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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판타지/SF
대군주
작가 : 진설우
작품등록일 : 20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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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운 악룡 크로크슈가 지배하는 하늘산은 발 붙인 자는 있어도 생환한 자는 없는 금지된 곳으로 크로크슈에 맞서기 위해 한 기사가 걸음을 들였다. 그리고 그가 하늘산을 내려왔을 때 그의 영혼은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수하들을 위해 목숨마저 내걸었던 중원 천년신교의 2공자, 소군악의 영혼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거짓 정의와 거짓 평화는 진실인 척 가증스럽다. 위선 가득한 자들의 비열한 구원, 부패한 자들의 그릇된 자비로 인해 세상은 이미 지옥과 다름이 없으니, 내 친히 명왕이 되리라. 세상을 송두리째 갈아 치울 검은 기사의 행보가 펼쳐진다.

 
25화
작성일 : 16-06-08 16:42     조회 : 657     추천 : 0     분량 : 5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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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이리나 님을 부탁하네.”

 비손이 뛰어내릴 것임을 예감한 이리나가 급히 말했다.

 “어서 이 자물쇠를 풀어!”

 비손은 훌쩍 말에서 뛰어내렸다.

 허공에 붕 뜬 몸이 지면에 닿자마자 앞으로 구르더니, 벌떡 일어나 검을 뽑아 들고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는 루크라이더 열을 가로막았다.

 “와라!”

 루크라이더의 뒤로 흑기사 하나가 말을 몰아오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거리가 멀었다.

 자신이 한둘이라도 수를 잡아 주면 그가 나머지 루크라이더의 추격을 조금이나마 늦춰 주길 바랄 따름이었다.

 “하아압!”

 비손이 훌쩍 뛰어올랐다.

 그의 신형이 루크에 올라탄 오크들보다 높이 솟구쳤다.

 루크라이더들이 그에 맞서, 공중으로 창을 곧추세웠다.

 스컥!

 비손은 날카로운 검을 휘둘러 창신을 잘라 버리고는 오크 전사의 위로 떨어져 내리며 검을 내리꽂았다.

 “꾸르륵.”

 보통 오크보다 반 배는 큰 오크 전사의 쇄골에, 비손의 검이 파고들었다.

 하지만 과연 루크에 오르는 오크는 보통 놈들과 달랐다. 쇄골이 꽂힌 놈은,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도 팔을 뻗어 우악스럽게 비손을 끌어안았다.

 그 상태로 절명한 오크의 신형이 쓰러지며, 붙들린 비손의 몸뚱이도 함께 기울었다.

 이대로 낙마하면 필시 뒤따르는 루크에 치여 죽고 말 것이었다.

 “이익!”

 비손은 필사적으로 오크의 팔을 풀어 버리려 했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때, 바로 옆에서 루크를 몰던 오크 전사의 창이 비손의 몸통을 꿰뚫었다.

 “으윽! 부디 살아서 라미에 왕국에…….”

 비손은 끝내 완수하지 못한 임무의 성공을 기원하며 바닥을 굴렀다.

 초점을 잃고 나동그라진 비손의 시체는, 뒤따르던 루크의 발길질에 곤죽이 되어 바닥을 굴렀다.

 오크 전사의 시체와 비손의 시체는 먼지 자욱한 바닥을 볼썽사납게 뒹굴었다.

 그 옆을 지나쳐 가는 오크 전사는 비손의 시체를 무심한 눈길로 한번 쳐다볼 뿐이었다.

 “비손!”

 이리나는 비손의 죽음에 절규 섞인 비명을 내질렀다.

 호위라는 명목 하에 자신을 데리러 온 기사들이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죽었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란 말인가?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괜히 자신을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해 놓고 기사들의 아까운 목숨만 잃어버린 꼴이다.

 이리나는 서슬 퍼런 눈빛으로 살아남은 유일한 기사, 시슬러를 보았다.

 “당장 이걸 풀어라.”

