니 서둘러 말하고 돌아서며 락커문을 열었다. 난 그의 시선이 머물렀던 그 벽시계를 반사적으로 쳐다보고 나서 먼저 작업장으로 향했다.
12월이 되었다. 점점 조금씩 일이 많아지는 것이 체감되었다. 쏟아지는 작업이 마무리 될 때까지는 점심시간이나 휴식시간, 퇴근시간조차 칼같이 챙기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난 퇴근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시간이 빨리 흐르기를 바라며 일에 집중했다. 기다리던 퇴근시간이 다가오면서 일찌감치 마무리를 하고 돌아보았지만 주위에서 김 주임은 보이지 않았다. 난 조원들 중 가장 먼저 락커룸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앉아있던 곳에 다시 앉아 잠시 뻐근한 몸을 벽에 기대고 있었다. 약 십 분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부터 직원들은 퇴근을 위해 이곳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알고 있는 현상이 형, 태준씨, 윤식씨가 역시 차례로 나를 스쳐 지나갔지만 이번엔 목인사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지쳐 보였다. 난 먼저 인사하려 했다가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당연히, 김 주임에 대해서 물어보는 것도 하지 못했다. 난 옷을 갈아입었다. 결국 맨 나중에 락커룸을 나섰지만 그 때까지도 김 주임은 나타나지 않았다.
‘일이 많아져서........ 주임이니까 퇴근이 늦겠지.......?’
난 회사를 나서며 생각했다.
퇴근 길,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버스에서 내려 몇 걸음 걸어가자 익숙한 냄새가 코로 들어왔다. 내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사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 목인사로 답하고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창문 쪽 긴 테이블에서 사십대 중반정도로 보이는 한 아저씨께서 신문을 보며 라면을 먹고 계셨다. 난 늘 앉던 구석자리로 가서 앉았다.
“사장님! 해장라면이요.......”
난 주문을 했다. 사장님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만 끄덕하시고 눈을 맞추거나 대답은 하시지 않았다. 라면이 나오는 동안 멀뚱하게 있다가 주머니에 느껴지는 휴대폰을 꺼냈다. 김 주임에게 메시지를 보내볼까 생각했다.
‘아직 일하세요?’, ‘퇴근 했어요?’, ‘오늘 바빴죠?’
몇 가지 질문들을 생각하다가 그냥 다시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다시 멀뚱하게 앉아 있었다.
“맛있게 드세요.”
언제 나왔는지 사장님이 내 앞에 라면을 내려놓으시며 말했다.
“어서 오세요.”
그 새 손님이 또 가게로 들어왔다. 혼자 온 손님이었다.
“안녕하세요. 저, 늘 먹는 걸로....... 맵게 해 주시고요, 소주도 한 병 주세요.”
그 손님은 내 자리 반대편 끝에 등을 보이고 앉았다. 사장님은 역시 고개만 끄덕이셨다. 난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사장님에게 다가갔다.
“저........ 저도 소주 한 병만.......”
내가 추가주문을 하자 그는 또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소주와 잔을 꺼내어 내게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 소주 한 잔을 따라 놓고 라면 국물을 먼저 떠먹었다. 뜨거웠다. 면을 한 입 먹고는 앞에 놓인 소주를 털어 넣었다. 잠시 고개를 들고 가게 안을 살폈다. 모두 혼자 앉아 있었다. 식사는 다 하신 듯 하지만 여전히 인상을 잔뜩 쓰고 신문을 보고 있는 아저씨와 매운 라면과 소주를 주문해 놓고는 벽만 한없이 바라보고 앉아있는 여자 손님, 무뚝뚝하게 면을 삶고 칼질만 바삐 하고 계신 사장님, 그리고 해장라면에 소주 한 잔을 마시고 있는 나. 모두가 조용했다. 음악도 없었고 그저 들리는 소리라고는 주방에서 들려오는 칼질소리와 식기 부딪치는 딸그락 소리가 전부였다. 문 밖 도로에 차들이 지나는 소리와 간혹 들리는 경적소리는 배경일 뿐이었다. 소주는 썼고 라면은 뜨거웠다가 따뜻해졌다가 이내 차가워졌다.
“어휴........ 죽겠다.”
