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예고해 드린 대로 오늘 저희 WSBC 뉴스에서는 단독으로 4대 산맥사업에 SA그룹과 일본이 깊숙하게 관여했다는 의혹에 대해 보도해드리겠습니다.
서중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오전에 정우가 건네 준 자료는 완벽했다. 어떻게 그런 증거들을 모았는지 신통할 뿐이었다.
“오늘 오전에 저희 WSBC 앞으로 배달된 상자 안에는 노트북 한 대와 여러 사진과 문서들, 그리고 녹음파일 등이 들어있었는데요. 그 자료들을 저희 기술팀이 분석한 결과 증거능력이 충분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저희 WSBC는 현재 그 자료들을 전부 검찰에 재출했습니다.”
주연의 눈빛도 오늘따라 더 빛나는 것 같았다.
“그럼 먼저, 가장 많은 증거를 가지고 있었던 노트북에 대해 얘기해 볼까요? 양선모 기자,우선 이 노트북의 주인이 누구인지가 궁금한데요. 누구 것인지는 알아냈습니까?
정면을 바라보던 서중이 한 쪽에 앉아있는 선모에게로 자연스럽게 몸을 돌렸다.
“네, 저희는 가장 먼저 이 노트북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확인했습니다. 이 노트북은 SA 한국지사 부지사장인 이근택씨의 소유로 확인됐는데요. 이근택씨는 SA한국지사 부지사장 이외에도 SA 미래과학연구소 보안팀장이라는 직함도 함께 갖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여러 방법으로 이근택씨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아직까지 연락이 닿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이 노트북에는 어떤 자료들이 남아 있었습니까?”
“네. 저희는 이 노트북의 계정으로 주고받았던 메일에 주목했습니다. 다행히 많은 부분을 복원할 수 있었는데요. 그 내용을 읽는 내내 저희도 정말 놀랐습니다.”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화면을 보시면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서중과 선모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던 정우가 손짓을 했다. 스크린 가득 메일의 내용을 정리한 화면이 채워졌다.
“여기 보시면 이근택씨가 SA그룹 아시아책임자로 알려진 이완우씨에게 보낸 메일이 가장 먼저 나옵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승박을 대통령으로 만들면 4대 산맥사업을 바로 추진하게 하겠다는 내용입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정말 심각한데요. 그 다음은 뭡니까?”
“네, 그 다음은 이완우씨가 이근택씨에게 보낸 메일입니다. 이건 더 심각한데요. 아노 키오, 그러니까 일본 총리와 얘기가 끝났으니 그대로 추진하라는 내용입니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우리나라 대통령을 뽑는데 일본 총리와 얘기가 끝났다는 말이 왜 나오는 겁니까?”
“네. 이 부분은 조금 추리가 필요한 부분인데요. 앞뒤로 주고받은 메일의 내용을 살펴보면 SA그룹이 일본의 도움을 받아 우리나라에서 4대 산맥사업을 하기로 했고, 이를 위해 이승박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로 이해하는 게 가장 타당해 보입니다.”
“그런데 지금 실제로 이승박 대통령이 당선이 되었고, 대통령이 되자마자 4대 산맥사업을 강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승박 대통령은 취임식 당일, 4대 산맥사업을 지시했습니다.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80퍼센트가 반대하고, 대부분의 전문가들도 반대하는 데도 밀어붙이기 식의 사업진행으로 말이 많았는데요. 이 보도를 계기로 4대 산맥사업에 대한 진상조사가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네, 양선모 기자, 수고하셨습니다.”
“이번에는 녹취파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오세정 기자가 국내 소리공학 최고의 권위자인 배영조 교수님을 만나고 왔는데요. 어떻습니까? 이 녹취파일에는 누구의 목소리가 녹음되어 있던가요?”
이번에는 주연이 세정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네. 저희는 우선 이 녹취파일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목소리에 대해 집중했습니다. 가장 먼저 다른 매체와 인터뷰를 했던 이근택씨의 목소리와 비교를 했는데요. 보시다시피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99.9퍼센트로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동일인물로 봐도 되는 거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일단 가장 많이 등장하는 목소리의 주인은 이근택씨가 맞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녹취파일은 이근택씨가 스스로 녹음한 건데요. 연락이 되지 않아서 그 이유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이근택씨가 녹취를 한 이유는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천천히 알아보도록 하죠. 그럼 이근택씨와 통화를 한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네. 이근택씨와 통화를 가장 많이 한 사람은 역시 SA그룹 아시아책임자인 이완우씨였습니다. 역시 이전에 다른 매체와 인터뷰한 영상과 비교했는데요.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99.8퍼센트가 넘게 나왔습니다.”
“그럼 동일인물로 봐도 무방한 건가요?”
“그렇습니다. 이 둘은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았는데요. 그 중에는 대선결과의 조작을 지시하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어서 반드시 검찰의 수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주연과 세정의 대화가 끝나가자 정우가 서중에게 사인을 보냈다. 주연과 세정을 비추던 화면에 서중이 나타났다. 방금 전 들어온 속보가 서중의 손에 들려 있었다.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대선이 끝나자마자 선거결과가 조작됐을 가능성에 대해 언급한 인터넷방송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들도 기억하실 겁니다. 바로 파라다이스TV인데요. 방금, 파라다이스TV 대표이면서 진행자인 김준씨와 파트너인 기자 주진실씨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긴급체포 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소식인데도 불구하고 서중의 멘트를 듣던 정우는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솟구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우는 김준과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다. 얼마 전 갑자기 연락이 와서 만났던 김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자리에서 김준은 모든 것을 포기한 것 같은 얼굴로 목에 걸고 있던 usb를 정우에게 건넸다. 어떤 설명도 없었다. 정우도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 다른 건 물어보지도 못했다. 분한 마음에 눈시울까지 붉어졌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김준이 건네준 usb를 주먹에 꼭 그러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