 시슬러는 곤혹스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열쇠는 비손 단장님께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풀어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이익.”

 이리나는 가까스로 분기를 억눌렀다.

 자신이 마법으로 도왔다면 기사들의 목숨을 구할 수도 있었다.

 전투에 직접적인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하지만, 보조적인 도움만이라도 전투의 양상은 아주 달라졌을 것이다.

 ‘왜 나를 믿지 못하느냐.’

 자신의 마법을 믿지 못했고, 혹여 도망칠까 봐 믿지 못했다.

 이리나는 모든 게 원망스러웠다.

 스승이 있고 동료들이 있는 라이츠 마탑을 지키는 게 무에 큰 잘못인가?

 어떨 때는 자신의 출신 배경이 원망스러웠다.

 자신은 그저 라이츠 마탑의 마법사로 평생을 살다 죽어도 여한이 없건만.

 히이이잉.

 비손의 희생마자도 무의미하게, 이리나를 태운 말이 한계를 참지 못하고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말이 다리를 접으며 목을 숙이자 이리나는 허리가 쑥 낮아지는 듯한 기분이 듦과 동시에 오싹함에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이대로 떨어지면 죽는다.

 ‘끝이구나.’

 참으로 멍청한 죽음이 아닌가!

 그녀의 몸이 기울던 순간이었다.

 그때, 옆에서 말을 몰던 시슬러가 필사적으로 몸을 날려 떨어지는 이리나를 받아 냈다.

 시슬러와 이리나가 한데 엉켜 바닥을 뒹굴었다.

 “으윽, 괜찮으십니까?”

 시슬러가 낙법을 펼친 덕분에 타박상은 있더라도, 뼈가 부러지는 등의 중상은 면할 수 있었다.

 머리가 풀어헤쳐져 몰골이 엉망이 된 이리나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들같이 멍청한 기사들은 처음 봐요.”

 구하려면 제대로 구하던가, 이 무슨 어설픈 촌극이란 말인가.

 시슬러가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이 타던 말은 그대로 달려 나가 저만치 멀어져 갔다.

 시슬러가 검을 빼어 들고는 이리나의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비손도 막지 못한 루크라이더를 시슬러가 어찌 막을 것인가?

 이리나는 자신의 손에 채워진 봉인의 수갑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두려움보다 답답함에 죽을 것만 같았다. 곧 죽을 상황에서도 마법 한번 펼쳐보지 못하고, 저항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이 우스운 일처럼 느껴졌다.

 ‘다음 생엔 고아라도 좋으니 자유롭게 살고 싶구나.’

 모든 것을 포기한 이라나의 눈에 루크라이더의 뒤를 거의 따라잡은 흑기사의 모습이 비춰졌다. 하나, 한기에 불과한 기사가 나타났다 하여 무엇이 달라질까?

 ‘오크들을 모조리 죽였으면…….’

 부질없는 바람이다.

 루크라이더가 자신을 짓밟고 지나가기까지는 채 1분도 남지 않았다. 아무리 기사라 할지라도 1분 안에 루크라이더 아홉을 해치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허망하게 흑기사를 쳐다보던 이리나의 눈동자가 흔들린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풍랑이라도 만난 듯 격하게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이리나는 눈을 크게 뜨더니 종래에는 이슬마저 내비쳤다.

 “마, 말도 안 돼.”

 이리나는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일이 가능한 것인지 자신이 환상 마법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그만큼 흑기사가 펼쳐 보이는 신위는 믿기 어려울 만큼 놀라웠다.

 

 *

 

 소군악은 루크라이더 하나를 해치우고 장렬히 산화한 비손의 옆을 지나쳤다.

 그리고 다른 루크라이더의 뒤를 5미터 인근까지 따라잡은 후에, 안장의 투척용 도끼를 집어 들었다.

 휘이이익, 퍼억!

 시간차를 두고 날린 네 개의 도끼가 정확히 루크에 탄 오크 전사의 뒤통수에 틀어박혀 버렸다.

 “끄르륵.”

