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됐어!”
운전대를 잡은 용주는 눈으로 흘러내린 식은땀을 소매로 훔쳐냈다. 그는 조수석을 향해 곁눈질을 했다. 조수석에 누워있는 민혁은 꿈까지 꾸는지 연신 입맛을 다셨다. 지금 그가 운전하고 있는 승합차의 화물칸에는 A급 관리대상인 513번과 방금 태운 특A급 관리대상이 각자의 침대에 묶인 채 잠들어 있었다.
두 시간 전, 민혁에게서 513번 이송준비를 모두 마쳤다는 보고를 받은 용주는 서둘러 차량을 출발시켰다. 용주는 검은세단 사이에 세워져 있는 평범한 회색 승합차량의 조수석에 올라탔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도로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승합차량을 개조해서 화물칸에 두 개의 이동침대를 고정할 수 있게 개조한 것이었다. 그리고 513번이 그 중 한곳에 고정된 채 잠들어 있었다.
“앞 차에 안타십니까?”
운전대를 잡고 있던 민혁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됐어. 난 여기가 편해.”
“역시, 팀장님이십니다.”
민혁의 아부성 발언에 용주는 대답대신 무전기를 들었다.
“자, 준비 끝났으면 1호차부터 출발해.”
용주의 지시가 떨어지자 앞에 있던 세단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용주가 타고 있는 승합차와 그 뒤를 따르는 다른 세단이 움직였다.
“조심해서 다뤄. 중요한 거니까.”
이동침대에 특A급 관리대상을 눕히고 있는 민혁과 다른 보안요원들을 향해 완우가 다시 한 번 주의를 주었다. 특A급 관리대상은 잠들어 있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용주가 나서며 서류를 완우에게 들이밀었다. 완우는 용주를 노려보며 이송확인서에 사인을 했다.
“바로 연구소로 들어가나?”
“그렇습니다.”
완우의 질문에 용주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완우는 민혁의 굳은 얼굴을 보지 못했다.
“들어가면 소장한테 연락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용주의 대답과 동시에 민혁이 특A급 관리대상을 침대에 고정시키는 작업이 끝났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용주는 완우에게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향해 앞장섰다.
“잠깐!”
완우의 목소리가 보안팀 전부를 불러 세웠다. 용주의 얼굴에서 비지땀이 흐리기 시작했다.
“네?”
용주가 천천히 뒤로 돌았다.
“너, 이름이 뭐지?”
용주는 완우가 눈빛으로 자신의 눈을 찌르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고용주입니다.”
“고용주? 그럼 네가 근택이 말하던 그 놈이냐?”
용주는 완우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가는 것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다른 보안요원들의 눈치를 보며 ‘능력’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다행히 다른 의심을 받는 것 같지는 않았다.
“네. 그렇습니다.”
“그래?”
완우는 용주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용주는 자신이 발가벗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팽팽한 긴장감에 공기까지 얼어버릴 것 같았다. 그때였다. 경박한 벨소리가 경직되어 있던 공기를 흩뜨려 놓았다.
“나중에 따로 한 번 보지.”
완우는 용주를 향한 시선을 거두며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영광입니다.”
용주는 일부러 더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됐어. 그만 가 봐.”
완우는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대며 귀찮은 듯 손짓을 했다.
“네, 그럼.”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용주의 입에서 한숨이 조심스럽게 새어나왔다.
“엄청 막히네요.”
기어를 P에 고정시킨 게 벌써 10분 전이었다. 513번이 고정되어 있는 이동침대 옆에 특A급 관리대상이 고정되어 있는 침대를 나란히 실은 민혁은 용주의 지시대로 정신병원을 향했다. 서울 도심 한복판을 빠져나가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았다. 광화문에서 연일 벌어지는 시위 때문에 다른 날보다 유독 더 막히는 것 같았다. 그들이 탄 승합차를 앞뒤에서 호위하던 검은 세단들도 머리부터 디밀고 끼어드는 차량들을 어쩌지 못했다. 승합차와 두 세대의 간격을 두고 있는 그들도 도로에 서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혹시, 화장실이 급하십니까?”
아까부터 엉덩이를 들썩이며 안절부절 못하는 용주에게 민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용주는 사이드미러와 백미러를 연신 확인하며 식은땀까지 흘리고 있었다.
“아니, 아니야.”
용주의 대답을 들은 민혁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대답은 아니라고 하지만 화장실이 급한 게 분명해 보였다. 민혁도 용주를 따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용변을 해결할만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헉!”
운전석 쪽 창문 밖을 내다보던 민혁은 별안간 오른쪽 허벅지에 찌르르한 통증을 느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통증의 원인을 확인했다. 주사기였다. 그는 주사기를 쥔 손을 따라 시선을 이동했다. 자신을 보고 있는 용주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눈이 스르르 감기기 시작했다. 어지러웠다. 모든 게 아득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쏟아지는 졸음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빵’
민혁은 그대로 운전대에 머리를 기대고 쓰러졌다. 그 바람에 클랙슨이 울렸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용주는 이미 깊은 잠에 빠진 것 같은 민혁과 자리를 바꿔 앉았다. 좁은 공간에서 100kg에 육박하는 민혁의 몸을 움직이는 게 쉽지는 않았다. 그의 몸은 금세 땀범벅이 되었다. 하지만 얼굴에 흐르는 땀을 소매로 훔치는 용주의 얼굴은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됐어!”
앞뒤로 서있는 검은 세단에서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걸 확인한 용주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지금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