다음 날 출근 길, 멍하니 회사 정문을 향해 걷고 있는데 누군가 옆에 와서 한숨을 쉬었다. 난 놀라 돌아보았다. 김 주임이었다.
“어?”
난 인사하는 것을 까먹었다.
“놀라긴........ 하암! 피곤해 죽을 것 같다! 나 어제 몇 시에 끝났게?”
그가 물었다.
“.............”
난 대답하지 못하고 그를 보고만 있었다.
“끝나니까 열 한 시더라. 일용직들은 추가근무가 안 되니까 주임들만 죽어나. 뭐, 불만까지는 아닌데........ 이렇게라도 해야 정규직 유지하지 않겠냐? 너, 알아? 위에서 정규직을 비정규로 전환하느니, 감축한다느니........ 말이 좀 들려서.”
그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난 겨우 그의 말에 반응했다. 그에겐 안타까운 소식이었지만 난 우선 뭔가 불안했던 마음을 가라앉혔다.
“연말이라 너도 평소보다 두 배는 바쁠 거야. 그럴수록 밥 많이 먹고 기운내서 일해. 너무 열심히 할 필요는 없고. 야근이나 추가근무는 주임이나 대리들 몫이니까 하던 일만 실수 없이 하면 돼!”
그는 내 등을 툭 치며 말했다. 여전히 목소리는 갈라졌고 얼굴도 부스스해 보였다.
“네....... 형도 건강 챙기세요.”
그는 내 말에 힘들게 씩 웃었다. 나도 씩 웃었다.
그 때부터 정말 두 배 이상 일의 양이 늘었다. 추가근무까지는 아니더라도 출퇴근 시간을 맞추기는 어려워졌다. 김 주임을 마주치는 일도 거의 없었다. 그래도 그 이유를 알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난 퇴근길에 ‘골목라면’에서 거의 매일 먹는 라면의 맛을 점점 알게 되었고 잠도 잘 잤다.
그렇게 난 과거로부터 조금씩 멀어지는 현재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 상태가 약 한 달이 지속되었다. 조금씩 일이 다시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고 설 연휴 대목을 지내고 나서야 평소수준으로 돌아왔다. 그 때쯤 난 문득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그만 두었던 공부에 대한 생각이었다.
눈이 많이 오던 어느 날, 회사에서 가장 바빴던 날을 보내고 퇴근했다. 씻지도 못하고 방바닥에 쓰러져 누웠다. 문득 고개를 돌려 방구석을 보니 미처 정리해 두지 못했던 박스 하나가 눈에 띄었다. 난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 철저히 관심 밖이었다. 어쩌다 눈에 보이면 ‘버려야지’ 하면서 버리는 일마저 미뤄두고 있었다. 난 벌떡 일어나 박스를 내 앞으로 끌어당겼다. 노끈으로 묶여있는 박스위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다. 가위를 가져다 노끈을 자르고 박스를 열었다. 곰팡이 냄새가 뒤섞인 종이냄새가 풍겨 나왔다. 고등학교 졸업 후 틈틈이 공부하던 자동차학 관련 책들이었다. 내가 공부했던 필기노트들과 정비기능사 문제집들을 하나씩 꺼내어 보았다. 딱딱하고 차가웠다. 난 천천히 책들을 보다가 비어 있던 책상 위 책장을 채우기로 하고 정리를 시작했다. 모두 익숙했던 책들 가운데 박스 맨 밑에 있던 낯선 책이 눈에 띄었다. ‘자동차 산업과 미래’라고 쓰여 있었다. 어디 하나 손이 탄 흔적이 없는 새 책이었다. 난 그것을 꺼내어 들고 빳빳한 표지를 넘겨보았다. 다른 책들과는 달리 새 책 냄새가 났다. 첫 장을 넘기는 순간, 무언가가 툭하고 떨어졌다. 사진이었다. 아빠와 초등학교 3학년 때 집 앞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 하단에는 ‘99.5.9’이라고 날짜가 찍혀 있었다.
당시, 어린이날임에도 바빠서 함께 놀아주지 못했던 아빠가 일요일에 나를 데리고 외식을 하고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도 하고 돌아오던 길에, 우연히 만난 아빠 친구가 찍어주었던 사진으로 기억한다. 사진 속 아빠는 아주 젊었다. 겨우 스물일곱이었다. 어린 나와 젊은 아빠는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한참을 보며 난 그 때처럼 미소를 지어보았다. 그리고 사진의 뒷면을 보니 무언가 적혀 있었다.
