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하하하하......”
김연은 비웃는다. 그러나 그 웃음이 너무나 무섭게 느껴진다. 차가운 비수를 목덜미에 가져다 대는 느낌이다. 그 웃음에서 살기가 느껴진다.
김연의 그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고 있다.“
“......”
“그럼, 이렇게 하자.”
“??”
“나에게서 대답을 듣고 싶으면, 힘으로 들어보는 거야. 흔히 있는 클리셰지.”
“불가능한 것을 말씀하시면서 선심쓰는 듯이 말하지 마시죠.”
그러나 나는 노골적으로 분노를 숨기지 않고 말한다. 자신과 김연의 힘의 차이를 잊은 채.
“물론, 핸디캡은 주도록 하지.”
“??”
“난 여기서 ‘몸’을 움직이진 않을 거야. 그리고, ”
촤아악!!
김연이 앉아있는 콘크리트 파이프 주위로 반경 4M정도의 원이 그려졌다.
“네가 이 원안에 들어올 수 있다면 원하는 건 뭐든지 말해준다고 맹세하지.”
“......좋습니다.”
원에서 자신까지는 약 2보정도. 얕보는 건가? 너무 쉽다. 그러나 상대는 김연이다. 분명히 자신이 있으니 저러는 것일 터.
“그럼. 시작해봐.”
대답도 하지 않고 나는 원으로 뛰어든다. 이정도 거리는 한번의 도약이면 충분하다. 오히려 김연까지도 한걸음에 갈 수 있는 거리다. 그러나,
우우웅.......
쾅!
“크윽?”
갑자기 무언가가 나의 몸을 거칠게 잡아 끈다. 나는 보기 좋게, 곧바로 바닥으로 내팽겨쳐졌다. 몸이 미칠 듯이 무겁다.
“크윽...... 중력 증폭??”
“정답.”
역시 이 자는 순순히 답을 알려줄 생각같은 것은 없었다.
“그리고 하나 더.”
김연은 손가락을 튕겼다. 눈앞에 검은 빛의 원형진이 떠오른다. 그 안엔 언젠가 기초마법 수업때 보았던 문자들이 그려져 있다.
콰아!
“윽!!”
보이지 않는 힘에 직격당하고 저 멀리 날아갔다. 얼마나 날아간 걸까, 뒤에 있던 나무에 처박혔다.
“허억.......”
일시적으로 숨이 멎었다. 폐에 남은 공기를 모조리 뱉어낸 기분이다.
“큭큭큭...... 왜그래? 듣고 싶은게 있잖아? 일어나. 다가와보라고. 진실이 눈앞에 있잖아? 손만 뻗으면 돼. 그정도의 의지가 있다면 할 수 있을 거야. 아카데미에서 지겹게 가르치는 정신론 아니었나?”
비아냥. 그러나 평소의 장난기는 없다. 가시가 돋혀있다.
아아, 이자는 정말로 화가 나있다. 그것만은 알 수 있다. 땅바닥을 보고 있으면서도 알 수 있었다.
“크으.......”
“흠?”
“닥쳐!!!!!!!!!!!!!”
발악하면서 전신의 기력을 순환 시킨다. 몸이 터질 것 같다. 하지만 견딘다.
가속 3배
콰아!!
정면 돌격은 아니다. 우선은 오른쪽, 그리고 그대로 앞으로 가서 뒤에 있던 나무를 디딘다. 다시 튀어올라 왼쪽, 김연의 주위를 맴돌며 움직인다.
“아무리 빨라도 벽이 사라지거나 하진 않는데? 이 주변은 전부 중력장으로 막혀있어. 그리고 난 그 출력을 더 올릴 수 있지.”
김연의 말대로, 주변의 중력이 올라간다. 땅바닥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점점 갈라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
대답할 필요는 없다. 그 대신 내 주위로 흰 빛의 구슬이 하나 떠오른다.
파앗.
콰아아!!
무언가가 터져나가는 소리, 들썩이던 땅이 멈춘다.
“스펠 브레이커? 참 정석적이고 고전적인......”
김연의 해설을 기다리지 않고 나는 그틈을 노려 김연에게 달려든다. 그러나,
지지지직!!!!
“크아아아앗!!!!!”
온 몸에 직격한 전류. 균형을 잃고 땅바닥에 쓰러진다. 전신에 힘이 빠진다.
“원 캐스팅이라곤 한 적 없어.”
“하아, 하악!”
고통스럽게 꿈틀대며 숨을 내쉰다. 고통스럽다. 온몸이 저리고 움직이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한심하네. 이미 말만으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단 것쯤은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다시 들어오는 조롱.
“닥쳐어어어!!!!!!!!!!!!!!!!!!!!!!”
분노가 치솟는다. 당장 저 얼굴을 있는 힘껏 갈기고 싶다.
전신의 기력을 가속한다. 몸이 터져나갈 것 같다.
가속 4배. 전신방호.
극심한 반동이 뻔한 능력사용. 그리고 임시방편일 뿐인 방호마법. 그것만을 믿고 나는 앞으로 뛰어든다.
우웅!!
