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는 2시쯤 되어서야 뒤척이며, 일어났다.
오늘도 꿈에 누군가가 스다듬는 듯한 느낌에 따뜻함이 느껴지고, 울림이 강한 명확치 않은 목소리가 담겨있었다.
머리가 다소 아프고 조금은 어지러웠으며, 역시 어제의 기억은 사장과 회의한 부분까지가 전부였다.
냉장고에 물을 꺼내어 반통을 마신 뒤에야 정신이 조금 맑아짐을 느꼈다.
"그런데 왜 아무것도 기억이 안나는데도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느낌이 남아있는거지?"
무기는 어제의 기억이 일부분 밖에 없지만, 분명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느낌은 남아있어서 중얼거렸다.
오후의 하늘은 조금 어두웠다. 구름도 많았고, 조금있다가 빗방울을 떨어뜨린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고 있는 것처럼
겨우 참고있는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무기는 왠지 밖으로 자꾸 나가고 싶었졌다. 오늘은 비가 너무 맞고 싶은 기분이 들어 가만히 있는 것이 너무 힘들게 느껴졌다.
'오늘 왜이러지?...'
자신도 모르는 힘이 끌어당기는 것처럼 무기는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역시 하늘은 지금까지 잘 참았다는 듯 시원하게 빗방울을 떨어뜨렸다. 어두운 하늘아래 빗방울이 땅을 적시고, 무기의 옷으로 빗방울이 스며들때, 무기는 왠지 모르는 힘이 쏟고,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예전에도 비를 맞아본 적은 있었지만, 오늘처럼 기운이 샘솟지는 않았다. 비를 맞으며, 언덕 위쪽으로 계속 걸어갈 때 검은 우의를 입고 한 사람이 지나쳤다.
무기는 비를 맞으며, 평온하게 걸어가고 있는데, 검은 우의를 입은 사람이 갑자기 말을 걸었다.
"어...저기요..."
"네?"
"음....실례지만, 혹씨 신의 제자이신건가요?"
무언가가 이상하다고 느낌을 받은 것인지 무기의 눈을 정확히 바라보며 차가운 눈으로 말했다.
"아니요."
무기는 무슨말인지도 모르기에 그냥 단답을 하고 그냥 걸어가려는데 그 사람은 우의의 모자를 벗으며, 무기를 한번 더 불러세웠다.
"저기요...음..귀찮으실 수 있는데, 잠시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우의 모자를 벗은 여자는 조금은 차갑고 도도해 보이는 표정이였지만, 하얗고 고운 얼굴의 피부를 가진 무기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소녀였다. 허나 무기는 다소 당황스러웠다. 처음 보는 이가 이상한 질문을 하고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니....
"제가 시간이 많지는 않은데....."
자리를 피하기 위해 말로 마무리를 지으려고 하는데 말을 짜르며 소녀가 무기에게 또 말을 했다.
"잠깐이면 되요. 비를 맞으면서 이야기 해도 되구요."
빗방울의 굵기는 차이가 없었지만, 바람이 조금씩 더 불어왔다.
우의 모자를 벗은 소녀의 긴머리에 비가 적셔지며 바람에 조금 날리는 것을 보던 무기는 비를 피해서 이야기를 잠깐 나누자고 말했다. 길 옆에 있는 작은 기와집 대문 처마를 빌려 둘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신을 믿으시는 분인가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소녀는 얼굴을 들이밀며, 무기의 눈망울을 자세히 바라보는 바람에 무기는 이상한 기분이 들어 눈을 마주치다 이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네? 신은 무엇인가요?"
"하하하..신이 무엇인지 모르시는 건가요?"
소녀는 의아해 했다. 자신이 느끼는 기운으로는 분명 신의 기운이 감지되었는데, 지금 말하고 있으면서도 신의 기운이 너무나 많이 감지되고 있는데도, 무기가 신이 무엇인지 묻고있기 때문이였다. 소녀는 신에 대해 초등학생 수준의 설명을 잠시하였다.
무기는 마치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머리를 글적이며 말했다.
"아뇨. 저는 그런것 몰라요. 믿는 분도 생각하는 분도 아무도 없는 걸요."
"아....그래요? 이상하네요...음, 제 소개가 늦었네요...저는 저기 언덕 위에서 천궁보살이라 하는 무당할머니와 같이 사는 김민정이라고 해요... 반가워요."
소녀가 당당하게 손을 내밀었다. 무기는 잠깐동안 소녀의 하얗고 고운 손을 쳐다봤는데, 소녀가 뭐하냐는 듯 표정을 짓는 바람에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였다. 소녀의 손은 아주 따뜻했다. 무기의 손이 상대적으로 차가웠기때문일까? 그 따뜻한 손에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아...네..반갑습니다. 저는 이무기라고 해요."
"이무기요? 이름 참 독특하네요. 마치 용으로 깨어나기 전의 동물의 이름과 같네요. 하하하"
"아 그런가요? 저는 그런것도.... 아는 것이 없어서..."
무기는 정보를 찾아볼 것이 좀 더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보다는 이 아이가 왜 나를 불러서 이런저런 말들을 하는지 궁금하였다.
'내가 예전에 만난 사람인가? 왜 얼굴이 정겨울까?'
무기가 혼자 생각에 잠길때, 소녀는 청갈색인 무기의 눈을 다시금 자세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음...제가 시간을 많이 빼앗았네요. 비를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어쩌죠? 이제 비도 그치고 있는데...."
"아...네...괜찮아요. 저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려구요."
"그럼 다음에 우연히 마주치면 아는 척하고 지내요."
