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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판타지/SF
대군주
작가 : 진설우
작품등록일 : 20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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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운 악룡 크로크슈가 지배하는 하늘산은 발 붙인 자는 있어도 생환한 자는 없는 금지된 곳으로 크로크슈에 맞서기 위해 한 기사가 걸음을 들였다. 그리고 그가 하늘산을 내려왔을 때 그의 영혼은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수하들을 위해 목숨마저 내걸었던 중원 천년신교의 2공자, 소군악의 영혼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거짓 정의와 거짓 평화는 진실인 척 가증스럽다. 위선 가득한 자들의 비열한 구원, 부패한 자들의 그릇된 자비로 인해 세상은 이미 지옥과 다름이 없으니, 내 친히 명왕이 되리라. 세상을 송두리째 갈아 치울 검은 기사의 행보가 펼쳐진다.

 
16화
작성일 : 16-06-08 16:41     조회 : 731     추천 : 0     분량 : 6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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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복색의 남자가 인상을 찡그렸다.

 “저것들은 또 뭐야? 제대로 안내한 것 맞아?”

 쥐 수염의 사내는 허리를 더욱 낮추며 쩔쩔맸다.

 “확실합니다요. 매일 아침나절부터 나가저녁때가 되어서야 돌아옵니다.”

 레드 로즈 기사단의 부단장 라트가 그 말을 확신시켜 주었다.

 “분명 누군가가 수련한 흔적이 있습니다.”

 레드 로즈 기사단과 용병대는 널찍한 공터를 사이에 두고 대치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공터에는 분명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사람의 발자국이 어지러이 찍혀 있었다.

 “그렇단 말이지…… 한데 저것들은 뭐야?”

 “분명 혼자였는데…….”

 소군악을 멀찍이서 24시간 감시하라는 임무를 맡은 쥐 수염의 병사는 땀을 뻘뻘 흘렸다. 용병대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뉘, 뉘시오?”

 “알 것 없다. 이곳에서 검은 옷의 남자를 못 봤느냐?”

 코모라의 당당한 물음에 용병대 사내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못 봤소.”

 “흐음, 그렇단 말이지? 한데 그놈은 뭐지?”

 으슥한 폐광산에 한눈에도 흉흉해 보이는 사내 열둘이 몰려와 있다. 게다가 그들은 줄에 꽁꽁 묶인 사내 하나를 협박하듯 에워싸고 있다. 그것은 누가 보더라도 그리 정의로운 일이 아님은 알만했다.

 ‘젠장. 하필 누군지도 모를 기사 새끼들이…….’

 라우터는 이를 갈았다. 용병대를 창설한 이래 가장 큰 위기에 맞닥뜨리고 말았다. 괜한 기사도를 내세워 제이크를 구하려 한다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하늘이 도왔음인가?

 살려 달라고 애원해도 부족한 신세인 제이크가 저쪽을 향해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계속해서 고개를 돌리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코모라가 그런 제이크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가만. 저놈은 낯이 익은데? 그놈 얼굴 좀 보지.”

 차차창!

 레드 로즈 기사단이 일제히 검을 빼어 들었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당장에 달려들어 도륙해 버릴 작정이었다. 찔끔한 라우터가 제이크의 머리를 잡고는 얼굴을 정면으로 보이게 했다.

 코모라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니? 네놈은 제이크가 아니냐?”

 용병대 전원이 벌레 씹은 얼굴이 되었다. 설마 저 귀족가의 도련님처럼 보이는 자와 자신들이 잡아온 노예가 아는 사이였을 줄이야.

 ‘젠장, 글렀군.’

 라우터는 자신의 용병대가 몰살당할 것이란 걸 예감했다. 하지만…….

 “아, 안녕, 코모라. 하핫, 오랜만이군.”

 제이크의 어색한 인사에 코모라가 허리를 젖히며 웃었다.

 “파하하하하! 그 잘난 제이크가 몰골이 그게 뭐냐? 푸하하하하!”

 모두의 이목이 코모라에게 집중되었다. 저 입에서 나오는 명령에 따라 전투가 벌어질지 말지가 결정되리라.

