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부턴 걸어가자.”
서중이 차를 천천히 세우고 라이트를 껐다. 달이 밝은 밤이어서 산등성이를 따라 이어진 빛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왔다. 엔진소리가 잦아들자 적막한 산 속에 그들만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오대산 근처였다. 얼마 전, 아무런 예고도 없이 4대 산맥사업을 시작했다는 제보를 받고 그들은 잠입취재를 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서부터요? 너무 먼데.”
조수석에 앉아 있던 선모가 투덜거렸다.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이미 카메라와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고 있었다.
“인마, 잠입취재 처음 해 보냐? 시작도 하기 전에 쫑나고 싶어?”
“알았어요. 그래도 잠입취재는 아마 형보다는 제가 더 많이 했을 걸요?”
선모는 조심스럽게 차 문을 닫았다. 완전무장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두꺼운 잠바를 껴입은 그는 안 그래도 통통한 몸이 더 불편해 보였다.
“뭐? 잠입취재를 나보다 많이 했을 거라고?”
먼저 내린 서중은 장갑을 끼며 선모의 옆으로 섰다. 하얗게 나오는 입김이 달빛에 비춰 반짝이며 사라졌다.
“옛날엔 형이 많이 했을지 몰라도 9시 뉴스 앵커 된 다음에는 거의 안 나왔잖아요.”
“겨우 5년 했다.”
신발밑창이 바닥에 깔린 작은 돌들과 부딪히는 소리가 멀리까지 퍼지며 흩어졌다.
“요새는 예전과 달라서 5년이면 강산이 바뀌어도 두 번이나 바뀌거든요? 그리고 5년이 아니라 6년 됐습니다. 형님.”
“아쭈, 너 많이 컸다.”
“원래 키는 제가 좀 더 컸습니다.”
서중은 선모의 뒤통수를 살짝 건드렸다.
“이게 이제 아주 한 마디를 안지네.”
“아, 형님! 저도 이제 팀장급이라고요!”
선모가 진심으로 짜증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팀장급? 야, 나도 아직 정우 형한테 뒤통수 맞고 다녀!”
갑자기 요란한 아이돌의 노랫소리가 산 속에 울려 퍼졌다.
“아, 쫌!”
서중은 선모의 질타어린 시선을 온몸으로 받으며 급하게 주머니에 있던 휴대전화를 꺼냈다.
“예, 형님!”
정우였다.
“야, 도착했어?”
“예!”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너무 무리는 하지 마! 응?”
“뭘 새삼스럽게. 알겠습니다.”
서중은 잠입취재를 나선 후배기자를 걱정해서 늦은 밤까지 잠도 못 자고 있는 정우가 고마웠다.
“그리고 괜찮은 증거 있으면 괜히 뜸들이지 말고 바로바로 전송부터 하고. 응?”
정우의 말을 듣던 서중의 표정이 갑자기 돌변했다.
“솔직히 말해 봐요.”
“뭘?”
“그 말 하려고 전화한 거죠?”
“뭐? 이 자식이 걱정돼서 전화했더니. 야! 됐어! 끊어!”
정우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서중은 인상을 구겼다. 정우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불리하면 늘 이런 식으로 얼버무리는 습관이 있었다.
“아, 형님! 진짜 감 잃으셨네. 매너모드 몰라요? 매너모드?”
전화를 끊자마자 선모의 잔소리가 시작됐다.
“알아, 알아! 안다고! 실수 한 번 한 거 가지고 참 너무하네.”
“헤헤. 좀 심했나?”
선모는 서중이 생각보다 세게 나오자 바로 애교모드로 들어갔다. 퉁퉁한 외모와 달리 눈치가 빠른 그는 그 재능 하나로 기자생활을 유지하며, 선배들의 사랑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조직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였다.
걷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들의 말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무거운 카메라의 무게와 겹겹이 입은 옷 때문에 둔한 몸, 그리고 걸음을 더디게 하는 돌부리까지 그들의 숨을 가쁘게 하고 있었다.
“야, 아직 멀었냐?”