 오크 넷이 그대로 루크에서 떨어져내려 바닥을 굴렀다. 루크라이더의 무서운 점은 그 위에 탄 오크들이 죽어도 루크의 돌격을 멈추지 못한다는 것이다.

 주인 잃은 루크들은 그대로 앞으로 돌진을 이어 가고 있었다.

 소군악이 비도를 빼어 들고는 정방을 향해 쏘아 냈다.

 동료들이 한 번에 넷이나 죽어 버리자 그때 후방도 경계하기 시작한 오크들이 비도를 피해 냈다.

 흔들리는 마상에서 펼치는 비도술인지라 고도의 집중력을 요했으나 소군악에게는 별 무리 없는 일이었다. 그는 두 자루의 비도를 한 손에 쥐고는 전방을 향해 쏘아 보냈다.

 “끄윽!”

 오크는 저항도 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머리로 날아오는 비도를 검으로 쳐 냈으나 미처 심장으로 날아오는 비도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소군악은 같은 방식으로 또 한 마리의 오크를 죽였다.

 이제 루크 위에 타고 있는 오크는 셋. 남은 비도는 둘뿐이었다.

 소군악은 기다란 기마창을 안장의 걸쇠에 걸고는 안장위에 발을 모으더니 뛰어 올랐다.

 “차앗!”

 땅을 두 번 박찬 것만으로도 그는 흑마 무영보다 더욱 빨리 달려 가장 후미에 이른 루크의 등 뒤에 안착했다.

 스르릉!

 숨을 돌릴 틈조차 없이, 소군악은 대검을 빼어 들고는 허리를 비틀어 후방을 향해 창을 내지르는 오크를 상대했다.

 후아아앙. 퍼억!

 마상용으로 만들어진 대검의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그야말로 가로막는 것이 무엇이든 둘로 쪼개 버릴 만큼 강력했다. 창대가 가로막으면 그대로 부숴 버렸고. 갑옷이 걸리면 그대로 으스러뜨려 버렸다.

 오크 셋이 순식간에 피떡이 되어 쓰러져 버렸다. 가장 선두의 루크 위에 내려앉은 소군악이 루크의 뿔을 쥐고는 고개를 돌렸으나, 루크는 성난 듯 고개만 흔들 뿐,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전방에서는 그런 그의 모습을 시슬러와 이리나가 멍청한 얼굴로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저들이 루크에 그대로 치여 버릴 것이었다.

 “뛰어!”

 소군악은 소리쳤다. 시슬러가 퍼뜩 이리나를 붙잡고는 뛰었으나 루크는 방향을 바꾸어 그들을 뒤쫓았다.

 오크들만의 루크 조종법이 있는지, 한번 노린 대상을 집요하게 쫓는 것인지, 루크는 요지부동이었다.

 ‘할 수 없군.’

 벌써 도망치는 두 사람과 루크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져 있었다. 30초만 지나도 참혹한 광경을 마주해야 하리라.

 소군악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에게는 라이츠 마탑 소속의 마법사라는 존재가 필요했다.

 이를 질끈 문 소군악은 오른쪽 허리춤에 꽂힌 한 손 검을 역수로 잡아 뽑았다.

 뾰족한 검 끝 아래로 불룩하고 넓은 칼날이 있었는데, 손잡이로 올수록 얇아지는 모양새였다. 그렇다 보니 무게중심이 검 끝에 쏠려 있었다. 베기에 적합하고 찌르기에도 좋은 이 검은 대막의 암살자들이 주로 쓴다는 쿠크리와 닮아 있었다.

 소군악은 그 검을 그대로 루크의 목덜미에 쑤셔 넣었다.

 푸욱!

 본래 창칼 따위는 우습게 튕겨내는 루크의 가죽이지만, 내력이 주입된 소군악의 검은 마치 짚단을 찌르듯 쉽게 루크의 목에 구멍을 내놨다.