 “아카데미 최고의 수재라는 제이크께서 어쩌다 이런 꼴이 되었을까?”

 “하하, 그러게. 좀 도와줄래?”

 눈물까지 글썽이던 코모라는 웃음을 멈추고는 안색을 싹 바꾸었다. 인상이 잔뜩 굳은 것이, 마치 다른 사람으로 변해 버린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우리가 그렇게 친했던가?”

 “그, 그렇지?”

 제이크는 간이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아카데미에 다닐 때 코모라와 좀 더 친하게 지내 두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놈 때문에 내가 당했던 모욕을 생각하면 찢어 죽여도 시원찮다.”

 그 말에 용병대원들은 서로 눈치를 살폈다. 자신이 잡고 있는 인질과 귀족 도련님이 구면은 구면인데 악연인 듯하니, 살아날 방도가 보이는 듯싶었다.

 그들이 제이크를 협상 카드로 쓰려고 머리를 굴리는 사이, 코모라가 선수를 쳤다.

 “그놈을 지금 당장 죽여라. 그럼 네놈들 목숨은 살려 주지.”

 저런 놈 하나 잡는데 자신이나 레드 로즈 기사단의 검에 피를 묻힐 수야 없는 일. 용병대를 향해 내린 명에 대장 라우터는 고민했다.

 ‘제길, 20골드짜리 의뢴데…….’

 제이크를 무사히 데려가기만 해도 20골드가 떨어진다. 하지만 죽어 버리면 한 푼도 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20골드를 허공에 뿌리는 게 아깝긴 했지만, 어디 자신들의 목숨만 할까?

 “놈을 죽여라.”

 라우터의 명에 용병대원들이 머뭇거리며 제이크를 향해 다가갔다. 코모라가 흥미로운 눈으로 제이크를 보았다. 마치 통 안에 쥐와 고양이를 함께 풀어 놓고 고양이가 쥐를 사냥하는 모습을 즐기는 듯한 기분이었다.

 “히, 히엑!”

 빠악!

 제이크가 질겁하고는 바로 옆에 있던 용병대원에게 박치기를 먹였다. 그러고는 곧바로 있는 힘을 다해 뛰었다. 쥐가 벼랑 끝에 서면 고양이도 문다고 했던가?

 팔이 꽁꽁 묶인 와중에도 재빨리 도망치는 제이크의 모습이 영락없는 쥐새끼다.

 “저놈 잡아!”

 라우터의 다급한 명에 용병대원들이 서둘러 제이크를 뒤쫓았다.

 “파하하하! 쥐새끼가 살려고 발악을 하는구나.”

 코모라는 저 꼬락서니가 그렇게 재밌는지 박수까지 치며 웃었다. 왕립 아카데미에 다닐 때 항상 1등하던 제이크 때문에 얼마나 많은 귀족 자제들이 비교의 대상이 되어 집안의 눈총을 받았던가.

 ‘저놈 때문에 아버지께 들은 꾸중만 해도…….’

 자신의 기준에서 제이크를 죽이기 위한 명분으로 그것이면 충분했다. 이번 경우는 넓게 아량을 베풀어 직접 죽이지 않고 그저 죽는 것을 방관하는 정도일까?

 사람이 죽기 전에 숨겨진 힘을 낸다는 말이 꼭 맞는지, 제이크는 더없이 빠르게 달렸다. 하지만 팔이 묶인 상태로는 달리는 동안 몸의 균형을 유지하지 못했다.

 “으윽.”

 기우뚱하며 넘어진 제이크는 머리로 땅을 밀며 겨우 일어섰다. 하지만 그사이 달려온 용병대원들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이 자식이, 어딜 도망가!”

 라우터는 직접 검을 빼 들고는 제이크에게 다가왔다. 용병대원들이 제이크의 어깨를 내리누르며 바닥에 무릎 꿇렸다.

 “사, 살려 줘! 이대로 죽을 순 없어!”

 라우터를 올려다보는 제이크의 얼굴에는 절박함이 가득했다. 그런 그의 눈에 나무 위에서 가만히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흑의 사내가 들어왔다.