걸음을 멈춘 서중이 숨을 몰아쉬며 선모에게 물었다. 그의 머리에서 모락모락 올라오는 하얀 김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러게 제가 너무 멀다고 했잖아요.”
선모도 서중을 따라 걸음을 멈췄다. 그의 얼굴도 땀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야, 저거 뭐냐?”
원망하던 눈빛으로 서중을 보던 선모는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의 끝에 산에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 눈에 걸렸다.
“일단 숨어!”
그 물건의 근처에서 인기척을 느낀 서중은 선모의 뒷덜미를 잡아 누르며 숲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은 그들은 숨을 죽이고 다시 그곳에 집중했다. 선모가 가져온 고배율 카메라의 렌즈를 이용해서 아까 봤던 이상한 물체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전나무숲길 한가운데 짧은 터널 같은 게 설치되어 있었다. 달빛을 반사하는 게 강철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터널은 컨테이너 트럭 두 대가 한 번에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넓고 높았다.
“형님, 저거 말뚝 아니에요?”
선모가 고정시킨 카메라의 렌즈에 눈을 갖다 댄 서중은 한쪽 눈을 감기 위해 인상을 찡그렸다. 선모의 말처럼 터널의 양 끝에 말뚝 같은 게 보였다. 말뚝보다는 스탠드형 홈시어터 스피커에 가까운 모양이었다. 다만 아래쪽이 땅에 박혀 있고, 크기가 그것보다 훨씬 커 보이는 게 조금 다를 뿐이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그 말뚝 같은 곳에서 빛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 뭔가 하는 것 같은데요?”
“일단 동영상부터 찍어!”
“네!”
서중의 말에 선모는 급하게 카메라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양쪽에 설치된 말뚝에서 나온 빛은 터널의 한가운데에서 만나 더 큰 빛을 만들고 있었다. 말뚝에서 나온 빛이 점점 더 강해지면서 터널의 가운데 있던 빛도 점점 더 그 크기를 키워나갔다. 사방이 환해지면서 주변의 모습들도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터널의 주변에는 서중과 선모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형님, 저거 보이세요?”
선모의 질문에 서중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아까부터 그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빛이 터널을 가득 채우는 순간이었다. 그 빛을 뚫고 그곳에서 사람의 형체가 나타났다.
“찍었어?”
“찍긴 찍었는데, 너무 어두워서 형체만 겨우 보일 것 같아요.”
선모는 아쉬운 듯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그 마음은 서중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특종 중의 특종이었다. 완전히 SF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미래에나 가능할 것 같은 그 모습이 지금 여기서 실행되어지고 있었다. 더 많은 영상을, 그리고 더 정확한 증거를 확보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일단 저곳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알아야 했다. 그래야 이 프로젝트가 누가 기획하고, 어디서 실행하는 것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으로 가자.”
서중의 말에 선모의 작은 눈이 놀란 토끼눈이 됐다.
“사진이요? 설마……”
“그래, 플래시 가지고 왔지?”
“갖고 오긴 했는데……”
선모가 머뭇거리자 서중이 그를 닦아세웠다.
“야, 여기서 그냥 포기할거야? 특종을 눈앞에 두고? 이런 기회 다시는 없어. 내가 장담해! 이건 일생에 딱 한 번 있는,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알았어요.”
선모는 익숙한 동작으로 카메라에 플래시를 장착했다.
‘번쩍!’
저질러버렸다. 예상대로 터널 근처에서 이쪽을 향해 움직이는 게 보였다. 서중과 선모는 서둘러 채비를 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 뛰어갔다. 마음은 전력질주였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조금 빨리 걷는 정도였다.
“잡히겠어요!”
선모가 숨을 먹어가며 말했다. 서중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들의 발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렸다. 간격이 좁혀지는 속도가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 마치 동물에게 쫓기는 것 같았다.
“이쪽으로 와!”
선모와 서중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숲길 한쪽 어두운 곳에서 갑자기 할아버지 한 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자한 표정을 한 그는 그들을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서중과 선모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무얼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어차피 이대로는 얼마 못가 저들에게 잡힐게 뻔했다. 그리고 저들의 뿜어내는 기운은 절대 서중과 선모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할아버지를 향해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