[승주야, 아빠가 더 신경 써 주지 못해서 미안해! 늘 바쁘다는 핑계로 함께 해 주지 못하지만 아빠 맘속엔 오직 너뿐이라는 걸 잊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예전처럼 같이 저녁밥 먹을 수 있는 날이 곧 올 테니, 네가 하는 공부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해! 아빠가 언제나 응원할게. 힘들어도 조금만 참자. 우린 젊으니까! 군대 건강히 다녀오고 혹시 아빠가 연락이 잘 안될 때는 이쪽으로 연락하렴. 아빠랑 제일 친한 선배야.
박 충만 지부장 02-942-0000
사랑해, 아들!]
아빠의 편지였다. 언제였는지, 지난 시간을 말해주듯 글씨는 눅눅함에 옆으로 퍼져 있었다. 난 사진을 보며 지어보았던 미소를 유지하려 애썼지만 눈앞은 곧 흐려졌고 눈물은 사진을 든 내 손등위로 떨어졌다.
오랜만에 보는 책도 공부하는 자신의 모습도 처음엔 뭔가 어색했지만 곧 적응이 되었다. 퇴근 후 몸이 피곤했지만 조금이라도 책을 들여다보고 자는 것이 오히려 개운하게 느껴졌다. 재미있기도 했다. 내년에 갈 수 있는 대학들을 알아보았다. 무언가 목표가 생겼다는 것이 위안이 되었다.
2월 구정연휴가 지나고 나서 회사 분위기는 평정을 찾아갔다. 여기저기 쌓인 상품들과 박스들 말고는 늘 같이 일하던 직원들과 관리자들을 볼 새도 없었던 작업장에서 다시 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현상이 형, 태준씨, 현식씨도 여전했다. 그 외에도 익숙한 얼굴들은 그대로인 듯 보였으나 바쁜 와중에도 잠깐씩 얼굴을 내비쳤던 김 주임 형은 보이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출퇴근 시간에 마주치는 일은 좀처럼 없었지만 조원들의 일을 챙기러 잠깐씩 지나다니면서 인사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난 이 태풍 같은 시기가 지나고 나면 김 주임 형과 삼겹살에 소주 한 잔 먹고 싶었다. 그동안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내가 자동차 공부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하려고 했다.
난 일을 마치고 락커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김 주임 형을 기다렸다. 직원들이 하나둘 들락거렸다. 김 주임 형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난 그를 기다리다가 거의 마지막으로 나가는 현상이 형을 불러 세웠다.
“저, 저기......... 형!”
“어?”
락커룸을 막 나가려던 현상이 형은 놀라며 돌아보았다.
“김 주임 형........ 혹시 보셨어요?”
“김 주임 형?”
“네........ 아, 김찬민 주임님.......”
내 질문을 되묻는 그에게 난 그의 이름을 말해 주었다.
“아......... 아니. 김 주임님 그만 두신 거 아냐? 그렇게 들은 것 같은데?”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가 말했다.
“네? 그만 두다니요?”
그의 대답이 생뚱맞게 들렸다.
“나도 잘은 모르겠는데....... 그만 둔 건지, 해고된 건지........ 아무튼 그런 것 같아. 궁금하면 전화 한번 해봐. 난 좀 그래서....... 내일 보자.”
그는 다소 난처해하는 표정이었다. 그가 락커룸을 나가고 혼자 남아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야간 근무자들이 하나둘 출근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들어오자 난 그제야 회사를 나섰다. 정문을 나오면서 김 주임 형에게 전화했다. 받지 않았다.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무언가 조급해지는 마음에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형, 어디세요? 오늘 회사 안 나오신 거예요? 문자 보시면 연락주세요.]
버스를 타고 집까지 가는 동안 내 휴대폰은 묵묵부답이었다. 집 앞 정류장에 내려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정류장 벤치에 앉아 휴대폰을 들고 내내 그의 연락을 기다렸다. 연락은 오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전화를 해 보았다. 이번엔 전원이 꺼져 있다는 알림 음성이 들려왔다. 난 불안해졌다. 또다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형, 전화 주세요. 꼭요!]