다시 중력이 덮쳐온다. 그러나 4배 가속은 그 중력에 땅바닥으로 처박히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먼저 내 몸을 앞으로 나가게 해준다.
지지지직!!!
다시 전류가 덮쳐온다. 그러나 미약한 방호라도 있는 덕에 일순간에 무력화되는 것은 피했다.
그리고 나는 쓰러졌다.
“.......”
어느새 앞으로 뻗은 손이, 원 안에 들어와 있다.
김연은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나를 바라볼 뿐.
“크윽.......”
분하다. 눈물이 난다. 자신은 약하다. 원하는 것 하나 조차, 물음의 답을 듣는 것 조차 목숨을 걸어야 하는 자신이 한심하다. 억울함과 무력감이 마음을 뒤덮어간다.
김연은 그런 나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입을 연다. 아까의 조롱도, 비아냥도 없다. 나지막하고 듣기좋은, 진지한 목소리.
“이상다고 생각 한적 없어?”
“뭐라고?”
악에 받쳐 되묻는다.
“너무 쉽게, 그리고 딱딱 맞춰서 적당한 타이밍에 정보가 들어왔지?”
“......??”
“대한 민국 공수 여단 8중대, 그 정보는 반장급도 쉽사리 얻을 수 없는 정보야. 무조건 청장을 거쳐서 얻어야하는 정보지.”
“??”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보나마나 12반의 그 친구에게 얻었을 그 정보 안에, 마침 너를 흔들만한 정보가 들어가 있었지. 정보과라고 해도 말단 신입. 이정윤이 아무리 똥멍청이라도 신입이 쉽사리 얻을 수 있는 곳에 그 정보를 두었을까? 문서화된 서류든, 저장된 데이터든 말이야.”
“무슨....... 말을.......”
“게다가 마리아. 참 이상하지. 그날 투입된 그 많은 팀들 중에 하필이면 왜....... 왜 그녀가 내 앞에 나타났을까.”
“우연......일 지도 모르죠.”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일단 부정해본다. 그러나 김연은 그런 것쯤은 개의치 않는 다는 것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롤 말을 이었다.
“네 친구가 죽었던 그 작전은 어떨까?”
“.......”
순간, 철연의 바보같던 모습, 그리고 그날 이후 상상하던 그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그 작전, 거기에 직접 참가한 대원들 외에 그 작전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마 열손가락 안에 꼽을 거야.”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싶으신 거죠?”
“뻔하지 이녀석아. 너도 작전보고는 읽었을 거 아냐.”
김연은 이젠 아예 나를 타이르는 것 같은 목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정보가 미리 샜고, 그렇기에 완벽한 역습이 가능했지, 심지어 놈들은 안티 텔레포트의 위치까지 미리 파악해서 신속하게 제거하고 역습을 가했어.”
“.......”
김연의 말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아무래도 나는 김연이 무슨 말을 할지, 눈치채기 시작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공장. 작전의 내용도, 구성도 즉석에서 결정되었을 터. 근데 어떻게 놈들은 그렇게 타이밍 좋게 맞춰서 나타났을까? 그것도 내가 알아볼 것이 뻔한 차림을 하고.”
“.......”
알아볼 것이 뻔하다는 것은....... 아마도 내 짐작이 맞을 것이다.
“자, 이건 내가 전담청을 이탈한 이유이기도 해.”
“이유......라고요?”
김연은 쓴웃음을 짓는다. 그러나 곧, 눈을 치켜뜨고 나를 노려보며 말한다.
“전담청에, 배신자가 있다.”
“!!!”
용의자는 정보열람이 어느정도 허용되어있고, 장비 지급 기록을 볼수 있으며, 작전수립에 참여하는 자들. 즉, 반장급 이상 전원. 물론 이건혁을 포함해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다. 그런데, 왜 그걸 지금 내게 말하는 거지?
“솔직히 말해서, 네가 온 것 역시 미심쩍었어. 이건혁이 날 감시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게 해주는 것이니까.”
“그래서 이런.......짓을 한.......”
“뭐 심심했던 것도 있고, 오랫동안 산속에 처박혀서 용병들이나 사냥하고 있으려니 정신이 나갈 것 같았거든.”
“......이 개......”
“워우, 입이 상당히 험하신데.”
그리고 김연이 웃는다.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차갑고, 너무나 날카로운 웃음.
“.......하하. 이제 뭐 상관 없을 지도 모르겠네.”
“??”
“사과의 의미로 약속을 지킬게. 물론 한손만 들어왔으니 단 한가지만 말하도록 하지. 네가 그토록 듣고 싶어하던 결정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말야.”
“한가지?”
“비록 정보의 출처는 미심쩍을지언정, 네 추측이 완전히 엇나가진 않았다는 거지.”
김연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달빛만이 그를 비추고 있다. 그는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대로 눈만을 내리깔며 나를 본다.
왜일까?
아름답다.
달빛아래 오만하고 차갑게 서 있는 그가 너무나 아름답다.
그리고 왠지 쓸쓸하고, 너무나 슬퍼보였다.
“나는 이름없는 자. 마지막 언노운이었지.”