 “거, 거기! 나 좀 살려 주시오! 제발!”

 제이크의 말에 라우터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위를 보았다. 사람의 인기척이라곤 조금도 없는데, 정말 가지 위에 사람이 앉아 있었다.

 “누, 누구냐!”

 그의 반응에 코모라와 레드 로즈 기사단 또한 나무 위를 살폈다. 라트는 흠칫 놀랐다.

 ‘대단한 암살자든가, 뛰어난 고수다.’

 사람이 있는 줄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소피아가 눈을 크게 뜨며 손가락질했다.

 “그, 그 녀석이에요!”

 “호오?”

 코모라가 턱을 쓰다듬었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사내 소군악은 쓰게 웃었다.

 ‘극성에 이르면 모습마저 감출 수 있거늘.’

 아직 모자라는 내공이 원망스럽다. 조금만 더 내공이 충분했다면 기척만이 아니라 모습마저 완벽히 감출 수 있었거늘.

 소군악이 창을 쥐고는 훌쩍 뛰어내렸다.

 소군악이 내려선 장소가 공교롭게도 용병들이 제이크를 둘러싸고 있는 한가운데인지라, 용병들이 저도 모르게 뒤로 움찔 물러났다.

 용병대장 라우터는 범상찮아 보이는 녀석의 출현에 놀라긴 했으나 긴장하지는 않았다.

 ‘분명 검은 옷을 입은 남자를 찾는다고 했었지.’

 레드 로즈 기사단이 쫓고 있다는 검은 옷의 남자는 눈앞의 사내가 분명했다. 어쩌면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감과 동시에 귀족 도련님으로부터 사례금까지 받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저 새끼 잡아!”

 용병대장의 명령에 거친 용병들이 소군악을 향해 뛰어들었다.

 폐탄광에서 벌어진 일련의 상황들을 모조리 보고 있던 소군악이다. 여기서 굳이 살려야 할 인물은 없다.

 휘리릭. 촤악!

 그의 창이 허리를 한 번 휘감아 빙글 돌더니 달려드는 용병의 가슴을 그대로 꿰뚫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너무나 신속한 그 한 수에 동료 용병들이 깜짝 놀라 버렸다.

 “뭐 해! 죽여 버려!”

 라우터의 명에 용병들이 너도 나도 검을 꼬나들고는 달려들었다.

 “하아압!”

 “죽어라!”

 저마다 비명과 같은 기합을 내지르며 달려들었으나 소군악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촤악, 촤악!

 창날이 달려드는 용병 사내의 가슴을 연달아 베어 냈다. 창의 주 활용은 찌르기다. 거기에 더해 창대를 이용한 휘두르기까지 두 가지가 주 공격 패턴이다.

 하지만 소군악이 보여 준 한 수는 마치 검의 활용법과 같았다. 창날을 이용한 베기. 정확한 거리감과 힘이 아니고는 펼치지 못할 수법이다.

 “크윽!”

 너무 깊다면 뼈에 걸려 나아가지 못할 것이고, 너무 얕다면 큰 피해를 입히지 못할 것이다.

 소군악의 창날이 할퀴고 간 세 용병 사내의 가슴은 쩍 갈라져 피를 콸콸 쏟아 냈다. 당장 응급처치를 한다 하여도 그 전에 과다출혈로 죽어 버릴 것이다.

 슈슉, 촤악!

 용병들은 멈칫했고, 소군악의 창은 쉼이 없었다.

 “끄르륵.”

 그의 창이 내질러질 때마다 어김없이 용병이 한 명씩 심장을 꿰뚫려 죽어 갔다.

 그때, 죽기 살기로 달려든 라우터가 소군악의 근접 거리에 다다랐다.

 ‘됐다!’

 라우터는 자신의 승리를 예감했다. 소군악의 창은 동료의 가슴을 꿰뚫고 있고, 자신은 창의 사정거리 안쪽을 파고들어 있다.

 그의 무기는 숏소드다. 난전에서, 특히나 근접전에서 유리한 무기다.

 슈아악!

 그의 숏소드가 소군악의 옆구리를 노리고 찔러 들어갔다. 하지만 소군악의 수법이 어디 창술뿐일까?