대답 없는 휴대폰을 손에 쥐고 벤치에서 일어났다. 몇 걸음 후 풍겨오는 익숙한 냄새에 심호흡을 했다. 난 ‘골목라면’으로 갔다.
“어서 오세요.”
“저, 소주 먼저 주세요.”
사장님의 인사에 난 곧바로 술을 주문하며 늘 앉던 구석자리로 향했다. 자리에 앉아 손에 쥐어진 휴대폰만 바라보았다. 전화가 올 것 같다가도 오지 않을 것도 같았다. 만약 김 주임에게 연락이 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이렇게 불안해진 건지, 지금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맛있게 드세요.”
혼란스러움을 비집고 사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소주 한 병과 해장라면 하나를 내 앞에 놓고 가셨다.
“저, 저기! 사장님!”
난 서둘러 뒤돌아서는 사장님을 불러 세웠다.
“드세요. 서비습니다.”
그는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말하며 주방으로 향하셨다.
“저........ 저기......... 감사합니다.........”
난 그의 뒷모습에 대고 급히 말하느라 버벅댔다. 내 인사를 그가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소주를 마셨다. 유독 쓰게 느껴지면서 얼굴이 찡그려졌다. 숨을 참고 라면 국물을 마셨다. 뜨거운 기운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빈속을 달래려 젓가락에 면발을 돌돌 말아 크게 한 입 넣었다. 이상했다. 소주도 국물도 면발도 입안에서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쓰고 뜨거웠으며 입 안 가득 씹는 일이 버겁기만 했다. 사장님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난 결국 뜨거운 해장라면에 쓰디쓴 소주 한 병을 다 비우지 못하고 난 집으로 돌아왔다. 김 주임 형에게는 끝내 전화가 오지 않았다.
오히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얼마 전이 편했다.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굳이 가야할 방향을 제시해 주지 않아도 저절로 흘러가는 시간이 그저 고마웠다. 지각하지 않아도 감각들이 알아서 살아 움직이는 그런 생활이 좋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 분주함이 지금 내 앞에 펼쳐져 있는 ‘자동차산업과 미래’라는 책 앞에 날 데려다 놓았으니까. 아빠와의 추억에 웃음 짓게도 해 주었으니까.
하루 종일 조용한 나의 휴대폰을 책 옆에 놓고 난 공부를 해 보려 했으나 책 속의 글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며칠 동안 김 주임 형과는 연락조차 안 되었고 현상이 형에게 들은 얘기가 여전히 내가 아는 전부였다. 회사 일이 다시 느리게 돌아기기 시작했지만 난 그걸 견디기가 힘들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김 주임을 모르던 입사 당시의 그 때로. 어차피 시간을 과거로 돌릴 수는 없듯, 한번 몸에 배었던 습관이나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감정들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나 난 시도해 보려 했다. 아빠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깟 일은 별 거 아니라고 여기고 난 엉뚱한 노력을 하기로 한 것이다.
잡념을 떨치기 위한 육체 활동은 어느 때보다 빠르고 정확했다. 여느 때보다도 상품처리량이 증가하고 있었다.
“승주씨! 잠깐........ 나 좀 따라와 봐요.”
주어진 포장작업을 마무리 해가고 있을 때쯤 누군가 옆에 와서 조용히 말했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현상이 형이었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머뭇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당황스러움에 나도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그의 작업복 왼쪽 가슴에 새겨진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주임 안현상’
난 속으로 놀랐지만 모른 척 하고 그를 따라갔다. 그는 날 상차 작업장으로 데려갔다.
“과........ 과장님 지시야. 승주씨 작업이 일찍 끝나서....... 내일부턴 네 시에 여기서 상차 작업까지 마무리하고 퇴근 하라셔. 작업 끝나면 나한테 와서 보고하고 퇴근하면 돼.”
그는 벽 쪽에 쌓여 있던 박스들을 만지작대며 설명했다. 내 얼굴을 보지 않고.
“네...........”
난 대답했다.
“그래, 그럼......... 수고해.”
그는 내 대답을 듣고 나서 서둘러 가버렸다. 난 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김 주임에 대해서 더 이상 궁금해 하지 않으려 했고 사실 궁금하지도 않았다. 현상이형의 이름 앞에 ‘주임’이라는 글자보다는 그가 나를 대하는 태도 때문에 난 다시 잡념에 사로잡혔다.