 희번뜩 눈동자를 뒤집은 루크가 고꾸라지자 뒤따르던 다른 루크가 채여 한데 뒹굴어 넘어졌다.

 그전에 소군악은 루크의 등을 밟고 허공을 격해 옆에서 달리는 또 한 마리의 루크 위에 올라탄 후였다.

 가히 신의 경지에 이른 균형 감각이었다.

 푸슉!

 그대로 소군악은 전방에서 달리는 루크 네 마리를 순식간에 죽여 버렸다. 고꾸라진 루크가 있는가 하면 동료의 시체를 걷어차고는 그대로 달려오는 힘 좋은 놈도 있었다.

 바닥을 몇 번씩 박차며 마주 달리는 소군악의 걸음은 루크에 비해 조금도 느리지 않았다.

 종횡무진하며 검을 휘두르고 나니, 살아남은 루크는 두 마리뿐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질 않았다. 이제 루크들은 시슬러와 이리나의 바로 코앞까지 들이닥쳐 있었다.

 소군악은 다시금 신위를 발휘했다.

 푸욱!

 “후으으응.”

 괴상한 소리와 함께 루크의 고개가 꺾였다. 관성에 의해 치고 달리던 루크가 그대로 바닥에 긴 궤적을 남기며 앞으로 나아갔다.

 시슬러가 옆에서 도망치던 이리나를 밀치며 루크를 맨몸으로 막아 냈다.

 “흐어어억!”

 시슬러의 몸이 밀려나더니 발이 움푹 파인 바닥에 잠기고 말았다. 그래도 속도를 현저하게 떨어뜨린지라 엉겁결에 일어난 이리나는 조금 더 도망칠 수 있었다.

 “아악.”

 하지만, 두 손이 한데 묶인 상황에서 달리기는 영 어색하고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균형을 잃고 쓰러진 이리나는 두려운 얼굴로 마지막 남은 루크를 보았다.

 그리고 그 루크의 등 위에 올라탄 소군악을 보았다.

 그다음 순간, 소군악은 루크의 목덜미에 검을 찔러 넣고 있었다. 하지만 바닥에 넘어진 이리나와의 거리는 불과 5미터.

 소군악은 루크의 머리를 밟고는 천근추의 수법을 발휘했다.

 쿠쿵. 그르르르르

 루크의 두꺼운 가죽이 땅바닥을 질질 끌려 나갔다. 성난 기세로 달려오던 루크는 이리나와 불과 50센티 떨어진 곳에서 멈춰 섰다.

 이리나는 눈물을 흘렸다. 그것이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써서 눈이 따가워진 탓인지, 극한의 상황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먼지가 땀과 눈물에 잔뜩 엉겨붙은 탓에 그 꼴이 볼썽사나웠다.

 먼지가 가시고 이리나가 소군악을 올려다보다가 눈을 부릅떴다.

 “하, 한 마리가 더 있어요!”

 동료가 쓰러지며 함께 땅을 구르던 루크 한 마리가 일어서서는 돌진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30여 미터의 거리.

 슈우우욱, 퍽!

 소군악이 한 손 검을 던졌다.

 검은 정확히 루크의 정수리에 박혀들었다. 바닥을 나뒹구는 루크를 보며 이리나는 그제야 참았던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이리나는 적잖이 놀란 상태였다.

 라이츠시에 이렇게 엄청난 실력의 흑기사가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당신은…… 누구죠?”

 이리나는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눈으로 멍청히 소군악을 올려다보았다. 이리나가 보기 드문 미녀이긴 했지만 지금 모습만큼은 미녀란 말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소군악이오. 당신이 라이츠 마탑의 마법사요?”

 이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군악은 만족했다. 이제 라이츠시로 들어설 방법이 생겼던 것이다. 더욱이 라이츠 마탑에 수정에 대한 연구를 부탁할 연줄까지 말이다.

 소군악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라이츠 마탑을 구원하러 왔소.”

 그 말을 듣는 순간, 이리나는 벼락을 맞은 듯 온몸에 전율이 이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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