 챙!

 소군악의 왼팔이 움직이며 숏소드의 궤적을 가로막았다. 팔을 내주고 몸을 보호하는 것일까 싶었지만, 소군악은 팔목에 감긴 토시를 이용해 검날을 옆으로 흘렸다. 본래라면 왼 팔목에 차는 작은 방패가 대신했어야 할 역할이었다.

 용병대장 라우터의 검의 기세가 그리 날카롭지 않고, 검기도 실리지 않았다. 만일 토시가 없었다 해도 맨손으로 검면을 잘 때린다면 충분히 쳐 낼 수 있는 공격이었다.

 라우터가 믿기지 않는 얼굴로 숏소드를 서둘러 수습해 다시금 공격하려 했으나, 소군악의 왼손이 이미 그의 가슴에 닿아 있었다.

 퍼벅! 팡!

 “크허억!”

 소군악이 펼친 열양장에 맞은 라우터가 뒤로 훨훨 날아갔다. 그의 가슴을 가리고 있던 옷은 어느새 누렇게 눌어붙어 있었다. 열양장이 대성에 이르렀으면 옷이 타 버렸을 것이다.

 3미터나 날아가 나무둥치에 처박힌 라우터는 그대로 절명해 버렸다.

 “히에에엑.”

 살아남은 용병 사내는 겨우 셋. 그들은 두려운 얼굴로 소군악에게서 멀어졌다. 그렇다고 본디 한편도 아닌 레드 로즈 기사단을 향해 도망갈 수도 없었다.

 채챙. 챙.

 그들은 검을 내버리고 서둘러 길도 나지 않은 산을 향해 뛰어갔다.

 슈슈슉!

 “커헉!”

 하지만 채 다섯 걸음도 가기 전에 소군악이 던진 비도가 뒤통수에 박혀 버렸다. 셋이 거의 동시라 해도 좋을 만큼 털썩 쓰러졌다.

 소군악의 곁에 살아남은 자라곤 상체가 완전히 묶인 제이크뿐이다.

 “허억!”

 제이크는 차마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는 벌벌 떨었다.

 어려서부터 상단의 무사들을 많이 봤고, 그중에는 검은 옷을 입은 사내와 같이 빨리 움직이며 창을 잘 다루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껏 저렇게 쉽게 사람을 죽이는 자는 보지 못했다.

 파리를 한 마리를 잡을 때도 고민하는 것이 사람이건만, 사내는 마치 길가에 난 풀을 베는 것마냥 자연스러웠으며 무심했다.

 실로 두려운 살인마. 적어도 제이크가 보기에는 그랬다.

 벌벌 떠는 제이크를 일별한 소군악은 창을 쥐고는 공터로 나아갔다.

 레드 로즈 기사단은 소군악의 무위에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더러 긴장하는 대원들도 있었으나, 부단장인 라트와 코모라는 물건이라는 듯이 소군악을 보았다. 특히나 코모라의 눈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것 봐요. 저자는 강해요.”

 소피아가 코모라의 승부욕을 부추겼다.

 “아아, 넌 저리가 있어.”

 “뭐라구요?”

 “찌그러져 있으라구. 난 지금 무척 흥분되니까 말이야.”

 “허, 헛. 무, 무슨!”

 소피아는 기가 차는지 말문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잔뜩 흥분한 코모라의 얼굴을 보자 뭐라 항변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들뜬 아이 같다고 할까? 맛있는 먹이를 본 뱀과 같다고 할까?

 어찌 되었든 지금 코모라에게 소피아는 안중에도 없었다.

 ‘이자는 미쳤어.’

 그의 상태는 소피아의 생각과 거의 비슷했다. 코모라는 지금 흥분으로 이성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강한 상대와 싸운다. 그리고 자신이 승리한다. 패배자는 그대로 죽인다. 이 얼마나 짜릿한 승부란 말인가?

 도박이란 큰 것을 걸었을 때에야 비로소 승리 후 느끼는 짜릿함이 백배 천배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하는 도박만큼 짜릿한 게 또 있을까? 절대 질 리가 없음을 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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