소녀는 미소를 지으며, 무기에게 인사를 건냈다. 무기도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고, 소녀가 다시 언덕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며, 뒤돌아 집으로 걸어왔다. 비는 그치고 있었고, 어둠을 벗어내며 부끄러워진 하늘은 원래의 색을 찾아가고 있었다.
걸어오는 내내 찜찜한 느낌이 들었다. 누가 자꾸 무기를 따라오고 있는 것 같아서였는데, 뒤를 돌아볼려고 하면 느낌이 사라지고 해서 아무일 없듯 집으로 곧장 들어왔다.
옷을 벗고, 샤워를 하는 도중에도 아까 전 그 소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분명, 마치 어디서 본듯한 느낌인데.....'
무기는 어떻게든 생각해도 기억이 안나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이내 포기하며, 좀 전에 소녀와 나눈 말들을 다시 기억했다. 신에 대한 이야기.....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존재의 이야기였지만, 큰 호기심이 일어 샤워를 마치자 마자 휴대폰으로 검색을 했다. 종교적인 해석임에도 왠지 기억하지 않으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단어처럼 그 뜻까지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한동안 인터넷으로 신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들을 머리에 넣었다. 엄청난 내용들이라 시간이 다소 걸렸지만, 누가 신에 대해 묻기만 해도 전자사전부터 논문의 일부분에 관한 설명을 늘어놓을 수 있을만큼 많은 것이 기억되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무기를 검색했을때, 이무기가 어떤 동물의 이름을 뜻하는 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
'이무기가 이런동물이구나....이름이 같으니 참...'
무기는 아르바이트를 가기 위해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편의점에 도착했을때 가게 문에 잠시만 화장실을 다녀옵니다 라는 팻말이 걸려있고, 안에서 문이 잠겨있었다.
무기는 전화기를 꺼내어 전화를 걸었지만, 사장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 십여분이 지나고, 사장이 걸어둔 팻말을 내릴때 무기와 눈이 마주쳤다.
예전이면 웃으며 반겨줄 사장의 표정이 좋지 못하였고, 사장은 문을 열며 무기에게 말했다.
"무기야 오래 기다렸어? 들어와."
"아니요. 사장님 무슨일 있으세요?"
"아냐..."
편의점 안에는 정장차림에 두 사람이 카운터 쪽에 있었다.
한명은 검은 정장에 깔끔하고 단정한 머리를 하고, 안경을 쓴 모습이였고, 마치 옆에 있는 사람을 보좌하는 느낌이였다. 나머지 한명은 백발에 고급스런 단추가 돋보이는 투버튼 정장을 입고 있었고, 미간사이에 주름이 돋보였지만,
다른 어느곳에도 주름이 없고 싸늘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이 사람은 한동안 눈을 감고 무슨 생각을 하는 것 같더니, 편의점 사장을 불러 귓속말로 속삭였다.
"개가 돈 냄새를 맡은 황금알 오리가 저 녀석인거냐?"
편의점 사장은 마치 칼을 든 강도에게 목을 내어준듯 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그렇습니다.."
백발의 남성이 무기를 손짓으로 불렀다.
무기가 다가가자 남성은 무기의 머리를 살짝히 스다듬으며 말했다.
"착하게 생긴 청년이로군. 언젠가 내가 자네에게 식사를 한번 대접해주고 싶네만...."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저랑 식사를 하시고 싶은신지요?"
무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허허...자네가 우리 동생을 많이 도와주고 있다해서 고마운 마음에 그런거니 특별한 생각말게."
백발의 남성의 미간에 약간이 주름이 생기며, 입은 웃는 모습을 보였다. 옆의 남성에게 물수건을 건내받아 손을 닦으며 무기를 안심시키듯 말할때 옆의 남성에게 전화가 왔고, 통화를 마친 옆의 남성이 백발의 남성에게 굽신거리며 말했다.
"한회장님, OO대학병원 원장님께서 지금 방문하시면 된다고 하십니다."
한회장은 무기의 얼굴을 한번 보며 살짝 억지 미소를 짓고는 다시 무표정한 모습으로 편의점 사장에게 말을 했다.
"윤사장 수고하고 이 청년 좀 잘챙겨주게나."
"네...알겠습니다...살펴가십시요."
편의점 사장은 긴장하듯 몸을 떨며, 낯선 두명의 남자를 배웅했다.
편의점 사장은 낯빛이 어두웠다. 그리고 마치 자신이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인듯 고개를 떨구고, 손을 덜덜 떨었다. 무기는 무슨일인지 궁금해서 편의점 사장에게 물었다.
"사장님. 무슨일 있으세요? 몸이 안좋아 보이시는데요."
"아...아냐 무기야, 오늘 나는 이만 가볼테니, 가게 좀 부탁해."
편의점 사장은 자신의 외투를 걸치고는 다급히 나가려 했다.
"저기 사장님, 시재를 확인해주셔야 될 것 같은데요."
"무기야, 오늘은 괜찮아....내가 확인했으니.....그냥 한걸로 하면되....고생해..."
편의점 사장은 다급히 편의점을 나갔다.
무기는 편의점 사장이 외투를 걸칠때 목주변이 긁혀진 것 같은 상처를 봤기에 조금은 걱정되었다.
'무슨일이 있으신건가? 내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면 좋을텐데...'
편의점 사장을 생각하면서도 무기는 자신의 일을 열심히 했다. 어제 자신을 바라보던 누군가의 모습이 신경쓰여 이따금씩 밖을 내다보는 것 이외에는 별 다를 것이 없는 일상이였다.
편의점 손님이 전혀 없다는 것 빼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