어차피 여긴 회사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사회는 그랬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겪었던 일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학교와 군대, 그리고 직접 체험은 아니었지만 늘 사투를 벌여야만 했던 아빠의 생업현장. 알고 싶지도 않은 사회의 일들을 난 불행히도 살짝 맛보았다. 세상에 혼자 남은 내가 어쩔 수 없이 겪게 될 일들이기도 했다. 피할 생각은 없었으니 이 정도라면 얼마든지 괜찮았다. 그저 현상이 형의 떨리던 눈빛과 머뭇거리던 말투, 어색하게 움직이던 손짓이 마음에 걸릴 뿐이었다.
“승주야! 야!”
퇴근 길, 회사 후문을 빠져 나오는데 누군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내가 서 있던 길 왼쪽 끝에서 현상이 형이 날 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야....... 왜 후문으로....... 휴......... 정문에서 기다렸는데......... 하........”
그는 숨을 헐떡이며 달리던 속도를 늦추고 말했다. 내가 굳이 후문으로 퇴근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정문 보다는 한적한 후문 쪽이 편했기 때문이었으나 굳이 그에게 설명하진 않았다.
“하아........ 저....... 저기, 시간 되면 저녁이나 먹고 갈래?”
그가 물었다.
“............ 죄송해요. 할 일이 있어서........”
잠시 생각하다가 난 형의 제안을 거절했다.
“아......... 그래?”
그는 뭔가 아쉬운 듯 보였지만 난 꾸벅 목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어....... 그럼, 버스정류장까지만 같이 걷자.”
그는 뒤돌아선 내게 다가와 다시 내 옆에 나란히 섰다. 이번엔 거절하지 않았다.
“저....... 저기........ 어떻게 된 거냐면.......”
그는 얘기를 꺼내려고 했지만 왠지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어렵게 말을 꺼내는 그를 더 이상 거부할 수는 없었다.
“정규직은 아니야. 아직도 그대로야....... 말만 주임이지, 월급도 거의 안 올랐고........ 정말이야.”
그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변명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하고 있었다. 난 그냥 듣고만 있었다.
“위에서 하는 일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나 있겠어? 김 주임 형은........ 거의 해고당한 거야. 해고지 뭐! 김 주임 형이 사직서를 내고 나가긴 했는데 이미 한 달 전에 비정규로 전환되고 연봉도 깎인 상태였대. 요즘 다들 그러잖아. 권고사직 뭐, 그런 건데 참, 말은........ 형도 사정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나봐. 사적인 이유까지는 내가 모르겠어. 김 주임님이랑 5조까지 총 네 명, 주임만 네 명이래. 당장 관리가 어려워지니까 나 같은 만만한 애들 월급 몇 만원 올려주고 주임 달아준 거, 그거야......... 씨발. 더러워서...........”
그의 말투는 점점 거칠어졌다.
“너도 어떻게 된 상황인지 궁금해 하는 거 같아서........ 네가 김 주임님이랑 친했던 거 같은데 왠지 미안하기도 하고.........”
그의 말투가 다시 상냥해졌다.
“......... 그래요. 저한테 미안해하실 필요는 없는데....... 저는 괜찮아요. 열심히 일만 할 수 있으면 되죠, 뭐.”
내가 말했다.
“그래? 그렇다면 뭐........ 일하다가 힘든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알았냐?”
“네.”
“어? 버스 온다! 먼저 갈게. 월요일에 보자!”
멀리서 다가오는 버스를 발견하자 그는 내게 급히 인사하고 버스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난 생각했던 것 보다는 그가 착한 것 같기도 했지만 그의 이야기를 안 듣는 편이 더 나았을 뻔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버스를 타는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는 그렇게 발걸음 가볍게 버스에 올라탔고 그를 실은 버스는 곧 나를 지나친 후 멀어져갔다.
다소 다른 분위기 속에서 보낸 일주일을 ‘골목라면’에서 마무리했다. 늘 똑같은 사장님의 목소리, 똑같은 국물 냄새, 똑같은 이곳 손님들, 그리고 늘 똑같은 나와 나의 저녁식사. 모든 게 그저 똑같기를 바라며 난 해장라면과 소주 한 병으로 언 몸을 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